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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8일 물사랑
4계의 운행은 어김없이 찾아온 여러 가지 봄의 전령을 통하여 그가 도래함을 알리고 있다.
아파트 담장 옆 개나리도 이젠 거의 만개 수준에 도달하고 길옆 가로수 왕벗꽃 나무도 온통 연분홍 치마를 두른 봄처녀의 아리따움과 같이 화사함의 최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겨울산 그 춥고 어두웠던 기억은 이제 한낱 머언 추억속의 기억일 뿐이다.
무릎까지 빠지던 눈을 뚫고 정상의 향해 차고 오르던 기억들, 면도날보다 더 차고 예리하게만 느껴지던 겨울산 그 능선위에서 맞던 삭풍의 그 무시무시하던 호령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이젠 그 종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배낭을 메고 나서는 아침바람이 살랑이며 볼을 간지럽이고 있다.
이번 55차 정기산행은 충청남도 공주에 위치한 계룡산을 등산하고 동학사의 그 만개하여 절정을 이루고 있을 벚꽃을 마중하기 위해 나선 길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라5악(신라 때 나라의 제사 대상이 되었던 다섯 오악(五惡)을 삼았는데 동악에는 토함산(吐含山),남악에는 지리산(智異山),북악에는 태백산(太白山),서악에는 계룡산(鷄龍山) 중악에는 부악(父嶽)이 바로 그것이다)의 하나이니 4대 명산의 하나이니 하여 명산으로써 자리를 굳혀 온 역사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산이다.
계룡산은 높은 산도 별로 없고 이름난 산도 별로 없는 충청남도에서 가히 으뜸가는 명산이다.
그 명성으로 일찌기 1968년 1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산은 웅장한 맛은 없으나 산세가 마치 닭의 볏을 쓴 용과 같다하여 계룡산(鷄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하는데 산줄기는 곳곳에 암봉을 노출시켜 기암절벽을 이루고 울창한 수림과 층암절벽이 어울린 깊은 계곡은 수려한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더구나 산내에 갑사와 동학사등 유명한 사찰과 백제시대의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고 가까이에 유성온천이 있어 사적관광, 등산, 휴양지로써 사철 탐방객이 끊이질 않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2대의 버스에 약68명 정도의 산우님들과 나누어 타고 넉넉하고 여유있는 자리배치에 더욱 흥겨워지는 마음을 느끼며 기분 좋게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버스는 봄볕이 화사하게 내리 쪼이는 시골의 한적한 도로에 정차하고 두 대의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산우님들은 형형색색의 차림으로 발걸음도 경쾌하게 오늘 오를 산을 향해 그 첫발을 내딛는다.(9시20분)
농지 관계 수로를 정비하고 있는지 중장비의 힘찬 엔진 소리가 활력이 넘치는 봄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 하고 개울을 막고 있는 작은 보를 징검다리인양 사뿐사뿐 건너 논두렁 옆 산을 감아 돌고 난후 본격적이 산행 들머리로 진입한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것은 언덕 옆에 하얗게 피어난 이름모를 꽃이 그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은은한 충청도의 지역정서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배시시 웃고 있다.
이미 이곳 계룡산 자락엔 봄의 정서가 물씬 풍겨 나온다.
나무마다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 있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강변의 언덕에는 초록의 색으로 그 화려한 여름의 열정을 준비하고 여기 저기 산자락에는 누가 키우지도 않았건만 흰색인 듯 붉은색인 듯 서로가 제일 아름답다고 자랑 하는 양 그렇게 지천으로 꽃들이 피어있다.
일시에 몰려든 많은 산우님들로 인해 등로는 이미 만원이라 앞으로 좀 차고 나가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오늘은 장군봉을 거쳐 갓바위 신선봉에 오른 후 남매탑에서 두 팀으로 갈라져 한팀은 관음봉으로 가고 나머지 한팀은 곧바로 동학사로 하산하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조금 더 길게 산을 탈수 있는 관음봉에 가기로 내심 마음을 결정하고 먼저 하산하는 2팀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조금 서둘러야지 될 듯한 것이다.
