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손칼국수 그 맛
지난 7월 어느 날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던 사우들과 만났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 사우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지역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한 사우가 자신이 잘 다니는 이름난 보신탕 집으로 안내했다.
일행 네 명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잘 한다는 탕을 시켰다. 셋은 소주 한잔씩을 곁들였다. 한 잔씩 들고나자 한 사우가 말을 했다. "이렇게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점심을 드니 그 날 그 기분이 그대로 살아난다"고 했다. "우리가 그때는 낮일을 끝내면 거의 매일 찾아가던 칼국수 집에서 함께 점심을 들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 때 그 얼굴이 이렇게 한자리에 함께 하니 그 칼국수 집이 생각이 불쑥 난다는 것이었다.
찾아가던 칼국수 집은 대전 선화동 대덕군청(그 당시) 뒤에 있었다. 자그만 사거리 코너에 자리한 그 집은 아주 허름한 기와집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집은 목수 일을 하던 아저씨가 일을 하던 중 떨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아주머니가 시작한 칼국수 집이었다. 아주머니는 "배운 것은 없고 먹고는 살아야겠고...그래서 어머니에게 배운 칼국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칼국수는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는 우리 밀 손칼국수였다. 두 아들은 집에서 늘 어머니를 도왔다. 약간의 정신지체현상을 보이면서도 아버지를 도와 따라 다니던 큰아들은 잔일을 돕고 둘째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가루 반죽을 비롯해 음식 나르기와 식탁 치우는 일로 어머니를 주로 도왔다.
열 명쯤 들어 갈 수 있는 방과 둥근 식탁 네 개가 있는 자그만 홀(?)이 손님을 받는 자리였다. 홀은 주방과 터져 있어 때로는 열기도 대단한 곳이었다. 그래도 점심때만 되면 이 칼국수 집 앞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 기다렸다. 주변에 흔한 것이 칼국수 집인데도 그 집 앞만 그랬었다.
그 집에 손님이 많이 찾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손칼국수 맛이었다. 그 집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는 그 손칼국수 맛이다. 왕 멸치를 우려낸 구수한 국물, 콩가루 넣어 빚은 면발의 쫄깃한 맛. 요즘 같은 가을철이면 붉은 고추 썰어 넣어 잘 익고 아름답기도 한 열무김치가 더욱 인기를 끌었다. 아니 칼국수 맛을 더해 주었다. 얼큰한 고추 다대기 또한 별미! 무엇보다 더 한 것은 아주머니가 바로 내 어머니 같고 이웃 아주머니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며 항상 꾸밈없이 웃어주시던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집에서는 우리 조미료 이외는 오히려 손칼국수 맛을 떨어트린다며 인스턴트 조미료를 거의 쓰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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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계절 칼국수 맛을 한결 더해주는 가을철을 맞아 그리운 그 손칼국수 맛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없을까 하여 여러 집을 찾아 칼국수 순례를 즐기는 것도 좋다. (2003. 10. 8.)
첫댓글 "가을철이면 붉은 고추 썰어 넣어 잘 익고 아름답기도 한 열무김치가 ---" 라고, 천규야! 눈앞에 어리는게 그냥 나 환장 하겠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정복영이를 환장하게 하다니...중죄를 지었구나. 그런데 지난 갈매못 성지 순례 때 얼굴을 보지 못해서... 읽어준 네가 고맙구나. 환절기야. 우리 모두 감기 걸리지 말아야지? 오늘도 건강하길! 오늘도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