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오는 남대봉에서)
1.산행 기록
금대리 08:10
금대야영장 08:40
영원사 09:30
남대봉 11:00
상원사 11;20(11:20-12:20)
성남리 14:10
2.산행 落穗
해발 일천여 미터 하늘길에 불어오는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강원 남부와 충청 북부 산들의 壯快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稚岳山脈의 주능선을 걷는 맛이 오늘 같은 날 제격인 초겨울 산행일 터인데 시집가는 날 등창나는 격으로 산불방지기간이라는 비로봉(1,288m)-남대봉(1,181m) 구간 10km 산길이 굳게 닫혀 있다.
어디로 가아햐나...원주의 奇人이었다는 제과업자 龍處士가 至誠으로 쌓았다는 돌탑 삼형제를 보러 비로봉을 오른다면 구룡사를 들를 수는 있지만 듣기만 하여도 숨가빠오는 사다리병창을 올라야 하는데 정상 비로봉에서 입석대 방향으로 또 길이 막혀있으니 원점 회귀를 하여야 할 판이라 마땅치 않다.
닭대신 꿩으로 격상시키는 기분으로 말로만 듣던 상원사도 들를 겸 치악 제2 봉이라는 남대봉을 오르기로 한다.상원사에 전해 내려오는 까치와 구렁이의 전설은 익히 들은 바이지만 남대봉 오르내리는 삼십리 산길은 처음 가보는 산길이다.
기대감 속에 산길로 들어서니 독특하게도 방금 여름비 지나간 것처럼 맑은 물 우둥퉁퉁 짓쳐 내려오는 계곡이 산길내내 펼쳐진다.물웅덩이와 작은 폭포가 산꼭대기까지 이어지고 능선 하늘길에 닿는 지점까지도 바위밑으로 물흐르는 소리 낭랑하게 들려오니 틀림없이 물이 많은 곳에서 무언가 색다른 산중의 광경이 펼쳐질 예감이 든다.
인간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산짐승을 살육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스럽지 않지만 구렁이가 까치를 잡아 먹는 것은 弱肉强食의 정글의 법칙상 자연스러운 일일 터인데 왜 나그네는 구렁이를 죽여 예기치아니한 인연이 펼쳐지게 만든 것일까...
까치 세 마리가 동종에 머리를 부딪혀 스님 없이 빈 절이었다는 상원사의 종을 희미하게 울리고 애처롭게 죽어가 이른바 報恩을 하였다는 것이니 善과 惡 둘 중의 어느 실타래가 풀리든 개의치 않고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돌고 돌아 因果應報를 실현시킨다는 인연의 굴레는 무서울 정도이다.
얼핏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거듭되는 일체의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 자신에 대해 父母未生前의 本來面目을 찾아 이른바 是甚摩(이 뭣꼬)를 거듭해 깨우침을 얻어 나가는 과정이 解脫에 이르는 길이라 하던가....
마음에 들지 않게 산중턱까지 콘크리트로 포장된 산길이 계곡물을 이리저리 넘나든다.안개 걷혀가는 산길의 공기가 맑고 시원하다.
맑은 물 시원하게 흘러가는 소리 들려오는 계곡길을 시오리쯤 걸어 영원사에 닿는다.영字가 자그마한 철새라는 할미새 영字이다.산자락의 영원산성과는 다른 글자이니 영字에 무슨 事緣이 있는 것일까....
영원사를 지나며 남대봉 오르는 산길이 본격적으로 가팔라진다.땀에 젖은 몸에서 찐빵을 찌어내듯 김이 무럭무럭 솟는다.산 넘어 안흥 찐빵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맑아 오는 듯하니 고통의 순간이 긴 듯하지만 땀흘리는 苦行의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잠시 동안 뿐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하는 홀가분한 느낌인가....
高度가 높아질수록 이파리 진 나무 마다 상고대가 희끗희끗 비치더니 어느 고도를 넘어 서는 순간 일순 흑하고 숨이 멈추어질 정도로 산록 전체에 상고대가 만발한 장관이 펼쳐진다.
분명 눈꽃이 아닐진대 눈 보다도 더 희고 풍성한 상고대 꽃 물결이 온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도록 산 기슭 전체를 휘감아 넘실대는 모습에 우선 눈이 놀라고 가슴이 놀란다.
