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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유래 : http://blog.naver.com/townend/60052521407
< 織田信長 : 오다 노부나가 >
오와리(尾張)의 다이묘. 오와리(尾張)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후일 사이토씨를 제압한 다음은 기후죠(岐阜城)를 거성으로 하였고 아사이씨를 토벌하고 천하포무를 천명할 즈음은 아즈치죠(安土城)에 웅거하였다. 자식은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 기타바다케 노부카즈, 칸베 노부다카(神戶信孝)의 3남이 있음.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모반으로 혼노지(本能寺)에서 사망함. 누이동생은 이치히메(市姬)
< 柴田勝家 : 시바타 가츠이에 >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 천하포무를 달성해가는 노부나가 휘하에서 에치젠(越前) 지방의 영지를 하사받았음. 노부나가 사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공격을 받고 자결함. 아사이 나가마사(淺井長政)의 사망 후, 노부나가의 누이동생 이치히메를 아내로 맞이함.
< 羽丹長秀 : 니와 나가히데 >
노부나가의 부하.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에게 복종했으며 세키가하라 이전 가가(加賀) 고마쓰(小松) 성주가 되어 2만 5천석에 봉해졌다.
< 前田利家 : 마에다 도시이에 >
노부나가의 부하. 호쿠리쿠(北陸)의 에치젠 부츄(府中)성에 배치되었으며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에게 복종했고, 도쿠가와(德川)의 에도막부 시절에도 가가의 큰 세력이 되었다. 도쿄 대학의 아카몬(赤門)은 도쿠가와와 마에다간의 결혼 기념으로 세운 것임.
< 池田輝政 : 이케다 테루마사 >
노부나가의 부하. 노부테루(信輝)의 아들.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동군에 속하여 하리마 오십이만석의 큰 영주가 되었으며 유명한 히메지죠(姬路城)를 쌓았다.
< 豊臣秀吉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노부나가의 부하.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출세가도를 달림.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 신속한 장악력을 발휘하여 혼란한 일본을 통일함.
본래의 성은 기노시타(木下)였으며 이후 하시바(羽柴)를 거쳐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 성을 하사받음.
노부나가의 조카딸인 요도기미와의 사이에 유일한 아들, 히데요리(秀賴)를 두었으며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함.
< 堀秀政 : 호리 히데마사 >
노부나가의 부하.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에게 복속함.
< 德川家康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본래 미카와(三河)의 소대명, 마쓰다이라(松平) 가문으로 강대한 이마카와(今川)와 오다가와의 사이에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음.
오다 노부나가와의 튼튼한 동맹을 바탕으로 주위의 강대한 세력들을 하나씩 제압해 가며 큰 세력으로 자라남.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의 명에 의해 미카와를 떠나 관동 에도(江戶) 지방에 정착하여 현재의 도쿄를 계획도시로 건설함.
세키가하라(關ヶ原) 전투 이후 히데요시의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고 세이이 다이쇼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되고 에도막부를 개설함.
슬하에 자식이 많았으며 적자인 노부야스(信康)는 노부나가의 명에 의해 할복하고, 2대 장군은 히데타다(秀忠)가 계승함.
< 服部半藏 : 핫토리 한죠 >
이에야스의 심복. 닌자로 이에야스의 오른팔을 담당함. 이에야스는 핫토리 한죠에 대한 고마움으로 현재의 도쿄에 한죠몬(半藏門)을 세움.
< 酒井忠次 : 사카이 다다쓰구 >
이에야스의 휘하 맹장. 도쿠가와 사천왕(四天王)중의 일인이며 미카와 요시다(吉田) 성주가 됨.
< 大久保忠世 : 오쿠보 타다요 >
이에야스의 부하. 오쿠보가는 계속하여 이어져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짐.
< 本多平八郞忠勝 :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 >
이에야스 휘하 맹장. "이에야스에게 과분한 것이 있으니 바로 타다카츠이다" 이란 말이 세상에 있었을 만큼의 출중한 무용을 뽐내었으며 히데요시로부터도 "비할 데 없는 무용"이란 극찬을 받았다.
< 鳥居元忠 : 도리이 모토타다 >
이에야스의 심복. 이에야스의 순푸죠(駿府城) 인질 생활때부터 이에야스를 보필하며 함께 생활하였음.
