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피로 좌절 극복…영원한 불제자 다짐
사업실패와 직장문제로 좌절 아내 기도에 부처님 가피 느껴 일심 관음정진으로 신심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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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5072D4751DEA0AF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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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뭔가 서늘한 기운이 몸으로 들어왔다. 그게 뭘까 생각하기도 전에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었던 것은 더욱 더 열심히 관음정진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조금 지나지 않아 몸이 다시 따뜻해지고 어둡고 탁한 먹구름이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갑자기 이마가 개운해지면서 맑아졌다. 그때까지 아프던 허리가 말끔해지면서 기도하던 목소리마저 우렁차졌다. 삼일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기도를 했다.
외할머니가 1대 공양주를 하실 정도로 불심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불심은 대를 이어 내려오지 못하고 언젠가부터 부처님을 잊고 지냈다. 불교재단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많은 불경과 불법을 접하게 되는 기회도 있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결혼을 하고 사업에 세번 실패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했다.
그런데 인연이란 고리가 얼마나 질긴 것인가? 처갓집은 천태종과 인연이 매우 깊은 집안이다. 그런 아내와의 만남은 다시 부처님의 품으로 찾아들게 되는 인연이 됐고, 나뿐 아니라 어머니도 불자의 길로 다시 들어서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 전까지 너무 어리석었다. 아상이 높았다. 당연히 사업에도 실패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에는 처자식을 생각해 최대한 기준을 낮춰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갔는데, 그 직장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업을 할 때 비해선 정말 쥐꼬리만한 월급이었지만 그나마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줬던 여유마저 사라졌다.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그런 지옥이 따로 없었다. 수입이 없으니 당연히 생활이 궁핍해지고 아내와의 싸움도 잦았다.
그러던 중 장모님을 따라 삼광사를 몇 번 다녔던 아내가 처음으로 구인사 문을 두드렸다. 기도를 하던 중 보시에 대한 화주방송이 나왔고, 아내는 광명전의 문짝보시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방송을 듣고 보시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생활조차 힘들었던 아내는 무슨 마음인지 모르지만 그 문으로 남편의 운이 쉴 새 없이 들어 올 거란 알 수 없는 믿음에 보시를 정말 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큰 돈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 우리 형편에는 과한 금액이었다. 아내는 긴 기간을 거쳐 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처음 4박5일 기도를 하고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됐다. 연봉도 전 직장보다 두 배나 많아 한 번에 보시금을 다 메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큰 가피였는지 모른다. 아내는 그때가 부처님의 존재를 가장 가깝게 느낀 첫 경험이었다고 한다. 물론 난 그때까지 어떤 느낌도 생각도 없었다. 겨우 4박5일 동안 관세음보살만을 불렀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가피 받은 얘기를 했고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던 어머니가 백중에 절을 찾았다. 막내 동생이 사업실패로 소식을 끊고 잠적한 상태였다. 가정도 다 깨져 어머니가 조카들을 부양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던 암울한 시간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절에 어려운 발걸음을 한 어머니는 백중에 차려져 있는 제사상을 보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단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자식으로의 도리와 불제자로서의 죄송함이 한 번에 몰아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열심히 절에 다니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간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경기도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몇 달 후 많지는 않아도 생활비도 부쳐왔다. 그렇게 또 부처님은 불쌍한 중생을 구제해주셨다.
주지스님이 말씀하셨다. 부모에게 천원을 드리면 그 몇 배로 자식에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듯이 부처님이 그러 하시다고…
7년간 편안한 삶을 살았다. 그런 평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감사할 줄 몰랐다. 어느새 그저 나 잘나서 그렇게 된 거라 생각하며 더 풍족하지 못한 삶에 오히려 불만을 품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만족할 줄 몰랐었다. 돈만 벌면 싸우지 않고 행복하고 다정하게 살 줄 알았던 아내와도 갈등이 줄어들지 않았고 다툼이 잦았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어리석은가? 다시 부처님을 잊고 오만하게 살았다.
그러나 부처님은 나를 놓지 않고 다시 가르침을 주셨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사장과의 불화와 직장 동료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지, 사업을 할 지 고민하던 시점에 다시 아내가 나섰다. 동안거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하던 중 영험한 경험을 한 아내가 나에게 구인사 4박5일 기도를 권했다. 동안거 기간 중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는 꿈을 꾼 아내는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봐 열심히 기도했다고 한다. 며칠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나가서 그냥 개꿈인가 하고 무심코 넘어가려던 어느 날 이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해 중앙선을 넘어 앞에 있는 차를 치고 다시 아버지 차를 들이박은 것이다. 차는 말 그대로 박살이 나서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차가 그 지경이면 아버지의 상태는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에 가서 아버지의 상태를 본 후 저절로 관세음보살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 사고를 당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멀쩡하셨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가슴을 압박해 생긴 가슴통증 외에는 어떤 외상이나 내상이 없다고 했다.
