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영성신학의 대가이셨던 아돌프 땅그레 신부(1854-1932)님의 저서 수덕, 신비식학 제5권에 나와있는 사적계시의 판별에 관한 내용중일부를 발풰하였습니다.. 이 책은 교회의 전통적인 영성신학서적으로 매우 유명하며, 요한 고찌에 신부가 '나의 내적 삶을 위하여'란 책으로 요약판을 내기도 했섰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공렬 대주교님께서 신학생의 영성강화를 위해 축약된 땅그레신부님의 저서의 요약판을 번역해 출간하였섰습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2천년초반까지 정대식 신부님께서 1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서적을 번역, 완간되었습니다. 이책은 교회의 변하지 않는 가르침과 기본진리에 비추어 쓰여졌으며 생명의 기원과 본질및 중요성, 영혼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그리스도적 생명의 완성, 성화를 위한 마리아의 역할, 완덕의 본질과 의무그리고 그 필요성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생의 교의를 바탕으로 영혼이 어떻게 올바른 신심과 내적 생활을 통하여 완덕에 이르는 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책을 한권밖에 구입하지 못했지만, 이책은 고대 교부시대의 영성과 중세기, 근대 십자가의 성요한, 예수의 데레사의 영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완덕에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책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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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놀라운 신비현상
1489 주입적 관상기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특히 황홀한 일치부터 자주 동반되는 놀라운 현상(現象, phenomenes)들을 등한시 하였다. 그 예로써 환시(vision), 계시(revelations)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악마는 언제나 신적 일을 모방(模倣)하므로, 참되고 거짓된 신비가(神秘家)들에게 이따금 악마적 현상들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간략하게나마 이 신적 현상들과 악마적 현상들을 차례로 다룰 것이다.
제1장 놀라운 신비적 현상 주238>
주238>성녀 예수의 데레사, ‘천주 자비의 글’25-30장; ‘영혼의 성’제 6궁방과 alibipassim; 성 십자가의 요한, 2권 21-30장 alibi passim; Alvarez de paz,op. cit., t.III, lib. V, de discretione spirituum; M.Godinez, Praxis theol. myst., lib. X ; Benedictus XIV, ,P.I; Ribert, La Mysique divine, t. II;A. Poulain, Graces d oraison, ch. 20-30; A Saudreau L'etat mystique, ed 1921, ch. 17-21장; P. Garrigon-Lagrange, Perfect. et contemplation, t. II, p. 536-562; Mgr A. Farges, Phen. mystiques, II Partie.
주입적 관상기도에서 영혼 안에 일어나는 현상들은 다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즉 지적(知的, intellectuel) 신비의 현상들과 정신-생리적(生理的,physiologique)신비 현상들이다.
제 1 절
지적인 신비 현상
지적인 신비 현상들은 영혼에게 주어진 사적 계시(私的啓示, revelations privees)와 무상(無償)으로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으로 귀결된다.
1. 사적계시
우리는 여기에서, (1) 사적계시의 본질, (2) 사적계시를 구별하기 위한 규범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참된 사적 계시와 거짓된 사적계시를 식별(識別, discerner)하기 위해서이다.
(1) 사적 계시의 본질
1490 (가) 공적계시와 사적 계시의 차이점 일반적으로 하느님 계시는,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감추어진 진리의 초자연적 선포(宣布, manifestation)이다. 이 발현이 온 교회의 선(善)을 위해 행해 졌을 때, 이것을 두고 공적 계시라 한다. 그러나 이 발현이 개인적인 영적 이득을 위해 이루어졌을때, 이것을 사적계시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사적 계시만을 다룰 것이다. 사적 계시는 여러 세기(世紀)를 거쳐 있었다. 그 예로써 성서와 또 시성식(詩聖式)의 과정은 그것을 잘 증명해 준다. 사적 계시는 오로지 성교회의 해석을 따라야 하며, 성서와 성전(聖傳)속에 위탁된 내용만을 근거로 하는 교회의 믿음에 대한 대상도 아니다. 이 사적 계시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교회가 사적 계시를 승인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이 승인은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말씀처럼, 다만 이 사적 계시를 그리스도인들의 교화(敎化)와 교육을 위해 공인(公認)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적계시에 대해 지녀야 할 동의는 교회의 신앙행위가 아니라, 이 계시가 있을 법하고 경건하게 믿을 만하다는 데에 기반을 둔 인간적인 믿음의 행위이다. 239> 주239>De serv, Dei beatif., 1. II, c. 32, n. 11: "Siquidem hisce revelationibus taliter approbatis, licet non debeatur nec possit adhiberi assen fidei catholicae, debetur tamen assensus fidei humanae, juxtra prudentiae regulas, juxta quas nempe tales revelations sunt probabiles pieque cerdibiles."
그러므로 교회 권위에 의한 공적 승인 없이는 절대로 사적 계시는 공포될 수 없다. 240>
주240> 우르바노(Urbain) 8세 교황령, 1625년 3월 13일; 클레멘스(Clement) 9세 교황령,1668년 5월 23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신학자들은 계시를 받은 사람과,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표명한 사람에게 확실한 증거만 가진다면, 진실한 믿음을 거기에 두고 믿을 수 있다고 잘못생각한다.
1491 (나) 어떻게 사적계시가 이루어지는가? 일반적으로 사적 계시는 다음 세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즉 환시와 초자연적 말씀과 신적인 접촉등이다. ㄱ)사적 계시에서 환시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을 영혼이 초자연적으로 지각(知覺, perceptions)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환시는 감추어진 진리를 밝힐 때만 계시가 된다. 환시에는 감각적, 상상적, 지식적인 환시등 세 가지 종류가 있다. 241)
주241> ‘천주 자비의 글’, 제28장, 2. 주석; 신비신학에 정통한 분들은 세 가지 환시가 있다고 한다. 즉 감각적, 상상적, 지적 환시들이다. 첫째 것은 외적 감각을 통해 무엇을 보는 경우이다. 이것은 완던에서 정화의 길에 해당한다. 둘째 것은 상상 안에서 이루어져 나타나는 것으로 빛의 길에 해당한다. 셋째 것은 오성에 직접 느껴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일치의 길과 직접관계된다. 성녀 데레사는 상상적 환시와 지적 환시를 많이 받았다.
1] 발현(發現,apparitions) 이라는 사적 계시에서 감각적 또는 육체적 환시는 사람에게 자연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객관적인 실제(realite)를 인지하는 것이다. 이 인지된 대상이 살과 뼈로 된 육체일 필요는 없고, 그것이 감각적 형태 또는 빛을 발하는 형태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매우 드물게 사적으로 발현하신 것을 일반적으로 인정한다. 사적 계시는 일반적으로 참된 육신이 아닌 감각적 형태로만 나타난다. 예수님이 성체 안에서 나타나실 때, 다음 두 가지로 설명된다고 성 토마스는 말한다. 눈의 기관 속에 기적적인 인상을 통해(한 사람에게만 나타내 보이는 경우), 또는 주님의 것과 같은 뚜렷한 육신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대기(大氣)속의 형상을 통해서, 그러나 주님의 몸과는 다른 형태를 통하여 나타난다. 왜냐하면 구세주의 몸은 한 장소 안에서만 고유한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242)
주242> ‘신학대전’ 제3부 76문,a .8,- 이것은 또한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Relat. XIII, Oeuvres, t. II, p. 234에서 증명된 결론이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이후, 인간과 통교하기 위해 성체 성사 안에서가 아닌 다른 곳으로는 내려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그분이 내게 말한 어떤 것을 통해, 나는 이해했습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발현은 성모님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다. 성모님이 루르드(Lourdes)에 발현하셨을 때, 육신은 하늘에 머물면서, 발현하신 장소에서는 성모님을 대신하는 감각적인 형상으로 나타나신다. 이것은 성모님이 어떻게 모습을 달리하면서 나타나실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1492 2] 사적계시에서 상상적 환시는 잠든 동안이나 혹은 취면(就眠) 상태에 있으면서 하느님이나 천사를 통해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한 천사가 여러 번 꿈 속에서 성 요셉에게 나타났고,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취면 상태에 나타난 주님의 인성에 대한 상상적 환시에 관해 여러번 이야기하고 있다. 243) 243> ‘천주 자비의 글’, 28장 성녀는 자주 이 환시에 대하여 그 뜻을 설명하면서, 특히 지적 환시와 동반됨을 말한다.244)
주244> ‘천주 자비의 글’, 29장. 성녀는 가끔이 환시 속에서, 먼 나라를 여행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상적 환시였다.