다른 산우님들께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망설이고 있다가 이대로 그냥 따라가다가는 관음봉에 못 갈듯하여 할 수 없이 조금의 틈이 보일 때 앞으로 추월해 나가야만 했다.
몇 차례 상황을 살피며 앞으로 나서니 이제 등로에 몇 분의 산우님만 보이고 비교적 한산해진다.
처음은 비교적 완만하던 길이 조금 지나자 갑자기 경사가 가파라지고 그에 따라 숨소리도 격해져온다.
큰나무 작은 나무 이름을 아는 나무 또 전혀 알 수가 없는 나무 그 모든 것들이 한결같이 다시 찾아온 봄의 여신을 맞아 분주히 그 화려한 생명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등로 좌우로는 활짝 핀 진달래꽃이 숨어 있는 열정을 속내 깊이 감추고 수줍은 듯 옷고름 입에 물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시골처녀의 어여뿐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면서 늘 같이 해온 이유에서 인지 유독 다른 꽃들과 다르게 진달꽃은 친숙하고 어떤 면에서는 고향에 대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봄이면 산하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진달래꽃 개구쟁이 소년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은 꽃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춥고 고통스럽던 겨울을 이겨내고 활기차게 뛰놀 수 있는 새 세상 그 느낌이 아마 좋았을 것이다.
땅에 떨어져 딩굴던 낙옆들이 겨울에 그토록 어둡고 칙칙하게 보였는데 파릇파릇한 새싹들의 그 초록의 선명함과 곱게 피어난 연분홍의 진달래꽃들과 함께 어울리니 이제는 아픈 겨울에 기억을 모두 잊은양 밝은 표정의 갈색으로 바뀌어 그 조화로움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가파른 경사를 조금은 빠르게 오르다 보니 이미 온몸은 후끈한 열기에 휩싸여 한 여름을 만난 것처럼 얼굴은 화끈거려오기 시작하고 땀을 비오듯 쏟으며 능선에 도착한다.(9시45)
솔잎이 곱게 깔려있는 오솔길 옆으로 키 작은 소나무들이 어깨에 닿을 듯 줄지어 서있는 완만한 능선을 지나며 호흡을 고르고 무거워진 다리를 풀어본다.
뒤따라 오시는 유달산님과 최대장님 산마루님께 오늘 처음 들고 나오 디카 개업식 한다고 포즈를 요청하니 오늘 산 분위기만큼이나 서글서글 상쾌한 웃음으로 모델이 되어 주신다.
왼쪽에서 소나무 숲을 지나 불어오는 산바람이 그 어떤 시원함에 비교하지 못할 만큼 상쾌하고 시원하다.
온 몸에 쌓여 있던 도심생활의 노폐물들이 청량하고 시원한 산바람에 모두 씻겨 날아가 버리는 듯 하다.
절벽 위 조그만 바위에 올라 양팔을 크게 벌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코와 입을 통해 마음껏 들이키고 내어 밷고 또 들이키고 나니 복잡하던 머리 속까지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같이 산행하는 유달산님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그 시원함을 원 없이 음미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10시 18분 장군봉 정상에 섰다.
조그만 표시판을 붙잡고 유달산님과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장군봉을 좌측으로 돌아 또다른 언덕을 오르며 바라보니 고사목 한그루가 바위틈에 붙어있는 모습이 처연하게 보인다.
어디를 보아도 흙이라곤 찾기 힘든 여건에서 나름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 왔을까
그 한이 얼마나 깊길래 죽어서도 저리 바짝 마른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켜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상념에 젖어본다.
이제부터는 오르고 내리는 작은 봉우리들이 몇 개인가를 헤아리다 잊어 버릴만큼 수 없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점차 다리도 무거워지고 벌써부터 배가 고파져 오기 시작한다.
10시32분 남매탑 3.5KM 남았다는 이정표를 통과 한다.
능선길 내내 좌우측 조망여건이 매우 좋아 저 밑 평지에 논이며 밭이며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봄볕에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자욱한 연무가 시야를 방해하기는 해도 비교적 괜찮은 시야가 확보되는 상황이다.
