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6일
제목: 나그네를 대접함
본문: 창세기 18:1-10
우리나라는 참 인정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여러분께서 젊은 시절 달비 장사나 삼베 장사를 하실 때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 그 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또한 길을 가던 과객이 하룻밤 묵기를 청하면 기꺼이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더 악해져서라기보다 혹시 나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미덕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그네를 가장 아름답게 대접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일 뿐 아니라 손님을 극진히 대접한 사람의 본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나그네를 섬겼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원하여 대접하였습니다
보통은 나그네가 도움을 청하면 집주인이 허락하는 방식으로 대접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그는 먼저 달려 나가 손님을 맞이하며 말합니다.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저희 집에 들어오셔서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떡을 가져오겠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치 자신이 부탁하는 사람처럼 "저희가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자세를 보입니다.
지난주 우리 교회 출신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모 교회 성도님들을 대접하고 싶은데 언제가 좋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자원하여 고향교회 성도님들을 섬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참 아름다운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드리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손을 내밀어 "오십시오. 제가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일입니다.
언젠가 우리 교회 학생들과 청년들이 서울 나들이를 갔는데, 경기도에서 하루 묵을 곳을 찾지 못해 무척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돈을 주고도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운동장에 텐트를 치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동 방향에서 먼 곳의 펜션을 어렵게 구했는데 비용도 매우 비쌌습니다.
반면 우리 교회를 찾는 학생들 가운데에는 의자에서 자도 괜찮고 잔디밭에 텐트만 치게 해 달라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작은 방 하나를 내어 주고,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 주면 얼마나 감격해하는지 모릅니다.
부탁받은 만큼만 해도 귀한 섬김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식사까지 대접한다면 그 감동은 훨씬 커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 나그네를 초청하고 기쁨으로 대접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겸손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손님을 맞이할 때 매우 겸손했습니다. 2절을 보면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굽혀"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낯선 나그네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마치 귀한 상전을 모시듯 몸을 굽혀 예를 갖추었습니다. 원래는 나그네가 부탁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주인이 간청하듯 모셔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남을 도울 때는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베푼다고 해서 생색을 내거나 거드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베푸는 사람이 더 조심해야 합니다.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좋은 일을 하고도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베푼 일은 베푼 사람과 받은 사람만 아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다고 여기저기 말하면 결국 그 말이 당사자의 귀에도 들어갑니다.
고향에 가면 저희 어머니께서는 명절 때 어느 집사님이 담임목사님께 무엇을 드렸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동네에서 서로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문이 난 것입니다.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고 난 뒤에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받은 사람에게 큰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풀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대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 그리고 좋은 송아지 고기를 준비하여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나그네를 귀빈처럼 대접한 것입니다.
심방을 가 보면 연세가 일흔이 넘으신 성도님들께서도 직접 시장을 보시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십니다. 그 모습을 보면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제 마음은 식당에서 간단히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성도님들은 손수 준비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심방대원이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는 나그네에게도 그런 정성을 기울인다면 얼마나 큰 감동이 되겠습니까? 요즘은 무엇이든 편하게 하려는 시대입니다. 명절에도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기보다 식당에서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대의 변화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접에는 여전히 정성이 중요합니다.
교회 점심도 메뉴를 단순하게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짓수가 적다고 정성까지 적어서는 안 됩니다. 반찬 하나를 준비하더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을 수 있습니다. 대접은 화려함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이해관계 없이 대접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대접에는 계산이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께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라 무슨 부탁이 있으신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이유를 여쭈어보니, 새벽기도를 마치고 TV를 켰는데 제 설교를 듣게 되었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 그냥 대접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이해관계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푸는 사람도 계산하지만, 받는 사람도 계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대접은 달라야 합니다.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는 섬김이어야 합니다. 계산이 들어가면 대접이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높은 사람인 줄 알고 대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은 말씀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은 천사인 줄 알고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사랑으로 대접했습니다.
우리도 보답을 바라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아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굶주린 나그네를 만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 시대와 상관없는 말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나그네는 가정의 어려움으로 집을 나온 사람일 수도 있고, 부모를 떠나 여행하는 대학생일 수도 있으며, 교회를 처음 찾아온 새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외롭고 지친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편안한 쉼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나그네 대접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면 섬김도 달라집니다. 찾아오는 사람을 귀찮은 손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손님으로 여길 때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0장 42절에서는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준 사람도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베푸는 작은 친절 하나, 따뜻한 식사 한 끼, 하룻밤의 잠자리가 주님께 드리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일도 없는 나그네를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는 자원하여,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아무런 계산 없이 대접했습니다. 그 섬김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외롭고 지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처음 찾은 분들,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 낯선 이웃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나그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먼저 손을 내밀고, 겸손하게 섬기며,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친절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교회가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