1493 3] 사적 계시에서 지적(知的) 환시는 감각적 형태 없이, 영(esprit)이 진리를 지각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제 1473항에서 기술한, 성녀 예수의 데레사가 체험했던 성삼위의 환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 환시는 이미 영혼에게 습득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조정하고 수정한 생각으로 인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환시는 신적인 것을 습득한 생각들을 바르게 소개하는 주입적 관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끔 사적 계시에서 환시가 매우 어둡고 대상의 현존만을 드러낼 때도 있다. 245)
주245>‘천주 자비의 글’ 27장, p 253. 사적 계시의 환시는 때로 명확하진 않지만, 한 순간에 불과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 환시는 직관과 같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246) 주246> ‘영혼의 성’, 제6궁방, 9장, p.22 그런가 하면 사적 계시에서 두 세 가지의 성질이 동시에 합쳐진 그러한 환시도 있다. 이처럼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사도 바오로가 본 환시는, 번쩍이는 빛을 보았을 때는 감각적이었다. 또 아나니아(Ananie)의 설명이 상상적인 것을 대리했을 때 그 신비로운 영상은 상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환시가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이해했을 때는 지적인 것이었다.
1494 ㄴ) 사적 계시에서 초자연적 말씀은 외적 감각과 내적 감각 또는 지성(知性)에 직접적으로 들리게 하는 신적 생각의 발현들이다. 이 발현에서 초자연적 말씀이 귀를 울리는 기적적인 형태로 진동될 때, 그 말씀을 귀로 듣는다고 한다. 상상적으로 듣게 될 때는 상상적 이라 하고, 직접 지성에 들릴 때는 지적이라 한다.247) 주247> 십자가의 성 요한은 세 종류의 초자연적인 말씀을 단계적, 형식적, 본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르멜의 산길’ 2권 , 26-29장.
1495 ㄷ) 사적 계시에서 신적인 접촉은 지식에강한 빛을 동반하는, 일종의 신적 접촉을 통해 각인(刻印)된 감미로운 영적 감각들이다. 이 신적 접촉은 다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일상적(ordinaires)인 신적 접촉과 실체적(substantielles)인 신적 접촉이다. 이 실체적인 신적 접촉은 의지에 이르면서도, 너무나 깊어서 영혼의 실체 자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실체에서 실체로의 접촉을 느꼈다고 말하는 신비적인 표현들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 접촉은 영혼의 실체 속에 뿌리 박고 있는 능력안에서 지식과 의지의 양 극점에서 실현된다. 그러나 성 토마스의 교의에 따르면, 실체가 아닌 능력이 이 인상들을 인지한다는 것이다.248)
주248> 성 토마스, 1부 2편, 113문, a, 8; De Veritate, q. 28, a. 3; cfr. Garrigou- Lagrange, op. cit,.t. II, p.560. 이 의지의 극점은 신비가들에 의해, 영적 절정 또는 의지의 절정, 그리고 영혼의 심연(深淵)이라 불린다.
1496 (다) 사적 계시에 대한 놀라운 은총에 대한 태도 위대한 신비가들은 영혼이 하느님께 특별한 은혜를 구하거나 열망해서는 안 된다고 만장일치로 가르친다. 왜냐하면 이 사적계시는 영혼이 신적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적 계시는 영혼의 악한 성향으로 인해 때로는, 신적 일치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각별하게 가르치고 있다. 성인은 사적 계시에 대한 욕구가 믿음의 순수성을 없애고, 환상(幻想)의 원천이 되는 위험한 호기심을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계시의 욕구는 허황한 환시로 영혼을 채우고 겸손하지 않으며, 또 공적 계시로 영혼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불순종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인은 환시에 대한 열망을 부추기는 경솔한 영적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매우 강하게 항의한다. “사실 어떤 지도자들은 시현(示現)을 보는 사람들을 어찌나 이상하게 다루던지 이들을 그릇되고 갈팡질팡하게 만드는가 하면, 겸손의 길로 인도하기는 커녕 도리어 그런 현상에다 눈길을 모으라고 시키므로, 이들은 참다운 믿음의 정신을 잃게 되고 지도자들이 저 현상에 대한 말을 내세우는 바람에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말로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관심과 평가가 높다고 설득해서 자기네를 따르게 하므로, 그 제자들은 저 현상에 사로잡혀 믿음이 흔들리고 캄캄한 마음 속에서 높이 날 수 있을 만큼 환(幻)을 벗어나 텅 비고 매인 데 없는 영혼이 되지 못합니다..., 영혼은 이미 겸손을 잃은 뒤라 환(幻)이 제법 무엇이나 되듯 자기는 무슨 좋은 것을 지닌 듯 그리고 하느님도 자기를 알아 주시거니 생각해서 자만 자족하느라 겸손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영혼이 하느님의 시현을 가졌다는 것을 알면, 고백 신부는 그를 시켜서 남에 대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느님께 빌어서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시라 하고, 그럴 경우 어리석은 영혼은 부탁받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느님께서는 기꺼워하시지도 원하시도 않으십니다.“ 249)
주249>‘가르멜의 산길’, 2권 18장.
게다가 사적 계시에서 환시는 그 환시의 지배를 받기 쉽다. 그러므로 참된 사적 계시와 거짓된 계시를 분별하기 위해 어떤 규범이 주어져야 한다.
(2) 사적 계시를 구분하기 위한 규범
1497 참된 계시를 잘 분별하기 위해, 또 그 계시에 스며들 수 있는 인간적인 요소들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명확한 규범의 선을 긋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계시에 대한 규범은 계시를 받은 영혼과 계시를 포함하는 대상과, 그 결과에 따르는 징표와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
(가) 사적 계시의 특혜를 받은 영혼에 관계되는 규범
1498 하느님께서는, 물론 죄인에게조차도 당신 마음에 드는 영혼에게는 계시를 내리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계시는 열심할 뿐만 아니라, 이미 신비적 단계에 올라 있는 영혼들에게만 주신다. 한편 참된 계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 사람의 장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이 계시의 규범을 위해서는 그들의 자연적 자질과 초자연적 자질을 엄격하게 연구해야 한다.
ㄱ)자연적 기질 1]기질적(氣質的)으로 균형이 잘 잡힌 영혼인가, 아니면 히스테리(hysterie)또는 신경증(psycho-nevrose)환자인가? 환자일 경우에는 그들이 계시라고 주장하는 것을 불신해도 된다. 왜냐하면 이런 기질은 환각(幻覺))을 잘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정신적인 면에서 영혼이 긍정적인 양식(良識)을 갖고 올바른 판단력을 가졌는가, 아니면 극단적인 감정에 따라 흥분된 상상을 하는 사람인가? 바른 교육을 받은 사람인지, 아니면무지한 사람인지? 또 누구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지? 그의 정신은 병이나 어릴 때의 충격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는지? 3]도덕적 관점에서, 영혼이 정직한가 아니면 진리를 과장하는 습관 또는 가끔 진리를 스스로 지어내지는 않는가? 차분한 성격인가 아니면 흥분을 잘하는 성격인가? 물론 위와 같은 질문의 결론을 통해, 정확하게 계시의 존재 또는 부재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계시를 본 사람이 주는 증거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1499 ㄴ) 계시에 대한 초자연적인 자질에 대해서는 점검할 것이 많다. 만일 그 영혼이, 1]오랫동안 견고한 덕을 닦고 있는가 아니면, 다만 감각적 열성만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2]깊고 진솔한 겸손을 가졌는가 또는 그 반대로 영적 은혜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가? 영혼에게 참된 겸손은 성성(聖性)의 시금석(試金石)이다. 만일 그 영혼이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계시에 대한 매우 나쁜 징조이다. 3]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계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이전에 영적 지도자에게 알리는가? 그리고 영적 지도자의 권고를 온순하게 따르는가? 4]주입적 관상의 첫 단계와 수동적인 시련(試鍊)을 이미 지났는가? 특히 그의 삶 속에 황홀경이 있는가? 말하자면, 영웅적인 단계에서 덕을 실천하는가?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는 계시에 따른 이 환시들을 완전한 영혼들에게 부여하신다.
1500 위에서 말한 이와 같은 자질들이 영혼에게 주어진 계시의 존재를 증거하진 못한다. 그러나 계시를 본 사람의 증언을 더 믿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한 이 자질들의 부재(不在)는 결코 계시의 부재를 증거하지는 못하지만, 계시의 존재마저 부정하지는 않는다. 한편 계시에 대한 초자연적 자질을 위해 이렇게 얻어진 자료들은, 스스로 계시를 받았다는 영혼들의 환상 또는 거짓을 더욱 쉽게 드러나게 해 준다. 실제로 교만한 영혼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황홀경(怳惚境, extases)과 환시(幻視, visions)를 의도적으로 흉내내는 경우도 있다. 250)
주250> 특히 16세기경 Cordoue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십자가의 마들렌은 어린 시절부터 악마에게 사로잡힌 후 17세에 수녀원에 들어갔으며, 그 수도원에서 세 번이나 수녀 원장을 하면서 악마의 도움으로, 여러번 실현된 예언과 계시, 성흔, 공중부유(空中浮遊), 황홀경 등 모든 신비적 현상들을 흉내냈다. 죽기까지 자만하던 그녀는 모든 것을 자백하고, 마귀를 쫓아낸 후(구마하고) 같은 회의 다른 수녀원에 감금되었다. Cfr. Poulain, Graces d oraison, ch.XXI, n. 36.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이 계시에 대하여 여러 번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내가 이야기해 본 사람들만도 서넛이 되고 사실이라 믿는데) 이런 일이 있다 합니다.다름 아니라 상상력이 몹시 약한 탓인지, 사고력이 날카로운 것인지, 아무튼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그냥 얼이 빠져 버려서 무엇이나 생각하는 족족 분명 보이는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251)
주251> ‘영혼의 성’ , 제6궁방, 9장, p. 253.
