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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자 : '07. 08. 11. 02:40 - 15:20 (12시간40분)
산행구간 : 은티마을 - 희양산 - 이만봉 - 백화산 - 황학산 - 이화령 [21km]
초저녁에 출발하였지만 행여 늦을세라 열심히 달려간다. 은티마을에 도착하니 1시가 좀 못 되었다. 주차장이 넓다. 그러나 텅비어 있다. 물러갔다던 장마가 한주내내 오락가락해 대간꾼들의 발목을 잡았나 보다.
[은티마을이 산행 깃점인 등산 안내도 - 5개의 명산이 서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것 같다]
집중 폭우가 우려된다는 기상대의 예보에 걱정을 가득 안고 왔었는데 날씨가 예상외다. 그믐께라 달은 뜨지 않았지만 별빛은 초롱초롱하다. 그냥 잠들기엔 좀 아쉽다. 옆지기와 함께 의자를 뒤로 넘겨 하늘을 올려다본다. 누워서 쳐다보는 밤하늘의 별이 이리 곱고도 아름다운 걸.
어린 시절 여름날 저녁 쑥대공 등 연기 많이 나는 풀과 나뭇가지를 모아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을 깔고 할머니 무릎을 베개삼아 누워 옛날 얘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던 그 때, 나를 내려다보던 그 별들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칠석이 며칠 안 남았으니 견우와 직녀별도 어름 짐작해 보고 카시오페아 자리의 전설도 더듬어 본다. 그러나 별은 그 별이로되 나에겐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옆지기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높아진다. 나도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되는데....
칠흑같은 어두운 밤이다. 삼라만상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축시 무렵. 구왕봉과 희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사이의 협곡 지름티재.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암반이 기름칠한 것처럼 미끄럽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들짐승과 새들도 가까이 하기 어려워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시각에 지름티재를 향해 나는듯 오르는 점이 하나 있다. 하나가 아니다. 열대여섯명의 무림인들이 지름티재를 향해 오르고 있다. 뛰어난 경공의 소유자들이다. 순식간에 안부에 당도한다. 먼길을 달려 왔건만 숨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모두들 내공이 상당한 고수임에 틀림없다. 별빛에 그들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당금 무림의 지존 운해산장의 장주 운해일검, 산사랑파와 함께 삼각산 일대를 양분하는 한산도장, 여성으로만 조직된 귀연회를 중원에 우뚝 세운 안나사태. 취권으로 개방을 통일한 호산자....당금 무림의 초절정 고수들이 모였다.
왜? 이 밤에....그렇다. 산문을 폐쇄하고 봉산을 선포한 봉암사가 무림의 대소사에 관여하고 특히 무림의 성지 희양산으로 통하는 길마져 막아 많은 무림인의 원성을 사고 있어 봉암사의 방장 圓珠대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필요없는 오해와 살생을 피하기 위해 봉암사가 자랑하는 15나한진을 펼치기 전 새벽같이 오른다.
「멈추시오」 돌연 앞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한 떼의 스님들이 나타난다. 한차례 격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두 시로 맞춰놓은 알람이 요란을 떤 것이었다. 스님들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그 순간에도 그런꿈을 꾸다니... 이 때 밀려오는 잠은 산행을 포기하고 싶을만치 유혹이 강렬하다.
처음 오름길은 완만하다. 그러나 비가 와서 길이 패였다. 길인지 수로인지 분간이 어렵다. 30여분 부지런히 오르니 지름티재다. 버스로 한참을 올라와서 출발하여 거리가 짧다.
지름티재 - 십자로 안부이고 봉암사에서 출입금지 경고판을 세우고 무장 스님들을 배치해 통행을 폐쇄하고 돌아가라고 하던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긴 산행거리와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스님들의 수행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으려고 스님들 잘 시간에 오른다. 헤드랜턴의 불빛마져 봉암사쪽으로 향하지 않게 주의하면서
목책앞에서 딱 한발자국만 안으로 디밀고는 몸을 훽 돌렸다. 더 이상 전진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경고가 보인다. 그래서 돌아서서 이화령까지 갈수 밖에 없었다. 죄라면 목책넘어 가느라 한발자국 뗀 죄밖에 없다.
지름티재에서 희양산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암릉구간을 통과하며 올라가야 되는 험한길이다. 길도 여러 갈래라 아차하면 해매다 알바할 위험이 많다. 거기다가 희양산 정상 갈림길 도착 약 200m전부터는 급경사 오르막(70~80도 이상) 암벽 및 흙 절벽을 로프와 나무뿌리 등을 붙잡고 기어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고군분투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칠흑같이 컴컴한 하늘만 보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로프와 나무뿌리에 의지해 조금씩 기어서 겨우겨우 올라가는데 바위가 물기를 머금고 있어 미끄럽기 그지없다. 미끄러지면 수백미터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극히 위험한 구간이다. 대야산 - 촛대재 구간보다 더 심하고 험한 직벽이다.
