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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모처럼 차를 몰고 퇴근하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 1년 내내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나로서는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아침에 부엌에서 본 쌀 포대가 다 비어져 가는 것을 보았다. 밥은 먹고 살아야지... 사람 먹는 쌀과 개가 먹는 사료를 챙기는 것은 나의 담당이다. 쌀은 근처 마트에서 조그만 포대를 사다 먹는다.
예전엔 쌀을 시골에서 얻어다 먹던 시절도 있었지만, 식구가 적어 쌀이 많이 있어도 걱정이고, 왠지 애써 농사지은 것을 얻어다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때그때 조금씩 사다 먹기로 하였다. 마트에서 20킬로 쌀 한 포대를 사서 차에다 싣고 뿌듯한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섰다.
대문 안에선 혼자 하루 종일 집을 지키던 개가 끙끙거리며 꼬리를 한동안 흔들어 대며 반긴다. 참으로 개처럼 충직한 동물도 없다. 사람들은 흔히 개와 고양이를 비교를 하게 되는데, 속담에 ‘개는 사람을 따르고, 고양이는 집(장소)를 따른다.’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한 장소에서 처음 만날 때엔 반가운 표정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저 그런 표정을 짓고 말지만, 개는 몇 번을, 아니 몇 십번을 보아도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개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아침에 애 엄마가 조금 늦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하나도 없다. 쌀을 씻어 밥솥에다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이참에 씽크대에 있는 그릇들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나이에 무슨 설거지씩이냐고? 이것쯤이야.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래 뵈도 요리학원 출신인데(비록 실기에 떨어져 자격증은 못 따고 말았지만...).
아들이 쓰던 뒷방으로 들어갔다. 올해부턴 뒷방을 나의 아지트로 정하였다. 그렇다고 아직 각방을 쓴다거나 오랫동안 이 방에서 지내지는 않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단 두식구인데 따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뒷방엔 몇 가지 운동기구들을 가져다 놓았고, 컴퓨터와 텔레비전도 갖추어 놓았다. 여기에다 먹을 밥과 한권의 책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뭐 술? 술은 부부싸움해서 무지 화날 때 아니면 집에선 안 먹음)
운동기구로 말하자면 애 엄마가 질투를 하는 정도이다. 마누라 손목보다 훨씬 많은 횟수를 만지며 아침저녁으로 끼고 사니 말이다.
혼자 저녁을 먼저 먹어 치울 것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다 운동기구를 집어 들었다. 나는 운동을 할 때면 아무런 잡념이 없어서 좋았다. 등산을 하거나 밭에서 일을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아니하고 그저 내 능력 범위 내에서 가진 힘대로 함부로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운동기구 중 오래 된 것은 20년이 넘어 손때가 많이 묻었다. 그 긴 세월동안 여름엔 같이 땀 흘리고, 겨울엔 훈훈함을 같이 하여 오고 있다.
운동은 한번 시작하면 30분 정도가 걸린다. 운동기구라고 그냥 기분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어느 기구는 어떻게 해서 몇 번을 하고, 다른 것은 또 다르게 하고...
8시가 가까워지자 배가 고파왔다. 우선 혼자서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엌으로 갔다. 밥은 뜸이 잘 들어 있다. 이젠 밥 하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밥솥에 붓는 물 정도야 재어보지 않아도 눈으로 보면 안다.
식탁위에 있는 반찬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나는 집에서 밥을 혼자 먹을 때면 여러 가지 반찬을 먹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물에다 밥을 말아 한 가지 정도의 반찬이면 족하다(그래서 애 엄마는 내가 홀아비가 되어도 혼자 잘 살겠다고 말 하곤 하지만).
어차피 살기위해 먹는 밥이고, 술안주나 다른 때 여러 가지 음식물을 섭취하므로 영양실조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파김치와 무말랭이를 섞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먹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밥을 빨리 먹어치우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같이 밥 먹은 사람 중에 나보다 빨리 먹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더니 군대 훈련소 시절의 매우 어려운 환경을 겪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땐 내가 소속된 부대가 25중대인데, 아침마다 중대 편제순서로 배식을 하다 보니 우린 거의 꽁지였다. 그리고 밥을 먹고 총이랑 짐까지 짊어 진 채 몇 킬로를 달려 야외교장을 가야 하다 보니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밥을 굶기 마련이어서 매일 밥 먹는 것이 전쟁이 되고 말았었다.
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켰다. 나 홀로 카페를 들어가서 오늘은 또 어느 손님이 다녀갔나를 살펴보았다. 내가 카페를 따로 만든 것은 나름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자료를 모아 용량이 많은 공간에 보관하고 오랫동안 두고 보기 위해서였다.
