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10호BC 1805-BC 1915 |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창4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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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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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표정 요셉이 종으로 애굽에 팔려갔으나 재국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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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이주하다 이집트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최고의 대접을 받다 |
((BC 1876년경)-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왔던 한 소년이 30세가 되어 총리의 자리에 오르고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인 최고의 자리에서 이집트를 다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의 중매로 가정을 이루고 나라를 다스리더니 일곱 번의 풍년에는 곡식을 모아 창고에 쌓았고 일곱 번의 흉년 때에는 그것을 나누어 백성들에게 팔아 오히려 국가의 재정을 튼튼케 하였다고 한다. 이때 가나안 땅의 그의 형제들도 곡식을 사러 왔는데 이를 계기로 형제와 상봉하게 되어 이어 야곱의 그의 아들들이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집단 이민을 오게 되었다고 현지 소식통을 전한다. 요셉의 지혜로 국가난관을 이겨낸 이집트에서는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내로는 각 가정의 노비까지 그들의 이민을 반기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아브라함이 홀로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지 3대만에 70명의 가족으로 불어난 야곱 일가는 희망에 찬 이집트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사진은 최근의 요셉) |
■뉴스초점 |
그들은 왜 고센 땅에 머물렀는가? |
(기원전1815)-이집트에 들어온 요셉의 일가는 애굽의 북서쪽 고센지역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곳에 머물렀는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한 측근은 전한다. "이집트에 전에 없는 기근이 심해져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나 그들은 요셉의 지혜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제왕 바로의 오른팔로서 뛰어난 행정수완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창고에 비축해 두었던 양곡과 식용유를 백성들에게 팔거나 저리로 대부해주기도 하여 바로가 왕권을 강화시키는 데에 일조를 했습니다. 요셉은 그런 신임을 바탕으로 그의 일가를 애굽의 북쪽 초원지대인 '고센' 땅에 정착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그것이 궁금하여 요셉 총리와 인터뷰한 결과 "그것은 때가 되어 돌아가게 된다면 빠른 시간 안에 가나안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것이었다. 이는 그의 증조부인 아브라함이 이미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과 명령 때문이기에 어떻게도 바꿀 수 없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족장, 야곱이 제국의 왕을 접견하다 -지난 주 족장 야곱과 바로의 면담이 이루어지다.- (기원전 1815)-
고센 땅에 무사히 이주를 마친 야곱은 아들 요셉의 인도를 따라 바로가 사는 궁으로 들어가 제국의 왕을 접견했다. 지난 주 오찬을 겸한 파티가 바로의 성에서 열렸는데 130의 고령의 몸에도 불구하고 족장 야곱은 바로를 만나 그에게 인사하고, 바로는 족장 야곱에게 건넨 족장 야곱의 알 듯 모를 듯한 말이었는데 "저는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 130년이 지났습니다. 저희의 조상들 역시 그렇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 땅의 영화는 정말 구름 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바로에게 큰 축복의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야곱의 인사는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고관대작들과 외신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그의 진심에서 나온 체험적인 말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였다고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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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적-타임라인 - 유목민족이 국가를 이루기 어려운 이유
-잦은 이주와 양떼로 인해 떠돌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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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많은 곳에서 소와 양떼들을 치며 생활하는 부족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유목민들이라고 부른다. 소나 양떼들에 뜯어 먹일 풀을 찾아서 사철 이동해야 하는 이들은 자연히 한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더더구나 양떼가 많아지면 먹일 풀이 적어지고 또 이동도 힘들게 되므로 자녀들이 성장하면 어쩔 수 없어 양떼를 떼지어 멀리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 관계로 유목민들은 국가를 이루기가 어렵다. 아브라함 대부터 히브리부족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식구가 많아지면 자연히 서로 다른 집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여호와의 언약은 성취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한 것이다.
유목민<nomad>(遊牧民)
지구상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민족이 많이 있다. 일정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하여 항상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옛날부터 건조지대 초원이나 반사막지대에 거주한 민족. 몽골·중앙아시아·페르시아·아라비아 등지에 사는 민족은 유목생활을 해왔으나, 지금은 전적으로 유목에 종사하는 민족은 적다. 한 가지 예로 몽골 민족은 BC 3세기 흉노시대로부터 유목생활을 해왔지만, 지금은 유목에서 정착(定着) 목축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유목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며, 호메로스의 작품에 보이는 키메리아인, BC 8세기경 스키타이인(人) 등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 밖에 아리아계의 스키타이족, BC 3세기~AD 1세기 몽골고원에 세력을 확장한 흉노족, BC 3세기 이후 이란고원의 신흥세력으로 등장한 파르티아인, 6세기 터키계 유목민인 돌궐족(突厥族), 사라센군(軍)의 근간을 이룬 유목 아라비아인, 10세기경 거란족(契丹族),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족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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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애굽으로 간 이유는? |
야곱은 일생을 떠돌이로 살았다. 그가 바란 것은 아버지로부터 장자권을 받아 가나안에 계속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지만 상황은 결국 그렇지가 못했다. 형인 에서를 속여 외삼촌 라반과 살던 일 등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로 앞에 가서 한 말은 그의 믿음을 보여준다. 즉 나그네 같은 인생 길을 살았으나 자신은 하나님의 인도로 언젠가는 가나안에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과 족장들이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고향을 바라보며 살았다고 그들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신앙을 따라 족장들은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하였고
또 그렇게 되었다.
