함북노회 교역자 총회 2008년 12월 29일
성경말씀 고후5:18-20절 제목 :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요즘 저는 뉴스를 잘 보지 않으려 합니다. 왠지 뉴스를 보다보면 짜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국회의원은 나라의 법을 만드는 입법 기관입니다. 법을 만드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관계보다는 아주 나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보시겠지만 국회의원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웁니다. 정말 국회의원들은 트러블 메이커들입니다. 이것은 국회뿐만 아닙니다. 미국의 LA에 동양선교 교회가 있습니다. 미국 내에 한인교회로서는 가장 큰 교회입니다. 몇 년 전 그 교회는 강 준민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강 목사님은 우리나라에도 영성 목회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교회가 온통 싸움판입니다. 피스메이커를 주장하던 목사님과 일부 교인들이 공동의회를 하면서 서로 트러블이 생겨 경찰을 교회 내에 불러 들였습니다. 정말 교회 안에 화목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그 교회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어느 교회라 지칭은 하지 않지만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교회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도 그리고 총신도 트러블메이커들이 많아 안 좋은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들의 행태를 보면서 과연 교회의 모임들이 이렇게 해서 되겠는가? 생각해 보면서 오늘 우리 노회 목회자들의 모임은 그런 모임이 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지금은 많이 좋아 졌지만 과거엔 우리 노회도 그러했습니다. 이런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목회자들의 심적 부담은 큽니다. 이런 일은 오늘 교회들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대표적 교회입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을 읽어보시며 느끼시겠지만 고린도 교회는 처음 개척됐을 때는 정말 화목한 교회였습니다. 아시겠지만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교회를 개척한 직후에는 서로 화목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급성장하면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서로 자신이 은혜 받았던 사람들을 참 정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파 그리고 바울파 아볼로파 등 주장을 했고 또 각양 은사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자기 은사가 더 좋은 은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교인들 간에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중재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처음 편지를 쓸 때 모두 16장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13장을 씁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17절을 한번 봅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18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 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서로 화목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화목이라는 말은 분쟁의 반대말인데 헬라어로는 카탈라게 라는 말인데 쌍방의 적의가 사라지는 관계를 말합니다. 즉 죄를 범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화목은 쌍방 간이라고 하지만 한편의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2: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다른 아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원수 된 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화목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면 바로 그런 사실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화목을 배웠고 그 화목의 직책을 받았으므로 서로 화목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하목 하라.” 고 말씀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화목해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화목은 결국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더 관철 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니 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 목회자들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관철시키려 하면 결국 화목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셨던 것처럼 그 분이 주신 화목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일찍이 산상보훈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5:9절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평은 곧 화목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사람에게든지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래 전 [피스메이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모든 사람들과 피스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보면 [트러블메이커]들이 많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에서 트러블메이커인가 피스메이커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라면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너는 잘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가능한 주어진 공동체에서 아름다운 화목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화목의 직책을 가진 목회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북 노회 안에 이런 목회자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주어진 공동체에서 화목의 직책은 받은 자들로서 서로 화목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줘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교역자 모임은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다시 바울의 말씀을 봅시다. 18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애씀으로 화목해지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주시는 화목으로 화목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