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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 (1777 - 1855) : 도이칠란트의 수학자
19세기 전반 최대의 수학자로서, 순수 수학에는 물론, 응용 수학에도 눈부신 업적을 남겨 '수학의 왕자'로 불리고 있다. 그의 업적은 현대수학과 이론 물리학 외에, 오늘날의 과학 기술 분야의 발전에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브란시마이크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불과 10세때 등차 급수의 합을 구하는 공식을 알아내어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브린시바이크 공의 도움으로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학생시절인 19세때 유클리드이래 2000년간 삼각자와 컴퍼스만으로는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정 17각형을 그릴 수 있음을 증명해, 대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 최소 제곱수를 발견하여 복소수평면을 발표하였으며, 1799년에는 이른바 대수학의 기본 정리를 증명함 으로써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 14각형 그리는 방법을 정수론에서 얻었는데, '수학은 모든 과학의 여왕이며,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정수론을 가장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1801년에는 <수론연구> 를 발표하여 정수론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획기적인 업적을 쌓았다. 1801년 이후로는 괴팅겐 대학 교수로 평생을 보냈는데, 그는 정수론 이외에도 최소 제곱법을 비롯한 곡면론, 허수론, 방정식론 등을 깊이 연구해 수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타원함수의 발견과 최초로 완전한 정의를 내린 복소수 등은 그가 죽은 후, 그의 유고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증명은 이전의 뉴튼, 오일러 시대의 수학과 그 이후의 수학을 수학 사상적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복소수란 말도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자기 유도의 단위인 '가우스'란 말도 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갈로와 (1811 - 1832) : 프랑스의 수학자
21세의 적은 나이로 죽은 천재적 수학자로서, '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을 해결하였다.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1828년 중학생때 종합 기술대학에 응시하였으나 떨어져 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829년 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프랑스 학술원에 제출했는데, 심사위원이 그의 논문을 잃어버렸으나, 뒤에 <방정식의 일반 해에 대하여> 라는 논문을 학술원에 또 제출하였으나, 이번에는 심사위원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논문이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심혈을 기울여 쓴 논문을 두 번이나 잃어버린 그는 매우 화가 치밀어 사범학교에서 정치 활동에 열중하였다. 1830년 콜레라에 걸려 가석방되었으나, 결투 끝에 죽었다. 그는 온갖 불행과 비극이 겹친 가운데서도 놀랄만한 수학적 업적을 남겼는데, 그의 업적은 그가 결투하기 전날 밤, 친구 수발레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오늘날 '군'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이론에 의해 방정식을 대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조건을 구한 '갈로와의 이론'등이 유명하다.
네이피어 (1550 - 1617) : 영국의 수학자
세인트엔드루즈 대학에서 수업 후 프랑스에 유학하였다. 그 뒤, 도이칠란트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571년 귀국하였다. 당시의 종교적인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수학과 신학을 연구했는데, 1614년에 발간된 <놀라운 대수 법칙> 은 20년 동안의 노력의 결과이다. 후에, 브리그스와 협력해 상용대수표를 만들었다.
네터 (1832 - 1935) : 도이칠란트의 여류 수학자
막스 네터의 딸로 1914년 괴팅겐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수와 상수, 연산의 관계를 명백히 하여, 일반적인 관념론과 다원수론에 의한 추상대수학을 확립하였다. 즉 이는 고전적 대수기하학의 면목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의 추상화된 수학 발전에 공이 크다.
노이먼 (1832 - 1925) : 도이칠란트의 수학자
뤼빈레 대학 등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수학과 물리학을 연구한 끝에 적분방정식, 아벨함수를 연구했고, 또 전기이론, 기하공학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뉴우튼 (1642 - 1727) : 영국의 수학자
링컨셔의 울스소프 농가에서 태어나,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에 입학하여, 유능한 수학자 발로의 지도를 받았으며, 그는 재학시절에 이미 2항정리를 발견하여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 해 런던에 발생한 페스트가 유행하여 대학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그도 고향에 돌아갔다. 그의 위대한 업적의 대부분은 이 시기 1655 - 1656년에 싹튼 것이다. 1657년 학교가 다시 문을 열자,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672년 왕립학회 회원으로 뽑혔다. 이에 앞서 1659년 스승 발로의 뒤를 이어 모교 수학과 교수가 되어 광학을 강의하면서, 미적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새 수학의 발견에 대해 라이프니츠와의 우선권 문제로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 물체 운동 및 만유인력의 기초 법칙을 2대 지주로 하는 이론역학을 세운 것은 그의 저서 <프란키피아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였으므로, 착상이래 20년 후의 일이었다.
