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장 대법원장
다음으로 두 번째 사건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2018다248626 유해인도 사건입니다.
원고, 상고인 △△△ 씨 외 2인
피고, 피상고인 재단법인 서현 외 1인입니다.
이유의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원고들은 망인의 배우자와 장녀, 차녀입니다. 망인은 원고1.과 혼인관계에 있던 중 피고2.와 사이에 장남을 두었습니다. 망인이 사망하자 피고2.는 망인의 유체를 화장한 후 그 유해를 피고1. 법인이 운영하는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봉안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들을 상대로 망인의 유해인도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원심은 장남이 제사 주재자로서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가 공동상속인들 중 누구에게 있는가입니다. 종전 대법원 2008년 11월 20일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은 피상속인의 유체·유해가 민법 제1008조의3 소정의 제사용 재산에 준해서 제사 주재자에게 승계되고,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제사 주재자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가 이 사건 쟁점입니다.
결론적으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제사 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다수의견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에 조리에 부합하였던 법규범이라도 사회관념과 법의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대법원은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을 배제하는 등으로 그 법규범이 현재의 법질서에 합치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제사 주재자에 대한 협의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 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제1항,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정신에 합치하지 않습니다.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면 여성 상속인은 남성 상속인의 동의 없이는 제사 주재자가 될 수 없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여성 상속인은 피상속인에게 아들, 손자가 있으면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배제됩니다. 이와 같은 여성 상속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 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제사 주재자로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이 보존해야 할 전통으로서 헌법 제9조에 의하여 정당화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제사용 재산의 승계제도는 조상숭배라는 전통에 근거하는 것이면서도 헌법상 개인의 존엄 및 양성평등의 이념과 조화되어야 하는데, 여성 상속인을 열위에 두는 것은 현대적 의미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 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적 안정성과 판례의 규범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판례변경의 범위를 되도록 제한적으로 하여야 하고, 제사와 같이 관습에 바탕을 둔 제도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종래의 제사 주재자 결정방법이 현재의 법질서와 조화되지 않는다면 기존 법규범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의 법질서에 부합하도록 이를 조금씩 수정, 변형하여 명확하고 합당한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사의 추모의식으로서의 성격을 고려하면 제사 주재자를 정할 때 피상속인과 그 직계비속 사이의 근친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최근친인 직계비속이 여러 명 있을 경우에는 연령을 그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같은 지위와 조건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장자를 우선하는 것이 전통 미풍양속에 부합하고, 장례나 제사에서도 직계비속 중 연장자가 상주나 제사 주재자를 맡는 것이 우리 문화에 합치합니다. 같은 순위자들 사이에서 연장자를 우선하는 것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등 우리 법질서에 이미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만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나 피상속인의 의사, 공동상속인들 다수의 의사, 피상속인과의 생전 생활관계 등을 고려할 때 제사 주재자로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제사 주재자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제사 주재자 결정에 관한 협의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본 종전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제사 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새로운 법리는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위하여 이 판결 선고 이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법리 선언은 이 사건의 재판규범으로 삼기 위한 것이므로 이 사건에는 새로운 법리를 적용하여야 합니다.
이상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의 결론에 관하여 봅니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망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를 제사 주재자로 우선하고, 다만 그 사람이 제사 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유가 있는지를 심리하여 누가 망인에 대한 제사 주재자인지를 판단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 사건에서 장남이 제사 주재자로서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본 원심판결에는 제사 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습니다.
이상의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이흥구의 별개의견과,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조재연,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 오경미의 보충의견 및 별개의견에 대한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 대법관 김선수의 보충의견이 각 있습니다.
그중 별개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 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하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성립되지 않아 망인의 유체·유해에 대한 권리의무의 귀속이 다투어지는 경우 법원은 망인의 의사, 망인 생전에 형성한 생활관계, 장례 경위 및 유체·유해에 대한 관리상태, 공동상속인들의 의사 및 협의가 불성립된 경위, 향후 유체·유해에 관한 관리 의지와 능력 등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누가 유체·유해의 귀속자로 가장 적합한지를 개별적,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민법 제1008조의3 등의 개정 취지에 비추어 보면 생래적 요인으로 결정되는 특정인이 아니라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역할을 하였거나 그 역할에 부합하는 사람을 확인하여 그 사람을 제사용 재산의 승계인으로 인정함이 타당합니다. 사회·경제·문화적 변화로 인해 유체·유해의 귀속을 둘러싼 분쟁 유형이 다양해졌으므로 법원은 개별 분쟁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유체·유해의 귀속자로 적합한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도 유체·유해의 귀속자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망인 사망에 따른 재산적 이익이나 법적 지위의 부여에 있어서 배우자를 가장 우선하는 것은 우리 법제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법상 배우자는 상속에서 혈족 상속인과 법률상 지위에 차이가 없고, 상속의 특례인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도 이러한 입법취지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유체·유해의 귀속자에 포함시키는 것이 추모의식으로서 제사의 성격, 오늘날의 가족 형태 등에도 부합한다는 취지입니다.
다수의견에 따라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상으로 오늘의 전원합의체 판결선고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