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랑치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답게 새벽 추위는 살을 에이고 장평 가는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사이 한기에 온몸이 움추러든다.
장평에서 택시를 타고 빙판을 이룬 도로를 달리다 비포장길로 들어가 펜션들과 송어양식장을 보며 던지골에 오르니 전에 이용했던 민가의 트럭이 보인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임도를 올라가다 표지기가 달린 숲속으로 들어가면 잔돌 위로 신설이 쌓여있어 굉장히 미끄럽다.
계곡끝의 돌탑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꺽어져 무덤을 지나고 고도를 높혀가는 암릉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간신히 올라간다.
눈을 허옇게 뒤집어 쓰고있는 돌탑을 지나 영암사길로 올라가니 새파란 하늘 아래 설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거문산과 금당산으로 이어지는 육중한 능선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찬바람이 부는 마랑치안부로 올라서면 갑자기 은백색의 설국이 눈앞에 펼쳐져 감탄을 자아내고 우뚝 솟아있는 가리왕산은 설산들의 제왕인양 당당하게 보인다.
(마랑치에서 바라본 금당산과 거문산)
(마랑치에서의 조망)
(마랑치에서의 조망)
- 1348봉
나뭇가지마다 눈송이를 매달고 있는 숲으로 들어가니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눈꽃들이 영롱하고, 눈꽃 터널로 들어가자 눈이 쏟아져 내려오며 금새 허연 눈사람이 되어 버린다.
키낮은 산죽지대를 통과하고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속을 감각에 의지하며 길을 찾고 또 만들어 간다.
능선만 놓치지않게 신경쓰며 산죽과 잡목지대를 헤치고 봉우리를 오르면 1348봉이 앞에 우뚝하고 정상쪽으로 설화를 피우고 있는 나무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눈길을 끄는 아름드리 거목 한그루를 지나치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뚫고 1348봉에 오르니 나무들만 베어져있고 조망은 막혀있다.
조금 밑의 넓직한 초원지대로 내려가면 시야가 확 트여서 주왕산을 지나 가리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방으로 첩첩히 쌓인 산봉들의 파노라마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눈꽃)
(눈꽃)
(눈꽃)
(눈꽃)
(1348봉에서 바라본, 주왕산 너머의 청옥산과 남병산)
(1348봉에서 바라본 주왕산과 가리왕산)
(1348봉에서 바라본 박지산과 상원산 능선)
(1348봉에서 이어지는 능선과 그 너머의 청태산과 대미산 능선)
- 임도삼거리
착각하기 쉬운 직진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꺽어져 가파른 숲길을 내려가니 오랫만에 낯익은 표지기들도 만나고 곧 펑퍼짐한 능선이 다시 이어진다.
바람없는 눈속에 서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예상치 못한 러셀산행 때문에 오늘 목표로 했던 가리왕산은 힘들겠고 중왕산에서 하산할지 모르겠다는 약한 생각을 해 본다.
눈이 잔뜩 쌓인 날등을 피해서 잡목과 덤불들을 뚫으며 1243.8봉에 오르면 역시 나무들이 베어져있고 삼각점 하나만 쓸쓸하게 누어 햇살을 받고 있다.
낙엽송지대를 지나서 수림이 빽빽한 봉우리에 오르니 갑자기 능선이 사라지고 길을 찾기 힘들지만 주왕산방향인 왼쪽으로 내려가면 곧 뚜렸한 족적이 나타나고 표지기들도 보인다.
잠시후 키낮은 침엽수들이 꽉찬 숲이 나오는데 밖으로는 잡목들과 덤불들이 거세서 헤치기가 힘들고 능선으로 들어가면 허리를 바짝 구부리고 기어가듯 통과해야 하니 죽을 맛이다.
낮은 포복으로 힘든 길을 20여분 계속 뚫고 내려가면 하안미와 장전 그리고 가리왕산 이정표가 있는 임도삼거리이며 눈속에 트럭의 바퀴자국이 선명하고 양지바른 곳에는 베어낸 통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1243.8봉 정상)
(임도 삼거리)
- 주왕산
임도를 건너서 눈길을 올라가면 표지기들도 많이 붙어있고 눈속으로도 희미하게나마 족적을 확인할수 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서 1174봉을 사면으로 우회하고 왼쪽으로 꺽어져 능선을 오르니 눈도 많이 쌓여있고 가파른 비탈길이 계속 이어진다.