그의 이 저서는 근대 과학에 있어서의 이론적 방법의 프로그램을 나타낸 것으로 복수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의 과학상의 뚜렷한 업적은 그 무렵을 경계로 끝났으며, 그 후에는 그것들의 정리, 사회적 활동 그리고 연대기적 또는 신화적 연구 저술에 소비하였다. 1696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오래된 친구인 몬다규(재정가)의 권고로 왕립조폐국에 들어갔으며, 3년 후에는 장관에 취임하였고, 1703년에는 왕립협회 회장이 되었는데, 죽을 때까지 재직하였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데데킨트 (1831 - 1916) : 도이칠란트의 수학자
괴팅겐 대학에서 가우스에게 배웠으며, 1854년 이후 괴팅겐 대학 강사, 퓌리히 대학 브라운 시바이크 공업학교 교수를 지냈다. 이데알에 의한 대수적 수론의 개척자로 19세기의 대표자가 되었다. 이른바 '데데킨트 집단'이라는 개념에 의하여 무리수론과 자연수론을 전개하고, 연속성을 밝혀 수학해석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발표한 논문으로는 2항방정식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연속과 무리수> <집합론>등이 있다.
데밍 (1900 - ? ) : 미국의 응용 수학자
1933년 농무성 부속 대학원 통계 수학부장을 거쳐, 1946년 뉴욕대학 수리통계학 교수가 되었다가, 이듬해 토오쿄오 연합군 통계고문이 되었다. 그는 '데밍의 최적배분법'을 고안했다. 저서로 <통계적 자료 저장>이 있다.
데자르그 (1593 - 1662) : 프랑스의 수학자
리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수학을 강의하였으며, 리용의 의사당 건설에 참여하였다. 투시화법을 연구하여 투영기하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1639년 원추곡선에 관한 저서를 출판하였다.
데카르트 (1595 - 1650) : 프랑스의 수학자
두련주의 라예이에서 태어나 라흐레슈 제주이트파학교에서 스콜라적 교육을 받았으며, 뒤에 포와티에 대학을 졸업하였다. 1618년 음악을 수학적으로 연구한 <음악 제요>를 발표하고, 그해에 군대에 지원하여 1621년 제대하였다. 해석기하학을 창시하여 근대 수학의 길을 열었다.
디리클리 (1805 - 1859) : 도이칠란트의 수학자
뮈랜에서 태어나, 파리 등지에서 유학하였다. 후에 귀국하여, 1855년 가우스의 뒤를 이어 괴팅겐 대학 교수가 되었다. 정수론, 급수론, 대수학 등을 비롯하여 수학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디리클리의 급수','디리클리의 적분'등 그의 이름을 붙인 수학용어들도 있다.
디오판투스 (3세기경) : 그리스의 수학자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투스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특히 정수론과 대수학에 공헌이 큰 수학자로 대수에서 미지수를 문자로 쓰기 시작하였다. '디오판투스 해석'이라는 일종의 부정방정식 해법을 연구하였는데, <아리스메티카> 13권에는 수사, 미지수, 계산기호 등을 사용하여 대수학을 만들어 1차, 2차 방정식 및 연립방정식을 풀고있다. 또 부정방정식 중에는 '주어진 평방수를 두 개의 평방수로 나누어라' 하는 문제가 후에 페르마에게 큰 영향을 주어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라그랑즈 (1738 - 1813) : 프랑스의 수학자
이탈리아의 트리노에서 태어나 트리노 왕립군관학교 수학교관이 되었으며,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 학사원 수학부장이 되었다. 그 후 귀국하여 신도량형법 제정 위원장, 에클노르말 대학 교수를 거쳐, 파리 이공 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또 나폴레옹 1세때에는 상원의원이 되고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 그는 수학에 있어서의 변분학을 수립하고 정수론, 미분방정식론, 타원함수론 등에 관한 연구와 역학 및 천문학에 많은 공을 세웠다. 역학에 있어서의 '라그랑즈의 운동방정식'은 유명하다.
