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2시 반을 넘어서 문수선원을 나섰습니다.
점심공양을 거른 채 대혜거사님과 동행하여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 황포냉면집으로
내 몸 속에 잠복하고 있는
선천적 역마살의 족행신이 발동을 하는가 싶었습니다.
범어사에서 하산한 이후로 처음으로 가져보는
방랑길을 나서는 느낌의 주행이었습니다.
괜히 여행이라는 냄새를 풍기기 위해 남해고속도로 진영휴게소에서
별일없이 뜨내기들의 행렬에 섞이여 서성거려도 보았습니다.
그것도 잠시 진주에서 황포냉면 주인장 진각화 보살님이
기다릴 것 같은 생각에 오추마를 재촉했습니다.
카페 친절히 올려진 무상행 보살님의 안내문을 바보처럼 착오하여
진주IC에 내려야 할 것을 문산IC로 멍청히 내리고 말았습니다.
일순 아차 찾아가는 길이 수월치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잔꾀가 떠올랐습니다.
그 근처에 있다는 에이스침대 가구점을 기억해내고는
그 위치를 114에 물었습니다.
목적지가 에이스 침대가구가 아닌 황포냉면집이라
에이스 침대가구집에다가 위치를 묻는 것이 조금은 미안했습니다.
필시 에이스 침대가구에서는 저를 손님으로 아마 기다렸을 법합니다.
일단 그 주변도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쓰윽쓰윽 두어번 좌회전 우회전 하고 나니 황포냉면집이 보였습니다.
넓다란 황포냉면 전용주차에 주차를 하고 성큼성큼 출입문을 들어섰습니다.
오후 4시가 가까운 시간, 주인장은 기다림에 지치신듯
약간의 원망스런 안색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애써 전화번호까지 올려놓았는데 전화 한 통 없이 불쑥 도착하였으니까요.
황급히 주인장은 주방에 냉면을 시키시고 수인사를 하고 앉았습니다.
일켠 둘러보는데 확 눈에 뜨이는 것이 방자 냉면그릇입니다.
주석을 18%이상 구리에 섞으면 그릇이 깨어지는데
22%의 주석을 섞고도 깨어지지 않는다는
현대지식적으로도 설명이 힘들다는 신비의 방자유기
단순한 그릇에 불과하지만 놋그릇이 주는 느낌은
그 색상만큼이나 사람을 편하게 합니다.
더구나 황포냉면집 방자유기는 인간문화재의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O157 쇠고기 바이러스도 놋그릇에 담아두면 곧 죽어버리고,
농약이나 유독물질이 닿으면 파랗게 녹슨듯 변하며
해독을 해버린다는 살아있는 그릇.
그릇 하나에서부터 벌써 주인장의 음식솜씨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어서 설레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내어놓는 물김치의 조화로움과 깍두기의 되직한 양념에서
벌써 평범한 일반 냉면집의 얊은 냉면김치와 대별됩니다.
이윽고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나왔습니다.
기다리던 마음이 앞섰던지라 단단히 준비한 카메라에
사진을 찍는 생각마저 놓치고 휘휘 냉면을 말고 말았습니다.
아차 싶어 즉시 비파사나(?)로 생각을 되돌려
물냉면 그릇을 수습해서 일단 한 컷. 두 컷, 세 컷 끝.
사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먹는 일이 급했습니다.
식초를 국물이 아닌 면에 직접 뿌려야 맛이 있다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주인장은 겨자만 넣어 먹어야
국물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며 식초를 권하지 않습니다.
면발을 자르지 않고 즐기고 싶은데
대혜거사님이 싹둑 자르고 마십니다.
그것도 거푸 두 번씩이나 동작도 빠르십니다.
국물이 일단 맑습니다.
꿩육수를 쓴다고 합니다.
닭육수는 끓일수록 뿌옇게 탁해지는데
꿩육수는 끓일수록 맑아진다고 합니다.
마음 속에서 식탐이 동했는지 금새 후루룩 뚝딱입니다.
마음이야 서너그릇을 따라가고 싶은지 모르지만
배는 이미 불러옵니다.
먹을 때 냉면 맛에 대해 말은 나누지만
귀에 들리는 것은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깍두기를 집을 엄두도, 물김치를 먹을 생각도 놓쳐버리고 맙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고백합니다.
여지껏 쌓아온 수행이 고작 냉면 한 그릇에
영혼을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젓가락은 어느 새 또 다시
비빔면을 향해 스스럼없이 나아갑니다.
체면불구라는 말은 이러한 때 쓰이는가 봅니다.
짐짓 묻기도 합니다. 비빔면 양념에 대해,
그러나 젓가락이 이미 주인공이 되어있습니다.
단맛을 내는데 설탕이나 물엿을 쓰지 않고
지인이 직접 채취하는 순도높은 아카시꿀을 쓴다고 합니다.
역시나 싶었는데 점입가경 또 더하는 한마디에 더욱 놀랍니다.
금산에서 올고추 첫물을 수집하여 씨를 빼고 냉장보관하여
1년 내내 한결같은 맛을 낸다고 합니다.
문득 수행이란 필시 이렇게 진실하게 인생을 살고
소박하게 가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먹던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주인장을 쳐다보던 때가
바로 그 때인줄 기억이나 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릇을 거두고 진양호로 나서자시며
어른스님과 문수선원 몫으로 봉송을 챙기십니다.
크흐 천기누설 어른스님께 냉면 먹으러 간다고 말씀도 안드리고
후다닥 왔는데 죄면함에 송구시러워...