(나) 사적 계시의 대상에 대한 규범
1501 여기서는 계시의 대상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영혼에게 믿음과 품성(品性)에 반대되는 모든 계시는, 사도 바오로의 말에 의하면 가차없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252)
주252> 갈라디아 1,8.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친 것에 반대되는 것을 계시하지도, 또 당신 스스로 모순된 말씀을 하지도 않으신다. 여기에서 우리가 계시를 되새겨야 할 명백한 규범이 나온다. ㄱ) 믿음의 진리에 받대되는 모든 사적인 계시는 거짓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의 교의를 다수 부정하는 영적 계시, 특히 영원한 지옥의 형벌 등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들이다. 또 교회의 통상 교도권(通常 敎徒蠸, magistere ordinaire)의 하나인 신학자들과 교부들의 일치된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계시라고 할 수 없다. 만일 신학자들의 다른 두 견해 사이에 대한 계시일 경우일 때에는 충분한 논의와 함께 교도권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토마스 학파(thomistes)와 몰리노스 학파(molinistes)사이의 논쟁을 딱 잘라 결정해 준다고 자신하는 모든 계시들은 의혹을 가지고 볼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종류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관습이 없다.
1502 ㄴ) 그리고 윤리법이나 영혼의 품위에 반대되는 모든 환시는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나체(裸體) 형상을 한 발현, 추잡하고 상스러운 말, 순결을 거스르는 부끄러운 악을 상세하고 세세하게 묘사한 것들이다.253)
주253> 19세기 중반에 Cantianile이란 한 계시자는 신심깊은 주교의 신뢰를 얻었고, 주교는 자기 교구의 사제들에 대한 추악한 풍속화가 들어 있는 소위 계시란 것을 공포한다. 주교는 곧이어 파면되고 말았다.(Poulain, op. cit,. 22장) 아마 이런 이유로 해서 Secret de Melamie 잡지는 금서가 된다.
영혼의 선을 위해서만 계시를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악을 품고 있는 영혼에게 계시를 주시지는 않는다. 이와같은 원칙 아래, 영혼의 존엄성과 신중함이 결핍된 발현과 우습꽝스러움이 드러나는 모든 발현은 계시로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스꽝스러움이 드러나는 발현은 악마적 또는 인간적인 위장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ㄷ)하느님께서 오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 또한 계시로 승인 할 수 없다. 기적(奇籍)과 섭리(攝理)의 법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영혼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254)
주254>그래서 Bologne 성녀 카타리나의 생애에서 악마는 성녀를 절망에 빠뜨리기 위해 성녀에게 가끔 십자가의 그리스도 형상으로 나타나서 완덕의 구실로 불가능한 것을 성녀에게 명했다고 적혀있다(Vita altera, cap. II, 10-13, dans les Bollandisters, 9 mars).
(다) 사적 계시로 생겨난 결과에 관계되는 규범
1503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안에서 생겨나는 결과로 그 계시를 판단할 수 있다. ㄱ) 성 이냐시오와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경우, 계시를 통한 신적 환시는 영혼에게 첫 감정의 두려움과 놀라움을 낳는다. 그 후 영혼 안에는 안정과 기쁨, 지속적이고 깊은 평화의 감정이 뒤따른다. 그러나 악마적 환시는 그 반대이다. 먼저 이 환시가 영혼에게 기쁨의 원인이 되지만, 그 뒤에는 절망과 슬픔과 불안을 낳는다. 이로 인하여 악마는 영혼을 넘어 뜨린다.
1504 ㄴ)참된 계시는 영혼을 겸손,순명,인내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덕을 굳건하게 해 준다. 물론 거짓 계시는 교만과 자만과 불순명을 낳는다.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말을 들어보자. “주 께서 내리시는 이 은혜는 자기를 더할 나위 없이 부끄러워함과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법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악마가 하는 짓에는 모든 것이 이와는 정반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하느님께 받아서 있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얻어진다고 믿기에는 너무나 엄청나다는 것이 분명한 만큼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만무한 일, 오직 하느님께서 받은 선물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물인 이 은총은 영혼을 풍요롭게 해 주고, 내적인 결과로 영혼이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악마는 이렇게 큰 이익을 영혼에 줄 수 없습니다. 악마의 영향을 받는 영혼은 마음 속의 커다란 평화를 느낄 수도 없으며, 오로지 하느님만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힘쓰고 하느님께로 이끌지 않는 모든 것을 멸시하는 열망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255) 주255> ‘영혼의 성’ 제궁방, 8장, p.215-216
1505 ㄷ) 여기서 다음과 같은 한가지 질문이 나온다. 즉 계시를 확인하기 위해 징표를 요구할 수 있는가? 1]만일 그 계시가 중요한 것이라면 그 징표를 요구할 수 있으나, 겸손하게 그리고 조건부로 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환시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만일 계시의 징표를 하느님께 요구 할때는, 전적으로 그 분께 선택권을 드려야 한다. 루르드(Lourdes)의 본당 신부는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을 때, 벨라뎃다에게 한 겨울에 들장미를 꽃피게 해 보라는 요구를 했었다. 이 징표는 들어지지 않았으나, 원죄 없으신 성모님은 영혼과 육신을 치유하게 하는 기적수(奇籍水)를 솟아나게 하셨다. 3]계시의 징표로 요구된 기적이 발현과의 관계에서 증명되었을 때, 이 확신은 계시의 확고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라)사적 계시에서 참됨과 거짓됨을 분별하기 위한 규범
1506 하나의 계시는 그 심층에서는 참될 수 있지만, 부차적(副次的)인 오류와 섞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기적을 증가시키지 않으신다. 그리고 계시를 받은 사람의 정신 속에 있을 수 있는 오류또는 편견을 고쳐 주지 않으신다. 계시의 목표는 영혼에게 영적인 유익함이지, 결코 지적인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앞으로 예를 몇가지 들 것이다. 이 예는 사적 계시에서 오류의 주된 원인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ㄱ) 계시에서 첫 번째 오류의 원인은,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작용과 인간적인 행위를 섞는데 있다. 예를 들어, 상상과 영(spirit)이 큰 격렬함에 있을 때 특히 그러하다. 1)그래서 우리는 가끔 역사나 자연과학에 대한 시대적 착오를 사적 계시에서 되찾게 된다. 성녀 로멘(Romaine)의 프란치스카는 천상계와 하늘의 별들 사이에 수정처럼 투명한 하늘을 보았고 하늘의 별들에 창공의 푸른 색깔이 물들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그레다의 마리아(Marie d Agreda)는 예수 탄생의 순간에 맑은 수정(水晶, cristal)의 하늘이 11개 부분으로 나뉘어졌다는 것을 계시로써 알았다고 믿는다. 256) 2) 사적 계시에서 우리는 이따금 시현(示現)에 대한 영적 지도자들의 체계와 편견과 그 사상을 찾는다. 이따금 도미니꼬 수녀회와 프란치스코 수녀회 성녀들은 그들의 환시에서, 그들 수도회의 특수한 체계에 일치하는 것을 말하였다.257) 3) 역사적인 오류가 계시 속에 이따금 스며들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영혼이 신심에 미온적이었을 때도, 예수님과 성모님의 삶에 대해 분명하게 세부적으로 설명을 드러내시는 관슴이 없었다. 그런데 여러 계시를 받은 영혼들은 신심 깊은 묵상과 계시를 혼동한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다른 계시나 역사적 문헌에 모순되는 날짜와 숫자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하여 준다. 그로 인하여 수난에 관한 세부적 묘사가 환시 속에서 이야기 되는 것은 권위 있는 역사가의 기술과 반대되고 상반되는 것이다(예를 들어, 예수님의 채찍질에서 받은 매의 숫자등...).
256) La cite mystique, part, II,n.128; part. I. n. 122; 이 부분은 프랑스 번역에서는 빠져있다. 257) 베네딕토 14세 (De beatific., 1. III, c. LIII,n. 16)는 성모님이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에게 원죄없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씀했어야 했다고, 성녀의 황홀경을 문제삼았다.
