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이사하면서 코디네이터에게 공사를 맡긴 집주인의 요구는 딱 두 가지였다. 널찍한 주방을 아이 공부방으로 만들어달라는 것과 화려한 색상은 피해달라는 것. 여기에 코디네이터의 실용적인 아이디어들이 더해져 심플하면서도 소소한 볼거리가 있는 집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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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된 아파트 리모델링 프로젝트
한 달 전 이사한 44평 아파트는 지은 지 18년 된 아파트라 시공 전에는 구조도 비효율적이고 공용면적도 거의 없는 데다 천장까지 낮아 요즘 아파트에 비해 훨씬 좁아 보였다. 현관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작은 방 2개가 있으며 거실과 주방이 복도를 따라 맞붙어 있고 복도 끝에는 좀 더 큰 평수의 방 2개가 마주 보는 구조인데, 방이 작은 대신 주방은 8~9평은 족히 될 정도로 널찍한 것이 특징(거실과 주방의 비율이 비슷하다). 게다가 거실 쪽 앞 베란다와 주방 쪽 뒷베란다 말고도 주방과 뒷베란다 사이에 작은 방같이 생긴 불필요한 다용도실까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일단 집을 최대한 넓게 쓰기 위해 뒷베란다를 텄고, 다용도실의 벽을 허물어 주방으로 편입시켰다. 모노륨이 깔려 있던 바닥을 뜯어내고 월너트와 오크가 섞여 부드러운 느낌을 풍기는 동화마루의 ‘드림 아카시아’를 깔았고, 벽면에는 아트월 대신 질감과 펄감이 살아 있는 ‘이온의 샘’(대동벽지) 시리즈를 시공했다.
천장은 가운데 부분만 약간 파내고 몰딩을 두르는 등 박스 공사(약 80만원대)를 통해 시각적으로 높아 보이도록 했다. 또 전 주인이 18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고치거나 보수하지 않은 집이라 섀시와 배수관은 물론 문 전체까지 철거, 교체했는데 이 비용만 총 공사 비용의 1/3 정도를 차지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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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엄마의 공용 공간으로 탈바꿈한 주방
기본 구조 공사를 끝내고 나니 더 넓어진 주방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였다. 주방에서 일하면서도 늘 거실이나 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김선량 주부는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딸과 유치원생인 둘째 아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길 원했다. 코디네이터는 칠판과 책장, 테이블이 있는 편안한 ‘공부방 겸 놀이방’ 콘셉트로 꾸미기로 결정하고,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을 제외한 공간 모두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할애했다.
칠판은 학교 게시판 크기로 맞춰 달아 학부모 통지서나 하루 일과표, 그림까지 고루 붙일 수 있도록 했고 그 아래에 책 수납장을 짜 넣었다. 원래 75cm 높이 정도를 생각했으나 책 욕심 많은 집주인 덕에 15cm 더 높여 맞췄고 복잡한 책을 가리기 위해 은회색 컬러 유리문을 달았다. 칠판 쪽 벽에는 탈취와 습기 조절 효과가 있다는 화산재 파 벽돌(일본산은 ㎡당 9만원인데, 최근 출시된 국내산 화산재 파 벽돌 ‘에코 브릭’을 붙여 자재비를 반값으로 줄였다)을 붙여 기능과 장식 효과를 동시에 얻었다.
주방을 아이들에게 내주고 나니 생활이 훨씬 편해졌다. 아이들이 주방에서만 놀고 그림 그리고 숙제하는 덕에 청소가 간단해지고 집도 더 깨끗해진 것. 또 같은 공간에 있어서 안심이 되는지 엄마 뒤를 귀찮도록 졸졸 따라다니던 버릇도 많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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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도한 프린트와 원색을 어려워하는 집주인의 취향을 고려해 고급스러운 질감의 벽지로 거실을 장식했다. 대동벽지에서 나온 친환경 벽지 ‘이온의 샘’ 시리즈로, 1롤당 7만~8만원대.
2 쪽방처럼 생긴 다용도실 공간의 벽을 뚫고 원래의 벽이 있던 자리에 아일랜드 식탁을 배치했다. 뒷공간은 원래 창문을 살리고 아래쪽에만 수납장을 짜 넣어 자잘한 조리 도구 등을 수납했다.