가는 길 곳곳에서 반기는 진달래가 있어 힘들고 지친 몸에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고 절벽 옆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서 자란 진달래도 활짝피어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11시 11분 갓바위에 도착했다.
여기 저기 둘러보며 갓처럼 생긴 바위를 찾았으나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갓바위 이정표를 지나 큰바위를 돌아 오르자니 누군가 짖굳은 생각에서였는지 집채 만한 바위를 작은 나무줄기로 받쳐놓은 것처럼 해 놓은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좌측으로는 깍아지른 듯 절벽이 자리하고 오른쪽으로는 급경사지만 빽빽한 나무숲이 무성하고 그위 능선에 잘 기른 정원수 예쁘게 자란 소나무가 간결하면서도 청아한 아름다움을 발하며 일행을 맞이한다.
그나마 혼자가 아니고 무리를 지으며 있어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밤의 고독과 공포를 이길 듯 하여 그나마 작은 안심을 하고 스쳐지나간다.
12시19분 드디어 남매탑에 도착했다.
동학사에서1.7km 지점 비로봉 밑 약수터 옆의 청량사터에 탑 두기가 나란히 서 있다.
키가 같은 쌍탑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7층, 하나는5층이어서 청량사터 석탑으로보다는 '오뉘탑' 또는 '남매탑'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다..
누이 탑인 오층탑은 기둥과 벽체를 한 돌씩으로. 층급받침이나 지붕(옥개) 등도 모두 떨어진 돌로 쌓고, 지붕면이 평박하고 전체 기울기가 상승감이 강조된 점등이 그대로 정림사터 탑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오라비탑인 칠층탑은 지붕과 층급받침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층급받침이 두 단으로 단순하고, 전체적으로 늘씬한 모양이 옛 백제 땅에 세워진 많은 다른 고려 탑들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탑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애틋한 전설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한 스님이 이곳에 와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스님이 입 속을 들여다보니 큰 가 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 있어 빼 주었다.
그 며칠 뒤에 호랑이는 한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어 와 놓고 갔다.
은공에 보답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처녀는 상주사람으로 혼인날에 호랑이에 물러 거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스님은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거두어 주기를 바랬다.
그리 하여 스님은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서 소행 하다가 한날한시에 열반에 드니 그 두 사람의 사리를 모신 것이 바로 이 탑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이곳은 수 많은 사람들로 매우 혼잡하고 서로 사진을 통해 지금의 기억을 정지 화면으로 옮기느라 부산들하다.
상원암 옆 그 시원하고 맛좋은 약수로 그간의 피로를 풀고 배낭에서 오이를 꺼내 유달산님과 나누어 먹으니 그나마 에너지가 조금은 충전 되는 듯 하고 서둘러 삼불봉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려하는데 옆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자운영님과 상원씨가 절벽 옆 돌 틈에서 나오는 물을 조그만 바가지로 퍼서 물병에 옮기고 있다.
물맛이 어떤가 한바가지 마셔보니 밑에 상원암 약수보다는 시원한 것도 덜하고 물맛도 신통치가 않은 것 같다.
아마 이미 갈증을 해소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며 사람의 입맛도 퍽이나 간사스럽구나 생각해본다.
원래 관음봉에서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미 허기가 질대로 지고 기운도 없고 어디서 그냥 식사를 했으면 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깔린 방향표시지에 경인산악회 식사는 삼불봉에서 한다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없던 힘이 갑자기 솟아나는 듯 하여 속도를 올리려 했는데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를 않는다.
1시19분 삼불봉 정상에 도착하여 같이 한 일행3분과 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산상연 장소를 찾기 위해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와 돌아드니 저 앞에서 최대장님 목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정녕 구세주와 같이 반가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미 선두는 거의 식사를 끝내가는 시점이라 자리가 비좁아 빨리 방빼라고 했더니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신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산님들은 정말 마음이 넓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듯하다.
상원씨가 가져온 족발과 자운영님의 불닭발 유달산님의 계란말이와 햄요리 여기에 막걸리 한통 내어놓으니 세상에 이보다 푸짐한 만찬이 있을수 없다.
