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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는 결합, 혼인, 영원 등을 상징한다. 반지를 낀다는 자체가 결합을 상징하는 거시다. 고리가 하나로 된 것을 반지라 하고 쌍으로 된 것을 가락지라 한다. 가락지는 결합의 의미를 더욱 잘 나타내주는 형태이다. 따라서 기혼 남녀만이 가락지를 낀다.
결합을 영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순환하는 고리로 만드는 것이다. 반지를 환環이라 하는 바, 환은 순환지물循環之物이다. 돌고 돌아 끝이 없는 물건이다. 따라서 설령 님과 이별할지라도 언젠가는 돌아오라는 소망이 혼례 시 반지에 담겨 있으며, 일반적으로 쓰이는 정표로서의 반지는 물론 아이에게 주는 반지까지에도 이런 영원한 인간적 결속과 결합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한서漢書 <이릉전李陵傳>에 다음과 같은 고사故事가 나온다.
소제昭帝가 즉위함에 대장군 곽광藿光과 좌장군 상관걸上官桀이 정사를 보필했다. 본디 이릉李陵과 친하여, 이릉의 친구인 농서농?西의 임입정任立政 등 세 사람을 이릉이 가 있는 흉노로 보내니, 모두 흉노에 이러러 이릉을 요구했다.
임입정 등이 도착하니 선우[單于]가 술자리를 한漢나라 사신들에게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 이릉, 위율 등이 함께 앉아 있었다. 임정 등이 이릉을 보고 개인적으로 말할 수가 없어서 눈으로 이릉을 보고 자주 몸소 칼 끝에 달린 고리 모양의 옥을 돌리고 발을 잡아 보임으로써 남이 모르게 비유하여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말하였다. 한다.
여기서 도환[刀環, 칼 끝에 달린 고리 모양의 옥]이란 고사가 나오게 되었다. 고리 모양의 옥[環]을 돌리거나 만지거나 보여주면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환環이 둥글기도 하지만 환環과 환還이 음이 같기 때문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차용해 쓰는 것이다. 한편 결[환과 같이 고리 모양이기는 하나 한 쪽이 트인, 허리에 차는 옥]을 보여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는 한 쪽이 트여 떨어진 탓도 있지만, 결과 헤어질 결(訣)과 음이 같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뜻으로 차용해 쓰는 것이다.
또한 결은 이와는 다른 의미로도 쓰이는데, 사마천의 <<사기>>에 "범증范增이 자꾸 손으로 결을 돌려 항우에게 보였다"라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결의 의미로 결행決行하라는 뜻으로 쓰였다. 항우의 모사謀士인 범증은 유방劉邦의 인물됨이 큰 줄을 알고 진秦에 이긴 잔치를 베푸는 홍문연鴻門宴에서 그를 처치하여 앞으로의 화근을 덜고자 하였다. 항우와 계획을 세웠으나 연회 도중 항우가 실행할 기미가 없자 범증이 신분을 나타내는 결을 손으로 자꾸 만져 보이면서 재촉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승전의 기쁨으로 인한 자만심 때문에 유방 정도의 하찮은 장수를 죽여 흥을 깰 생각이 없었으므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조 중기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에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보인다.
노인魯認과 유여굉柳汝宏은 모두 호남의 선비였는데, 임진왜란 때 둘 다 왜놈에게 사로 잡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였다. 그때 동행한 우리나라 사람 7명은 고향과 나라를 떠나 이역의 포로가 되었으므로 모두 비통스럽고 슬퍼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라 돌을 지고 바다에 몸을 던질까도 생각하였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밤
중에 배 안에서 서로 베개하고 잠을 자다 여굉이 꿈 속에서 한 가락지[환環]을 얻었다. 일곱 사람이 서로 다투어, 가락지는 고국으로 돌아갈 징조라고 각각 자기식 해석을 하였으나, 이들은 고서의 순환과 사환[賜環, 옛날에는 방축放逐된 신하의 죄를 사면하여 불러 돌아오게 할 때 가락지를 내렸음]에 방환放還의 뜻이 있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늘 돌아갈 생각을 잊지 않고 있어 항상 7인이 서로 따르며 친하게 지냈고 고국에 돌아갈 것을 몰래 도모하였다.
결국 유여굉의 꿈처럼 모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반지는 결[고리 모양인데 한 쪽이 트인, 허리에 차는 옥]과 달리 터진 곳이 없이 동그란 물건이기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거나 돌아온다는 상징성이 들어 있는 물건이다. 또한 반지는 재료면에서 볼 때도 불변의 것이다. 그러나 불변의 것이라 하더라도 경우 없이 모두 쓰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진주는 조개에서 나온 유기물이 죽은 것이라 하여 결혼 반지로는 피하는 경향이 있다.
혼수에 구슬 목걸이나 구슬로 된 팔찌가 있다. 여기서 구슬은 장식용이기도 하지만 벽사의 상징이다. 고분에서 발굴된 귀고리, 목걸이 등에 사용된 구슬은 액막이로 쓰인 것이 많다. 한편 구슬은 보물로 금지옥엽金枝玉葉이란 말과 같이 귀한 자손을 낳으라는 뜻으로 구슬 목걸이를 혼수로 해주기도 한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구슬과 자식을 모두 보물로 보지만 모파상의 진주목걸이에서는 자식을 진짜 보물로 보고 있다.
구슬 자체를 귀한 자손이나 아들의 상징으로 보는 견해(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73쪽.)가 있으나 이는 잘못이라 생각된다. 금지옥엽은 '금옥金玉같은 지엽枝葉'으로 지엽枝葉이 자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 낳는 기쁨을 농장지경弄璋之慶이라 하는데 여기서 장璋은 구슬로서 아들을 상징한다(같은 책, 같은 곳.)고 하나 이 또한 잘못이라 생각된다. 아들을 낳으면 장난감으로 장璋을 주었는데 이 장은 구슬이 아니라 옥玉으로 만든 홀[끝의 반을 깎아 뾰족하게 한 홀], 즉 규圭이다.
조개는 한 알의 진주를 위해 수 년을 고통 속에 몸부림친다. 살 속에 파고 들어온 돌덩이로 하여 살이 찢기고, 깍이는 아픔을 감내하다 보면 그 돌은 어느새 눈부신 보석으로 다듬어 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한 자식을 성장시키기 위해 부모는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보살피며 수 십 년을 헌신한다. 오죽했으면 '팔순 부모가 오심 아들 걱정한다'고 했을까. ============
우리 말의 '반지(斑指 혹은 半指)'는 본래 두 짝으로 이루진 가락지(쌍가락지)의 한쪽 '반半' 을 의미한다. 부녀자들은 주로 가락지를, 처녀들은 주로 반지를 끼었다고 전한다. 가락지는 양반 집에서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 친정어머니로부터 딸에게 가보로 전해졌고 부를 자랑하는 패물로 간직되었다.
(출처 : 네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