예전 우리가 클 땐 학교의 졸업식 무렵이나 군 제대 무렵엔 기념 자료로 앙케이트를 만들던 시절도 있었었다.
카페는 주로 동호인이나, 동창회 등 단체나 유명인들이 팬들을 위하여 만들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 홀로 카페이다.
그래도 요즘은 고마운 분들이 들어와 더러는 격려를 해 주기도 하고, 살펴 봐주고 가서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엊그제 다녀 온 산악회의 동아리 활동사진들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연출되지 아니한 동료들의 모습들이 건강하고 자연스러워 보여서 좋았다.
문득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느 때도 그랬듯이 밥 먹고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여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오늘도 그저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통속적으로...
취업포털 잡 코리아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의 직장에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이 56.6%이고, 자아실현을 위하여 다니는 사람 18.8%, 그리고 왜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5.1%나 있었다.
회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장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다닌다는 사람이 더 현실적이고 정직한 답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마 그렇게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자아실현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는데, 왜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어라 말해야 할까?
하긴 일고의 사심 없이 모든 걸 다 바쳐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고 전제하면 그들을 달리 탓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오늘도(무사히) 하루 일을 마쳤다는 생각으로 퇴근 준비를 한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일은 처음부터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밀양 얼음골에서 배추농사를 지었다거나, 희말라야 계곡에서 짐 지고 산 오르는 셀퍼 정도 되였더라면 지금보단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지 않았었나 하는 솔직한 심정이다.
한편으론 지금까지 견디어 온 것이 무척이나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어차피 실패하고만 직장생활이지만, 그래도 가는 날까진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용을 써 보지만,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짐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퇴근길엔 어쩌다 반가운 친구들에게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마다하지 않는다.
나를 찾아주고, 그래도 얼굴 대하기를 좋아하는 그들을 놓치는 순간 나의 인생에서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한동안 후회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진정 나는 그들이 있어 그나마 살맛을 느끼고, 생의 즐거움을 가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벌술을 마신다. 탁배기, 쐬주, Beer도 좋고 양주는 없어서 못 마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어떤 술이 맛나고 어떤 술이 내게 잘 받는지도 조차도 모른다. 그저 술이란 분위기에 마시고, 분위기에 취한다고 알고 산다.
요즘은 서로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값싸고 맛난 술을 마신답시고 주로 서민적이고 시금털털한 막걸리를 마셔댄다.
그래도 아직까진 아무리 마셔도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기만 하다.
밤이 깊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글을 써 본다고? 무슨 웃기는 소리를...
나는 열 번을 거듭 생각해도 가소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어느 소설가는 글을 쓰기 위하여 몇 년에 걸쳐 거지 같은 생활을 하였었고, 밥은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던 인고의 세월을 거쳐 드디어 글을 쓸 마음을 먹게 되었었더란다.
그리고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추위에 몸을 비벼가며 며칠간을 거의 뜬눈으로 지 새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원고지와 씨름을 하였었단다.
그의 생활은 거지 중의 상거지 노릇을 하였었다고 하는데, 나는 어디에서 저런 집념과 깡다구가 나오나 싶어 존경스럽기도 하였다.
최근 ‘꼭두각시 춤’이라는 소설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는 소설가 조정래님은 장편소설 ‘태백산맥’과 ‘한강 ’ 을 집필하면서 20연간 술을 끊었다고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술은 적게 먹어도 다음 날엔 글을 쓸 수 없고, 숙취를 하게 되면 이틀간을 쉬어야 하고, 그 다음 날에도 하루 동안 마음에 잡히지 않아 결국 3일간을 허비하게 되어 좋아하는 술을 참았단다. 작품을 떠나서라도 정말 그 말에 숙연하여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알고서는 ‘아하! 글이란 저런 밑바탕이 있어야 써 보겠다는 마음이 생기나 보다’ 하고 생각하니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감히 나서서는 안 될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고 평생을 지켜만 보기도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때론 미친척하고 용기를 가져 봄직도 하다는 주제넘고 불경스런 마음도 들었다. 며칠 전 텔레비전의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이만기교수가 출연한 것을 보았다.
밤에 잠에 자려는데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추리닝을 입으라고 건네주니까 자신의 알몸은 거의 전 국민들이 다 보았었는데 뭘 새삼스레 감출 것이 있느냐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음을 느꼈다. 결국 남의 앞에 서려면 나의 많은 부분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 말이 삶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언제 내가 인격을 논하였으며, 언제부터 고루한 생각을 하고 살아왔던가?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제풀에 그럴 것이라고 판단해 버리고, 나 자신의 감옥에 갇히어 살아 온 꼴이 되고 만다.