너무 배가 고파 앞뒤 사정 볼 것 없이 마구 집어 넣다보니 눈에 또 맛있는 약밥이 들어온다.
공연히 나오는 미소에 속내를 들킬까봐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이젠 웬만큼 속이 찼나 보다.
사람은 많은데 막걸리가 한통밖에 없어 그저 한 컵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일행 모두가 아쉬워하는 눈치인데 여기서 아쉬워 해본들 무슨 수가 있을리 만무하니 최대장님 분위기 간파하고 동학사 내려가면 맑은 동동주가 있는데 차갑게 해서 마시면 상당히 맛이 있다고 얼른 내려가서 한잔하자고 한다.
그 말에 위안을 삼아 자리를 정리하고 다음은 동동주를 바라보며 안산 즐산하자며 자리 털고 일어선다.
식사를 마치고 힘을 내어 출발했건만 관음봉에 오르는 급경사의 철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중간쯤 오르자 다리를 들어 옮기는 것조차 뜻대로 되질 않는다.
겨우겨우 관음봉 정상 정자에 도착한다.(2시5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사진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 그냥 정자 의자에 앉아 가쁜 호흡을 고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진 한장을 찍으려는데 정상석을 차지하는 것 또한 줄을 서야 가능하다.
이제는 하산길 제법 넓게 만들어진 등로에는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혼잡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로 만들 계단은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매끈거려 잘못 밣으면 여지없이 미끄러질 듯 아슬아슬하다.
이미 밑에서는 하산주시간이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겠지 생각하니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진다.
출발할 때 식수로 1.8리를 준비하여 충분할줄 알았는데 날씨가 덥고 코스의 등락이 심하여 자꾸 마시다 보니 벌써 떨어져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얼마쯤 내려오니 은선산장이 있어 식수를 얻으려 했더니 없다하여 돌아서서 조금 내려오니 은선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그다지 크지는 않으나 낙차는 제법 되어 보이고 매끈한 돌을 따라 굽이굽이 내려오는 모습이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이 든다.(2시41분)
관망하기 좋게끔 나무로 구조물을 잘 만들어 놓은 것이 국립공원 관리소측의 세심한 관리가 돋보였다.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산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세수도 하고 발도 물에 담그며 그 상쾌함을 만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매탑에서 하산한 팀들은 이미 주차장에 도착한 상태라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그냥 서둘러 내려와 동학사에 도착했다(3시4분)
동학사는 공주에서 약 25km, 대전에서 8km정도 떨어진 반포면 학봉리에 자리 잡고 있다.
계룡산 동쪽 골짜기에 싸여 있는 천년고찰 '동학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비구니 강원(일명: 승가대학)으로서, 약150 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의 일대시교 및 수행과 포교에 필요한 제반교육을 받으며 정진하고 있는 유서 깊은 도량이다.
또한 동학사는 문필봉(文筆峰)이 있어서 대 강 백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비구니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는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하나로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사에 그 청아함을 더해준다.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고 교통이 편리해 계룡산의 관광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 이 찾아온다.
특히 박정자 삼거리에서 동학사에 이르는 약 3km 거리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이루어져 봄이면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93년부터 매년 동학사 봄꽃축제가 개최 된다
화려한 치장을 안했어도 소박한 화려함을 발하고 있는 목련꽃 가지 사이로 보이는 천년고찰 동학사의 모습이 참으로 멋스럽게 다가온다.
동학사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먼저 내려온 정빈씨 산마루님 그리고 또 한분이 물을 뜨기 위해 줄을 서있다.
화려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봄을 맞아 나온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농협을 지나자 최대장님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오늘 산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정말 오랜만에 힘들게 한 산행 이였지만 무르익어 가는 봄과 함께 진달래꽃 벚꽃 그리고 길옆 조그만 하지만 노랗게 피어있던 이름모를 들꽃들과 함께한 산행인지라 정말 즐겁고 멋진 시간을 계룡산과 함께 한듯하여 마음이 매우 흡족하고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