1507 ㄴ)하느님의 계시는 잘못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녀 쟌 다크(Jeanne darc)는 목소리에게 자신이 불태워질 것인가를 물었는데, 그 목소리는 주님께서 그녀를 인도할 것이며, 주님이 그녀를 도와 위대한 승리를 위해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성녀는 이 승리를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으로 믿었다. 성 노베르토(Norbert)는 매우 분명하게 반 그리스도교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12세기)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성 베르나르도에 의해 궁지에 몰린 성 노베르토는 적어도 그가 교회 안에서 대단한 박해를 보기 전에는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58) 그런가하면 성 페리에의 빈첸시오(Vincent Ferrier)는 최후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기적들로 이 예언을 확증하려 했다.259)
1508 ㄷ) 계시는 그것을 본 영혼이 설명하려는 그 순간 벌써 자신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변질 될 수 있고, 또 기록자들에 의해 변질 될 수도 있다. 성녀 브리짓다(Brigitte)는 그녀 자신이 계시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그 계시를 수정하기도 했다고 인정한다. 260) 물론 이 설명이 항상 오류를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마리아 아그레다(Mariae digreda), 가타리나 에메리쉬(Catherine Emmerich),그리고 마리아 라따스트(Marie Lataste)의 계시를 썼던 기록자들이 알아보기 힘든 것에 대해 수정했다는 것을 오늘날 인정한다 261)
258) 성 베르나르도, Letters, LVL 259) Le P. Fages, o.p., dans I' Histoire de S. V. Ferrier에서는 이것이 니느웨에 대한 요나의 예언처럼, 조건적인 예언이었고 세상은 성인이 했던 수많은 회개를 통해서 분명히 구원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260) Revelat. supplementaires, ch. XLIX. 261) Oeuvres de Marie Lataste에 나오는 계시들 중에서 우리는 성 토마스의 '신학대적'에서 문학적인 번역 부분들을 되찾게 된다.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우리는 사적 계시를 검증할 때 많은 신중성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결론 : 사적 계시에 대하여 지녀야 할 태도
1509 ㄱ) 우리는 사적 계시에 대하여, 성인들과 교회의 현명한 신중성을 따르는 것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교회는 계시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확실하게 계시가 증명되었을 때 승인해야 한다. 게다가 몇몇 외적인 설립(設立)이나 축일을 제정하여, 공표하기 전에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또 전례와 교의와의 관계 속에서, 계시 자체를 충분히 엄격하게 검토한 후에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복녀 리에즈의 율리아(Julienne de Liege)는 성체성혈(聖體聖血) 축일을 제정하기 위해 첫 환시를 받고 난 후, 22년 뒤에야 신학자들의 승인을 받는다. 즉 리에즈의 주교가 교구의 축일로 제정한 것은 첫 환시를 받은지 16년 뒤였고, 복녀가 죽은지 6년 후에,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전 교회를 위해 성체성혈 축일을 제정하였다(1264년). 마찬가지로 예수 성심 축일은,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계시 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승인되었고, 그것도 계시와는 무관한 동기에서 축일이 제정되었다. 이처럼 우리에게 위와 같은 계시에 대한 유익한 교훈들이 있다.
1510 ㄴ)사적 계시의 존재에 대해서는 타당성 있는 증거가 확실할 때 비로소 공포하게 된다. 이 계시에 대한 증거들은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시성식에 대한 책에 매우 잘 요약이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단 하나의 계시 증거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으며, 여러 증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사적 계시에 대한 증거들이 중복(cumulatives)되지 않고 일치하는지, 또 증거들이 서로 확인되는지를 자문한다. 물론 계시에 대한 증거가 많을 수록, 계시의 공포에 더욱 안심하도록 뒷바침될 수 있게 된다.
1511 ㄷ) 영적 지도자는 사적계시에 대한 영혼의 고백을 듣게 되면, 절대로 감탄을 드러내 보이지 말아야 한다. 만일 지도자가 영혼의 계시를 감탄한다면 그것을 본 영혼은 즉시 사적 계시를 참된 것으로 여기게 되고, 자만하게 될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영혼에게 오히려 그 반대로 계시가 덕의 실천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는 점을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는 영혼에게 환상은 쉬운 것이며, 경계해야 하는 것이고, 처음에는 계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버려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성인들에 의해 제시된 규범이 있다. 여기서는 다만 계시에 대하여 성녀 예수의 데레사가 쓴 글을 인용한다. "영혼이 병든 사람이건 성한 사람이건, 이런 일에 있어서는 그게 어느 영에서 오는 것인가를 확실히 알기까지는 항상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안전한 길은 애당초 반대부터 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더욱 도움이 되고, 시련이 있을 수록 은혜는 더욱 더 커갈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만, 영혼을 너무 심하게 다루어서 불안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정말 그 이상의 능력이 없으니 말입니다."262) 십자가의 성 요한의 말은 더 힘이 있다. 성인은 환시를 받아들이는 데 여섯 가지 주된 불리한 점(탈)을 지적한 후,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한 영혼이 계시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것보다 더 악마를 즐겁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영혼의 믿음을 약하게 하기 위해, 또 오류를 범하게 하기 위해 매우 쉽게 계시를 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혼은 자주 부조리와 강한 유혹에 처하게 됩니다."263)
262) '영혼의 성' 제6궁방, 3장. p.161. 263) '가르멜의 산길, 제2권, 11장, p . 148-149. 영혼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여섯가지 탈이 있음을 길게 설명해 주고있다. 또 2e ed. Hoornaert 전 장을 읽어야 한다.
1512 ㄹ)영적 지도자는 계시를 보았다고 믿는 영혼들을 매우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도자는 그 영혼의 신뢰를 얻게 되고, 상세한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영혼이 오랜 숙고 끝에 올바른 판단을 영혼이 내릴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이다. 만일 영혼이 환상 속에 있다면, 지도자는 그들을 진리로 이끌어 주고 명오(明悟)를 밝혀 주어야 한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성인은 환시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다. "위에서 초자연 현상을 아는 체 하지 말라 했고 고백 신부들은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도 말라 했지만, 그렇다 해서 영적 지도자가 보고하는 사람을 매정스럽게 대하거나 상대도 않고 멸시함은 옳지 아니하니, 그럴수록 상대방이 움츠러져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안 나고, 말문을 딱 막아버리는 데에서 언짢은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264)
1513 ㅁ) 만일 계시가 어떤 공동체의 설립이나 창설에 관계된다면, 영적 지도자는 초자연적 현명의 빛에 따라 그 이유를 상세하게 검증하기 전에는 그를 겪려해 주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자세는 많은 성인들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계시를 받았던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영적 지도자들의 결정이 환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빌라에 개혁 수도원을 창설하라고 성녀에게 계시하였을 때, 성녀는 이 계획을 영적 지도자에게 겸손하게 알렸다. 그러나 지도자가 망설였으므로, 성녀는 성 알칸따라의 베드로(Pierre dilcantara), 성 보르지아의 프란치스코(Francois Borgia), 성 루도비꼬 베르트랑(Louis Bertrand)의 견해를 따랐다.265) 계시를 받은 영혼은, 단 한가지 규범만을 따라야 한다. 영혼은 현명한 영적 지도자에게 그것을 알리고, 지도자가 그들을 인도하는 데로 겸손하게 따라야 한다. 이러한 영혼의 자세만이 믿음의 길을 잃어 버리지 않는 가장 확실하고 현명한 방법이다.
264) '가르멜의 산길', 2권, 22장, P. 239. 265) Histore de Ste Therese par une Carmelite, ch. XII.
II. 무상으로 주어진 은총들 266)
1514 우리가 이제까지 말한 사적계시는 , 특히 영혼의 개인적인 영적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영혼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은총들(graces)도, 마찬가지로 다른 영혼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이다. 이와 같은 은총이 개인의 성화에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탁월하고 일시적인 무상의 은총들은 이웃의 행복을 위해 직접 주어진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영혼에게 주신 이 무상의 은총을 은사(*恩賜, charismes)란 이름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사도는 고린토에서 이 은총을 크게 아홉가지로 구분한다. 물론 이 은총은 모두 성령에서 나오는 것이다(성령의 일곱 은사와 구분할 것).
266) F. Prat, La Theologie de St Paul, t. I, pp. 150-157, 498-503. P. Garrigou-Lagrange, op, cit.t. II, p. 536-538
1515 1) 지혜의 말씀은(sermo sapientioe), 영혼에게 믿음의 진리를 이끌어내는 것을 도와 준다. 또 믿음의 교의를 풍성하게 하는 결론들을 일깨워 준다. 2)지식의 말씀은(sermo scientiae), 믿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적인 지식을 사용하게 한다. 3)영혼에게 믿음은 덕 자체가 아니라, 기적을 낳게 할 수 있는 특별한 확신이다. 4) 치유의 능력은, 병을 고치는 힘이다. 5) 기적을 행하는 능력은, 신적 계시를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6) 예언의 능력, 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힘은 예언을 통해 그의 가르침을 확증하게 한다. 7) 영의 식별, 또는 주입적 은사는, 악한 영과 좋은 영을 구별하고 마음의 비밀을 읽기 위해 필요하다. 8)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이, 사도 바오로에게는 어떤 감정의 고양(高揚)으로 이상한 언어로 기도하는 은사이다. 그리고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이 능력은, 여러가지 언어인 방언을 하는 은사이다. 9) 해석의 능력은, 여러 나라 언어를 해석하는 자질이다. 267). 사도 바오로와 성 토마스의 바른 지적에 따르면, 모든 카리스마(은사)는 사랑과 성화적 은총안에 자리한다.