지금 서리꽃이 환하게 피어난 이 산중에 숨 죽여 고요히 서 있느니 오직 마당쇠와 언년이 두 사람 뿐....어느 보살의 흐뭇한 선물 보따리이기에 이렇게 숨겨진 別世界가 나그네가 오기만을 기다려 지금 이 순간 아낌없이 펼쳐진단 말인가...이른바 樹氷이라고도 하고 霧淞이라는 서리꽃이 만발한 산길 속으로 그냥 빠져들 듯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제각각 粒子 모습 그대로의 상고대가 얼어 붙은 결을 따라 고운 파편이 되어 나그네의 온몸에 우수수 떨어지니 힘든 발걸음으로 예까지 이른 산행의 고달픔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음이 달떠온다.
거의 세 시간 만에 닿은 능선길에 바람이 제법 차다.눈이 녹았다가 꽝꽝 얼어 붙은 산길을 조심조심 10여 분 걸어 오늘의 정상 남대봉에 닿는다.
산불 감시 초소와 헬기장이 마련된 남대봉에 마침 바람이 차고 눈싸래기가 날리는데 비로봉 가는 길은 아예 이중으로 막아 놓은 모습이다.
심호흡을 하며 능선 아래 비탈진 산록을 온통 희게 뒤덮어 고요히 빛나는 상고대 꽃 물결을 다시 살펴보니 감동이 또 새롭다.
고개를 들어 이제는 옛 이름이 되어버린 嶺西 지역 차령산맥 산줄기들의 흐름도 떠올려 본다.오대산이 구름 가린 저쪽이고 월악산도 안개 피어오르는 저 산줄기 부근인가...
남대봉 바로 아래 산죽길을 따라 내려 가면 구렁이와 까치와 나그네 간에 삼각으로 얽힌 전설이 깃든 절집 상원사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1,084m 높이의 절집 스스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았다고 하나 사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지리산 천왕봉에서 하산시 고달프고 지루한 발걸음을 달래려 들르던 법계사가 1,400m 이상의 고지에 있고 寂滅寶宮 터의 하나인 설악산 봉정암만 하더라도 1,200m 이상의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하니....
역사의 風波와 우여곡절을 거쳐 육이오 때 완전히 소실된 상원사가 이곳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불과 이십여년 前이라 하는데 일요일이면 참배객과 등산객이 의외로 많이 찾는 이 절집을 이채롭게도 순하고 순하게 생긴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체구가 믿음직스럽게 듬직하고 사람과 마냥 親化的인 이 개들이 젊은 시절 맹인 안내견이나 충직한 사냥개의 임무와 역할을 마치고 이제 퇴역하여 餘生을 산상의 높은 절집에서 보내고 있는 것인데 걱정스러운 것은 참배객들이 생각 없이 주는 과자나 초콜렛 같은 설탕이 많이 들어간 간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먹고 있는 것이니....
이 개들이 절집에서 고기 간식을 받아 먹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에 마침 배낭 속에 간직하고 있던 티벳산 야크 고기를 한 점 던져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대웅전을 찾아 엉성하지만 나름대로 接足禮를 살려 마음을 담은 절을 올렸으니 이 절이 可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언감생심 굴뚝 같기도 하지만 세상사 매듭이 풀리는 것은 본인의 노력과 쌓은 공덕에 달려있을 터.....願力의 도움만 바라는 것은 조금은 주제 넘은 일인가 ....바라는 앞일의 成事는 未知數일 터이니 본인의 薄德을 잘 아는 나그네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신림 방향 성남리까지의 하산 길 5km 남짓한 길을 간혹 얼음길에서 미끄러질세라 살금살금 걸어 내려오니 두 시간 만에 산길이 끝난다.
여섯 시간 동안 일편단심으로 비탈진 산길을 걸어 허기진 나그네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食客이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
입에 맞는 강원도 산골의 소박한 음식을 즐긴다.산골 막걸리 한 잔 따라 마시고 치악산 자락의 나물 한 젓가락, 김치 한 쪽 쭉 찢어 먹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특이하게도 포르스름한 산초 기름에 나그네 스스로 부쳐 먹는 산골 두부가 고소하고 독특한 산초향이 입속에 퍼져 감도는 느낌이 상큼하다.큰 맘 먹고 맛 본 더덕 몇 뿌리는 산삼 못지아니한가....
배불리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분이 흐뭇하다.
章
2007.12월 초 어느날
(안개 싸인 영원사를 지나며)
(상고대 풍경)
(상원사 일주문)
(대웅전)
(독성각)
(산신각)
(오랜 만에 탁배기 철철 넘치게 따라 한 잔 마시고 나물 한 젓가락....두부를 지져 먹는데 종지에 담겨 포르스름 한 것이 산초 기름...)
첫댓글 말로만 듣던 상고대 구경 잘 했습니다. 1,000m 이상 올라야 볼 수 있는 비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서울 근교산으로만 떠도는 게으른 사람들은 평생가도 구경 한 번 못할 멋진 광경입니다. 계속 즐산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