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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동(제6대 제천시 시의원) |
미처 알지 못했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학점은행人의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2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박람회 개최지인 제천의 박람회 운영위원회 위원인 박승동 시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이 소식은 제2회 박람회 운영위원회가 개최되었을 때 박의원께서 자신을 학점은행人이라고 밝히시면서 알려졌습니다. 이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이번 달 학습자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을 만나러 당장 제천으로 달려가게 되었는데요. 다음은 박의원과의 인터뷰를 요약정리한 내용입니다. 학점은행제가 박의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제 한번 들어볼까요?
학점은행제를 이용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아버지-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태권도 대회에서 입상도 많이 했었지요. 그래서 대학도 당연히 체육 특기생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부분이 있어, 대학입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입사한 곳이 바로 제천시청 수도과인데요. 그 당시에는 작업환경이 좋지 않아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이 수돗물을 소독하는 약품투입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 소독작업을 위해 염소가스를 사용했는데, 거의 직관에 의해 파이프를 통해 양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았죠. 숨을 참고 투입 밸브를 조절한 후, 다시 작업장을 나와 참았던 숨을 들이마시기를 여러 번 하고 나면 머리가 핑 돌곤 했어요. 그렇게 고단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공부에 대한 미련은 사그라 들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데요. 무엇보다도 맏이가 대학에 가지 못한 점을 늘 한스럽게 여기셨던 아버지의 모습에 저 자신이 불효자란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의 한을 빨리 풀어드리고 싶었지요. 또한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들어갔는데 부모들의 학력 조사를 할 때에 아이들에게도 면목도 안서고, 아이 친구들에게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먼저 선택한 방법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진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된 일과를 마친 후, 늦은 시간에 수업을 청취한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더욱이 체육과 거리가 먼 보건위생학과 과정을 이수하면서 흥미도도 상당히 떨어졌었어요. 물론 환경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는 되었지만,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지요. 그러다가 학점은행제를 알게 되어 등록을 했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학점은행제가 나의 삶에 미친 영향이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날개를 달게 된 나의 삶-
자기철학이 생겼다고 할 수 있어요.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이 생겨서 군에 갔다 와서 시청에 다시 복직을 하지 않았어요.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마침 그런 계기도 있었어요. 제가 26세 부터 아이들을 지도했는데, 늘 아이들에게 “태권도란 정신을 수양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설명을 해주면서 태권도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사범님, 태권도가 뭐에요?” 라고 묻는 거에요.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그때 수련생의 물음에 갑자기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콱 막혀 버렸던거죠.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 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태권도의 역사, 이론과 철학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지요.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서양철학도 공부하고, 동양철학도 접하고, 이러는 과정에서 학점은행제를 통해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태권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거에요. 학점은행제를 통해 그 과정을 거쳐 올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회에서 고졸이라 실력이 인정이 되지 않은 게 스트레스였는데, 학점은행제를 통해 사회적 인정도 달라졌거든요. 학점은행제가 나의 삶에 날개를 달아준 거죠.
그래서 저처럼 고민하는 지도자가 없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많은 지도자들이 보도록, 길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논픽션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태권도 관련 사이트에서 연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태권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1편을 올렸는데 한 달만에 1만 여 건이 넘는 조회수가 기록되어 3편까지 기재하기도 했었죠. 그 글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첫사랑 이야기를 담았는데, 제목이 “이루지 못한 약속”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에 운동을 하면서 만난 첫사랑이 몸이 많이 아팠었고, 금메달을 따달라고 부탁을 했었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금메달은 따지 못하고 은메달, 동메달만 계속 따서 결국 이루지 못한 약속이 된 거에요.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치도 없이 도장에서 선배들과 겨루거나, 다른 선수들의 기술을 보고 배우면서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 과정들은 충분히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연재 글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당시 경기규칙과 다득점제 등의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태권도 연구자들이 글을 보고 찾아오면서 태권도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노력을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 중에서 KBS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는데요. 여러 번 고사한 끝에 결국은 2002년 월드컵기간 중에 방영된 KBS인간극장, 무림일기 고수를 찾아서 ~ ! 8-9부에 제 소개가 짧게 되었지요. 이 방송은 주인공 두 명이 다양한 무림 고수를 찾아 다니면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담는 프로그램인데요. 저의 글과 태권도 기술에 대해 소개가 되기도 했고, 타무술과 겨루는 이야기 등이 나왔었습니다. 이외에도 태권도 신문에 1년 6개월간 글이 연재되기도 했었는데요, 전국에서 많은 태권도인들이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런 배경에서인지 학사학위취득 이후 교수로 초빙(세경대 태권도과 겸임교수)을 받았지요. 다른 대학에서도 초청이 있었지만,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동거리가 부담이 많이 되었어요.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학의 교수로 2004-2010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다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겸직금지로 인해 의정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비록 학위는 학사에 그쳤지만, 저에 대한 다양한 능력과 경력이 사회적으로 큰 인정을 받은 것을 보면 학점은행제가 내 삶에 날개를 달아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학점은행제는 나에게 무엇인가?