267) '신학대전' 제2부, 제1편, 111문, 4. 사도 바오로의 무상의 은총 아홉 가지, 성 토마스가 이 은총들이 믿음의 설교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여 주면서, 이 여러가지 은총을 종합한 항목을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1부 2편 3문, a. 4), I)신적인 것의 충분한 인식을 주기 위해, 2)그가 기적으로 인해 가르치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 3)더욱 효과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유용하다.
제2절
정신생리학적 현상들
1516 정신생리학(精神生理學的, psycho-physiologic) 현상들은, 이미 1454항에서 언급한 다소 황홀경에 가까운 영과 육에 대해 동시에 문제가 되는 것을 지칭한다. 이 현상들의 요점은 I.공중부유, II.빛의 발산 , III. 향기의 발산 , IV.지속적인 금식, V. 성흔(聖痕, stigmates)의 발현 등이다.
I. 공중부유(空中浮遊)
1517 정신생리학적 공중부유(levitation)의 현상은 영혼이 공중에 떠오르기 때문에 육체가 어떤 자연적 도움도 없이, 땅 위로 들어 올려지는 현상이다. 이것을 우리는 영혼이 상승하는 황홀경(extase)이라 부른다. 거의 예외적으로 육체가 높이 오르기도 한다. 이것을 황홀적인 비상(飛翔, vol extatique)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땅에 닿을락 말락하면서 빠르게 달리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이것을 두고 영혼이 황홀한 가운데 걷는 보행(marche exta-tique)이라 한다. 우리는 성인전을268) 통해 몇몇 영혼들이 공중 부유에 이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4월 28일 성 십자가의 바오로, 5월 26일 성 네리의 필립보, 9월 2일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9월 18일 성 꾸뻬르띠노의 요셉,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들 중 한분이 성 꾸뻬르띠노의 요셉이었다. 성인은 어느날 선교를 위해 무거운 십자가를 세우는 데 어쩔 줄 모르고 있음을 보고, 공중을 날아서, 십자가를 잡아 힘들이지 않고 제자리에 세웠다. 큰 힘으로도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을 들어올리게 하는 놀라운 힘의 현상이 영혼 안에서 작용한것이다.
268) 성인 전집을 편집하여 간행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성인전을 편집한 사람, Bolland, 1596-1665)
1518 공중 부유에 대한 합리주의자(合理主義者 ,rationalistes)들은 위와 같은 현상을 자연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들은 육체의 허파 속에 숨을 깊이 들여 마심으로써, 알지 못하는 신체적인 힘에 의해 떨어져나간 영혼들(ames)과 영(esprits)의 개입 등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실상 합리주의자들은 이 공중부유의 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얼마나 더 지혜로운가! 그는 먼저 이 현상이 모든 영혼의 기만을 피하기 위해, 보다 명확하게 잘 증명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교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주장하였다. 1)공중 부유에서 잘 증명된 현상은 공중에 떠오르는 것이 자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중부유는 육체를 들어 올릴 수 잇는 천사나 악마의 힘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3) 영광의 육체에 알맞은 민첩한 은사를 예상한 성인들에게서는, 이 공중부유의 현상이 존재한다. 269)
II . 빛의 발산 270)
1519 정신생리학적 영혼의 황홀경은 이따금 빛의 현상을 동반한다. 즉 이마를 뒤덮는 빛의 관(冠)이 생기든지, 아니면 온문이 빛으로 감싸이게 한다. 여기서 다시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교의를 요약할 수 있다.271) 무엇보다 먼저 빛이 자연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가를 보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경우를 검증해보아야 한다. 특별히 다음의 것들을 검증해야 할 것이다. 1) 이 현상이 밤에 일어났는지 또는 낮에 일어났는지를 알아 본다. 만일 밤에 일어났다면, 다른 빛들보다 훨씬 더 밝은 빛이었는지를 알아본다. 2)그 빛이 전기 불과 비슷한 단순한 번뜩임이었는지, 아니면 빛나는 현상이 오랜 시간 지속되고 여러 번 되풀이 되었는지를 알아본다. 3) 그 빛이 종교적 행사나 황홀경, 강론 도중, 기도 중에 일어났는가를 알아본다. 4) 과연 그 빛이 은총의 결과인지, 항구적 회심(悔心)의 결과인지 등을 살핀다. 5) 그 빛이 발산되는 영혼이 덕이 있고 거룩한가를 본다. 이처럼 모든 상세한 현상의 사항들을 오랫동안의 심사 숙고를 위해 검증한 후, 그 현상의 초자연적인 성격을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빛을 발산하는 현상은 영광의 육체를 빛나게 하는 일종의 빛의 전조이다.
269)De beatificat., 1. III, C. XLIX 270) Ribert. La Mystique, IIe P., ch. XXIX ; Mgr. Farges, op. cit., IIe Part. ch. III. a. 3. 272) De beatific., 1. IV, Ie Part., c. XXVI, n. 8-30
III. 향기의 발산
1520 하느님께서는 가끔 성인들의 몸에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은 후에, 성인들이 실천한 덕의 좋은 향기를 표현하기 위해 향기가 발산되게 하신다. 그래서 성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의 성흔(聖痕)에서는 가끔 감미로운 향기가 발산되었다. 성녀 예수의 데레사가 죽었을 때, 성녀의 몸을 씻은 물은 향기롭게 남아 있었다. 아홉달 동안 신비로운 향기가 그의 무덤에서 풍겨 나왔고, 성녀의 관을 파내었을때, 성녀의 지체에서 향기로운 기름이 흘러내렸다. 272) 그리고 이 기적 외에 그와 비슷한 성녀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시성 조사기록에 적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향기의 기적을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향기의 기적을 검증할 때 1) 감미로운 향기가 지속적으로 풍겨났는가? 2) 이 향기가 육체나 땅 속에서 나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3) 성녀의 육체에서 나온 기름이나 물의 사용으로 기적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본다. 273)
272) 이 기적은 시성식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검토되었고, 조사단들은 그것을 자연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Bollandistes, 10월 15일. t. LV. p. 368. n. 1132) 273) De beatific., 1. LV, P. I, c. XXXI, n. 19-28
IV . 지속적인 금식
1521 특히 성흔을 받은 성인들 중에 수년동안 성체 말고는 다른 음식을 취하지 않고 살았던 성인들이 있다. 정신 생리학적 현상에 대해서 , 임베르토 구뷔르 박사(Dr Imbert-Goubeyre)는 특별히 몇몇 충격적인 경우를 제시한다. "복녀 폴리뇨의 안젤라(Angele de Foligno)는 12년 동안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성녀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약 8년동안 먹지 않았으며, 복녀 렌트(Rente)의 엘리사벳은 15년 이상을 성녀 리드비나는 28년 동안, 복녀 라꼬니지(Racconigi)의 카타리나는 10년... 현대에 이르러서는 로사 안드리아니는 28년....루도비카 라또(Lateau)는 14년을 먹지 않았다."274) 교회는 매우 엄격하게 이런 종류의 정신생리학적 현상들을 조사하고, 오랜 기간 동안 매 순간 감시하며, 수많은 증거와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데 숙달되어 있다. 275) 그러기 위해, 이 금식이 완벽한지, 단단한 음식뿐 아니라 음료수까지 조절하는지, 금식이 지속적인지, 그 영혼이 자기 일에 계속 열중하는지 등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또 이러한 현상을 수면(睡眠)의 제한과도 연결시켜야 한다. 성 알칸타라의 베드로(Pierre d' Alcantara)는 40년 동안 1시간 30분 밖에 자지 않았다. 성려 리치의 카타리나(Catherine de Ricci)는 일주일에 한 시간만 잤다.
274) La stigmatisation, t. II, p. 183. 275) Bened. XLV, op. cit., 1. IV, P.I, c. XXVII.
V. 성흔 (聖痕)
1522 (1) 정신 생리학적 현상에서 성흔의 근원과 본질 이 현상은 이마와 옆구리, 손과 발에 구세주의 성흔(Stigmates)이 생기는 현상이다. 이 흔적은 외적인 어떤 상처로 인해 유발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주기적으로 깨끗한 피가 흐른다. 첫 번째 성흔으로 알려진 성인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이다. 성인은 1222년 9월 17일, 알베른느(Alverne)산에서 극치의 황홀경 속에, 십자가의 예수님의 형상을 자신에게 보여주는 세라핌을 보았고, 그 세라핌은 그에게 성흔을 새겨 주었다. 성인은 죽을 때까지 그 성흔을 간직했으며 거기서는 붉은 피가 흘렀다. 성인은 이 기적을 숨기려고 애를 썼지만, 완전히 숨길 수 없었다. 이 성흔은 1226년 10월 11일 성인의 죽음으로 인하여 기적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이 때부터, 비슷한 정신생리학적 현상은 많이 늘어났다. 임베르토 박사(Dr. Imbert)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대개 321명으로 보았다. 그 가운데 41명은 남자였다. 교회로 부터 성흔을 인정받은 62명은 시성(諡聖)이 되었다.