청동기 文化의 급속한 확산 -세계의 판도를 바꾸다-
-기술 우선주의가 판치는 세상- (BC. 2000) 청동기 제작 기술의 유무가 부족국가 존폐를 바꾸고 있다고 한다. 청동기술은 이미 노아의 3대손 두발가인에 의해 처음 제련법이 발명된 이후 홍수로 인해 잠시 끊어졌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다시 그 기술이 급속히 개발된 이래 인근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국가의 정보통제로 청동을 제련하는 방법이 비밀에 붙여졌으나 국가와 왕조의 흥망이 걸린 문제라 기술자를 생포하거나 납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술이 유출되기 시작 이집트와 인도 그리고 중국에까지 그 기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의 통제아래 제조되고 있는 관계로 민간인들은 그 기술에 대해 전혀 접근할 기회조차 없어 기술 패권주의가 아니냐는 여론이 세게적으로 비등하고 있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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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를 다스리는 자 세계를 다스린다. |
-중국의 하왕조. '물과의 전쟁' 선포'
(BC 2000년경) 중국은 고대로부터 황하의 범람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황하가 가져다주는 유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년 겪게 되는 물난리로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질 지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선 하(河)왕조는 우 임금 때 세워진 이후 차수사업이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13년만에 들을 완성해 강의 범람을 상당히 막을 수 있게 되었다고 온 백성이 기뻐하고 있다. 이때부터 "황하를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다스린다."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뉴스초점
히브리족들 출산 급증 -히브리산모들은 왕성한 생산력이 세계 제일인 듯......... 이집트 고센 땅에 이민해 온 히브리부족은 대규모 정착촌을 형성했는데 인구가 날마다 급증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히브리족 산모(産母)들의 왕성한 생산력이라고 한다. 애굽의 경우 보통 한 가정에 2~3명 정도 낳는 것이 다반사인데 히브리부족의 경우는 보통 5~6명이고 많게는 12명까지 자녀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유자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장로들은 말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 1900년경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의 모래와 같이 자손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신 예언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러한 왕성한 생산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전한다
♧오늘의 뉴스 말씀이 인기 원로들 중심으로, 어린아이까지 확산 히브리부족의 자녀교육은 아주 특이하다고 한 연구자가 밝혔다. 4-5살때까지 모유를 먹이는가 하면, 어릴때부터 원로들이 전해주는 여호와의 말씀, 이야기를 외우게 한다고 한다. 이로인해 히브리부족은 아주 지혜가 뛰어나며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단결력도 대단하다고 한다. 그들은 며쟘은 장래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만족이 될 것이라는 신의 약속을 믿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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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속의 성경 |
?가장자리,경계+入안으로 들어감+人사람⇒
아담의 살속에 하나님의 손이 들어가 하와를 꺼냄.
창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 (살육) 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살중의 살이라... | | |
요셉
요셉이 태어난 해는
기원전 1915년일 것이다
(기원전 1876년보다 39년 전). 창세기 50장 26절에
의하면 그는 기원전 1805년에 죽었을 것이다
(기원전 1915년보다 110년 후).가장 뛰어난 민족이 될 것이라는 신의 약속을 믿고 있는데 ... | | |
힉소스족이 애굽을 지배하다 -지방수호신 '레'가 새왕국의 수호신이 되다-
요셉은 기원전 1876년경에 애굽에 노예로 갔다가 여러해 후에 통합되어 강력하게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 2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원전 1700년경 힉소스족(외부통치자들)이 애굽의 통치권을 확보했다. 「헬리오폴리스」를 자기들의 새수도로 정하고 지방수호신 「레」를 새왕국의 국가수호신으로 정했다. 「레」는 또 하나의 태양신이었으며, 미술가들은 그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머리위에 태양빛의 띠를 두른 매-인간(falcon-man)으로 그려놓았다. 그리하여 「힉소스」는 「레」를 사용하여 「헬리오폴리스」가 애굽전체를 통치하였는데 이는 당시 가장 이상적인 제정일치적 통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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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살아있는 비련의 신화
"오시리스" 책으로 출간,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습니다. | |
전차대회
금번국고성 경기장에서 전차대회가 개최됩니다.
이집트 시민 여러분 많은 관람 바랍니다.
