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代의 漢藏茶馬貿易은 명나라 조정과 內地의 漢族에게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藏族地區의 藏族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명왕조는 漢.藏 간의 다마무역을 통해 군대와 관리 및 驛站에서 필요로 하는 馬匹의 일부분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광대한 漢·藏지구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상호 필요로 하는 물자들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교역 품목으로는 藏族들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茶葉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도 靑紙(청지).布帛(포백). 緞匹(단필) 및 소(牛) 등의 생활필수물자와 생산활동에 필요한 물자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은 빈번한 다마무역의 왕래는 중국이 대가족형태의 다민족국가로써 각 민족끼리 상호의존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漢藏茶馬貿易을 통해 중국내지와 邊疆 간의 정치.경제.문화적 관계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 관계를 끊임없이 더욱 강화시키고 공고히 하여 발전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명나라 조정은 대량의 차엽을 이용하여 藏區의 番馬를 사들였고, 심지어는 官銀으로 장구의 말을 사기도 하였는데, 그 중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역시 軍事的인 需要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明武宗實錄》에 의하면 正德 2년(1507년)에 陝西總制 兼 督理馬政都御史(섬서총제 겸 독리마정도어사) 楊一淸이 軍馬의 시급함에 대해 조정에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 때 武宗도 馬政의 중요성을 깊히 인식하고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다.
"軍政莫急於馬,陝西馬政自今俱令巡茶御史兼理之."
"軍政(군정)에는 말(馬)보다 더 급한게 없으니, 陝西(섬서)의 馬政(마정)은 지금부터 모든 令(령)을 순차어사가 겸하여 그것을 다스리라."
이 기록으로만 봐도 당시 명나라 조정의 軍馬의 需要에 대한 시급함이 어느정도였는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명대에는 크고 작은 戰亂이 끊이지 않았으며, 특히 陝西·延綏·甘肅 등의 三鎭에서 주로 전란이 빈번하였다. 게다가 남방에서 馬匹의 運輸가 곤란하여 시간과 물자의 낭비가 심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명나라 조정에서는 "馬政"을 명문으로 규정하여 호시에서 얻어지는 말은 모두 三邊으로 보내게 하고, 互市地點은 陝西地區에 많이 두도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明王朝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다.
명나라가 藏區와의 다마무역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것은 茶馬貿易을 통한 일종의 經濟政策으로써, 藏區에 대한 統制를 强化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는 政治的 統治의 보충적 對處方案에 불과한 것이었다.
명나라는 건국이후, 中國歷代王朝가 변방의 少數民族에 대해 행한 통치 경험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和親政策(화친정책)'은 長久之策(장구지책)이 될 수 없었고, 武力에 의한 征服 또한 일시적인 성공에 그칠 뿐이었다는 사실을 自覺하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인해, 소수민족을 통치하는 책략으로 정치상에 있어 의례히 강제적으로 시행되는 행정제도 이외에, 좀 더 순리적으로 對應하여 소수민족지구의 실제상황과 그들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長久的(장구적)인 羈 政策(기미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明名臣奏議》에 보면 명나라 조정은 당시 명나라가 藏區 각 부족과 진행한 漢藏茶馬貿易을 羈 政策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그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國家令蕃夷納馬, 酬之以茶,……非中國(內地)果無良馬,而欲市之蕃夷也.亦以蕃夷中 國藩籬,故以是羈 之耳.
"나라에서 蕃夷(번이)에 말을 바치게 명령을 내리고, 차로써 그 代價(대가)로 주었다. …… 중국 內地에 참으로 良馬(양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蕃夷(번이)의 말을 사고져 한다. 또한 蕃夷(번이)는 중국의 범주에 속한 까닭이니, 고로 이로써 그들을 羈 (기미)할 따름이다."
이것은 명나라가 藏族과 기타 서북의 소수민족들이 "肉類(육류)와 乳酪(유락:우유와 치즈)을 常食함으로 茶를 마시지 않으면 곧 병이 생겨 곤란하다."는 특이한 생활습관을 약점으로 최대한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정치상으로는 土司制度를 강화하고, 사상적으로는 원나라의 舊制를 계승하여 서장불교를 그대로 숭상케했다. 또 한편, 경제상에 있어 茶馬互市制度를 건립함으로써, 광대한 藏區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였다.《明名臣奏議》에는 명나라 조정이 茶馬互市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보인다.
"互市者,和親別名也,然賢於和親,賢於數十萬甲師矣."
"互市(호시)란 것은 和親(화친)의 별명이다. 그러나 和親(화친)보다 낫고, 수십만 군사보다 도 낫다."
여기에 바로 명나라 조정이 변강의 藏區와 茶馬貿易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던 진정한 목적이 숨어있는 것이다.
(도표와 각주가 보이지 않으므로, 원하시는 분들은 자료실에 첨부파일로 올린 <명대 한장다마무역의 발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