< 今川義元 : 이마카와 요시모토 >
미카와, 도토미(遠江), 쓰루가(駿河)의 삼국태수로 막강한 세력을 배경으로 야망을 불태우며 상경의 장도에 올랐으나 유명한 오케하자마 전투(桶峽の會戰)에서 노부나가의 기습을 받고 전사함. 요시모토의 전사로 인해 이에야스는 독립의 기회를 얻었으며, 요시모토 사후 이마카와 가문은 몰락함.
< 正伊直政 : 이이 나오마사 >
도쿠가와 사천왕의 일인. 뛰어난 무용을 보였으며 이이군은 빨간 갑옷을 입고 있어 적진에는 "빨간 귀신 이이"로 통하였음.
< 竹中半兵衛 : 다케나카 한베에 >
히데요시 휘하의 책략가. 쿠로다 칸베에(黑田官兵衛)와 함께 히데요시의 두뇌로 활약.
< 明智光秀, 明智左馬助秀滿 : 아케치 미쓰히데, 아케치 사마노스케 히데미쓰 >
노부나가의 부하였으나, 혼노지를 급습하여 노부나가를 사망케 하였다. 히데미쓰는 미쓰히데의 조카로 유명한 비디오게임 오니무샤(鬼武者)의 주인공 모델이 되었다.
< 赤松 : 아카마츠 >
긴키(近畿)의 거대한 다이묘 가문.
< 足利義輝, 足利義昭 : 아시카가 요시테루, 아시카가 요시아키 >
세이이다이쇼군으로 쓰러져가는 아시카가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마지막으로 지킨 쇼군. 요시테루는 당대의 뛰어난 검법가였으나 숙적 미요시(三好)씨의 기습을 받고 고군분투하다 전사함. 요시테루의 동생 요시아키는 무로마치 막부 최후의 장군으로 막부 완전 몰락 이후 히데요시의 부하가 되었다가 쓸쓸히 사망함.
< 京極 : 교코쿠 가문 >
오미(近江)의 유서 깊은 가문이었으나 본래 부하였던 아사이(淺正)씨의 일취월장으로 지배권을 상실함.
< 淺井久政, 淺井長政 : 아사이 히사마사, 아사이 나가마사 >
본래 교코쿠 가문의 부하였으나 세력이 강대해지며 오미(近江) 일원의 강자로 부상했다. 아사쿠라(朝倉) 가문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동쪽의 사이토(齋藤) 가문과 대치했다.
나가마사는 노부나가의 누이동생 이치히메를 아내로 맞아 노부나가의 매제가 되었으며 이로써 아사이,오다 동맹이 형성되었으나, 노부나가의 호쿠리쿠 공략 때, 아사쿠라와 오다 양당간의 어느편을 택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으며, 그간의 깊은 유대를 끊지 못하여 오다와의 동맹을 파기, 노부나가를 위태롭게 하였으나 이후 노부나가의 반격을 받고 가문이 몰락하게 되었다.
이치히메와의 사이에 삼녀를 두었으며 이중 장녀는 훗날 히데요시의 애첩인 요도기미(淀君)가 되었다.
< 毛利元就 : 모리 모토나리 >
쥬고쿠(中國)를 평정한 희대의 지장이자 용장. 아키(安藝, 현재의 히로시마)의 미약한 세력으로 출발하여 기존의 서국 최대의 다이묘인 오우치(大內)씨를 흡수하고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숙적 다케다(武田)와 펼친 기습전은 '서쪽의 오케하자마'로 불리우며 모리씨의 빛나는 미래를 미리 보여준 전투이기도 하였다.
이남과 삼남을 각각 명문 기쓰카와(吉川), 고바야카와(小早川)의 양자로 들여 이 두 집안을 모리씨의 분가로 삼았으며 장남, 이남, 삼남을 앞에 두고 집안의 화합과 협동, 단결의 소중함을 가르친 이른바 "세 화살의 교훈"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 尼子經久 : 아마코 쓰네히사 >
오우치씨와 함께 서국 제일의 세력을 다투던 산킨(山陰)의 막강한 다이묘. 쓰네히사 사후 아마코씨는 결국 숙적 모리씨에게 제압되어 사라져갔다.
< 大內義隆 : 오우치 요시타카 >
서국 제일의 다이묘. 광대한 영지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막강한 세력가였으나 부하, 스에 하루카타(陶晴賢)의 배신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다. 이후 스에씨는 모리씨에게 제압되어 오우치의 세력은 고스란히 모리씨에게로 옮아갔다.