1523 정신생리학적 현상의 성흔은 황홀경에 있는 영혼에게만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 같다. 그리고 성흔을 받은 영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예수님과 일치하게 되면서 매우 생생한 고통을 경험한다. 만일 이 성흔에세 고통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 부정적인 징표가 된다. 왜냐하면 성흔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과의 일치의 상징이며, 순교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흔의 현상에 대해서는 많은 증인에 의해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흔을 자연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때로는 과도하게 예민한 몇몇 사람들이 상상으로 지나치게 흥분하여, 성흔과 비슷한 피땀을 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들이 얻은 몇몇 결론은 성흔을 입은 영혼들에게서 보여지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1524 (2) 정신 생리학의 현상에서 성흔을 분별한는 지표
어떤 개인에게 유발되는 인위적인 성흔의 현상과 참된 성흔을 구별하기 위해, 참된 성흔을 특징 짓는 모든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 성흔은 예수님이 받은 다석개의 상처와 같은 장소로 국한된다. 그리고 성흔은 결코 최면술사의 핏빛 자국과 같은 방식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2) 일반적으로 성흔의 아픔과 상처의 갱신은 성 금요일 또는 주님의 몇몇 축일 같은 구세주의 수난을 기념하는 시기나 날짜에 이루어진다. 3) 성흔의 상처는 곪지 않는다. 그래서 성흔에서 흐르는 피는 깨끗하다. 여기에 비해 성흔을 받은 사람의 육체의 다른 부위에 자연적으로 난 상처는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곪는다. 그리고 성흔은 낫지 않는다. 일반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성흔은 30년에서 40년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4)성흔은 많은 출혈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 출혈은 성흔이 나타나는 첫날은 이해가 되지만 잇따르는 출혈은 설명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성흔에서 일어나는 많은 출혈은 설명이 불가하다. 성흔은 일반적으로 그 상처가 굵은 혈맥이 아니라 표면적이지만, 피를 제법 흘리게 한다. 5) 끝으로 특히 성흔은 십자가에 대한 사랑으로 가장 영웅적인 덕을 실천하는 영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정신생리학적 현상에 대한 모든 상황 분석은, 일상적인 병리학의 상황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현상은 영혼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신 예수님께 더욱 일치하게 된다.
결론 : 지금까지 말한 여러 현상(공중부유, 빛의 발산, 향기의 발산, 금식, 성흔 등)과 병적인 현상과의 차이점
1525 영혼이 황홀경과 연결된 정신생리학적 현상은 너무나 명백하게 잘 증명되어서, 실증주의(實證主義-positivistes)자들이 부인할 수 없다. 실증주의자들은 정신생리학적 현상을 다만 히스테리나 정신신경증(phychonevroses)에서 호는 병적인 현상과 동일시 하려한다. 그중 몇몇 실증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현상을 광증(狂症)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성인들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반적인 병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평범한 병에 대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성인들이 그 병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균형 잡히고 건강한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점에서, 신비적 현상과 신경병 사이에는 본질 적인 차이점이 있다.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현상을 증명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이들 사이에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276) 이 두 가지, 신비적 현상과 신경병의 차이점 특히 (1) 신비적 현상과 신경병이라는 두 주체의 차이점, (2)두 다양한 현상의 차이점, (3)결과로 나타난 차이점, (4)이 두 현상에 대한 이론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1526 (1) 신비적 현상과 신경병이라는 두 주체의 차이점 신경병환자와 황홀경에 빠진 영혼을 비교해 본다면, 환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황홀경에 있는 영혼들은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 (가)신경병 환자들은 육체적인 관점에서 뿐만아니라, 정신적 관점에서도 불균형을 이룬다. 그래서 신경병 환자들에게서 지적인 활동과 의지의 힘이 감소되는 것이 증명된다. 그 결과 양심은 왜곡되거나 갈팡질팡하고, 주의가 산만해지며, 지식은 매말라 버리고, 기억력은 이중 인격자가 된 것으로 믿을 정도로 붕괴되어 버린다. 곧이어 정신 속에는 고정된 작은 생각들만 남는다. 바로 여기에서 광증(狂症)의 이웃인, 편집증(偏執症, monoideisme)이 생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의지마저 약해진다. 또 흥분이 그 위를 덮치고, 자신의 변덕과 의지의 놀림감이 되고, 자제심마저 잃어 버린다. 즉 이와 같은 신경병은 정신적인 지적 힘과, 인격의 감소와 약화를 가져온다.277)
276) 이 차이점은 그들 자신이 이 현상을 환각현상으로 간주함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인 M. de Montmorand , Psychologie des Mystiques, 1920년에서 명백하게 설명되고 있다. 277) P.Janet, L'automatisme psychologique, LLe P., ch. III-IV에 의해 표시된 특징들로 요약된다.
1527 (나)신비가들에게서 일어나는 정신생리학적 현상은 신경병 환자와는 그 반대이다. 오히려 지성은 확대되고 의지는 강해지며, 그로 인하여 더 큰 일을 실행하거나 구상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신비가들이 자신의 믿음에 대한 교의(dogmaes)를 통해, 어떻게 하느님과 신적 속성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얻었는가를 보았다. 물론 신비가들도 정신생리학적 현상에서 본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비가들은 오랜 시간의 독서보다 관상기도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리고 신비가들의 이 확신은 가장 영웅적인 덕의 실천 속에서 현실적인 진보를 통해 표현된다. 그 결과 신비가들은 더욱 겸손해지고 , 사랑이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힘든 고통 속에서도 신적 의지에 더욱 순종하며, 변함없는 침착성과 평화와 고요함을 누리게 된다. 정신 생리학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신비가들의 자세와 히스테리적으로 흥분된 신경병 환자의 행동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1528 (2) 두 다양한 현상의 차이점
정신생리학적 현상에서 신경병 환자들과 신비가들에게 생기는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큰 차이점이 있다. (가) 신경병 환자에게 히스테리 발작보다 더 역겹고, 슬픈 것은 없다. 1) 첫 단계는 가벼운 간질(癎疾, epilepsie) 현상 같지만,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종창(腫脹)의 느낌으로 인해 그것과는 구별된다. 이 종창은 사실 숨막히는 느낌과 함께 목구멍이 부푸는 것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난다. 2) 둘째는 온 몸을 비트는 괴로워하는(무질서한)행동으로 나타난다. 3) 세째는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 또는 형상에 관계되는 음란과 투기와 두려움의 열정적인 속성이다. 4) 모든 것은 발작적인 흐느낌이나 웃음으로 끝난다. 이것은 긴장완화에서 오는 것이다. 이 발작을 하면서, 그 환자는 여러 악한 감정으로 고통을 당하고 지치고 녹초가 된다. (나) 신비가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얼마나 황홀한가! 어떤 발작도 어떤 맹렬한 행동도 없다. 그리고 이 환상은 하느님과 내적으로 일치된 영혼의 황홀함으로 잔잔할 뿐이다. 그래서 황홀경의 증인들은, 예를 들어 루르드의 마싸비엘 동굴에서 베르나뎃다와 함께 환시를 보는 순간 그들은 감탄을 억제할 수 없었다. 또 제1456항에서 성녀 예수의 데레사가 말하듯이, 이 환시로 인해 육체가 녹초가 되는 대신, 영혼은 황홀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1529 (3) 정신 생리학적 현상의 결과에 나타난 차이점들 물론 이 결과에서도 두 현상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 히스테리 환자의 경우, 묘사된 장면이 더 많아질수록 능력의 불균형은 더욱 증가된다. 그리고 은폐, 거짓말, 우둔함, 음란등은 불행한 희생자들이 행한 체험들의 결과이다. (나) 이와 반대로, 신비가들의 영혼 안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헌신과 지성이 한결같이 자란다. 신비가들이 공동체의 창설이나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힘있는 의지와 단단하고 개방된 정신과 양식을 발휘하게 되며,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게 된다.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죽기 전까지,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14개의 남자 가르멜 수도원과 16개의 여자 가르멜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성녀 꼴렛드(Colette)는 13개의 수도원을 창설했고, 수많은 다른 수도원들 속에 규칙을 소생시켰다. 16살부터 황홀경에 빠졌던 아카리아(Acarie) 부인은 30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고, 여섯 자녀를 키우면서 남편의 경솔함으로 인해 위태롭게 된 가족의 재산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나중에 과부가 되었을 때, 프랑스에 가르멜 수도원을 창설하도록 헌금을 하였다.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는 32세에 죽었는데, 오랫동안 읽지도 쓰지도 못했지만, 그 시대의 문제에 대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최근에 교회의 한 역사가는 성녀 카타리나를 일컬어 매우 위대한 정치가라고 칭송했다. 278) 그러므로 히스테리 환자와 성흔을 받은 영혼 사이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정신 생리학적 현상에서 신비적 현상과 정신병을 동일시하려는 것은 과학적 고찰의 모든 규범에 반대되는 것이다.