-끊임없는 배움과 자기행복 과정-
나를 위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저는 “태권도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련이다” 라는 정의를 나름 내렸어요. “세상 모든 것이 태권도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배움에 만족이 없듯이, 학점은행제는 끊임없이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공부할 수 있는 것, 때를 벗어나 평생학습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자기행복, 자기만족을 위한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학점은행제란?
-잊지 못할 추억과 기쁨의 넝굴째 들어온 복덩이-
아버지에게 큰 효도를 하게 한 복덩이지요. 학위 취득 후 아버지께서 그렇게 많이 우셨어요. 평생에 이렇게 기쁜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맏아들이 대학을 못 다녀서 늘 마음이 아프셨는데, 아들 셋이 다 학위를 취득했다고 큰 자부심을 느끼셨어요.
학점은행제를 통해 공부를 하면서 출석수업 때문에 6개월간 이동거리 6시간 거리(청주)를 오고가면서 새벽 3시 경이 집에 돌아오기도 했는데요. 참 힘든 시기였어요. 아내는 제가 바깥 일로 집안 일에 소홀한 점도 있었지만, 늦은 밤 공부까지 한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나니 안스러웠는지 오히려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용기를 많이 복돋아 주었어요. 저는 그런 점에서 아내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인 두 딸에게 학위수여식은 잊지 못할 하나의 사건이지요.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말 그대로 큰 사고가 있을 뻔 했었거든요. 자동차 뒷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던 딸들은 제가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으면서 그 반동 작용 때문에 앞좌석까지 밀려나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죠.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학위수여식에 잘 다녀온 딸들은 “아버지 학위수여식을 평생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라며 지난 일을 회상하곤 한답니다.
그러고 보면 학점은행제는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큰 기쁨을 선물한 거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얼마 전 디지털전자고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사회적인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이 강의를 하는 코너였어요. 저는 그런 자리에서는 늘 직장에 다니면서 학점은행제를 이용해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학점은행제를 통해 수업을 들었을 때, 제 주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인 사람이 자격증 20여개 정도를 따고 나서 자격증을 통해 학점인정을 받고, 학점은행제를 통해 1년 만에 학위를 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능력과 경험의 인정을 통한 학력성취, 이것이 바로 평생학습과 학점은행제가 지향하는 바라고 생각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홍보해주는 것이 저의 당연한 과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학점은행제 학위취득자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학점은행제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기도 합니다.
시의원활동과 관련해서는 특히 평생학습과 환경보호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학벌사회에서는 평생학습이 학벌사회 타파하는 중요한 방법이자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학습예산 확보를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요. 특히 제2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박람회도 이와 같은 차원에서 많은 제천 지역민이 평생학습의 성과를 나누고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또한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나, 지역과 세계의 공존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에 환경문제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자 합니다.
사실 의원 활동 매뉴얼이 정확이 없어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지방정치는 생활정치이고, 생활정치는 광범위하고 어려워요. 그래서 10개의 민원이 들어오면 2-3개만 해결이 가능한데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오는 지역민들도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하소연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지역민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늘 열린 마음과 귀로 지역민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앞으로 지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승동의원 주요 경력
용두체육관 관장(공인8단)
세경대학교 경호태권도과 겸임교수(2004~2010)
국기원선정 자랑스러운 태권도인상 수상
KBS 인간극장 고수를 찾아서 출연
충북태권도협회 이사 겸 교육위원장
(전)제천시의회 운영위원장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제도기획연구실
심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