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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운길산 산행
6시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 서초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 에봉산-운길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인데 이렇게 비가 오면 산행이 어려울 것 같았다. 7시 조금 넘어 연락받은 전화로 전화를 거니 오늘 에정대로 산행을 한다고 했다.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 집결지인 서초 구민회관으로 향했다. 출발시각인 8시가 되어 가자 마음이 급해 논현 전철역에 내려 택시로 갈아타고 가지 8시 10분 조금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약속장소에는 김의중 화장과 이승훈, 김건구, 조병섭, 남상길, 황선욱 건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이 많지 않아서 나만 늦은 것 같아서 더 미안했다.
기다리던 일행과 함께 한차로 출발했다. 먼저 하산할 지점을 찾아 차를 세워 둔후 산행을 시작한 수종사로 다시 버스를 타고 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산 지점을 찾다 지나쳐 덕소 가까이 동막골 정류장에서 유턴해 다시 아까 지나쳤던 하산 지점에 당도했다. 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마침 그 옆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예봉정 주인이 다가와서 나중에 이리 내려와 식사할거면 출발장소로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
수종사 입구로 올라가는 길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운치가 없었다. 좁은 길에서 오가는 차가 비키다, 포장 밖으로 내려선 바퀴가 무른 흙에 헛바퀴 돌며 심하게 패여나가기를 반복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9시 20분 차 두 대가 서 있는 곳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5분 후 수종사 일주문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고 경내로 들어섰다. 입구에 세워 놓은 안내표지판에 산행 안내 지도가 걸려 있었다. 거기에 오늘 우리가 갈 코스가 빨간 선으로 굵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 경로에 놓인 주요 산은 운길산 (610. 2M) 적갑산 (560.9M) 예봉산 (683.2M) 이다. 전체적인 산행 코스는 말발굽 모양이었다. 전체적으로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쳐진 후 서울 쪽으로 꺽여 돌아가는 모서리 지점에 위차한 산들이다. 그래서 산행 코스를 따라가면서 호쾌한 강줄기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잇을 것 같았다.
수종사까지 올라올 때 보았던 길의 느낌과 달리 그 곳부터는 산사 길을 걸으며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일주문 바로 앞쪽에 큰 불상이 서 있는데 깨끗한 재질로 보아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우측으로 접어드니 산비탈 한쪽에 석축을 쌓아 다듬은 길이 우측으로 뻗쳐 나 있다. 거기서 우편으로 북한강 풍치를 보며 걸을 수 있었다. 그 길 막다른 곳에 거친 돌을 가지런히 놓아 만든 계단을 통해 경내로 올라가게 되어 잇다. 그 끝 지점에서 좌측으로 꺽여 들어가면서 경내 마당이 트여 보이는데, 그 지점에 서 있는 큰 나무 둥치에 묵언(黙言)이라는 글자를 써 놓았다. 이곳을 지나가다 잠시 들르거나 전망을 즐기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붙여놓은 것 같았다.
9시 30분 경내 마당에 도착했다. 수종사의 명성은 익히 들은바 있지만 나는 처음 방문이었다. 수종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다 이 근처에 묵을 때 은은하 종소리가 나서 소리를 따라 와보니 동굴 천정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져 나는 소리여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안에 16나한이 있어서 나한전과 함께 중창불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절의 창건은 그 선대인 세종 때 일로 전해진다.
나는 수종사 경내로 들어서면서 그 곳의 어떤 점이 특별한지 확인하느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당 어귀에 조감도가 있어서 그것을 보며 절의 배치를 살펴보았다. 조감도에는 응진전, 산신각, 약사전, 삼정헌이 그려 있는데, 실제로는 대웅보전, 경학원 등의 건물이 더 보였다. 삼정헌 뒤 빈 마당 끝에 낮은 담장이 둘러쳐 있는데 그 앞에 서니 책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풍광이 펼쳐 보였다.
앞쪽에 보이는 북한강 물줄기와 그 뒤로 보이는 남한강 물줄기가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가는 풍경이다. 거기서 보이는 그 시원스런 풍경은 하루종일 보아도 지루하지 않을 듯 했다. 잠시 후 그 곳을 벗어나 요사체(선불장) 우편의 팔각오층석탑과 부도를 보았다. 부도는 태종의 다섯 번째 딸 정의옹주부도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우측에 있는 대웅보전과 그 앞에는 범종루도 살펴보았다. 대웅보전과 범종루 사이는 통과하는 길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건물들은 그 길 방향으로 강을 바라보며 연이어져 있다. 대웅보전 옆에는 수행 공간인 경학원이 놓여 있다.
