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그래서 한자를 설명해 주셨던 선생님을 용케 기억할 수 있다. 바로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이천규 선생님이시다.
어느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이 한자의 어원에 관해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미 모[母]자의 점 두 개는 어머니의 젖을 형상화 하여 만든 것이고, 좋은 호[好]자는 여자가 아들을 좋아한다는 뜻에서 계집 녀[女]자 옆에다 이들 자[子]자를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진지하게 설명하셨다.
또 우리가 공부한다고 할 때의 공부는 장인 공[工]자에 지아비 부[夫]자 쓴다고 설명하시며 왜 그런 글자가 나왔냐는 설명에는 하늘 아래, 땅 위에 한 인간이 서있는데, 그 인간이 땅에 뿌리박고, 하늘로 줄기를 뻗어 올라가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열정적으로 강조하셨던 기억이 난다.
늘 가슴 속에 새기고 한시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던 말씀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이천규 선생님이 저런 강의를 지금 여성부에서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어미 모자를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어머니의 가슴을 그리고 젖꼭지를 표시한다면 아마도 여성부의 거의 모든 직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이 선생님은 성희롱으로 고발 내지는 고소될 지도 모른다.
또 좋을 호자를 설명하고 나면 왜 아버지는 아들을 좋아하지 않고 어머니만 아들을 좋아해야 하느냐고 성차별로 고발 내지는 고소를 당할 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여성의 가사 노동 내지는 여자만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를 거쳐 군복무 이수자 공무원시험 가산점 철폐, 여학생의 생리공결제, 생리대의 세금 폐지 등등…
얼마 전 여성민우회에서 우리 말 중 여성을 폄하하는 말들의 어원을 찾아 내 단어 바꾸기를 시도한다는 애기를 들었다. 얘기만 들었지 직접 그 내용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또 내가 여성 비하(卑下)적 생각을 가지게 될까봐 일부러 피한 것이었다.
우리집만 해도 어머니, 아내, 딸 둘, 그리고 나와 아들 하나. 총 여섯 식구 중 여자가 넷에 남자가 둘이다. 그나마 아들 녀석은 군복무 중이라 지금은 남자라곤 달랑 나 하나 있다.
그런데 내가 혼자 큰 소리 치고 있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을 비하하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그건 확실히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아니 태초(太初)부터 남성은 밖에서 활동을 하고 여성은 안에서 활동을 하는 분위기로 인생을 배우다보니 남성은 집에 들어 왔을 때 왠지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물 한 잔 달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아내를 비하하여서가 아니라 내가 물 한 잔 찾는 시간보다 아내가 물 한 잔 가져다주는 시간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아내는 나에게 물 한 잔 가져다주면서 남편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각자 생각에 따라 시비(是非)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우리 아내를 며느리로 생각하고 며느리라 부르고 계신다.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며느리라고 생각하고 며느리라고 부르실 것이다. 또 내 동생들은 우리 아내를 올케라고 생각하고 올케라고 부른다. 아마 죽을 때까지 올케라고 생각하고 올케라고 부를 것이다.
며느리의 어원이 어땠는지, 올케가 왜 올케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저 우리 이쁜 메느리, 그저 우리 믿음직한 올케가 돼줄 것만을 생각하고, 또 기대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모른다. 우리 아내가 어머니로부터 며느리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며느리의 어원을 떠올린다면 우리 아내가 어머니를 보는 눈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내 여동생들로부터 올케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아내가 느낄 지도 모르는 스트레스를 나는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어머니나 동생들로부터 받는 언어적 폭력에 대해 내가 참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머니나 여동생과 모두 같이 앉아서 며느리와 올케의 어원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그것이 얼마나 당사자에게 스트레스와 모욕감을 주는 단어인지를 잘 알도록 하여 앞으로는 그런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나?
그리고는?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빨리 찾아 주어여야 하나?
여성민우회에서 그 단어를 찾아내려면 상당한 논쟁과 토론을 거쳐야 할 것이고, 어차피 상당한 시일을 요할 것인데, 그 단어가 빨리 나와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우리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할 텐데… 어디 인간이 그렇게 되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살짝 물어봤다. 며느리와 올케의 어원에 대해 아느냐고…. 모른다는 대답이다. 아이고 살았구나 아직은…. 이제 인터넷만 가리면 되겠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어느 정도는 넘어 가겠구나….
제발 구정 때까지만 넘어가자.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제발 생각 좀 하면서 행동하자. 이 땅의 여성주의자들이여. |
첫댓글 동감입니다. 차라리 귀를 막고 살아 봐야 할지..우리의 따뜻한 마음까지 여성민우회에서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선생님의 소탈한 글에 공감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가장의 모습에 부러워하는 이웃의 아내입니다. 님의 배려에 아내는 늘 감동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역시 경제강의가 빠지지 않으시네요. 같은 문교부세대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것 같습니다. 소장님 사모님 항상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홍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