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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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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필 산문 및 기행문 스크랩 (전남 화순)전통민속마을! 양동호&양승수가옥
은하수 추천 0 조회 768 16.03.09 08: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화순 양동호 & 양승수가옥(和順 東浩 & 梁承壽家屋) ▶

전남 화순의 전통가옥!!!

 

「 전남 화순(全南 和順) 소개 」

화순군(和順郡)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순천시·곡성군, 서쪽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장흥군, 북쪽은 광주광역시·담양군·곡성군과 접한다. 도곡면, 춘양면 일대의 화순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군청 소재지는 화순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다.

면적은 787㎢ (전남의 6.6%)로 전라남도내 3번째(해남, 순천)로 넓고, 임야는 도내 2번째(순천) 규모이다.

동단 화순군 북면 송단리 127′12′12″ 35′10′58″ ,서단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 126′49′34″ 34′52′04″로 동서간 길이는 32㎞이며, 남단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 126′56′48″ 34′49′18″, 북단 화순군 북면 방리 127′11′10″ 35′12′40″로 남북간 길이는 43㎞이다.

 

                      ▲ 양동호가옥 전체 전경

 

마한시대에는 능주, 화순방면에는 평지를 바탕으로 한 여래비리국(如來卑里國), 동복방면에는 벽비리국(?卑里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백제시대에 화순, 능주, 동복의 세개 현(縣)이 독자적인 행정편제를 유지하였는데 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능주방면), 냇가변에 자리잡은 잉리아현(仍利阿縣:화순방면), 항아리 같은 바위가 있는 두부지현(豆夫只縣:동복방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757년)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 및 두자로 줄이는 작업을 하면서 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은 능성군(陵城郡)으로, 잉리아현은 여미현(汝湄縣)으로, 두부지현은 동복현으로 변경되면서 곡성군으로 속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인 940년에 이르러 능성현은 한자를 바꾸어 능성현(綾城縣)으로 하고, 여미현은 오늘날의 지명인 화순현(和順縣)으로 개칭하였으며 1018년에는 동복현(同福縣)을 곡성에서 보성군 소속으로 변경하였다. 1143년에 처음으로 중앙에서 능성현에 감무(監務:현재의 군수)라는 행정관이 파견되었으며 이어 충열왕 때인 1280년경 동복오씨 조영(祖英) 혹은 조염(祖琰)국사의 고향이라 하여 동복에도 처음으로 감무가 파견되고 고려말 1390년에 화순에도 감무가 파견되면서 남평현을 겸임하였으니 이때에 이르러 중앙행정이 직접적으로 이곳까지 미치게 되었다.감무관이 파견되기 이전에 이곳은 모두 자치고을로서 토호들에 의한 간접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동복현이 있었던 자치고을로는 보령현(保寧縣:현 이서면지역), 대곡현(大谷縣:현 남면지역), 수촌현(水村縣:현 북면 수리부근), 압곡현(鴨谷縣:현 북면 옥리부근)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불과 몇 년 만에 세 현이 폐치분합을 거듭하게 되는데 처음 1396년에는 화순현을 없애고 능성현과 동복감무(화순현 겸임)만을 두었다가 1405년에 능성현, 화순감무(동복겸임), 1407년에 능성현, 복순현(福順縣.동복과 화순 합함), 1413년에 능성현, 화순현(동복겸임), 1416년에는 순성현(順城縣.화순과 능성 합함), 동복현으로 하였다가 다시 1418년에 이르러 세 지역의 통합이 불가하여 능성현, 화순현, 동복현으로 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의 피해가 너무 심하여 화순현의 백성들은 스스로 폐현을 자청 능성현에 합하였고 1611년에 이르러서야 화순현이 복현되기도 하였다. 이 복현을 기념하여 당시 객관앞에 심은 것이 바로 화순군청에 서 있는 은행나무이다. 1632년 인조반정이 있은지 10년후 인조의 모친인 인헌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능성현은 일약 능주목으로 한 등급 올라서게 되었다. 이로서 화순지역에는 능주목, 화순현, 동복현의 세 고을로 이어져 왔는데 1655년 동복현의 객사와 전패가 화재로 불에 타자 잠시 화순현에 합하였다가 다시 1664년 세 현으로 있었고 이 체제는 대한민국시대까지 유지되었다. 1895년 5월 1일 행정구역개편으로 능주군, 화순군, 동복군이 되었으며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 10월 15일에는 화순군을 폐지하여 능주군에 흡수시킴으로써 능주군, 동복군으로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3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하고 동복군과 병존하다가 1914년 3월 1일 동복군 마저 폐지하고 화순군에 편입시킴으로써 오늘날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1읍 12면 1출장소 342행정리로 운영하고 있다.