그런데 경내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좋은 앵글을 찾으려 해도 별로 신통한 장면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 절이 유명한 것은 건물 모습보다 그 터에서 바라보이는 풍광의 특별함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수종사는 북한강 남한강이 만나는 큰 강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겸재 정선이 그린 경교 명승첩에는 이곳 주변을 그린 풍경도 있다. 낙산사가 바다에 면하여 가장 풍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강의 풍경이 가장 좋은 곳은 이 곳 수종사일 것 같았다. 그 시원하고 호쾌하고 기품 있는 풍치를 보는 것이 이 절에서의 수행처로서 갖는 힘이기도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보이는 북한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웅대한 강줄기이다. 강을 제대로 느끼려면 산과 어우러진 모습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큰 산이 있으면 강도 깊고 유장하다. 그 물이 산에 머금어 생겨났으니 그 근원이 서로 통한다. 그런데 여기선 본래 크고 유장한 강이 멀리서 다가온 또 하나의 유장한 강줄기와 만나 하나가 된다. 그 호쾌한 두 강물이 만나는 곳은 주변 산세도 그냥 밋밋할 리 없다. 여기서는 운길산 예봉산 검단산 등 주변의 큰 산이 함께 한 풍광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그렇게 큰 산 사이를 회돌이 치듯 돌아나가는 사이 두 강이 합해진 격한 기운이 추스려지게 될 것 같다. 오늘 우리가 찾은 산들은 큰 강줄기의 기운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할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이동해 응진전을 보고 내려올 때, 막 경내로 들어온 다른 일행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해서 그 풍광을 배경으로 찍어 주었다. 그 때 우리 일행이 저 아래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왔다며 삼정헌에 들러 차를 마사고 있을테니 보고 오라고 했다. 내려가 표지판을 보니 그 은행나무는 수령 525년, 수고 39M, 둘레7m 나 되는 큰 나무였는데 전하는 말로는 세조가 심었다고 한다. 거기서 다시 올라와 삼정헌에 들르니 일행이 전통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느 지면에선가 직접 재배한 이 곳 녹차의 맛이 일품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다기도 정갈하고 차 맛도 좋았다. 사찰에서 운영하는데, 찻값은 따로 받지 않고, 마음이 있으면 불전함에 시주를 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 건물 내부에서도 예의 양수리 풍광이 바라보였다.
삼정헌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1999년에 지은 것이다. 그 건물은 사람들이 그 풍광을 내부에서 차를 마시며 음미할 수 있게 지어 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이 수종사를 들를 때 빈 마당에서 강쪽 풍경을 바라볼 수 있던 원래 공간이 변하게 되었을 듯 했다. 그리고 수종사 터가 갖고 잇던 본래의 호쾌한 시선을 가리는 꼴이 됨 점이 아쉽게 생각되었다.
10시20분 수종사 뒤편 급경사진 길을 오르며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우리가 오르는 곳은 저 아래 강변길에서 볼 때 병풍처럼 서 있는 곳이다. 돌게단 길을 한동안 걷다보니 얼굴에 땀이 흘러 내렸다. 이 높고 가파른 산세로 인해 수종사에서의 전망 좋은 시선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경사진 길을 다 올라 잠시 휴식을 취했다. 쉬면서 주변의 숲을 보니 참나무 등 키 큰 나무에 달린 나무닢과 키 작은 단풍나무에 달린 숲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휴식을 마치고 왼편 경사지를 오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경사가 완만했다. 얼마쯤 가다 돌아보니 산봉우리 너머로 북한강너머 산들이 겹겹이 펼쳐보였다.
