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서 명 희
저녁을 먹고 나니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들어가 자라고 하였으나 뒷정리를 마쳐야된다는 생각으로 참기로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하듯이 주방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채 ‘비몽사몽’으로 들어가 자리를 깔고 누었다. 어느 사이 잠들었는지 모른다.
갑자가 핸드폰이 울려 시간을 보니 11시15분이었다. 잠결에 받았다. 손녀가 울면서 “할머니 제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 버리셨어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응 그것 쓰레기봉투에 담아 놓았지. 버리지는 않았어” 차분하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전화는 끊어졌다.
“어디요? 어디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 내가 실수를 했구나! 어떻게 수습을 하여야 하지! 몹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속상해서 울던 손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선명하게 가까이 들려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며 진정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버리지 않고 혹시나 하고 잠시 놔둔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가 얼마동안 찾지 않으면 버리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뒤척였다. 잠을 못잘 것 같았다. 언뜻 생각이 스쳤다.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할머니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지? 미안해! 앞으로는 절대로 버리지 않을께. 정말 미안하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잘자.”라고 마치면서 슬픈 표정을 담은 이모티콘과 사랑한다는 하트를 보냈다. 시간은 12시9분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문자를 보지 않았다. 마음은 계속 안개속으로 이어졌다. 폰만 들여다보았다. 10분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답이 왔다. 휴~~ 한숨을 돌리고
“고맙다.”라고 보냈다.
“넹”이라고 답이 왔다.
마음의 안개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편안해졌다.
만약에 버렸다면 생각을 하니 손녀에게는 상처로, 나에게는 미안함이 더해 죄책감으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버리는 것을 질색팔색 하는 남편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옷에 애착이 많은 남편이다. 청바지를 사놓고는 몇 해가 되어도 입지 않았다. 옷장을 열 때마다 눈에 거슬리었다. 하루는 큰마음을 품고 바지를 손에 쥐고는 분리해 놓았다 . 몇 달이 지났는데 찾는 기색이 없었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날은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의료수거함에 넣었다. 무엇이든지 버리고 나면 남편은 꼭 찾는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촉이 뇌로 전해져 마음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3~4년 전 바지를 찾는 것이다. 나는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제발 내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 내 물건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렇게 말해도 안 된다고 하면서... 무척 속상해하는 표정으로 온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이후로 며칠을 말을 안했다. 나 역시 미안해서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말을 못했다. 속으로 큰소리로 말할 뿐이다. ‘남들은 버려도 그때뿐이라는데 왜 집착을 하는 거지’라며 자신의 행동에 합리화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세월 탓인지 종종 잊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슬쩍슬쩍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다.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마찰이 많이 줄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에게 손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딸은 말했다. 초등시절 생각난다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소중하게 여겼던 빨간 하트 모양상자가 버려져 있어서 너무 화가 나서 말도 못하고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지저분하게 널어놓은 것도 아닌데 그 상자를 왜? 버리는지 엄마가 미웠다고 했다. 듣는 순간 “미안해”라고 하면서 웃었다. 지나놓고 보니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스로 정리가 되더라고 말했다. 딸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나의 버리기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막연히 알게 되었다. 그전의 나의 행동은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다. 일찍이 모친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성향인 듯싶다.
물건들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버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버릴 것이 없나’를 늘 살피며 단순하게 살아가자는 나의 지론은 나를 기분 좋게 해준다.
버림으로써 마음이 가볍고
버림으로써 헐거운 느낌이 들고
버림으로써 물건들에게 부대끼지 않으며
버림으로써 물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버림으로써 정리가 되는 공간들을 보면 풍요로운 마음마저 생긴다.
첫댓글 잘 버리는 사람이 가장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생각나네요.
그렇지만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깝고 소중한 것도 많지요.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하고요,
잘 버리고 잘 보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훈계를 들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