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흔적을 남기는 축제라, 그러탐 축제란 참 대단한 것이군.
대동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겠군)
일과성 축제는 이제 그만
고 미 숙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이런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5월은 가슴벅찬 열정의 계절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5월이 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달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기념일들 때문이다.
기념일들은 일단 두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어린이날·어버이날·석가 탄신일·스승의 날 등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5월 1일 노동절을 위시하여 5·18 광주항쟁기념일로 이어진다.
여기에 덧붙여 많은 대학의 대동제도 주로 5월에 열린다. 또 나 같은 학자들에게 5월은 학술대회의 시즌이다. 온갖 학회들이 전국 곳곳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가족들 챙기랴, 역사적 기념행사에 참가하랴, 학술대회 준비하랴 문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날마다 축제의 연속인데 가슴이 답답하다구? 이 어처구니 없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답은 아주 간단하다. 5월의 행사들은 시쳇말로 ‘무늬만 축제’이기 때문이다. 축제란 무엇인가. 일상의 반복적 리듬으로부터 탈주하여 뜨겁고 이질적인 시간대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혀 낯설고 새로운 사건들이 분출하는 지대로.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축제와 일상은 이분법적으로 단절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일상과 축제, 축제와 일상이 서로 뒤섞여 ‘열나게’ 접속해야 한다. 축제를 한번 치를 때마다 일상의 리듬에 돌이킬 수 없는 강렬한 흔적이 새겨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축일들은 일상의 단순한 연장이고, 그래서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일과성 행사가 되어 버렸다. 근대적 일상을 견고하게 하는 미시권력적 장치로 의심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이날·어버이날 행사가 소리높여 외치는 건 ‘건전한 가정’이라는 슬로건이다. 가족주의라는 낡은 가치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예기치 않은 열정을 솟구치게 할 것이며, 그것이 또 어떻게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스승의 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에 학교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 의무사항이다. 그런데 왜 스승을 섬기는 날이 별도로 필요한가. 그 이면에는 이미 사제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스승의 날’이란 1년 중에 단 하루만이라도 스승을 존경하라는, 일종의 제도적 명령인 셈이다. 그러니 스승의 날을 치를 때마다 사제지간이 한층 더 썰렁해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80년대에는 당연히 이런 유의 기념일에 대해 무감했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가 주류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이 오면 역사의 장이 새롭게 펼쳐지리라는 예감이 사람들을 사로잡곤 했다. 그러나 이제 5·18 역시 4·19나 3·1절처럼 시간의 두터운 벽에 갇힌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족주의를 ‘선동하는’ 기념일들의 기세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5월의 축일들이 얼마나 경직된 틀에 갇혀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즉 가족적 사랑이나 역사적 기억과는 전혀 무관하게 별도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일들이 진정한 축제가 되려면, 열정이 흘러넘쳐 기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어야 한다. 그러한 ‘가로지르기’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단지 의례적 형식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가치의 품으로 귀환하고마는 ‘홈 파인 공간!’
인텔리들이 치르는 학술 심포지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지식을 생산한다는 기쁨도, 세상을 향해 발언한다는 열정도 없다. 심포지엄(Symposium), 곧 향연이라는 뜻이 무색할 지경이다. 발표자들은 오직 숙제검사를 당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마지못해 발표하고, 토론자들 역시 형식에 불과한 질문들을 날린다. 대부분은 대회장 바깥에서 인맥관리와 정보교환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니 심포지엄을 백날 치른다 한들 대학 혹은 인텔리 문화가 바뀔 턱이 있겠는가. 이런 사태는 이념에 상관없이 모든 학계의 공통적 패턴이다. 그래서 더 암담하다.
오는 6월에는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아마 모두들 지난해의 그 열기를 되살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월드컵 이후 우리의 일상이 과연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점검해보는 일이 꼭 필요할 것이다. 일상을 바꾸지 못하는 축제란 결국 지나가는 바람이거나 물거품 같은 것일 뿐이므로.
숱한 ‘배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축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여전히 일상의 지루한 반복에서 벗어나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싶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참에 문제의 배치를 이렇게 바꾸어보는 건 어떨까. 축일을 만들어놓고 그걸 목빼고 기다리기보다 ‘일상이 축제가 되고, 축제가 일상이 되는’ 변화무쌍한 흐름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언제, 어디서건 자신이 선 자리를 곧바로 축제의 장으로 변환하는 전복적 상상력 또한 그 길 위에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