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田에는 삼대 하천이 흐른다.
금산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萬人山에서 발원하여 대전의 구시가지를 관통, 목척교 밑을 흐르면서 대전시가를 중구와 동구로 나뉘는 경계선 역활을 하는 大田川이 있으며
대둔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진산면과 안영동을 거쳐서 ,유등교와 수침교 밑을 흐르면서 대전시의 중구와 서구와의 경계선을 이루면서 흐르는 柳等川이 있다.
그리고 역시 대둔산 줄기 수락계곡에서 발원, 논산군 벌곡면을 지나고 흑석리에서는 양촌과 신도안에서 흘러나오는 두계천과 합류 ,구봉산을 감돌아 흐르다가 가수원을 거처서 유성의 만년교 밑을 지나고,신시가지 둔산지역의 변방을 흐르는 甲川이 있다.
이들 三大 하천은 EXPO'93 이열렸던 지역인 三川洞(옛이름 삼천이)에서 대전천과 유등천이 갑천에 합류된다. 두개의 하천을 아우른 갑천은 회덕을 거처서 신탄진 제4공단의 젖줄이 되어 흐르다가 강건너 구즉동의 佛舞山 자락에서는, 대청댐을 거처서 대전직활시와 충북 청원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에 합류된다.
나는 이들중 하나인 유등천변에서 1939 년 3 월에 태어나서, 이제껏 68 년이 되도록 유등천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大田이 아니고 한밭으로 불리던 그 옛날에는 유등천의 제방이 없고 현재 유등천에 가두어 흐르고 있는 물줄기는 그대로 서대전 일대의 벌판을 흘러 내리면서 늪지대를 이루고 모래톱에는 버드나무가 무성하여 버드내라고 불리워 젔다고 한다.
왜정때 유등천 제방이 축조되고 늪지대는 전답으로 개간이 되었다고 한다.들가운데를 흐르는 농수로인 개울 바닥에는 ,물론 지금은 도시속의 고층아파트 숲속으로 사라지고 없지만은 ,실제로 몇 아름들이가 되어보이는 버드나무 등컬들이 발견되곤 하였었다.
그리고 유등천에서 멀지 않은 둔산에 신시가지를 개발하면서 ,선사 유적지가 발견되어 지금도 선사유적으로 보존 관리하고 있는 것을 보거나 ,유등천 인근 도마동 야산지대에서 조개무덤이 발견 되기도 한것을 보면,
삼대하천이 합류되는 유역의 광활한 습지대가 아득한 선사시대에는 인간이 수렵과 천렵을 하면서 살아가기에 편리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간다.
아득한 옛날에는 어찌되었건 근세에 들어와서 제방이 축조되면서 버드내 들판을 어지러이 흐르던 물길은 柳等川 제방 안으로 가두어저 흐르게 되었고,새로이 생겨난 넓은 들판은 버드내들로 불리면서 곡창지대를 이루었었다.
내가 유년시절의 버드내들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 이었다.그리고 유등천에는 물막이 보를 만들어 유등천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유등천 물을 농수로로 끌어 들이기위한 보가 '상대보''머티보''용머리보'3 개가 있었다.
내가 자라나는 동안의 나의 활동무대는 5 km 가까이 길게 뻗어있는 잔디로 덮인 프른 제방과, 맑게 흐르는 유등천 시냇물과,여기에 걸처있는 3 개의 물막이보 라고 할수 있었다.
소를 몰고 나와서는 제방에서 플을 뜻기고,유등천 물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고기를 잡기도 하면서 나의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어린시절의 유등천에는 호남선 철교와, 논산방향으로 가서 호남지방으로 가는 국도에 놓인 유등교와, 서울로 가는 관문인 유성으로 가는 국도에 놓인 수침교,뿐이 었으나 지금은 크고 작은 교량 10 여개가 유등천을 가로 질러 걸처있다.
1960 년대에서 1990 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유등천변을 따라 공장이 들어서서 대전의 공업지대를 이루더니 도시의 발전에 밀려서 공장들은 전부 떠나버리고 지금은 공장이 떠난 자리에는 하나같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은모래 금모래로 반짝이던 하상은 정비되어 고수부지를 만드는 등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였으며, 여름엔 프르고 겨울에는 누런잔디 밭으로 길게 뻗어서 아름답게 펼처있던 제방은 사라지고, 아스팔트가 깔린 제방에는 자동차의 이동이 부산할 뿐이다.
서울의 한강변에 고층아파트와 한강 고수부지의 시민공원이 있으며 강변도로가 있듯이, 현재의 유등천은 마치도 한강의 미니어추어,모형을 가저다 놓은것과 똑 같다.
나는 오늘도 유등천 고수부지 산책로를 걸으면서 유소년시절 당시의 끝없이 펼처진 푸른 제방과,천렵과 수영을 하던 맑은 유등천 시냇물을 상상해 본다, 또 한편으로는 황금 물결치던 넓다란 버드내들판을 머리속에 그려 본다.
그러면서 유소년 시절 나의 추억을 앗아간 개발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첫댓글 모래톱에 무성한던 버드내의 발달 과정은 바로 대전 발전의 축소판. 버드나무 새싹 돋는 계절에 그 향수가 더욱....
강태용 ! 나의 감성의 굴곡을 여지 없이 간파하고 일갈을 가하는 태용, 태용이 있어 이제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구나. 하지만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태용이 이처럼 수채화 같은 글도 쓰다니 놀랍군...
천규 길수 고맙네,졸필에 칭찬까지.그리고 길수와는 교감이 잘되는 것 같으이,내가 올리는 댓글에 실타고 하지않고 전적으로 수용을 해주고 있으니 말일세.
태용고향 유등천!!! 어린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는 구만. 그땐 맑은 물결이 엄청 크게 보였는 데 지금은 아니겠지...참 좋은 글이네.
.대전의 3대 하천을 어떻게 그리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나도 탑정리 저수지를 발원으로 하는 하천가에서 자라 천렵하며 백사장에서 뛰어 놀던 추억들이 되살아 납니다. 그림보다도 아름답게 묘사한 필치에 감응이 새롭소.
자기 고향의 뿌리를 잊지 않고 소상하게 정리해 놓은 이 글은 향토애의 발로로서 후일에 사료로서도 훌륭한 글이 될것이라고 생각하네 눈을 감으니 버드나무와 물길이 어루러진 정겨운 시골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네 그 안에서 뛰노는 태용이도 보이고 .....
규화 유등천을 기억하는군,호영이 언제나 과찬을 하여주는군,정빈 논산천 출신이군 논산저수지, 한때 낙시도 자주갔었지, 전북 운주와 논산시 양촌의 물을 뫃아 탑정리에 가두어 두었다가 논산들을 적시며 흘러가다가는 논산천을 거처서 금강으로 흘러가드군.
친구여! 탑정 저수지만 알고 살았지 그 물이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지는 몰랐는데 친구 지식으로 오늘에서 알게 됐군 지리학을 전공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