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경, 出稿(출고)를 대강 마무리 짓자 일순 마음이 바빠졌다. 그리고 이내 착잡해졌다. 오후부터 사실상 여름휴가에 들어가는 설레임도 있었지만, 대구대 총장이 주관하는 골프 회동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경주 보문CC에서 오후 티업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새끼발가락 수술(?)을 받으러 가야하는 내 꼴이라니... 퉁퉁 부어오른 오른쪽 새끼 발가락 통증 때문에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택시를 타고 시내의 S성형외과로 향했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腦裏(뇌리)를 스쳐갔다.
'나도 참 별난 사람이지.... 10년만의 폭염이라는 올 여름 이 三伏 炎天(삼복 염천)에 무슨 영화를 누리자고 발가락이 물러터지도록 맹연습을 했단 말인가....'. 그것도 돈 안드는 대학 연습장에서 무슨 본전을 뽑을 일이 있다고.... 아무리 골프가 내 恨이자 慰安이기도 하지만. 이 몸으로 기어이 필드에 나갈 작정을 하고 있는 것도 가관이다.
어젯밤 발가락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악몽을 떠올리면서 절룩거리는 다리를 애써 감추며 동성로 대구백화점 옆에 위치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간호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겼다. 친구(이무상 원장)의 언질을 미리 받았나 보다.
나는 간호사들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이 수술실 침대에 드러누웠다. '발가락 환부에 칼을 대고 찌를 때와 고름을 짜낼 때의 통증만 잠시 참으면 되겠지...'. 그런데 아픈 새끼발가락 부위를 소독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간호사가 왼쪽 팔 정맥에 링거 주사기까지 꽂자 슬며시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곧이어 나타난 친구(의사 선생님)가 "어허 이거 발가락이 장난이 아니네. 발등까지 부어올랐고, 당뇨라도 조금 있는 사람 같으면 잘라내야 겠는걸...."하면서 중얼거리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나는 것이었다.
다리를 좀 절기는 했지만, 아침 일찍 멀쩡하게 출근했던 사람이 창졸간에 중환자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하긴 포도당까지 맞아가며 병실에 이렇게 큰 대(大)자로 퍼져 누워 있기는 내 평생 처음이 아닌가.
항생제가 투여되면서 정신이 다소 흐려지자 정말 중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 팔자 참 시간 문제로다. 대문 앞이 저승이라더니, '오늘 골프 스코어는 기필코 80대로 다시 끌어내릴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출근했던 자칭 '조프로'가 이 무슨 파김치 꼴인가.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어이 잠이 좀 올끼다"라는 친구의 말이 허공을 맴도는가 싶더니 몽롱한 졸음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뇌신경 구석구석에 짙은 안개가 엄습해 오는 듯 했다. 링거 주사기를 통해 수면제가 투여되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희미한 전류처럼 말초신경에 와닿았다.
환부가 예민한 부위인 만큼 통증을 덜어주기 위한 친구의 특별 배려였지만, 나는 그때 生死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발가락쪽에서 친구가 열심히 치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나는 청맹과니나 다름 없었다.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혼수상태에 빠진채 사지를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으니, 시쳇말로 내 몸은 이미 내몸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을 때 이렇게 가는구나... 인생이란 참으로 허망하구나..." 실눈 속 흐린 초점을 통해 잡힌 희뿌연 병원 천장이 저승길 안개처럼 뭉게뭉게 피었다 스러지곤 했다. 빨리 도는 자전거 바퀴처럼 역회전하는 듯한 환풍기가 정신을 더욱 혼미하게 만들었다.
'전설의 고향'에서 본 검은 갓과 도포차림의 저승사자가 나타나 손짓이라도 한다면 항변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따라나서야 할 형편이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손가락 끝이 내 의지대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서야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타난 간호사의 부축으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좀 어지러울 겁니다. 회복실로 가서 좀 쉬셔야 합니다". 간호사에 말에 失笑(실소)가 절로 나왔다. 고작 발가락 곪은 부위를 치료하러 온 '나이롱 환자'가 회복실이라니... 내가 무슨 옥동자를 분만한 여인네라도 된단 말인가.
잠시동안 짜릿한 사경(?)을 헤매기는 했지만, 멀쩡한 사람이 병실(회복실) 한 칸을 턱 차지하고 누워 있노라니 부질없는 상념들이 泡沫(포말)처럼 부침을 거듭했다. 나는 건강한 내 신체에 감사하는 마음이 불현 듯 떠올랐다.
천하의 金剛夜叉(금강야차)라 한들 제 몸을 제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그 서러움을 어디다 비견하랴. 그러고 보니 보호자도 한사람 없이 병실에 홀로 누워 있다는 호사스런 외로움이 가슴 한구석에 피어올랐다.
아내의 얼굴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떠오르는 순간,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와 신문사에서 친구가 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간호사는 내 적적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음악이라도 들으세요"라며 비발디의 '사계'를 틀어놓고 나갔다.
'사계' 중 봄의 경쾌한 선율에 몸의 생기가 되살아나는 동안, 함께 공을 치러갈 친구(임광규)가 병실 문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섰다. "어허 이거 중환자가 따로 없구만....". 친구의 너털웃음 소리에 그제서야 본정신이 돌아왔다.
1시간 남짓한 생사고락의 미로를 벗어나자 곧바로 골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닥쳤다. 발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은 이 몸으로 신발이나 신을 수 있을까. 스윙이나 제대로 될까. 5시간 동안 18홀을 걸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구대 총장이 처음 마련한 골프모임에 빠질 수도 없고....
나는 스코어를 잘내기는 커녕, 18홀을 완주하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라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다. 병원 인근 분식집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친구 차에 아픈 발가락을 싣고 경주로 향했다.
오후 3시 티업이 시작됐다. 오른발을 절룩거리며 1번 홀에 들어선 나는 드라이버를 잡고 스윙을 시도했다. 無我境(무아경).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휘둘렀다. '쨩'하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헤드업이 아닙니다) 하얀 공이 페어웨이 한중간을 멋지게 날아가고 있었다.
虛心一打(허심일타)라더니, 나는 그날 근래의 부진하던 스코어를 완전히 타파했다. 드라이버 오비가 잦던 한 동반자가 "나도 발가락이나 한번 고장내 볼까"라고 농을 건낼 정도였다. 오전에는 '그놈의 발가락 때문에'가 오후에는 '이놈의 발가락 덕분에'로 바뀌었다. 골프는 또 이렇게 사람을 울리고 웃겼다. 인생사가 그렇듯이..... 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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