그래도 트렁크에 어른스님 냉면거리를 챙기고
진양호로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10분 여의 거리에 있는 진양호,
옛집 터 섬을 지나면서 진각화보살님은
무상행 보살님의 아름다운 싯귀를 소개합니다.
자귀나무 꽃도 호반을 따라 즐비하게 피어있었습니다.
아하 여기서 진각화 보살님이 그 구도 잘 잡힌 사진을 찍었구나 싶었습니다.
진수교 다리를 건너니 진각화 보살님 친구분의
"달 그리고 강"이라는 펜션과 카페가 보입니다.
카페 정원은 기묘한 소나무가 호수의 풍광에 운치를 더 합니다.
능소화도 피어 있고, 연꽃도 봉우리져 있고,
도라지가 오자미 같다고 말씀하는 각화보살.
카페 2층 한적한 곳에서 진각화 보살님의
고사리 수행기를 경청하면서 산새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확인했습니다.
대혜 거사님과 진각화 보살님과 그리고 저는
금생에 와서 어쩌면 서로 만나면서 사는 인연있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도 많이 연결되어 있던지...
날은 저물고 커피잔에 향기가 말라가면서
자리를 완사장터로 향하였습니다.
18만평이나 되는 차밭을 지척에 두고
지나치기는 싶지 않은데 시간상 그냥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차를 세우고 호반을 내려서면
지천일 것 같은 야생화의 유혹도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것이 꼭 칠면초인 듯해서
정말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미끄러지듯 두고 보았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완사 시장터,
어스름 속에서도 예사 시골장터가 아닌 성 싶었습니다.
죽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갈 만했습니다.
큰 우시장 있었다고 하니 진주 소싸움이 생각났습니다.
관심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어서 묻고 싶었던
진주소싸움 이야기로는 가지를 번지지 않았습니다.
시골장터나 옛날 운동회에서나 맛 볼 수 있었던 국밥은
8식을 일깨워 6식을 뇌란시키고 맙니다.
완사장터에서 식사를 마치고 아주 경건하게
먹던 수저를 가지런히 정돈해 보았습니다.
쪽바로, 쪽바로 여기서 우회전 쪽바로.......
진각화 보살님의 길안내는 큰길로 단순명료합니다.
지름길도 있지만 신호가 복잡하고 길도 복잡하기에
쉽게쉽게 그렇게 다시 황포냉면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저도 저렇게 단순명료하게 기신론을 강의하고 싶었는데
아직은 길을 잘 모르는 까닭에 어렵게만 강의를 했습니다.
오직 길을 잘 아는자만이 굵게 가르칠 수 있는가 봅니다.
극구사양에도 불구하고 흰봉투에는
"김일봉"이가 따라왔습니다.
잘 회향하겠습니다.
진각화 보살님 극진한 공양에 고마와 촌필을 두드렸습니다.
어제 먹었는데 지금 또 먹고 싶은 냉면은 황포냉면이 처음입니다.
체면불구하고 너무너무 맛 있었다고 거듭 말씀드립니다.
첫댓글 마음설레며 오후 3시가 지나도록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않는 스님 무정한 용학시님이시여 하며 체념하는 순간 거사님 한분과 쨘~~참말로 반가웠습니다. 대혜거사님께서 시계를 자꾸 들여다 보시지만 그 심중을 아는척 하지도 않고,,,ㅋㅋ 장 시간을 다녔는데도 왜 그리 아쉬움이 남을까요. 이 글 보신 모든 님들! 용학시님의 마음영상의 나라에 한번 다녀가십시요. 절대로 후회 안하실겝니다. 스님! 황포냉면 홍보위원으로 추대합니다.ㅎㅎㅎ 감사합니다. _()()()_
영혼을 황포 냉면에 맏길 만큼의 맛은 어떤 맛일까 !!! 맛난 냉면에 행복하셨겠습니다 스님 ^^*
용학시님의 황포냉면 여행기... 글을 읽는 내내 입안에 침이 고여 몇번을
키고 또 
키고...정말로 너무 하시옵니다 
... 어느날 문득 우리도 
....각하님, 기다려 주실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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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맛도 일품이지만 술술 써 내려가시는 나들이談도 냉면맛 못지 않습니더^^ 정말
뜨는 진양호에 한 번 가 보고잡습니더^^그런데 저는 공개적으로그렇게 냉면집 홍보를 해도 '홍보위원''홍'자도 들먹거리지 않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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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님 진짜 아부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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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많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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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냉면 맛에다 시님 마음맛에다 정말 금상첨화입니더^^ 
이담 제 2차 방랑길에는 동참하실 법우님들이 넘 많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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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부디 공고하시길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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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 냉면 맛을 보긴 봐야겠는데~ 진주 친구 일정이 어떻게 될려나~~~~~~
황포냉면 전국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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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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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화님 손맛이 전국을 강타하면 
온 염화실 법우님들은 침흘리게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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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님 무명수건 삣바늘에 꼽아가 챙기 놓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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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아주뭐 수일내에 다 없어 질낍니더...
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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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포 냉면맛 = 진주 여행(?)기 = 홍보 효과
조만간에 살포시 찾아들겠습니다. 맛보다도 스님의 말씀에 궁금해서리... 사진을 보니 실물을 보고 싶고, 실물을 보고 나면, 먹고 싶어질것 같습니다. ^^
묘연화님~~저희집에서 오리를 가야 오리집이 있습니다.ㅋㅋㅋㅋ 혹 지나시는 걸음이 있으시면 ...^*^
육수가 꿩 국물이라고하시니까 맛 있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