일시: 내일 오전 11시
장소: 국고성 원형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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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형에서 출발, 미라보존이 목적
-현재 140여개의 피라미드가 세워져- |
(BC 1900년경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거론할 때 대부분 기자에 있는 세개의 대피라미드를 연상한다. 이들은 이집트의 제4왕조(기원전 2613-2494년) 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만이 이집트에서 건설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피라미드에 대한 신비를 해석하는데 중요하다. 이집트에는 1백40여개의 대소 피라미드가 건설됐으며, 현재 그 위치가 확인된 것만도 80여개가 된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이집트의 특이한 기후의 산물인 미라와 고대 이집트 인들의 내세관을 알아야 한다. 고대 초기 이집트에서 사망한 사람을 매장하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사막 경계 지역에서 시체를 약간 깊은 구덩이에 넣고 모래로 덮었을 뿐이다. 건조한 공기와 더운 모래의 접촉을 받은 시신에서 급속한 탈수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수의가 냣기 전에 자연적인 방법으로 미라가 만들어지곤 했다. 이집트인들은 우연히 육신이 보존된 미라를 발견하고 내세에서 생을 영위하기 위해 미라처럼 시신이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하기어렸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덩이가 커다란 무덤으로 변하고 관이 사용되자 시신은 모래와 직접 접촉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인공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보인다. 한편 공들여 미라를 만들어도 끊임 없이 불어 닥치는 사막의 바람이 무덤을 흩날려 버리고 재칼과 같은 동물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훼손하곤 했다. 그러므로 무덤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도 동시에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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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피라미드가 비어있는 이유 왕조 시대로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진흙 벽돌로 상부가 편평하고 옆이 경사진 무덤 '마스타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피라미드의 기원이다. '마스타바'는 사자(죽은 사람)가 환생할 때까지 영원한 삶을 누리는 직사각형의 묘다. 마스타바의 지상부나 지하부에 몇 개의 방이 있는데, 한 방에는 죽은 사람의 미라를 안치하고 다른 방에는 사자를 위한 물건들을 넣었다. 세계 최초로 돌을 가공해 만든 피라미드는 사카라 제3왕조(기원전 2천6백년경) 죠세르 왕 시대에 이루어 졌다피라미드의 건설 시기는 이집트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절정기에 달할 때였다.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했고 중앙집권체제에서 사회는 안정돼 있었다. 이 시대가 5백년쯤 계속되자 실질적인 지배자가 파라오에서 지방 제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파라오의 권위는 약해지고 피라미드는 약탈당하고 파괴된다. 심지어 자신이 건설하는 무덤의 부장품을 확보하기 위해 파라오 스스로가 선대 피라미드를 공개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
음력 대신 양력을 만든 이집트 -하루와 일년이 정해지면 그것을 나누어 신간을 계산-
(BC 최근 이집트에서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달력을 만든 방법은 하루의 길이와 1년의 길이가 정해지면, 이를 기준으로 시간 간격을 나누어 달력을 만든 것이다. 하루를 24등분한 것이 1시간이다. 하루 24등분 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다. 고대인은 밤과 낮을 각각 12등분했는데, 이것이 로마를 거쳐 전 유럽에 퍼져 지금까지 쓰이게 되었던 것이다. 또 1시간을 60등분해 1분으로 하고, 1분을 다시 60등분해 1초로 한다. 이러한 시간간격은 모두 하루를 등 간격으로 나눈 것이다. 나침반이 없어도 피라미드의 네 모서리를 동서남북에 맞출 수 있다.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막대기 하나면 방위를 알아내고, 하루의 길이와 1년의 길이를 정확히 잴 수 있다.
수 천년동안 써 온 정밀한 달력도 고대인들이 고안해낸 시간측정의 비법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
이것만은 알아둡시다.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파자는 생각은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처음으로 운하를 건설한 사람은 애굽왕 바로 세소쾌리스 1세 (통치기간 BC 1980-1935)였다. 당시 무역을 관장하던 왕궁에서 이웃과의 통상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폭 45m, 깊이 5m정도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서서히 모래층이 쌓이면서 쓸모 없게 되었다가 BC 600년경 애굽왕 느고에 의해 재건설되었다. 하지만 1만명의 희생이 따른 난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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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해설
파라오<Pharaoh>
고대 이집트 왕의 호칭. 《구약성서》에 자주 나오며, 어원은 큰 집이라는 뜻을 가진 ‘페르오’이다. 파라오는 고왕국(古王國) 시대에 이미 호루스(太陽神), 2여신(女神), 황금의 호루스, 상·하 이집트왕(卽位名), 태양의 아들(誕生名)의 다섯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왕은 신의 화신으로서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혈족결혼이 행해졌으며, 사후에도 신으로서 숭배되었다. 또 이념상으로는 모든 토지와 인민은 파라오에 속하였다. 파라오는 최고 신관(神官)임과 동시에 전쟁에 있어서는 최고사령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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