저서로는<해석역학> <미분학의 원리를 포함하는 수론>등이 있다.
라이프니쯔 (1645 - 1716) : 도이칠란트의 수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견줄 만큼 폭 넓은 연구를 한 학자이다. 20세때에 법학박사가 되었고, 외교관으로서 파리에 갔다. 파리에서 토이겐스에게 수학을 배웠으며, 데카르트나 파르멜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1686년에는 적은 분량이나 많은 분량을 계산으로 정확히 알아낼 수 있게 되어, 곡선의 성질이나 도형의 넓이를 쉽게 알 수도 있게 되었는데,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발전에 새로운 영향을 미쳤다. 미분적분법은 라이프니쯔의 것이 더 편리하다. 베를린 학사원을 만들고, 유럽 각지에도 학사원을 세울 것을 장려하여 학문의 발전에 힘썼다.
라플라스 (1749 - 1827) : 프랑스의 수학자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수학에 뛰어났다. 18세에 파리에 나가 사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후에 정치에도 관계하여 후작이 되었으나 정치가로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학문에는 매우 뛰어났으며, 프랑스의 뉴튼이라고 까지 불리었다. 그는 해와 지구와 달의 움직임을 한꺼번에 조사하였다. 또 태양계는 맴을 돌고 있는 커다란 성운의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성운설을 내놓았다. 그밖에 확률의 학문, 소리의 속도 등에 대해서도 수학을 써서 연구하였다.
베르누이(Jean) (1667 - 1748) 스위스의 수학자
형 작크와 함께 라이프니쯔의 영향을 받아 미적분법을 발전시키는데 노력하였다. 처음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대학 교수, 형 작크가 죽은 뒤 바젤 대학 교수가 되었다. 미적분학, 미분 방정식, 최소 강하선 등에 많은 연구를 하였다. 중력의 가속도를 시그마로 표시한 최초의 사람이다.
볼짜노 (1781 - 1848) : 오스트리아의 수학자
프라하 태생으로 1805년 프라하 대학 교수가 되었다. 라이프니쯔의 철학을 계승하고, 그의 영구 진리의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또한 관념론에 반대하여 논리주의의 기초를 쌓았으며, 집합론의 선구자가 되었다. 저서에는 <지식학> <무한의 역사> 등이 있다.
비에트 (1543 - 1603) :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4세를 받들면서 에스파냐의 암호를 풀이하였으며, 문자를 조직적으로 사용하여 대수학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대수학의 아버지' 로 불린다. 한편, 원에 내접하는 정다각형에서 원주율을 구하고, 무한적 형식으로 표현, 소수점이하 10단위까지 계산하였다.
심프슨 (1710 - 1761) : 영국의 수학자
보스워어드의 가난한 직물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매우 빈곤한 생활 속에서도 수학 연구에 몰두, 1743년에 런던으로 나와 수학 교사가 되었다. 그후 1743년 울뤼치의 육군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대수, 기하, 삼각법 및 미적분 등에 관한 교과서를 냈다.
아르키메데스 (서기전 287? - 서기전 212) :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지렛대의 이론, 부력의 원리, 구적법 등 수학과 물리학에 큰 업적을 남겨 유클리드, 아폴로니우스와 함께 고대의 3대 수학자로 꼽히는 그는, 시칠리아의 시리쿠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적분학의 전신인 '구적법'을 연구하여 포물선의 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것과, 공과 그 외접하는 원기둥과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원기둥의 부피는 그것에 내접하는 공의 부피의 1.5배이다' 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수학상의 업적으로서 이 밖에도 외접과 내접과의 96각형에서 계산한 '아르키메데스의 원주율'이 있다. 오늘날에 원주율의 값을 3.14로 계산한 것은 바로 이 계산법에 의한 것이다.
페르마(1601 - 1665) : 프랑스의 수학자
법률학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었으나 틈틈이 수학을 연구하였다. 정수론과 확률론을 연구하여 '페르마의 정리'를 발견하였다. 또 광선은 극소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진행한다는 '페르마의 원리'를 주장하였다.