나에게 걸쳐진 모든 옷을 벗어 버리고 홀연히 나서 보아야겠다. 결코 부끄러워 할 일만도 아니다. 나를 비웃는 자가 있다면 그도 나와 같은 허물이 있을지 모를 테니까 말이다.
창밖은 깜깜하여 밤이 많이 깊었음이 느껴진다. 다행이 이 방에는 시계가 없어서 좋다. 때론 밤새워 책이라도 읽고 싶고, 글이라도 원 없이 써 보고 싶건만 마음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생각이 안 따라 줌을 어떡하랴?
나아가서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얼굴 마주하여 한잔 술에 삶을 논하고, 살아 온 날보다 적은 여생을 바라다보며 부담 없이 살고픈 심경이건만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음이라 때론 마음 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란 화두를 두고 나는 끝내 자신 있게 마음을 펼쳐내지 못함을 안타깝게 느낄 뿐이다.
잠시 그 어떤 상념에 잠겨본다. 상념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이다.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은 잡념이고, 마음에 품은 불평을 함부로 퍼부어 말함은 푸념이다. 굳게 믿는 것은 신념이고, 어떤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전념이다. 그리고 우스개 말로 이런 저런 것을 구별 못하면 (지랄)염병한다는 소릴 듣게 되고 만다.
사람이 살다보면 염병한단 소리도 듣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언제 부턴가 이중인격자(처음부터 인격은 없었으니), 아니 이중생활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먹기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세월, 나는 오랫동안 침묵이 금이라고만 믿고 살아왔었는데, 어는 날 세상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Speach의 위력을 실감했고, 잘못 나서면 커다란 상처를 받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이중 생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3등을 할 량이면 침묵하여 3등 중에서도 앞쪽에 머물러 표 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에 머물렀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대한 패턴을 바꾸어 보자고 생각을 해보았고,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었다.
먼저, 안에서는 최대한 원칙을 지키고 침묵하며, 존재 사실을 내보이지 말자.
공짜를 즐기지도 말고, 남의 기억 속에 들어가지도 말자.
그리고 밖에서는 갈지자걸음 걸으며 개차반이란 소릴 들을지라도 즐겁게 한번 살아보자. 어차피 밖에선 그 모든 책임을 내가 부담해야하고 그래도 살다 간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게 인간이라고 여기기에...
큰 죄 짓지 아니하고, 남 돕진 못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다짐하기도 하였다.
어째든 남 눈 의식하지 말고 이 악물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어차피 내 생의 막장차를 탄 것이 아닌가?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는가?
떠나서면 먼 길이 될 것이고, 그래야 나중에라도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아직은 내게도 이삼 십년이나 남았을지도 모르는 세월을 계산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요즘은 사는 게 참 심심하다. 예전엔 담 밑의 귀뚜라미도 많이 울었었는데, 이젠 가을이 짧아지다보니 그 소리도 듣기가 수월치 않다. 컴퓨터 소리만이 적막한 이 방안을 꽉 채운다. 그런데 전혀 반갑지도 않고 남들은 관심이 적은 모기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알리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쥐란 녀석들이 마당 구석을 활보하며 무척이나 성가시게 설쳐 대었고, 소탕작전 끝에 십 수 마리를 궤멸시켜 버렸었다. 그래서 씨가 말라버렸는지 올해는 한 놈도 보이질 않는다.
심심한데 그 녀석들 몇 놈이라도 남겨둘 걸 그랬었나!
참! 요즘 그런 용어 잘 못쓰면 낭패는 안 당하는지???
부질없는 상념에 집념하다 보니 점차 잡념으로 변해가고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이 점차 멀게 느껴지고, 컴퓨터의 자판이 흐릿하게 눈앞에서 가물거린다.
수많은 뇌세포들의 회의 끝에 오늘도 그저 그렇게 하루를 접고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왠지 자판 끝 책상에 올려진 팔꿈치마저 자꾸만 저려 옴을 느낀다.
순간 고갤 떨구었다. 그래! 졸리면 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꿈속에서라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떠오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은 또 어제의 오늘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첫댓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걱정이 많다.~지혜는 경험에서 얻어진다.~~~삶을 현장에서... 행복한 글 가슴속까지 감동입니다.
부평초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이 되시기를 두손 모아 모아 성원을 드립니다.^*^***** 언제 반쪽에서 얼굴뵙죠-
올해 반성하고 내년 계획하는 그런 자리 준비할까 합니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노력해 보는데도 자꾸만 어려워지네요. 많은 수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려해도 자꾸만 가슴에 쌓이는게 인생살이 입니다.
누군가 진정한 행족은 의식이 다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