아내가 기도한 그 운에 얹혀가려고 쉽게만 생각한 나는 때론 짜증을 내고 때론 얼버무리며 어떻게 해서든 안가고 넘기려다 결국 구인사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해 놓고도 차일피일 날짜를 미루고 있다 먼저 삼광사에 들러 이틀 동안 기도를 했다. 그 이틀 동안 정말 불심 깊은 도반을 만나게 됐는데, 도반과의 대화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속세의 원을 나무로 비유했다. 나무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거름을 주듯이, 기도나 보살행을 열심히 하고 보시를 해야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거름이 된다고 말씀했다.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기도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인사로 갔다. 종무실에 가서 접수를 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전에 4박5일 기도를 하러 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구인사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게 있지만 하루나 이틀 머물렀던 것 같았는데 4박5일이라니… 그러고 보면 그땐 어떡하면 빨리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기도시간에도 누울 곳만 찾아다녔다. 4박5일이란 시간이 단지 무의미하게 지나갈 뿐 괴롭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한 시간도 허리가 아파 제대로 앉아있기 힘들어 하던 내가 11시간 반을 기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첫 날 허리가 얼마나 아픈지 허리를 접었다 제쳤다 다리를 접었다 꼬았다 하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긴 세월 어떻게 가족을 부양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고 위기의식도 느꼈기에 이번 기도는 절실했다. 그렇게 기도를 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뭔가 서늘한 기운이 몸으로 들어왔다. 그게 뭘까 생각하기도 전에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었던 것은 더욱 더 열심히 관음정진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조금 지나지 않아 몸이 다시 따뜻해지고 어둡고 탁한 먹구름이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갑자기 이마가 개운해지면서 맑아졌다. 그때까지 아프던 허리가 말끔해지면서 기도하던 목소리마저 우렁차졌다. 삼일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기도를 했다. 첫날 그 신비한 경험을 한 이후로는 기도할 때 잠도 오지 않았다. 삼일째 되던 날 삼매라고 부르는 상태에 잠깐 빠졌을 때 어떤 보살님이 금은보화를 쥐어주셨다.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동안거 기간 동안 아내가 한 기도가 인연이 돼 씨앗을 심었고, 그 뒤 며칠 동안의 나의 기도로 씨앗의 싹을 틔웠던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마지막 날 구인사 일주문를 빠져 나오는 순간부터 계속 전화가 왔다. 여기 저기 거래처에서 같이 사업을 하자는 사람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의 전화였다. 집에 왔을 때는 목이 쉬어 목소리가 꽉 잠겨 있었다. 거의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감동했다. 그 순간 케케묵은 오래된 숙제를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꿈을 꾸면서 내가 가야되는 길에 확신을 가지게 됐고, 무엇보다 항상 부처님의 가피 안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멀리하고 잊고 사는 동안에도 부처님은 내가 돌아올 것도 미리 아셔서 어떠한 복을 주실지 준비하셨다. <법화경> ‘비유품’에서 큰 부자인 장자가 그의 아들들을 방편으로 불길과 환난에서 구제하시듯 나를 구제해주셨다.
나는 나의 오래된 동무였던 담배를 끊었고 화를 참으며 나름의 보살행을 하려고 노력했다. 화를 참는다는 그 한 가지 행만으로도 내 삶은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아내는 그 어떤 전우보다 끈끈한 인생의 반려자가 됐고, 지금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그러나 신심은 끊임없이 흔들려, 불신과 의심이 다투어 일어났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기도도 안 하고 착하게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억울한 마음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 집안의 중심이 돼 내 자손들이 관세음보살의 가피 안에서 광명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굳건히 하니, 더 이상의 번뇌는 없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련이 생기면 내 기도가 좀 게을러진 게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고, 보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아상이 높아진 것은 아닌지 점검하게 됐다. 지금은 다시 사업을 시작했고, 아직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 이미 내 소원은 이뤄졌다. 아니 소원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다만 세세생생 영원히 변치 않는 불제자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위해 끊임없이 관음정진 한다.
나를 부처님의 품으로 이끌어 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많은 이들의 귀감이 돼 아직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을 불법의 바다로 이끌고 싶다. 또 조상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이 글로 다짐해 본다. 무엇보다 나와 관계된 모든 인연에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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