푸리에 (1768 - 1850) : 프랑스의 수학자
오세르에서 태어나, 1795년 파리 공과 대학 교수가 되었다. 1798년 나폴레옹 1세의 이집트 원정에 문화 공작 대간부로 종군했으며, 1802년 이제르 지사가 되어 활약하였다. 그 동안 고체 내에 있어서의 열의 운동에 관한 이론을 연구, 유명한 '푸리에 급수'를 발표하여 근대 수학, 물리학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고체중의 열전도 이론>을 비롯하여 1829년에 써낸 <열 분석론>이 있고, 수학에는 방정식론의 연구가 있다.
피타고라스 (서기전 582 - ? ) : 그리스의 수학자
시므스의 명문에서 태어났다. 귀족주의적 경향 때문에 고향을 떠나게 되어 남 이탈리아의 코르토니로 건너가, 거기서 일종의 종교 단체를 만들고, 남 이탈리아 귀족주의 당파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파의 압박을 받고, 메타폰 타운으로 도망쳐 거기서 죽었다. 그의 교도는 그 후에도 남 이탈리아에서 서기전 4세기 말까지 성공하였는데 그의 교단은 밀의 종교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므로, 그와 그의 제자들의 업적을 구별하기가 힘드나 영혼의 불멸과 윤회 등을 믿어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는 수단으로 수학과 음악을 중요시하였다. 또 그는, 만물은 수와의 관계에 따라 질서 있는 코스모스 그 기체 속에 질서와 조화를 지니는 우주 또는 세계를 만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천체의 운동에도, 거문고 줄의 길이에도, 기술에도 모든 수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수학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단위 1을 나타내는 어떤 크기의 점의 배열에 의해 성립되며 기하학적인 형태로 실재한다는 것이었다. 세계는 이 수와 그 비례에 의해 성립되는 법칙으로 일관된, 조화있는 존재로서, 뒤에는 정의는 4, 결혼은 5, 영혼은 6 이라는 수와 그 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런 수학의 실용을 떠나 연구하게 되었으므로, 그 방면에서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으며, 수학을 참 과학으로까지 끌어 올렸다. 수론으로는 형상수, 완전수, 우애수, 수의 비례의 연구가 있다. 기하학으로는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 삼각형의 내각의 합의 정리, 면적의 응용, 정 5각형의 작도 등을 증명 또는 발견하였다. 천문학에서는 지구의 구상을 믿어 일종의 지동설을 주창하였다. 음악도 수의 비례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에 사용되는 음의 높이를 정하는데 있어서 수학적인 비율에 의하여 나누는 것을 고안하여, 모노트으드( 일현금 )의 현의 길이를 2:3의 비율로 분할함에 따라 완전 5도의 음정을 열었으며, 이 5도를 중복해 가는 방법을 취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얻은 음계를 '피타고라스 음계'라고 한다. 그와 그 일파의 이와 같은 수학적, 천문학적 지식은, 최근의 연구에 의해 오리엔트의 과학적 문명의 바탕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헤론 (2세기경) :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다는 것 이외에는 어느 시대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다. 업적으로는 수학 외에 의학, 측량, 기계 제작 등의 응용 면과 많은 저서를 남겼다. 산술에 의한 2차 방정식의 해법, 삼각형의 변의 길이로 면적을 구하는 '헤론의 공식'과 지레와 나사의 단일 기계, 증기력, 수력을 이용한 각종 장치의 발명도 유명하다.
힐베르트 (1862 - 1943) : 도이칠란트의 수학자
쾨니히스베르크, 괴팅겐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정수론, 불변식론을 연구, 1899년 <기하학 기초론>을 저술하여, '유클리드 원론'의 방법을 철저하게 하는 공식주의를 주창하였다. 그는 또한 '힐베르트 공간론'을 처음으로 만들어 적분 방정식론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 <선형 적분 방정식 범론> <논리학> 등이 있다.
힙포크라테스 (서기전 450 - 서기전 400) : 그리스의 수학자
활모양의 넓이와 입방체의 부피를 연구하였다. 그는 원의 넓이가 그 지름의 평방에 비례하는 일월형의 정리 '힙포크라테스의 일월형'을 만들었다. 그는 또한 <기하학 원론>이란 교과서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선구가 되었다. 그밖에 학제 개선과 문자기호의 사용을 보급하였다.
출처-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