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상은 일제강점기 대표적 친일인사로서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막내아들입니다. 길상,직상이라는 두 형이 있는데 장길상은 고종때 사마시에 합격 규장각 직각벼슬을 하여 세간에는 직각양반,직각대감이라 불렀고 일인들과 같이 선남 상업은행, 조선사람들과 대구은행을, 자기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경일은행을 설립한 악덕 친일지주이자 기업인 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요새 선물(future's contract) 이라 불리는 쌀 선물 "기미"의 큰손이기도 헸습니다.
그 아들 장병천은 1923년 평양 명륜관 권번기생 강명화와의 연애 자살사건으로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의 호기심을 불러일우켰는데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서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김우진이 부관페리 선상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건보다 더 일찍 일어난 사건입니다.요새로 말하면 재벌집 아들과 룸살롱 아가씨의 사랑과 비슷한것이었죠.
직각양반은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강명화를 천한 기생의 신분으로 모멸하고 쫒아버렸는데 장병천은 다시 절세가인 강명화를 찾아 함께 일본으로 도피유학을 하다 결국 강명화가 온양온천에서 음독자살해 연인에게 장애가 되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장병천도 후에 온양에 가서 목숨을 끊어 비극적 종말로 끝나게 됩니다.
직각은 후사를 서자 병찬에게 물려주고자 고종사촌 동생에게 넌즈시 물었는데"형님 갑오개혁으로 국법이 적서를 가리지 않는데 모든것은 형님에게 달렸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문중을 모아서 서자 병찬으로 내 후사를 잇는다 하고 딱잘라 선포를 하십시요" 하니 그리하고자 마음을 굳혔으나 급사하는 바람에 이루지 못하고 나중에 문중의 반대로 종조카 세만을 입적하여 잇게 했으나 미국에 유학한 엘리트 치과의사 세만은 한국 재산을 팔아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병찬의 생모 참봉댁은 호의를 몰래듣고 고종사촌이 손님으로 올때마다 대접이 지극했었답니다.
장승원의 부친은 형조판서로 되어있으나 실직으로는
참의로서 요새 법무부 차관정도인데 이때부터 악질적인 토색질이 선산구미땅에서 일어났는데 예를 들면 얼룩소 숫소를 풀어놓고 산에 풀뜯으러 가서 자연교배를 통해 얼룩소가 동네에 여러마리 태어나자 2년쯤 지나 자기소라고 모조리 뺏었고 토지임대료 도지를 받을때 풍구를 건장한 하인 둘이 돌려서 곡식도 쭉정이로 날려가게 해서 도지 20말을 바치려면 22말을 가져가야 하는 악질지주였으니 그 죄업을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