10시55분 운길산이라고 글씨가 새겨진 곳에 도착했다. 거기서 기념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어쩐지 정상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진을 찍고 가자고 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표지석이 서 있는 진짜 운길산 정상이 나왔다. 시간을 보니 11시였다. 거기서는 서울 쪽으로 산이 겹겹이 겹쳐 보이는 가운데 구리에서 청평가는 국도가 줄을 늘어뜨려 논듯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구름 위로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였다. 주변 표지판에는, 이 산 이름이 구름이 가다 산에 걸려 멈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그 앞을 흐르는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37Km 정도를 흘러온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10분쯤 머물다 그 곳을 출발했다. 길가에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당단풍, 생각나무 등 나무 이름을 써 붙여 놓았다. 조금가니 쪽동백의 이름도 써 있었는데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우라지에 있는 시비에 올동박이라는 명칭을 보며 살갑게 느낀 일이 떠올랐다. 숲길을 지날때는 느낄 수 없었는데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부슬비가 얼굴에 닿았다. 그저께 일기 예보에서는 오늘 비가 많이 올거라고 했었는데 산행하기 좋은 날씨기 되어 있었다. 11시26분 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진 듯 보이는 소나무가 절벽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건구 건축사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그곳을 지나는 길은 아까와 달리 완만한 산길이어서 걷기 편했다. 그렇게 편안한 생태에서는 주변에 잇는 나무나 꽃 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내가 산에서 만나는 꽃들 가운데 싸리꽃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정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릴적 산에 나무를 하러가서 많이 본 것이다. 싸리나무는 싸리비 감으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그 꽃은 뽐낼 마음이라곤 조금도 없이 소박해 보이는 것이 한편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 길을 조금 더 가니 길 옆에 고사목이 흰 줄기를 드러낸채 박제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 더 가니 소나무 몇 그루가 서로 춤을 추듯 가지를 펼치고 서 있었다.
11시 46분 다시 작은 산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조금 후 수종사에서 만났던 일행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새 얼굴을 알게 되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이 출발한 다음 우리 일행도 후미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다 다 모이자 막걸리 1통과 묵을 함께 나눠 먹었다. 땀을 흘리며 꽤 걸은 후여서 더욱 맛이 좋았다. 10분쯤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누우려는 듯이 비스듬이 기운 소나무를 지게를 받치는 작대기처럼 끝이 갈라진 나무로 받쳐 놓았다. 나무 아래쪽 토양이 깊지 못하고 바위에 받치면 큰 몸집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어 그런 것 같았다. 다시 앞을 행해 나가는 길가에 톱으로 자르다 만 떡갈나무가 보였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서 죽지는 앓을 것 같지만, 그 나무가 애처로운 보였다.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산봉우리를 오르다보니 왼쪽 숲 너머로 얼핏 강줄기가 보였다.
내리막 산길을 내려와 12시14분 세제고개 오거리에 당도했다. 거기서 멈춰 안내판을 보며 잠시 지리를 살피었다. 오늘 본 안내판의 그림은 모두 같은 것이었다. 그림 하나를 복사해서 여기저기 쓴 것 같았다. 거기서 예봉산 쪽으로 계단길이 놓여 있었다. 계단을 막 오르려는데 어린 학생이 옷나무에 손을 대었다. 어렸을 때 옷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옷을 잘 타는 사람이 그렇고 옷을 타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경사가 급한 산길을 올라 다시 산봉우리를 넘어 갔다. 오늘 산행 시간은 6시간으로 예정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의 산행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인데 오늘은 예봉산을 행해 가는 거리가 더 멀게 느껴졌다.
12시 40분 예봉산까지 3.7Km로 적힌 팻말이 서 있는 삼거리 공터에 당도했다.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각자 배낭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음식을 꺼냈다. 밥과 열무김치 참기름, 게란 후라이를 넣고 비빔밥을 만들었다. 김건구 건축사가 비닐 장감을 끼고 비빈 손으로 반찬 통 등에 한웅큼씩 떠 주었다. 적지 않은 양이어서 그 한번 받은 것으로 충분할 정도였다. 일행은 여러 사람이 이것저것 준비한 반찬과 함께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반찬으로 열무김치, 멸치, 고추, 오이, 양파가 있었다. 아까 지나쳐 온 세제고개에서 점심을 먹으려다 이곳까지 더 왔기 때문에 시장해져서 그런지 더 맛이 좋았다. 밥을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밥을 먹고 통닭과 토마토, 수박, 커피 디저트까지 풀코스의 성찬을 먹고나니 움직이기 힘들만큼 배가 불렀다.
