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W메리어트호텔 홍영표 조리과장(왼쪽)이 네덜란드식 도넛'올리 볼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 조선영상미디어 김영훈기자 adamszo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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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식의 영양소와 더불어 그 음식이 지닌 의미를 함께 섭취한다. 문화기호학자인 백승국 외국어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에 따르면 “새해와 함께 인간도 다시 새롭게 태어나며, 새해를 여는 첫날 먹는 음식은 그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라마다 혹은 문화권마다 새해 첫날 반드시 먹는 음식이 있다. JW메리어트호텔 서울의 홍영표(39) 조리과장과 함께 서양의 새해음식을 몇 가지 만들어 봤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새해 음식은 ‘올리 볼렌(Olie bollen)’이란 작고 동그란 도넛이다. 홍 과장은 “온 가족이 갓 튀긴 뜨거운 도넛을 나눠 먹으며 한 해의 평안과 행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밀가루, 달걀, 이스트 등을 섞어 반죽을 만든다. 여기에 말린 과일을 잘게 썰어 넣고 잘 섞는다. 홍 과장은 “건포도와 말린 크랜베리를 주로 넣지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아무 말린 과일이나 상관없다”고 말했다.
손으로 조금씩 떼어내 지름 2㎝ 크기의 공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호떡 반죽처럼 질척한 반죽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홍 과장은 “식용유를 양손에 듬뿍 바르는 게 요령”이라고 알려줬다. 너무 뜨겁지 않은 기름에 튀겨야 속까지 잘 익는다. 반죽을 넣었을 때 기포가 반죽 주위로 자글자글 올라오는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새해 아침 ‘바실로피타(Vassilopita)’라는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는다. 노랗고 달걀 냄새가 물씬한 게 옛날 집에서 만들어 먹던 ‘카스텔라’와 비슷한 맛이다. 홍 과장은 “일부 케이크에 동전을 하나씩 넣는데, 동전이 든 케이크를 먹는 사람은 일 년 내내 행운이 깃든다는 미신이 있다”고 알려줬다. 촬영을 위해 동전이 든 케이크를 찾았지만, 심지어 케이크를 구운 요리사마저 동전을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과연 행운은 아무나 잡는 게 아니었다.
서양에는 콩이 들어간 새해 음식도 많다. 작은 콩 한 알이 많은 수확을 맺는 모습에서 옛사람들은 자손 번식과 번영, 생명력을 떠올린 모양이다.
미국 남서부지역 사람들의 신년 음식인 ‘호핑 존(Hopping John)’은 콩과 쌀, 고기, 베이컨을 넣고 끓인 음식의 한 예이다. 호핑 존은 본래 흑인 노예들이 먹던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 남부지역의 새해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름이 왜 ‘껑충껑충 뛰는 존’인지는 미국인들도 잘 몰랐다.
홍 과장은 “가난한 노예들이 구할 수 있는 고기와 채소를 모두 넣고 함께 끓여 먹던 것이 호핑 존”이라며 “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음식들을 드럼통에 모두 넣고 ‘꿀꿀이죽’을 끓여 먹던 우리 어른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검은콩을 많이 먹으면 한 해 재수가 좋고, 녹색인 완두콩이 많으면 금전운이 좋다고 한다. 우리의 죽처럼 되직하게 끓여야 제맛이라고 한다.
‘코테치노 콘 렌티치(Cotechino con lenticchie)’는 돼지발로 만든 소시지에 렌즈콩을 곁들인 이탈리아 설 음식으로, 콩의 상징성에 돼지가 지닌 좋은 의미까지 보태졌다. 서양에서는 닭과 달리 땅을 긁지 않는 돼지를 먹으면 한 해가 풍요롭다고 여겨왔다. ‘긁는다’는 단어인 ‘scratch’에는 ‘궁핍하게, 가까스로 살아간다’(scratch a living)는 의미도 있어서다.
프랑스 사람들은 바닷가재를 먹는다. 평소보다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달콤한 소테른(Sauternes) 와인에 쪄서 먹는다. 와인에 쪄서 그런지 보통 ‘탄탄하다’고 느껴지는 바닷가재 육질이 무척 부드럽다. 생강이 들어가 뒷맛이 개운하다.
일본 사람들은 설 연휴 동안 검은콩(구로마메)과 말린 청어알을 반드시 먹는다. 콩(마메)은 ‘부지런하라’는 뜻의 마메(まめ)와 뜻이 통하고, 청어알은 ‘알의 수만큼이나 많은 자녀를 낳고 행복하라’는 의미다.
중국 사람들은 설에 원통 모양의 찹쌀떡인 ‘니엔가오’(年 )를 케이크처럼 잘라 차와 함께 먹는다. 니엔가오는 중국어로 ‘해마다 높이 오른다’(年高·‘年年高升’에서 온 말)와 소리가 비슷하다. 또 찹쌀의 들러붙는 성질은 가족의 결집을, 둥그런 모양은 가족의 화합을, 달콤한 맛은 인생의 기쁨을, 부풀어 오르는 성질은 재물이 불어남을 상징한다. 김성윤기자 <a href=mailto:3Dgourmet@chosun.com">gourmet@chosun.com>3Dgourmet@chosun.com">gourme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