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人生)의 부귀영화(富貴榮華)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虛無)함을 이르는 말.
당나라(唐--) 현종(玄宗) 때
여옹(呂翁)이라는 도사(道士)가 있는데,
하루는 한단(邯鄲)이라는 곳에 있는 한 주막(酒幕)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허름한 차림의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들어와
한참 신세타령(身世ㆍ身勢--)을 하더니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 베개는 도자기로 된 것으로 양쪽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이 차차 커지는 것이 아닌가!
노생(盧生)이 이상(異常)히 여겨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훌륭한 집이 있었다.
노생(盧生)은 거기서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진사(進士) 시험(試驗)에도 급제(及第)하여
경조윤(京兆尹)을 거쳐 어사대부(御史大夫), 이부시랑(吏部侍郞)에까지 올랐다.
그는 한때, 모함(謀陷)으로 좌천(左遷)되기도 했으나
다시 재상(宰相)으로 등용(登用ㆍ登庸)되어 천자(天子)를 보필(輔弼)했다.
그러다가 모반(謀反) 사건(事件)에 연루(連累ㆍ緣累)되었다 하여 포박(捕縛)되었다.
그때 그는 고향(故鄕)에서 농사(農事)나 지을걸 하는 후회(後悔) 때문에
자결(自決)하려다가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몇 년 뒤, 노생(盧生)은 무죄(無罪)로 판명(判明)되어 다시 중서령(中書令)이 되고,
연국공(燕國公)에 봉(封)해져 천자(天子)의 두터운 신임(信任)을 받았다.
그후 다섯 아들과 십여 명의 손자(孫子)를 두고 행복(幸福)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환(老患)으로 죽고 말았다.
노생(盧生)이 언뜻 깨어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주모(酒母)가 끓이던 조(粟)가 아직 익지도 않은 짧은 시간(時間)이었다.
노생(盧生)이 이상(異常)히 여겨 「어찌 꿈일 수 있는가?」하자
여옹(呂翁)은 웃으며 「인생지사(人生之事) 또한 이와 같은 것이라네.」하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