 

능주면 일대에는 역사적 유적지가 비교적 많은데, 특히 조선 중종 때 개혁 정치를 폈던 조광조가 귀양 와서 죽음을 당한 터와 적려유허추모비가 있다. 동복면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맑은 물로 유명한 화순적벽이 있다. 그 밖에 남면 벽송리에 고인돌군, 북면 백아산에 천연 동굴이 있다. 천태산에는 비자나무 숲과 수령이 5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있다. 관광자원으로는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를 비롯해 만연사·쌍봉사·유마사·개천사가 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알려진 운주사에는 석불과 석탑이 많다. 그 밖에 오성산성·예산산성·철옹산성·물염정·화순적벽이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는 화순온천과 도곡온천이 개장되었다.

 

『 탐방한 화순군의 문화재들 』

1 국보 제57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

2 보물 제170호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和順 雙峯寺 澈鑒禪師塔碑)

3 보물 제1726호 화순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和順 雙峰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一括)

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1호 화순쌍봉사대웅전목조삼존불상(和順雙峰寺大雄殿木造三尊佛像)

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52호 화순쌍봉사극락전목조아미타여래좌상(和順雙峰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

6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247호 화순 쌍봉사(和順 雙峯寺)

7 사적 제312호 화순 운주사지(和順 雲住寺址)

8 보물 제796호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9 보물 제797호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和順 雲住寺 石造佛龕) 

10 보물 제798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 

11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3호 화순운주사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

12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4호 화순운주사광배석불좌상(和順雲住寺光背石佛坐像) 

13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5호 화순운주사마애여래좌상(和順雲住寺磨崖如來坐像) 

14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6호 화순운주사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層石塔)

15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7호 화순운주사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雙交叉紋七層石塔)

16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8호 화순운주사석조불감앞칠층석탑(和順 雲住寺石造佛龕앞七層石塔) 

17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9호 화순운주사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交叉紋七層石塔)

18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0호 화순운주사대웅전앞다층석탑(和順雲住寺大雄殿앞多層石塔)

19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1호 화순운주사칠성바위앞칠층석탑(和順雲住寺七星바위앞七層石塔)

20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2호 화순운주사발형다층석탑(和順雲住寺鉢形多層石塔) 

21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6호 화순운주사거북바위오층석탑(和順雲住寺거북바위五層石塔) 전남 화순군

22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 화순운주사수직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垂直紋七層石塔)

23 중요민속문화재 제152호 화순양동호가옥(和順梁東浩家屋)

24 중요민속문화재 제154호 화순양승수가옥(和順梁承壽家屋)

 

【 일 정 표 】2015년 6월 29일(월)-30일(화) 1박2일

                             ◈ 첫째날(6/29) : 운주사-조광조선생 유배지

                             ◈ 둘째날(6/30) : 쌍봉사-전통민속마을(양동호&양승수가옥)-학포선생부조묘

 

이번 전남 화순군 방문의 주 목적은 천불천탑의 운주사와 국보 제 57호 철감선사탑이 있는 쌍봉사 탐방이었다. 먼 거리의 이동이라 많은 곳을 둘러 보기에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운주사의 탐방은 단순한 사찰 탐방이 아니라 주변 산중턱에 위치한 석탑과 석불들을 탐방하게 되므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첫째날은 운주사의 문화재들을 탐방하고, 숙소로 정한 화순읍내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조광조선생 유배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둘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우산을 받쳐들고 화순군내 유일의 국보인 철감선사탑이 있는 쌍봉사를 첫번째 목적지로 정하였고, 인근의 양동호와 양승수가옥, 그리고 학포선생부조묘를 방문하는 것으로화순 탐방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화순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들 중 운주사와 쌍봉사는 내가 찾은 관광명소 '명찰을 찾아서'에, 조광조선생 유배지, 전통민속마을(양동호&양승수가옥), 그리고 학포선생부조묘는 '호남권'에 아래와 같이 문화유적이 많은 운주사를 제1,2부로 나누는 등 총 5편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기로 한다.

 

-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1부

-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한 천불천탑의 고찰! 운주사(雲住寺) 제2부

-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쌍봉사(雙峯寺)

- 전통민속마을! 양동호&양승수가옥(梁東浩&梁承壽家屋)

- 기묘사화에 연루된 선비들의 삶! 조광조선생 유배지와 학포선생부조묘

 

도곡면에 위치한 양동호가옥과 양승수가옥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운주사에서 화순읍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첫째날 운주사 탐방 후 찾아가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늦은 시간에 후손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방문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인근에 위치해 있는 조광조선생 유배지를 탐방하고, 둘째날 쌍봉사 탕방 후 귀경길에 탐방을 하게 되었다.

현재 소유주들이 거주를 하고 있어 내부 등 일부 촬영이 불가능하거나, 가재 도구 등이 놓여 있어 직접 탐방하며 찍은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 사진들을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음을 밝혀 둡니다. 