오우치의 기원은 백제계로 알려져 있다.
< 長宗我部國親, 長宗我部元親, 長宗我部盛親 : 쵸소가베 쿠니치카, 쵸소가케 모토치카, 쵸소가베 모리치카 >
토사(土佐)의 다이묘. 숙적 모토야마(本山) 가문을 격파하고 토사를 통일하였으며 시코쿠(四國) 전역에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하였다. 모토치카는 곱상한 외모와 행동으로 문중으로부터 "공주"라는 비아냥을 샀으나 전투에서는 뛰어난 무용을 뽐내며 수많은 적들을 굴복시켰다.
세키가하라 이후 몰락하였으며 쵸소가베가문의 실력과 위용은 많은 낭인들이 모리치카 주위로 몰려들게 하였다.
< 兒玉就英 : 고다마 나리히데 >
모리 가문 휘하의 명장. 특히 수전에 매우 뛰어나 무라카미(村上), 쿠루시마(來島) 가문 무장들과 함께 막강 모리군의 수군을 지휘하였다.
< 宇喜多秀家 : 우키다 히데이에 >
히데요시의 부하. 히데요시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는 진주성 공격을 지휘하였다. 세키가하라 이후 몰락하여 쓸쓸히 생을 마쳤다.
< 武田信玄 : 다케다 신겐 >
카이(甲斐)의 호랑이로 불리웠으며 다케다 가문의 기마대는 전국 시대 최고의 무용을 뽐냈다. 유명한 '風林火山' (빠르기는 바람과 같으며, 조용하기는 숲과 같고, 침략은 불같이 맹렬하며, 움직이지 않기는 산과 같다) 의 전법술을 애용하였다.
도쿠가와를 압박하여 거의 괴멸 직전까지 몰았으나 진중에서 신겐이 급작스레 병사, 이후 가권은 가쓰요리(勝賴)에게 이어졌으나 신식기술을 이용한 노부나가의 철포대 앞에서 다케다 군은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 上杉謙信 : 우에스기 겐신 >
에치고(越後)의 용. 전쟁의 신이라 칭송받았으며 다케다신겐과는 숙명의 라이벌이었으며 카와나카지마(川中島)의 전투에서는 직접 칼을 뽑아들고 신겐의 진영으로 쳐들어가기도 하였다.
본디 나가오(長尾)씨였으나 호죠(北條)로부터 끊임없이 침략당하던 당시 관동관령, 우에스기 노리마사(上杉憲政)로부터 우에스기씨를 양도받고 새로운 관동관령이 되었다.
유명한 속담인 "적에게 소금을 보낸다" (다케다 영지에 소금이 없어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숙적에게 소금을 보내었음) 의 주인공이며, 겐신 사후 가권은 카게카쓰(景勝)에게 이어졌으며 영지도 아이즈(會津)로 교체되었다.
< 眞田幸隆, 眞田信幸, 眞田幸村 : 사나다 유키다카, 사나다 노부유키, 사나다 유키무라 >
다케다 가문의 두뇌로 다케다를 지탱한 유키다카로부터 시작한 사나다가는 유키다카의 2남, 유키무라에 이르러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명을 떨쳤다. 사나다의 가문 로쿠몬센(六紋錢)은 지금도 가장 위대한 무장의 표본이 되고 있다.
< 伊達輝宗, 伊達政宗 : 다테 테루무테, 다테 마사무네 >
오슈(奧州)를 통일한 '외눈박이 용'.
아버지, 테루무네는 아들 마사무네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마사무네가 열여섯살이 되었을 때 모든 가권을 물려 주었다.
다테 마사무네는 이후, 주위의 쟁쟁한 라이벌인 모가미(最上), 하타게야마, 아시나(蘆名)등을 복속시켰으며 오슈 최고의 실력가로 떠올랐다.
이후, 오슈 정벌에 나선 히데요시에게 복속하였으며, 마사무네는 평소 "내가 20년만 일찍 태어났었어도 천하는 나의 것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전한다.
이후, 센다이(仙臺)를 거점으로 활약하였으며 지금도 일본 센다이시에는 다테 마사무네의 동상이 서 있으며, 센다이 월드컵 경기장의 지붕도 마사무네의 투구 장식을 모티브로 삼았을 정도이다.