1530 (나) 정신생리학적 현상에 대한 이론(異論)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현상에 나타난 문제들을 결의해야 할 마지막 어려움이 남아 있다. 리보(Ribot)와 함께 몇몇 사람들은 황홀경을 감정적 단일 관념을 편집증(偏執症, monoideisme)에 이르는 양심의 편협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왜냐하면 신비가들은 하느님과의 내적 일치만을 꿈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어려운 문제점에 대한 대답으로, 신비가들의 황홀경과 이중적인 단일 관념 편집증을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편집증은 질서파괴자로써, 판단이 흐려지면서 인격이 조금씩 붕괴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살 생각을 고정시키면서 모든 허무를 최고로 추구한다. 둘째, 편집증은 단일 관념 편집증으로, 인격을 붕괴시키지 않고 오히려 강화시킨다. 왜냐하면 훌륭한 정치는 고정된 생각을 갖고, 거기로 모든 계획을 모아들이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성취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매우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나 신비가들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신비가들은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최종 목표를 추구하는 지배적이고 고정된 생각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모든 완덕과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과의 내적인 일치이다. 바로 그곳으로 신비가들은 다른 모든 생각과 힘을 집결한다. 물론 이 생각은 완벽하게 정의롭다. 이 생각은 모든 생각과 행위를 조화시킨다.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완전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그 곳으로 집중시킨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관점에서조차, 성인들은 매우 활동적이며, 훌륭한 양식을 가지고 힘과 항구함을 통해 훌륭한 교화 사업을 좋은 목표로 이끌고 구상한다. 이것은 무신론자도 지적하는 바로 우리는 이미 제 43항에서 다루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신비가들이 탁월한 영혼들이 동시에 성인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278) Em. Gebhart , Rev. hebdomadaire., 1907년 3월 16일.
제2장 악마적 현상 279)
1531 악마(惡魔, demon)는 성인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본받는 것을 매우 질투한다. 그래서 악마는 성인들이 있는 하느님 나라와 세상의 인간에게 절대적인 지배를 행사하려고 한다. 그래서 악마는 인간에게 극심한 외적 유혹을 야기시켜 영혼들을 공격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육체 속에 정착하여 자기가 마치 영혼의 주인인양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면서, 영혼을 혼란 속에 빠뜨리려 한다. 이처럼 영혼에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 첫째 것을 강박관념(强迫觀念, obsession)이라 하고, 둘째는 마귀(魔鬼)들림(possession)이라 한다. 악마의 활동에 대해서는 피해야 할 이중적인 과격한 행위가 있다. 영혼에게 생기는 모든 악을 악마에게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악마의 개입을 전제하지 않고도 세 가지 탐욕에서 오는 악한 성향이 영혼 안에 있다는 것을 잊은 처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자연적 원인에서 오는 유혹을 설명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279)Del Rio, Disquisitiones magicae, 1600; Thyraeus, De locis infestis; De spirituum apparitionibus; De doemoniacis, 1699; Ribet, Mystique divine, t. III; A.Poulain, op, cit., ch. XXIV, } 6-8; A. Saudreau, L' Etat mystique, ch. XXII-XXIII
이와 반대로 성서와 성전에서 악마의 행위에 대해 증거하는 것을 잊어 버린 영혼은, 어떤 경우에도 악마의 개입을 허락하려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중용(中庸)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따를 규범은 전체적으로 또는 특이한 성격으로 인해 악령의 행위로 나타나는 것만을 악마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영혼 안에 일어나는 강박관념과 마귀 들림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제1절
강박 관념
1532 I. 강박 관념의 본질
강박 관념은 영혼 안에서 일반적인 평범한 유혹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매우 강렬한 일련의 유혹이다. 먼저 외적 감각과 연관된 발현(發現)을, 우리는 외적 강박관념이라 한다. 그 대신 그 발현이 내적 느낌을 자극할 때, 이것을 내적 강박 관념이라고 한다. 강박 관념이 순전히 외적인 것만은 매우 드물며, 악마는 영혼을 더 쉽게 혼란시키기 위해서만 외적 감각을 사용한다.
1533 (1) 악마는 영혼의 외적인 모든 감각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 ㄱ) 시선(視線)에서 : 악마는 랑자크의 아녜스(Mere Agnes de Kangeac)원장 수녀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덕의 실천을 단념하게 하고 영혼을 두렵게 하기 위해 , 불쾌한 형태로 나타났다. 280) 그리고 악마는 성 알퐁소 로드리게즈(Rodriguez)에게 자주 일어났던 것처럼, 성인을 악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아주 매력적인 형태로 나타났다.281) ㄴ)청각에서 : 악마는 복녀 꼬르똔의 마르가릿다(Cortone de Marfuerite)의 생애에서 음란하거나 신성을 모독하는 말과 노래를 들리게 하였다. 282) 악마는 성녀 빠지의 막달레나(Pazzi de Madeleine)와 성 아르의 비안네에게 가끔 일어났던 공포에 빠뜨리기 위해 가끔 소동을 일으켰다. 283) ㄷ) 접촉에서 : 악마는 감각적인 접촉으로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즉 성녀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시성식 문서와,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생애에서서 보는 것처럼 상처와 채찍을 가하면서 접촉하기도 한다. 284) 또 성 로드리게쯔의 알퐁소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악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포옹 같은 행위를 한다. 285) 셔람(P.Schram)신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위에서 말한 이와같은 감각적인 발현들은 신경적인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생기는 단순한 환각일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서조차, 환각은 영혼에게 매우 무서운 유혹에 속한다.
1534 (2) 악마는 또 상상이나 기억력등, 내적 감각에도 작용한다. 그리고 악마는 이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영혼 안에 격젇을 일으키게 한다. 악마는 영혼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강박적이고 성가신 영상들로 영혼을 침해한다. 악마는 영혼으로 하여금 화가 치밀어 오르고, 절망의 고통과, 반감의 충동 또는 그 반대로 위험한 애정에 시달리게 하여, 아무 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게 한다. 그로 인하여 영혼은 무엇이 진정한 강박 관념인가를 결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유혹이 갑작스럽고, 강렬하며, 완강하고, 자연적인 원인으로 그 유혹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거기서 악마의 특별한 행위를 느낄 수 있다. 어쨌든 악마의 유혹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을 경우, 이 악마의 현상들을 고칠 수 있는 병적인 상태를 의사에게 상의하는 것이 좋다.
1535 II. 영적 지도자를 위한 지도 영적 지도자는 영혼을 도와 주기 위해 빈틈없는 현명한 덕과 가장 부성애적인 친절함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ㄱ) 영적 지도자는 진정한 강박관념의 확고한 증거가 없이는 절대로 믿지 말 것이다. 그러나 강박관념이든 아니든 간에, 집요하고 맹렬한 유혹에 공격당하는 회개(悔改)자들을 가엾게 여기고, 현명한 권고로 그 영혼을 도와 주어야 한다. 영적 지도자는 이미 제902항-제918항에 서술된 유혹에 저항하는 방법과, 또 제223항-제224항에 적힌 악마적 유혹에 대항하는 특별한 구제책을 영혼들에게 되새겨 주어야 한다. ㄴ)만일 악마의 유혹이 맹렬하고, 무질서가 의지의 공감 없이 나타났다면, 지도자는 유혹에 대한 공감 없이는 죄가 아님을 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도 영혼이 의심스러워 할때, 영적 지도자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 경우에는, 유혹이 죄가 아니거나, 적어도 중죄가 아니라고 판단해야 한다. ㄷ) 열심한 영혼일 경우, 영적 지도자는 그 끈질긴 유혹이 제 1426항에 묘사된 수동적 시련의 한 부분이 아닌가를 자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는 그 영혼의 완덕 단계에 알맞은 권고를 그들에게 준다.
1536 ㄹ) 만일 악마적 강박관념이 심증적으로 명백하거나, 또는 매우 가능성이 있을 경우, 로마 전례서에 적혀있는 구마경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구마의 기도를 받게 될 영혼이 구마경으로 인해 혼동되고, 그의 상상을 자극받게 된다면, 미리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때는 다만 구마경을 읽으면서 그에게 교회를 통해 승인된 기도를 드릴 것이라고 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장엄(Solennels)한 구마경을 할 경우에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영혼은 이 기도에서 마귀 들림을 다루면서 신중해야 할 것이다.
280) M.de Lantages, Vie de la Ven. M. Agnes, ed. Lucot, 1863, Le Part.ch.X 281) P.Poulain, op.cit., ch. XXIV, n. 94. 282) Bollandistes, 2월 22일, t. VI, p. 340, n. 178 283)A. Monnin, Le Cure d' Ars, 1. III, CH. II. 284) Vie par une Carmelite, t. II, ch. XXVII.
