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에서 뜻밖의 탈출구를 만났을 때 마음의 치유를 넘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림은 탈출구다. 시험을 앞두고 중압감에 시달릴 때, 마음에 분노와 후회가 가득할 때, 갖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잡할 때 그림 한 점이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곤 하니까 말이다. 한술 더 떠 그림을 보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미술의 힘 2>를 쓴 김선현 교수다.
취재 박헤나 리포터mynana1@naeil.com 사진 이현준 이미지 제공 에이트 포인트
그림,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
“도트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쿠사마야요이(草間彌生)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조현병에 시달렸어요.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엎드려 울다가 우연히 본 테이블보의 빨간 점무늬가 움직이는 것 같았고, 이를 작품화해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요. 그녀는 병원 옆에 작업실을 얻어 치료와 작품 활동을 병행했죠. 고흐나 뭉크, 프리다 칼로도 정신 치유를 위해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답니다.”
그림을 통한 마음 치유는 미화한 이야기가 아니다. 김선현(48) 교수가 20여 년간 미술 치료 현장에서 경험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술 치료에 들어선 것도 미술에 있는 치유의 힘을 현장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강의와 워크숍, 아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할 때 “우울하던 감정이 사라졌어요” “소심하던 우리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성격이 대범해졌어요.” “그림을 그리니 기분이 좋아져요” 라는 말을 들은 것.
“그림을 매개체로 감정을 조절하는 거죠. 그림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감동하거나 힘을 얻는데, 미술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표현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성폭력 피해 여성,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다
김 교수가 미술 치료계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병원에선 ‘그림 한 장 그린다고 치료 효과가 있겠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2003년 성폭력 피해 아동 치료를 맡았을 때도 트라우마에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그리기와 만들기, 감상하기 등 미술의 세 가지 영역을 통해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치료받으며 심리적·신체적 안정을 찾는 걸 객관적 평가 지표를 통해 확인하고 통합 의료에 미술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 김 교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비롯해 연평도 포격이며 구제역 도살 처분, 군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에 투입됐고, 세월호 유가족과 단원고 1·3학년 학생들의 미술 치료를 맡기도 했다.
“미술 치료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청소년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예요. 저 역시 대학생과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부모니까요. 지난 4년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의뢰로 청소년 자살 예방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수차례 자살을 시도한 아이들이 미술 치료를 통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큰 기쁨이죠. 학교 부적응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함께 봉사하겠다며 찾아온 일도 있어요.”
수험생들이여, 몬드리안의 그림으로 집중력을 높여라
“영국 리버풀대학교 연구팀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데일리>에 몬드리안의 그림이 뇌 기능을 극대화하도록 돕는다고 발표했어요. 몇 년 전 방송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으로 소개하고 시험한 적이 있죠. 몬드리안의 단순하고 강렬한 구성이 좌뇌와 우뇌를 모두 사용하게 해 사고력을 끌어올렸다는 거죠. 몬드리안의 ‘테이블 No.Ⅳ : 적색, 회색, 청색, 황색, 흑색이 있는 마름모꼴 콤퍼지션’은 머리를 좋게 하는 요소가 모두 포함되었어요.”
그는 말한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주어진 짧은 시간에 쌓아온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며, 이런 최고의 컨디션을 이끄는 데 그림만 한 것이 없다고.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요? 수험생보다 가슴 졸이고 결과로 마음 아픈 것은 엄마예요. 입시 실패는 엄마나 아이 탓이 아닌데 분노와 상실감, 우울함을 떨쳐내기 힘들죠. 이런 상태에 있는 엄마들에게는 존 커리의 ‘아약스’ 를 권하고 싶어요. 한없이 착해 보이는 소 한 마리가 괜찮다며 다독이는 것 같으니까요.”
칸딘스키는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다. 영혼은 줄이 많은 피아노다”라고 말했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꽃 한 송이 꽂아두거나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색에 눈길을 주는 것, 색깔 있는 옷을 입어보는 것만으로 영혼은 흥겨운 연주를 시작한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