진땀을 흘려가며 주왕산과 거의 높이가 비숫한 전위봉에 오르면 비로서 육중한 주왕산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후 하안미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힘들게 올라가면 넓은 헬기장으로 되어있는 주왕산(1376.1m)인데 간식을 먹으며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면 눈길을 뚫고 이 먼곳까지 온 두다리가 대견스러워 진다.
어언 4년전 이곳에 서서 백석산과 잠두산으로 뻗어 나가는 장쾌한 능선을 바라보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바램이 이루어진 셈이고 가리왕산에서 민둔산을 거쳐 정선으로 떨어지는 능선답사가 그 완결일 것이다.
시간은 벌써 4시가 가깝고 가리왕산까지도 거의 2시간은 걸릴텐데 여기서 그만 하산해야 하지않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벌써 발은 자연스럽게 가리왕산을 향하여 나가고 있다.
(주왕산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
(주왕산에서 바라본 가리왕산)
- 가리왕산
서서히 찬바람은 불어오고 서있으면 쭉쭉 미끄러지는 가파른 눈길을 나뭇가지를 잡아가며 서둘러 내려간다.
임도들이 교차하는 마항치로 내려가니 전에는 안 보이던 관측소 겸 대피소라는 이층 컨테이너 집도 있으며 명맥을 다해가는 겨울햇살만이 약하게 비추고 있다.
"강릉부 산삼봉표석"이 있는 시멘트계단을 올라가 상봉 3km 이정표를 보며 가파른 눈길을 한발 한발 천천히 올라간다.
헬기장으로 되어있는 1456봉을 지나고 점점 많아지는 눈속을 뚫고 올라가면 절터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는데 아직도 상봉 1.5km라 적혀있어 맥은 빠지고 마음은 급해진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간신히 올라가 어은골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지나고 고사목과 돌탑들이 서있는 가리왕산(1560.6m)에 오르니 날은 거의 어두어지고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 친다.
고사목들 너머로 마지막 기운을 다하며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을 바라보고 오늘도 목표로 한 산정에 올랐음을 감사하며 서둘러 배낭을 짊어 멘다.
(마항치)
(가리왕산 정상)
(가리왕산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들)
(가리왕산에서의 일몰)
- 장구목이골
중봉쪽으로 눈길을 내려가면 곧 장구목이골 갈림길이 나오는데 날은 완전히 어두어졌지만 다행히 러셀이 잘 되어있어 한 시름을 던다.
아무리 정규등로라 할지라도 흔적도 없는 고산의 눈길을 불을 밝히며 찾아 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니 운이 좋은 편이다.
뛰듯이 내려가면 어둠속에서도 오래된 주목들이 멋지게 보이고, 랜턴을 켜고 미끄럽고 가파른 돌길을 조심해서 통과해 인적 끊긴 오잠동임도로 내려선다.
열린 철망문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계속 눈길을 내려가니 곧 장구목이골 계곡이 나오는데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흘러가는 물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얼어붙은 계곡을 건너면 평탄한 흙길이 이어지고 잠시후 물레방아가 나타나며 도로가 지척인데 눈앞으로 휙 지나가는 차가 진부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인 것 같아 안타까워진다.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59번국도로 내려가니 찰흑같은 어둠속에 불빛 하나 없고 띄엄띄엄 지나가는 차에 손짓을 해봐도 별 소용이 없다.
진부택시를 부르고 컴컴한 도로를 걸어가면 고산들의 실루엣이 무겁게 내려앉고 오대천을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차갑게 들려온다.
첫댓글 당일로도 충분히 되는군요.... 마항치 계단 엉덩이 썰매로 한방에 타고 내려오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나 가보나? 걱정 됩니다....
제가 북한산에서 본것은 세발의 피군요..^^ 암튼 저도 설에는 명지산으로 뜨려고 합니다. 익근리에서 청계산을 거쳐 일동으로.... 눈이 더 많이 오길..^^
polap님! 명지산은 눈이 많기로 유명하지요. 물론 올해는 별로 오지 않았지만요... 혹 가시기 전에 눈이 몇차례 더오면 적설량이 상당할겁니다. 너무 코스 길게 잡지말고 잘 다녀오십시요!^^
wow~~so beauti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