제2절
마귀들림 286)
1. 마귀 들림의 본질
1537 (1) 마귀들림의 구성 요소들 마귀 들림은 다음 두 가지 요소로 구성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귀 들린 육체 안에 있는 악마의 현존과 또 악마가 육체에 작용하는 세력을 매개로 하여 영혼에게 작용하는 것들이다. 여기에서 후자의 요소는 설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혼이 육체에 일치하는 것처럼, 악마는 육체와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혼에 비기면 악마는 외적인 원동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악마는 육체의 매개를 통하여 육체 안에 살면서 영혼을 움직인다. 악마는 육체를 직접 움직일 수 있으며, 온갖 종류의 행동을 실행시킬 수 있다. 악마는 간접적으로 그들의 작용을 위해 육체에 종속되는 한도 내에서 능력을 통해 작용한다. 우리는 마귀 들린 사람들 가운데서 두 가지 상태를 구분할 수 있다. 즉 영혼이 발작을 일으키는 시기와 잠잠한 시기이다. 발작은 마귀에 의한 신성모독, 불경한 말, 격노한 큰 소리, 사지를 비트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 발작은 매우 흥분된 동요를 몸에 전달하면서 압도적인 지배를 나타내는 일종의 맹렬한 몸짓이다. 이 때 환자는 자신 안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잃어 버린다. 그리고 정신이 되돌아 왔을 때, 환자가 했던 말과 행동 또는 악마가 그를 통해서 했던 것에 대한 어떤 기억도 갖고 있지 않다. 영혼은 초기에만 악마의 침입을 자신 안에 느낄 뿐, 그 뒤에는 의식을 잃어 버린 것과 같다.
1538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마귀 들림은 이 일반적인 규칙을 넘어서는 예외들이 있다. 쉬렝(P. Surin)신부는 루뒹의 우르술라(Ursulines de Loudun)수녀회 수녀들을 구마하면서, 자신이 마귀를 들리게 되는데, 신부는 그에게 일어나는 것에 대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쉬렝신부는 나중에 어떻게 그의 영혼이 나뉘어져, 악마적 느낌에 한 쪽이 열리고, 다른 한 쪽이 하느님의 활동에 맡겨지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신부는 몸이 땅에서 뒹굴고 있는 동안 어떻게 그가 기도했는지를 묘사하였다. 쉬렝 신부는 덧 붙여서, "나의 상태는 내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조금 남아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내가 말하려 하면, 내 혀가 나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동안 나는 갑자기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식탁에서 음식을 입으로 가져 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고백하려 하면, 내 죄는 나를 빠져나갑니다. 나는 악마가 내 안에서 마치 자기 집에서처럼 자기 좋을 대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느낍니다."287)
286) 저자기 인용한 것 이외에도. cfr. Mgr waffelaert, au mot Possession dans le Dict. d'Apologetique. 287) Lettre du 3 mai 1635 au P. d' Attichy 288) Rituel Roman : De exorcisandis obsessis a daemonio.
1539 영혼이 고요할 동안, 악령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마치 악령이 내 영혼으로부터 멀리 물러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마귀는 영혼 안에 모든 의술(醫術)의 지원을 무력하게 하는일종의 결함을 나타낸다. 거의 대부분 한 영혼 안에 여러 악마가 들어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영혼의 나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귀 들림은죄인들에게만 집중적으로 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쉬렝(Surin)신부의 경우에서 보듯 예외가 있음도 알고 있다.
1540 (2) 마귀들림의 징표
우리는 마귀 들림에 가까운 신경질환(nerveuses)이나 편집광(偏執狂, monomanies)과 정신병(alienation mentale)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표현하기 위해 병적인 현상들과 구별될 수 있는 징표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 전례(典禮)에 의하면, 마귀 들림을 알아볼 수 있는 세가지 주된 징표가 있다. "낯선 언어의 여러 단어를 구사하면서 생소한 말을 하거나, 또 이 낯선 말을 하는 영혼을 이해한다거나, 불가해(不可解, occultes)하고 멀리 있는 것을 알아낸다거나, 그리고 자연적인 나이나 조건을 능가하는 힘을 보일 때 마귀 들린 징표가 된다. 그 외 이 징표들과 비슷한 다른 징표들의 숫자나 회수가 증가되었을때, 이것은 마귀 들림의 가장 유력한 징후들이다."288) 우리는 위에서 말한 징표들을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몇 마디 덧붙인다.
ㄱ) 마귀 들린 사람이 생소한 언어를 사용할 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말을 하는 영혼을 세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곧 그가 지난날에 말하는 그 언어의 몇몇 단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는지, 암기했던 몇몇 문장을 발음하는 대신, 그가 참으로 알지 못하는 말을 이해하고 말하는지를 엄격하게 알아보아야 한다. 289) ㄴ) 마귀 들린 사람이 말하는 불가해한 것에 대한 계시는, 어떤 자연적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점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게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문제일 때, 그 사람이 통신이나 또는 다른 자연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를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또 미래에 대한 것일 때는, 예언된 방식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애매하지 않고 매우 정확하게 예언이 실현되는가를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엄청난 큰 재난을 알리면서,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애매한 예언을 염두에 두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예언자란 평판을 얻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현상을 듣고 보면서, 이제 영혼은 초자연적인 인식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이 올바른 인식은 이러한 현상들이 성령이나 악령에서 온 것인가를 바른 규범을 통해 영을 식별하게 한다. 물론 실제적으로 위에서 말한 현상들은 의심할 필요없이 악한 영이 마귀 들린 사람 속에 있다는 것이다. ㄷ) 마귀 들린 사람의 나이와 병적인 상태 등을 고려할 때, 그 사람은 자연적인 힘을 현저하게 능가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는 힘이 두배로 증가되는 극도의 흥분상태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미 영혼의 공중부유에 대한 현상이 참으로 엄격하게 잘 증명되었다면 그것을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마가 영혼 안에 개입된 바른 징표를 정확하게 알아내어야 한다.
1541 우리는 이 징표들에 더하여, 축성된 것이나 구마에 대한 적용이, 마귀 들린 것으로 믿어지는 영혼에게 알리지 않고 실행할 때, 거기에서 발생되는 결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귀 들린 사람은 성물(聖物)을 만지거나, 또는 어떤 영혼에게 전례를 통해 기도를 드릴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거나 끔찍하게 신성모독을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 징표는 분명히 마귀 들린 영혼에게 알리지 않고 실행했을 때이다. 만일 마귀 들린 영혼이 이를 알아차리면, 그들은 종교적인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든 아니면 거짓 꾸밈 때문에 분노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마귀 들림을 알아보기 매우 힘들며, 또 이 마귀 들린 현상을 알리기 전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289) 병적인 흥분의 경우 잊어 버린 언어에 대해 기억을 되살린다거나, 적어도 들었던 말의 조각들을 기억하는 경우를 인용해 보면, 사제관 식모는 사제가 읽는 것을 들었던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의 짧은 말을 암송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ignota lingua loqui pluribus verbis vel loquentem intelligere" 290) J.M. Charcot et Richer, Les demoniaques dans l' art; Boumeville et Regnard, L' Iconographie de la Salpetriere, Richer, Etudes cliniques sur la grande hysterie.
1542 (3) 신경성 착란(錯亂)과 마귀 들림의 차이점 신경병에 걸린 사람에 관한 경험은 병적인 상태와 마귀 들린 사람의 외적 태도 사이에 명백한 유사점을 보여준다. 290) 그러나 우리는 이 유사점에 대해 놀라서는 안 된다. 악마는 신경병이나 이 증세와 유사한 외적인 현상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마귀 들린 경우라고 부당하게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판단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병적인 상태와 마귀 들림의 유사점은 외적 행동에 있지만, 이 외적 행동만으로 마귀 들림이라고 증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일반적으로 신경병 환자들에게서는 이상한 언어를 말한다거나, 분명하고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하거나 마음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말한바와 같이 마귀 들림의 참된 징표가 있다. 지금부터 우리가 말하는 마귀 들림의 현상이 없을 때에는 그냥 단순한 신경병 환자라고 믿어도 된다. 가끔 구마하는 사람들이 실수한다면 그것은 전례가 말하는 규칙에서 멀어진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실수 를 피하기 위해 이때는 사제들뿐만 아니라 가톨릭 의사들에 의해서도 엄격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1543 트라피스트(Trappe)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였던 드브리느(P.Debreyne)신부는 어느 여자 공동체에서 마귀 들린 영혼을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상태는 다른 어느 수녀회의 것과 매우 닮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드브리느 신부는 그 영혼들을 단기간에 위생적(衛生的, hygieniques)방법으로, 특히 꾸준하고 다양한 육체적인 일을 통해 치료하였다.291) 특히 영혼은 전염성이 있는 마귀 들림을 조심해야 한다. 참으로 마귀 들림의 경우 영혼은 외적으로 마귀 들린 것과 비슷한 신경병 상태를 증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종류의 마귀들림을 피할 가장 좋은 방법은, 신경과민에 걸리게 되는 장소를 멀리하고 신경병에 거린 사람들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