< 北條氏康, 北條氏政 : 호죠 우지야스, 호죠 우지마사 >
희대의 풍운아 호죠 쇼운(北條早雲)으로부터 출발한 호죠씨는 오다와라(小田原)성을 거점으로 삼고 관동의 쟁쟁한 실력가로 부상하였다.
호죠가 3대 우지야스 때 세력을 더더욱 굳건히 하였으며, 이마카와, 다케다, 호죠의 3가문 동맹을 통해, 주위의 사다케(佐竹), 우에스기씨와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4대 우지마사에 이르러 항복을 강요하는 히데요시의 압력을 무시하고 무리한 전쟁을 벌이다 끝끝내 패전, 할복함으로써 호죠 5대 120년 역사도 막을 내렸다.
< 宗義智 : 소우 요시토시 >
대마도 도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사위가 되었으며 조선과의 외교 통상을 실무적으로 총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봉 고니시와 함께 침략하였으며, 종전 후는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썼다.
< 島津貴久, 島津義久, 島津義弘, 島津家久, 島津歲久 : 시마즈 다카히사, 시마즈 요시히사,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 이에히사, 시마즈 토시히사 >
시마즈 요시히로는 뛰어난 전술전략으로 전 큐슈(九州)를 벌벌 떨게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천에 주둔하며 조선군에 많은 피해를 안겼다.
아버지 다카히사는 분열된 시마즈 집안을 정리하였으며, 그의 아들 요시히사는 뛰어난 동생들과 함께 주위의 이토(伊東), 오토모(大友), 키모츠키(肝付), 류조지(龍造寺)등의 난적들을 하나씩 제압해 가며 전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요시히사 대에 히에요시에게 복속하였으며 요시히사 사후, 동생 요시히로가 가권을 물려 받았으며, 이후 세키가하라에 패배하여 세력이 많이 축소되었으나 그래도 무시못할 다이묘로 계속하여 큐슈 남부에 웅거하였다.
시마즈는 이후 류큐(琉球) 왕국을 정복하였으며 요시히로가 임진왜란 때 끌고간 조선 도공들은 시마즈의 본거지, 사쓰마(薩摩)를 일본내에서도 손꼽히는 도요지가 되게 하였다.
< 大友宗麟 : 오토모 소린 >
붕고(豊後, 현재의 오이타 현)에 웅거한 큐슈의 세력가. 시마즈와 숙명의 라이벌이었으나 오토모는 점차 시마즈에 밀려나게 되었다.
< 立花宗茂 : 다치바나 무네시게 >
오토모 가문의 부하. 뛰어난 무용으로 무적의 시마즈에 여러번 패배의 쓴맛을 안겼다.
< 鍋島直茂 : 나베시마 나오시게 >
본래 류조지 가문의 휘하 무장이었으나 류조지 멸망 후, 독자적인 길을 걸었으며 천부적인 책략과 전술로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현재의 사가현(佐賀縣)을 자신의 영지로 만들었다.
< 龍造寺隆信 : 류조지 다카노부 >
히젠(肥前)의 곰으로 불리웠으며 전투에 빼어난 기량을 보였다. 이미 쇠퇴한 아리마(有馬)씨를 접수하며 히젠 일원의 세력가로 부상하였으나 숙적 시마즈의 벽을 넘지 못하고, 끝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 齋藤道三 : 사이토 도산 >
바늘 장수 출신으로 도키(土岐)씨의 상속문제로 어수선해진 미노(美濃) 지방을 재빠르게 장악하였다.
서쪽으로 아사이 나가마사와 대치하며,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를 사위로 맞아 오다-사이토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아들 요시다츠(義龍)의 모반으로 이나바산성(稻葉山城)에서 전사하였으며, 이후 요시다츠는 오다가의 공격을 받아 끝내 사이토 가문의 미노 지방은 오다가에 접수되어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근거지가 되었다
<<< Totalwar Shogun 2 등장 가문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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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그게 신기하더라구요 ㅋㅋ 전 신선조 보면서 갸우뚱하고 그랬습니다 ㅋ
신기할게 아니라...
그 가문이 그 가문인데요. ㅡ.ㅡ;;;
지역 이름이 사츠마 쵸슈(나가토)인거지... 가문은 그래도 시마즈와 모리.
이글을 공지로!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