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묵돌입니다.
2024년에 접어든 지난 두 달 동안, 제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일단은 꽤 멀고 긴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걷고 움직였는데도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죽기전에 발 한 번 디뎌볼 수 없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를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세계는 넓고 우주는 무한하지만, 우리의 인식과 기억은 좁고 유한합니다.
어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인생은 그렇게도 짧은 모양인데요.
그 짧은 인생에서조차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을 모두 간직할 수 없기에
우리는 기억을 좁아터진 책장처럼 쓰며
가능한 가장 소중한 책들만 골라서 꽂아놓는듯 합니다.
그 중에는 물론 소중한 것과는 별개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 책이 있겠지만..
이번 금요묵클럽 18기의 테마는 <NEVER FORGET>입니다.
어른이 되면 가장 먼저 '인생은 즐겁기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죠.
나아가 세상에는 웬만해서 보고 싶지 않고, 가능한 눈을 돌리고 싶은 한편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일과 슬픔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책장속의 책처럼
언제든 꽂았다가 뽑아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잊어서도, 버려서도 안 되는
죽을 때까지 꼭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3월 한 달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이야기할 것은
바로 그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아주 진지하게 갈 것입니다.
환불? 그런 게 될리 없잖아요.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첫 번째 모임에 대한 설명은 이 아래에 있습니다.
:: 금주의 묵픽 (Muk's pick) ::
「민중의 적」 (헨리크 입센, 노르웨이)
:: Comment ::
어째 영화 <공공의 적>이 떠오르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다만 <공공의 적>은 'Public enemy'이고
이쪽 <민중의 적>은 'An Enemy of the People'이므로 조금 뉘앙스가 다릅니다.
사회의 절대적인 가치와 민중이 추구하는 가치는 같지 않으니까요.
노르웨이, 아니, 근현대 극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헨리크 입센은
일찍이 시대를 초월하는 문제작들을 많이 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과거 묵클럽 8기의 헤드라이너였던 <인형의 집>은 여성주의의 시초로 평가받는 작품,
이번 오프닝인 <민중의 적>은 이권을 둘러싼 다수와 소수의 대결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대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예견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이 쓰여진 것이 1882년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언제든지 이렇게 시대를 훌쩍 앞서나가는 작가며 사상가들이 있었다는 점에 놀라게 됩니다.
: 읽기 TIP ::
- 신원문화사판 기준 176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인물간 대화가 중심인 희곡 작품입니다. 조금만 집중하면 몇 시간 안에 거뜬히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으므로 모임 전까지 미리미리 읽어두는 것을 권합니다.
- 책 구하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 분량이며 주제며 묵클럽에서 다루기 너무 좋은 작품인데도 그동안 선정을 망설였던 이유인데요. 굵직굵직하게 큰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이 없다보니 공급이 일정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책이 소장돼있지 않은 서점이나 도서관도 많고,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금방 도착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시간적으로 가장 빠른 방법은 e-book으로 읽는 거겠지만... 기왕 이렇게 됐으니, 그리 유명하지 않은 책을 어찌저찌 구해서 읽는 과정도 하나의 묘미라 생각해주시고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웃음)
-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다수의 만족감, 소수가 주장하는 진실, 간결한 대사들 사이에 흐르는 의미심장한 기류들.
-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의 제목은 <민중의 적>입니다. 민중의 적은 사회의 적과는 다릅니다. 사회의 적이 민중에게는 아군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민중의 적이 사회에는 꼭 필요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 "거대하게 부풀어오른 민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은폐하려 하는가? 진실을 등에 업은 정의는 어떻게 악의로 성장해가는가? 입센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작가는 질문하는 사람이고, 정치인은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죠.
- 작품을 읽고난 뒤의 '개운함'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사이다나 맥주 같은 문학작품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민중의 적>은 우리의 고개를 갸웃하게 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마치 묵클럽에서 다루기 위해 쓰인 책 같다고나 할까요.(웃음)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다면 성공입니다. 그 나머지를 같이 하기 위해서 묵클럽이 있는 거고요.
:: 모임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23길 40 지하 카페 <공상온도>
- 홍대입구역 1,2 번 출구 6분 거리
:: 일시 ::
2024년 3월 8일 금요일. 오후 8시 ~ 오후 11시
* 3시간 진행, 도중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모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가급적 (특히 첫 모임에는) 시간에 맞춰 참석해주세요.
* 카페 <공상온도>의 방침상, 기존 고객 퇴장 및 대관 준비 시간으로 인해 오후 7시 20~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오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준비물 ::
- 「민중의 적」 (헨리크 입센)
(구매 링크 - 예스 24)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