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 같은 어머니의 은혜를 되새기며
지천명을 살짝 넘겨 사는 내게는 지금 본가건 처가건 부모가 모두 안 계신다. 아버지는 내가 서른 살 때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마흔 살 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워낙 자식을 엄하게 대하셔서 기억이 별로 없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아주 자애롭게 대하였고 자식 부양에 헌신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숭고한 모습을 생각할 적마다 목이 멘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늘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는 부모의 소중함을 몰랐는데 막상 별세하고 나니 하해 같은 부모님의 은혜가 가슴 깊이 사무친다. 옛말에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교훈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바람이 차가운 겨울이 되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회한이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지내면서 때때로 허허로운 정신에 자양분을 채우려고 휴일이면 동네 도서관을 들르곤 한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는 많은 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볼만한 책이 제법 있다. 도서관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소설을 한 권 보게 됐다. 작가 신경숙이 쓴 ‘엄마를 부탁해’란 소설이다. 평소에 늘 나를 낳고 키워 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고 살다가 그 책을 보니 얼른 읽고 싶은 마음이 치솟게 됐다. 그래서 단숨에 읽었다.
기본 줄거리를 보자면 가족들은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고 만다. 엄마가 서울역에서 같이 다니던 아버지를 놓친 것이다. 올케는 설마 어머님이 길을 잃어버렸겠냐며 표지판을 읽고 찾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가족들은 엄마가 까막눈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 가족들은 궁리 끝에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기로 한다. 그러나 전단지를 만드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싸우게 된다. 엄마를 잃어버릴 동안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옥신각신한다. 그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고서야 뒤늦게 엄마의 무게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엄마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그들은 계속 엄마가 옛날 큰아들이 살던 곳에서 목격되었다는 제보를 받는다. 큰아들인 형철은 엄마가 목격되었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뒤늦게 엄마가 평생 자신에게 미안해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엄마가 그의 꿈을 절망시켰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고 슬퍼한다. 그는 좌절하며 엄마를 찾는다면 다시는 미안해하지 않게 잘해드리고 따스하게 보살펴 드릴 것이라고. 그들은 또한 엄마에게 자신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엄마는 가족이 모르게 생활비 중 일부를 떼어 내 다달이 고아원에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고아원에서 찾아온 여자에게 엄마가 종종 작가인 큰딸의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던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오열한다. 평생 말 못할 원망을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고 살던 아내, 부르튼 두 손만으로도 온갖 것들을 다 보살피고 일궈내었던 아내, 최근 몇 년 사이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은 듯 했던 아내가 생각난다. 복잡한 서울을 헤매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버지는 딸과의 통화 중에 아내가 있을 적에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한다. “니 엄마를 부탁헌다”고.
세상의 모든 사람은 엄마와 아빠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다. 그렇지만 엄마가 육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엄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나 그리움이 큰 편이다. 아빠는 바깥에서 온종일 일을 하는 관계로 자녀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일이 잦다. 물론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긴 하지만 대체로 자녀의 양육은 엄마의 몫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엄마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모든 엄마들은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고 희생한다. 자식을 잘 키워 이득을 보겠다는 엄마는 없다. 자식을 키우는 데 아무런 대가가 없고 오로지 내 몸처럼 보살핀다. 그야말로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자식을 키운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자식들은 부모의 은덕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는 데 열 자식은 한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불효를 저지르거나 심하면 방치 내지는 폭행하는 패륜아도 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형제자매도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하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에 늘 병마에 시달렸다. 자식을 낳은 뒤에 농사 일이 많아서 산후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나이 들어서 관절염과 골다공증에 시달렸다. 등뼈가 내려앉고 무릎 연골이 닳아 거동이 아주 불편했었다. 자식인 우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곤 했지만 노인성 퇴행성 질환이어서 근원적인 치료는 불가능했다.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데도 늘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랐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늘 자식 걱정이었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자식에게 주려고 애썼다.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효자 노릇을 분명하게 하지 못해 죄인이 된 기분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어머니는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처럼 여겨진다. 공기나 물은 평소에는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막상 위험에 처하면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곁에 있을 때에는 어머니의 사랑이나 가치를 모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비로소 불효를 후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 좀 더 좋은 구경을 시켜 드릴 걸, 맛난 음식을 사 드릴 걸, 친절한 말동무가 돼 드릴 걸 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계시지 않다.
나는 목욕탕에 가서 나이 든 어르신이 힘겹게 때를 밀고 있으면 어머니가 생각나 등이라도 밀어드린다. 그러면 그 어르신은 고마워 몸 둘 바를 모르며 ‘젊은이는 복 받을 것이여’를 연발한다. 어르신들이 수레를 끌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예사로 보이지 않아 거들어 드린다.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를 나이 든 어르신에게 정성을 베풀며 경로효친 정신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다. 젊은이는 줄고 노인 인구는 급격히 늘게 된다. 그러면 노인들은 알게 모르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그야말로 노인들은 비 맞아 길거리에 나뒹구는 가랑잎 신세가 된다. 가난, 질병, 고독에 시달리는 노인은 사회의 재앙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짙다. “노인 하나가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은 책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렇지만 노인은 우리의 부모와 같다. 젊어서 자식을 키우느라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해 노후 인생을 힘겹게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씀씀이를 조금 줄이면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예로부터 경로효친 사상은 우리의 고유한 미풍양속인데 급속하게 서구 문화가 들어오고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그런 미풍양속이 많이 퇴색해 버렸다. 부모를 유기하고 학대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남을 제치고 앞서가는 교육만이 최상이라는 그릇된 교육의 결과다.
이제부터라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효도는 백행의 근본임을 가르쳐야 한다. 효자를 찾아 칭찬하고 어르신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결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갖춘 스승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나도 이제부터는 더욱 어르신을 공경하고 여력이 남으면 경로당을 찾아 봉사활동이라도 펼치며 살고 싶다. 어르신을 공경하면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뿌듯한 마음으로 자식의 앞날을 축복해 주지 않을까 싶다. 자식이 부모께 효도하고 젊은이가 어르신을 공경하는 풍토가 이뤄진다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요순시대의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