1시 47분 자리를 정리하고 예봉산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1시 59분 덕소, 구리, 와부읍 등 서울 인근과 불암산 너머까지 펼쳐보이는 지점에 당도했다. 뒤로는 운길산이 그 이름처럼 봉우리가 흰 구름에 가싸인 모습으로 보였다 다시 산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름 없는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려가는 사이 멀리 강줄기가 보일 때마다 새로운 멋진 풍광과 만날 것을 기대하며 바라보게 되었다. 2시 23분 철쭉 군락지를 지났다. 그 앞 표지에 철쭉은 수고가 2-5M로서 연분홍색 꽃을 피우며 척촉(머뭇거리다)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써 있었다.
2시27분 앞쪽에 천막을 치고 장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도해 보니 깜짝 놀랄만한 풍경이 그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북한강이 좌우로 크게 회돌아가는 가고 그 주변으로 너른 터전이 펼쳐 있었다. 앞쪽으로부터 좌우로 덕소, 하남, 구리, 미사리가 보이고 멀리는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이 모두 한눈에 펼쳐 보였다. 그 곳은 오팔이봉(582M)이었다. 그곳에 머물며 천천히 음미하고 2시41분 다시 예봉산을 향해 출발했다. 얼마가지 않아 곧 철문봉(630M)이 나타났다. 그곳에 세워 놓은 입간판에 장약용, 약전, 약종형제가 여유당(양주군 조안면 능내리)에서 이곳을 찾아 학문의 도를 밝혔다고 써 있었다.
3시5분 마침내 예봉산에 도착했다. 좌측으로는 양수리가 운무속에 보이고 우측으로는 아까 오팔이봉에서 보았던 모습의 풍경이 다른 느낌으로 보였다. 오늘은 그야말로 큰 산수가 어우러진 풍광을 가슴 후련히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 비슷한 풍경을 보아서인지 막상 오늘의 가장 높은 산에 와서는 그 감흥이 크지 않았다. 일행은 주변 풍광을 돌아보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제 종착지까지 갈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잠시 후 하산을 시작해 올 때 차를 세워둔 양평2리 쪽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엔 급경사 진 길이었는데 점차 완만해졌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작은 산봉우리에 서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조금 내려가 4시2분 율리 고개에 당도했다. 아까 세제 고개에서도, 고개라는 말과 오거리라는 말이 각각 쓰이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이정표에 율리 삼거리라고 쓰여 있었다. 거기서부터 예빈산1.6Km, 팔당2.6Km, 조안리입구 3.6km, 직녀봉 0.64Km 거리였다. 그 근처에 있는 율리봉(587m)은 밤이 많은 산마을이 있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정화성 선사가 쓴 강역산유기에 써 있다. 그의 호는 철문(철문)으로서 항일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익산 용화산 신응사에서 사별했다고 한다.
거기서 우리가 갈 곳은 우측 내리막길이었다. 그것이 막바지 하산 길이었다. 하지가 지난 숲 속에서는 생명의 축제가 한창이다. 이제 점차 햇빛을 쪼이는 시간이 적어지게 되는데, 생물들은 그 느낌을 느낄 무렵부터 모든 더 결실을 준비하게 될 것 같다. 새들의 부산한 움직임도 커가는 새끼들의 먹이감을 구하기 위해서일 것 같았다. 하산 막바지에는 심리적으로 빨리 끝내고 싶어진다. 산을 찾는 기분은 역시 정상에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도달할 봉우리가 있어야 새로운 각오로 힘을 내며 걷게 된다. 그런데 주요 코스를 다 지나고 나서 내려오면 산을 오를 때와 반대로 번잡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산행의 기대나 설레임보다 귀가 길을 의식하게 된다. 길 막바지에 이르자 앞쪽이 트여 보이며 멀리 아파트도 보였다. 그리고 마을로 빠져 나오니 한강 건너의 검단산도 보였다.
4시48분 오전에 왔던 차고지에 도착했다. 그 먼 산 길을 걸어와 우리가 아침에 서 있던 곳에 어김없이 당도한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잠 시 후 아침에 예약 한 예봉정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주인이 지기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까 산에서 하산 시간을 알려 주어 상차림도 되어 있었다. 주문한 잡어 매운탕을 메뉴로 느긋이 예기를 나누며 저녘을 먹었다. 메운탕에 곁들이니 소주 맛도 더 좋았다. 산수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보며 심신의 건강을 다지고 별미까지 맛본 즐거운 날이었다.
(070624)
첫댓글 하하하하하 좋은 곳을 다녀 오셨읍니다.두물머리도 한번 둘러 보았으면....
회장님 반갑습니다. 언제 그 곳 갈 계획 세우시면 함께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