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국악에는 다른 나라 음악에서는 찾기 힘든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여러가지 특징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의 일부를 가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시음(始音)과 종음(終音)
양악은 대부분 약박으로 시작하여 강박으로 종지하는데 대해 국악은 한결같이 강박인 합(合)장단으로 시작하여 약박으로 종지한다.
(2) 종지법(從止法)
서양음악은 거의 상행 종지하나, 국악은 동도(同度)종지, 또는 4도 혹은 5도 하강(下降)종지법이 많고 때로는 계단식으로 차츰차츰 하강하는 종지법을 즐겨 쓴다.
(3) 리듬의 난이도의 차
서양사람이 쉽게 받아들이는 리듬은 한국사람에게는 어렵고, 반대로 한국사람이 쉽게 처리하는 리듬은 서양사람이 어려워하는 반대 현상으로 나타난다.
보기 ① ♩ ♩ ♩ ♩
② ♫ ♫ ♫ ♫
③ (* 점 8분음표와 16분음표 임)
④ ♩♪ ♩♪ ♩♪ ♩♪ (* 3연음부 임)
이상 네가지 리듬 가운데서 1의 리듬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2 3 4의 경우는 받아들이는 난이도가 서양사람과 한국사람이 서로 다르다.
즉, 한국사람에 있어서는 2의 리듬이 생리적으로 맞지 않고, 3의 리듬은 훈련받은 음악 전공자도 잘 되지 않으며, 4의 리듬은 음악적인 소양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양사람은 이중에서 2나 3의 리듬은 잘하나, 4의 리듬은 어려워 한다.
(4)요성(搖聲 - 弄絃)과 전성(轉聲)
국악 중에서도 특히 아악(雅樂)과 전라도 음악에 있어서는 어떤 음에서 4도 또는 5도 상행할 때 요성(搖聲; 絃樂器는 농현(弄絃)이라고 함) 또는 전성(轉聲)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요성은 한 박 이상일 때 나오고, 전성은 한 박 이내의 짧은 음에 나온다. 이중 요성법은 아악과 전라도 지방 음악에 있어서 그 쓰는 법이 약간 다르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5) 퇴성(退聲)
퇴성(退聲)이라 함은 어떤 음을 낸 다음, 조금 끌어내리는 소리이다. 전라도 지방의 판소리나 민요에서는 아악과 반대로 어떤 음을 낼 때 그보다 조금 높은 음에서부터 끌어내리는 점이 다른데, 이를 <꺾는 소리>. <꺾는 목>이라고 한다.
퇴성법은 계면조와 평조에 있어서 그 쓰는 자리가 각각 다르나, 하행할 때 끌어내리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계면조의 예만 들어보면 중심음의 5도 위의 음에서 하행할 때 퇴성법을 사용한다.
(6) 국악과 일본음악에 있어서의 搖聲法의 차
요성법에 속하는 것은 국악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일본음악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정반대 현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국악은 위로 향하여 △△△△꼴로 흔들고, 일본음악은 아래로 향하여▽▽▽▽모양으로 흔든다.
서양음악에서 국악의 요성에 해당하는 것을 찾는다면 <트릴>을 들 수 있겠으나, 요성과 트릴은 그 표현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위로 요성하는 소리는 여유가 있고 장자(長者)다운 느낌을 갖게 되나, 아래로 요성하는 소리는 모지고 각박한 느낌을 준다.
(7) 장식음
국악에서는 대체로 본음(本音)의 위로 붙는데 대하여 일본음악은 거의 본음의 아래에 붙는다. 더우기 전타음(前打音)을 낼 때 앞에서 낸 소리를 다시 낸 다음 낮은 음으로 떨어지는 장식법은 국악에서만 찾을수 있는 법으로서 일본음악이나 중국음악 또는 서양음악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법이다.
(8) 장단법
국악의 장단법은 서양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음악에서는 잘게 마디(소절)로 나누고 있으나, 국악은 장단의 한 회주(回周)가 단위가 된다. 국악의 한 장단을 서양음악식으로 잘게 나누게 되면 서양식 강약감으로 되기 쉽다.
그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3/4 1 2 3 1 2 3 1 2 3 1 2 3
아리랑 / 아리랑 / 아라리 / 요ㅡㅡ /
아리랑 / 고개로 / 넘어간 / 다ㅡㅡ /
나ㅡ를 / 버리고 /가시는님/ 은ㅡㅡ /
십리도 /못가서 / 발병난 / 다ㅡㅡ /
이같이 마디(소절)를 잘게 나누게 되면 강약의 자리가 뒤바뀌게 되므로 마디를 없애야 한다.
12/4 1 2 3 4 5 6 7 8 9 10 11 12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ㅡㅡ /
아리랑고개로넘어간다ㅡㅡ /
나ㅡ를 버리고가시는님은ㅡㅡ/
십리도못가서발병난다ㅡㅡ /
이와 같이 중간 마디(소절)를 없애고 12박자 한 장단이 단위가 되어야 한다. 판소리의 중몰이나 중중몰이의 장단이에 있어서 첫째박과 9 째박자에서 강하게 치는 이유는 그 첫 박과 9 째박에 오는 말이 강하게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말에서는 처음을 강하게 내므로 첫째박이 강해야 하고, 9 째박은 '간다', '님은', '난다'의 '간', '님', '난'이 붙는 자리이므로, 자연 9 쩨박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즉, 마디를 잘게 나누는 방법은 서양음악식이므로, 국악에 적용될 수 없다.
(9) 발음의 변화법
국악의 노래는 그 속도가 느릴수록, 가사의 발음이 변화된다. 이 발음 변화에 따른 음악적인 묘미와 형용하기 어려운 운치는 서양음악이나 일본음악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특징이라 하겠다.
단모음과 중모음의 발음변화의 예를 들면 대략 다음과 같다.
가. 단모음의 변화: 아 ㅡ> 아으, 어 ㅡ>오우, 우 ㅡ>우, 으 ㅡ>으, 이 ㅡ.이(단, 우. 으. 이는 변하지 않음)
나. 중모음의 변화: (1) 야 ㅡ> 야으, 여 ㅡ> 여으, 요 ㅡ> 요우, 유 ㅡ> 유(단, 유는 끝이 '우'로 발음되므로 변하지 않음)
(2) 얘 ㅡ> 야으이, 예 ㅡ> 여으이, 와 ㅡ>와, 왜 ㅡ> 와으이, 워 ㅡ>워, 위 ㅡ> 위(단, 와, 워, 위 는 끝이 '아', '어', '이'로 발음되므로 변하지 않음)
이상과 같은 모음변화는 다이나믹의 효과도 얻게 되고, 뒤끝서 섬세한 요성을 하여 실날같은 여운을 가진 유현성(幽玄性)은 형용하기 어렵다.
한편 한 음이 지속하다가 변음(變音)으로 바뀔 때는 매개모음(媒介母音) '아', 하', '어', '허', '오', '우', '후'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강약 및 음절을 변화성 있게 이어나가는 데에 조화를 이루며, 받침의 단자음이 절음형식으로 연주되는 효과도 얻게 된다.
5. 양악의 창법은 밝은 점은 있다. 그러나, 명암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슬기로운 멋과 동양적인 유현성과 한민족의 낙천적이고 장자다운 기품에 있어서는 우리 국악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상은 국악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의 일부를 소개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한국음악은 서양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중국이나 일본과도 판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 땅에 발을 붙이고, 한국의 향기로운 공기를 마시며 호흡하고 있다. 우리가 국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1982 '월간 문화재' 11월호)
* 참고서적: 운초 장사훈 박사 고희기념논문집 '예술과 학문의 만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