 

                      ▲ 양동호가옥 대문(사진 左)과 사랑채 옆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사진 右)

 

♧ ♧ 화순 양동호가옥 (和順 梁東浩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52호(1984년01년14일 지정)

*소재지: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달아실길 24 (월곡리)

나지막한 야산을 등진 터 위에 1800년대 말에 지은 집으로 평야지대에 인접한 마을 지주의 집이다. 네모반듯한 땅에 동향집으로 안채, 사랑채, 헛간채, 문간채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ㄷ'자형 안채가 동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 사랑채가 있다. 안마당과 사랑채에는 담장이 없으며, 사랑채 왼쪽에 중문을 만들었다.

 

                      ▲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서면 좌측에 양동호가옥 안채 안마당의 헛간채

 

중문의 왼쪽에 헛간채가 있어서 안마당의 남쪽을 막으며, 그 앞에 사랑마당과 직각으로 놓인 1칸의 대문간이 있다. 사랑마당 북동쪽에는 화장실과 돼지우리가 있고, 북쪽에는 안마당과 이어지는 공간에 광채를 두었다.

 

 

                      ▲ 양동호가옥 안채 전면

                      ▲ 양동호가옥 안채 뒷면

                      ▲ 양동호가옥 안채 좌측면

 

안채는 큰방과 대청이 나란히 놓이는 남도방식이지만, 대청공간이 크고 3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 점이 특이하다. 대청과 큰방을 중심으로 왼쪽 날개는 3칸, 오른쪽은 4칸이다. 부엌은 오른쪽에 있는데 3칸이며 뒷쪽은 부엌방이다. 가운데는 2칸의 방과 2칸의 대청이 있고, 왼쪽에는 방과 2칸의 대청이 있다. 큰방과 큰대청 사이에는 쪽마루가 있고, 앞면에는 툇마루가 기둥 밖으로 설치되어 있다.

 

 

                      ▲ 양동호가옥 사랑채

 

사랑채는 '一'자형으로 남도식 구성을 하고 있다.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왼쪽부터 대청, 사랑방, 윗방, 아랫방, 부엌이 있다. 툇마루 앞에는 외기둥을 하나 더 세워 구조체를 만들었고 골함석으로 빛을 가리거나 비를 막기 위한 지붕을 덧붙였다.

곳간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북쪽에 세운 건물로 벼를 보관하는 곳이다.

남도 양반주택의 인위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 집으로 안채는 18세기, 사랑채는 이보다 늦은 19세기 후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집 안에는 특별히 다른 정원시설은 없지만 집 안에 심어진 나무가 분위기를 그윽하게 한다.

 

♧ ♧ 화순 양승수가옥 (和順 梁承壽家屋)

*중요민속문화재 제154호(1984년01년14일 지정)

*소재지:전남 화순군 도곡면 달아실길 26 (월곡리)

 

 

19세기 중엽에 지은 집인데 원래는 서쪽의 양재국씨 집과 한집으로 양승수가옥은 안채, 양재국가옥은 사랑채 관계였다고 한다. 지금은 두 집 건물을 다 합쳐도 처음 지었을 당시의 모습이라고 하기 어려우며, 중간에 부속 건물들이 아마도 헐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 양승수가옥 안채 전면(사진 上)

                         안채 대청 내부 전경(사진 中左)과 부엌(사진 中右)

                         양승수가옥 안채 뒷면(사진 下)

 

이곳은 안채라고는 하지만 원래의 모습에서 변한 듯하다. "H"자형 평면으로 골격은 남도형으로, 현재는 좌우에 날개가 달린 구조로 보통 중부지방에서는 날개를 몸채에서 내미는데 비해, 여기서는 날개를 몸채에 붙였다. "H"자형 날개 부분의 뼈대는 본채와 구분하여 따로 기둥을 세웠다.

남도방식으로 오른쪽 날개에 2칸 부엌과 부엌방을 두었으며, 그 옆에 2칸의 큰방과 뒷쪽에 골방이 있다. 큰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그 옆에 2칸의 커다란 대청이 있다. 왼쪽 날개에는 2칸의 대청과 방이 있고, 대청앞과 툇마루 앞에는 쪽마루가 있다.

 

                      ▲ 양승수가옥 안채에서 뒤돌아본 대문간채

 

대문간채는 '一'자형으로 6칸이며, 20세기 중엽에 지어진 듯이 보인다.

대청문을 판장문으로 하는 등 구조 기법에서 고식을 볼 수 있다.

사랑채로 보이는 양재국가옥은 "H"자형 주택에서 머리칸을 떼어버린 "┤"자 모양집이다. 안채보다 규모있게 지었을 뿐 평면구조, 구조기법 등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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