3 거실에서 본 싱크대 전경. 싱크대는 홈터치 제품이며 밝은 연두색 타일은 논현동의 유성타일에서 구입해 붙였다. 작은 가로 타일 무늬가 있는 25×30cm 크기의 큰 타일이라 타일과 타일 사이의 이음매 부분에 때도 덜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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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아이의 편의를 고려한 개조
이 집에서 주방 외에 또 하나 놀랄 만한 공간은 화장실이다. 현관 옆 화장실의 수전이 유난히 낮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제안으로 아이들 키에 맞춰 수전을 내려서 설치한 것. 일반적인 높이보다 10cm 정도 내려 달고 밑의 배수관 트랩을 조금만 잘라주면 공사에 전혀 무리가 없다. 부부 침실에 욕실이 하나 더 딸려 있고 손님이 오더라도 몸을 약간만 숙이면 되니까 불편한 점은 없다니, 오히려 세심한 것 하나하나까지 아이들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부부의 모습이 놀랍다.
주방에 모든 책과 그림, 스케줄까지 정리했기 때문에 아이방은 아주 단순하게 주로 쉬고 노는 공간으로 꾸몄다. 일고여덟 살 또래의 모든 딸아이가 그렇듯, 주원이 역시 핑크색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침대와 옷장은 깨끗한 화이트 가구 위주로 까사미아에서 구입하고, 비즈 발과 각종 소품은 핑크 컬러로 맞춰 포인트를 줬다. 둘째인 아들 재호의 방은 파란색 계열로 꾸미고 커튼까지 파란색 컬러로 맞춘 상태. 워낙 장난감을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큼직한 패브릭 수납함을 들여놓아 스스로 정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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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과 실용성을 좇은 인테리어
부부가 처음 시도하는 집 개조인 데다가 튀거나 화려한 디자인을 부담스러워해서 아이들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했다. 그래서 컬러보다는 부자재의 ‘질감’에 포인트를 두고 집 전체를 꾸몄다. 거실은 벽지를 활용한 아트월 외에는 어떤 장식도 하지 않았고, 침실 역시 화려한 컬러나 프린트가 있는 벽지 대신 질감이 살아 있는 솔리드 벽지 위주로 골랐다. 그래서 44평 전체 중에서 프린트 패턴의 벽지(잔잔하거나 단색인 것을 선택)를 쓴 곳은 현관 맞은편의 벽, 안방의 침대 헤드 쪽 벽 딱 두 군데뿐이다. 대신 침실은 다마스크 패턴의 패브릭 커튼과 차분한 스트라이프 패턴이 있는 이브자리 침구 ‘리브’로 컬러 포인트를 줬다. 침실에 있는 화이트 앤티크풍의 붙박이장 역시 18년 된 기존 붙박이장을 리폼한 것. 처음에는 뜯어내고 다시 붙박이장을 짜려고 했으나 원목 자체가 너무 묵직하고 견고해서 깔끔한 우레탄 도장 후 문 손잡이와 내부 수납 선반만 바꿔 달았다.
현관 역시 컬러는 배제하고 화이트 톤으로 통일했지만 벽면에는 펄 성분이 함유된 대리석 타일을 벽돌처럼 어긋나게 붙여 특유의 질감을 잘 살렸다. 장식적인 효과도 뛰어나지만 도배했을 경우 아이들이 신발 신을 때마다 벽면을 짚고, 그래서 생기는 벽 얼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깊은 뜻도 숨어 있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맞붙어 있는 오른쪽 방문과 자꾸 부딪혀, 여닫이 현관문을 벽면 공사를 통해 슬라이딩 포켓 도어(벽을 헐고 가벽을 세워 미닫이문을 다는 것)로 교체했더니 입구가 훨씬 넓어졌다. 이렇게 부부와 자녀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개조한 덕에 몸에 꼭 맞는 옷처럼 가족의 생활에 밀착되는, 싫증나지 않고 편안한 집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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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던한 연두색 라인의 벽지는 논현동 수입 벽지 가게에서 구입한 것으로 ‘할리퀸 시리즈’ 중 하나다.
2 거실에서 바라본 현관. 오른쪽 벽면은 15×5cm 사이즈의 대리석 타일을 지그재그로 붙인 것으로, ㎡당 7만~10만원대다.
3 부부 침실 전경. 다마스크 패턴의 번아웃 커튼은 동대문 종합상가 지하 1층 ‘블랙’에서 맞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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