희양산(曦陽山 999m) 정상 갈림길에서 정상 정복은 한산님과 산과스키님 또 한분께만 맡기고 좌측 대간길로 돌아선다. 나중에야 희양산의 정상석이 갈라져 있고 짙은 운무사이로도 볼 것은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희양산을 떠나 이만봉으로 향한다. 한참을 내려오니 옛날 성터의 모습이 나타난다. 돌로 쌓았다. 성벽을 따라 진행한다. 곧이어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땀으로 온몸이 다시 젖어든다. 웃옷을 갈아 입는다. 반팔이다. 새벽이라 추울까봐 처음부터 입진 않았었다.
한달쯤 되었나? 신제품 등산복을 출시하기 전 그걸 입어보고 평가를 해줄 마루타를 뽑는다기에 백두대간을 하느라 하루 10시간 이상 땀흘리며 걸으니 제대로 평가하는데 나만한 사람도 없을거라며 신청했더니 티셔츠와 팬츠를 보내왔다.
말은 맞는 말이고 제대로 선정한거다. 대간꾼을 선정한 담당자의 선구안이 놀랍고 회사는 번창할꺼라는 예감이 든다. 그러나 공짜는 아니다. 사용후기를 제대로 올리라는 조건이 붙는다. 대간꾼답게, 대간꾼의 명예를 걸고 공정하고 또 냉정하게 평가할 예정이다.
시루봉을 지나면서 또 한번 갈등한다. 대간길에서 살짝 왼쪽으로 나 앉은 시루봉을 둘러 볼 것인가 말 것 인가로. 그러나 걸음이 늦은 나로 인해 다른분들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핑계로 못본체 이만봉으로 직진한다.
이만봉(990m)에 올랐다. 아직까지도 운해가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어림짐작으로 바로 코앞 저기쯤이 이화령임을 안다. 그러나 백화산으로 황학산으로 먼길을 돌아 돌아 가야한다
그러나 오늘 구간의 대부분은 고도차가 심하지 않은 완만한 평지성의 연릉으로 된 산중 고속도로라는 운해님의 설명에 천태의 다리가 완주를 무난히 해 내리라고 기대를 걸어 본다.
이만봉에 오르니 시장끼를 느낀다. 그러나 식탁이 마땅치 않다. 열대여섯명이 빙둘러 앉을려면 상당한 공간이 필요하다. 좀 가면 있겠지 한 것이 너무 멀어 결국 아점이 되고 말았다.
[희양산과 이만봉을 지나니 이제 한고비 넘겼다 이거지]
[아직 밤안개가 걷히기 전이라 몽환적 분위기]
[날이 밝아오자 햇빛이 힘겹게 안개를 밀어 올리고 있다]
이 구간은 너덜길이다. 바위가 쪼개져 자갈로 되기 직전의 상태이다. 억겁의 세월의 무게와 흔적을 말해준다.
[바위도 아닌것이, 자갈도 아닌것이....상차리기 참 고약허다]
허기에 지쳐 경사가 좀 있고 모두 앉기엔 좀 비좁긴 했으나 자리를 잡는다. 시장을 반찬으로 아침겸 점심을 맛있게 먹고 커피도 한모금 마신다. 힘이 생긴다.
백화산(1063.5m) 이다. 안내문을 보니 비상하다 먹이를 향해 날개를 모우고 급전직하하는 봉황의 부리 부분에 해당하는 명당 자리란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기념 촬영을 한다.
[아자! 아자! 봉황의 기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중]
[회장님도 봉황의 기를 뽑아 올리시는 것 같다]
명당터는 뭐가 좋아도 좋은가 보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큰 구렁이가 우리 앉은 곳에서 불과 1M 남짓 떨어져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외국에야 아니콘다, 비단구렁이, 코브라 등 크고 맹독의 뱀이 많지만 우리 산하에서는 구렁이가 절대 강자라 이놈이 겁나는게 없나보다. 꿈쩍도 않는다. 그러다 장정 예닐곱명이 모이자 그제서야 귀찮다는 듯이 몸을 풀어 스르르 바위틈으로 피해 버린다. 그간 많은 대간꾼들을 보고 상대했으나 이 사람들은 저를 해코지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걸 알기 때문일까?
연전의 어느 노인 상대 퀴즈 프로가 생각난다. 사회자가 문제를 낸다. 정력이 좋아지는 약은? 할머니 한 분이 재빠르게 정답하고 외친다. 그러더니 뱀이라고 하자 옆에 있던 출연자들 모두들 알고 있는 문제를 동작이 굼떠 못 맞힌양 억울해 하는 표정을 지으신다.
사회자 뱀 아니구요, 비자로 시작되는 말이라고 하자 그 할머니 다시 비얌. 사회자 아니 비자로 시작되는 네글자. 할머니 이제 끝내시겠다는 투로 자신있게 비야암탕....(저 여기서 자지러졌습니다)
[똑같은 길을 왔는데 내 쫄바지는 멀쩡한데 와이리 개판이고?]
[수줍은척 살짝 가려본다 그리고 속으로 한말씀 하신다. 강남멋쟁이 오늘 스타일 구겼다고]
백화산을 넘는다. 황학산을 지난다. 그러면서 오전에 못 보았던 전망, 여기서 조망한다. 한참전에 지나온 가은과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는게 신기하다.
[희양산쪽에 볕이 들고 그 볕을 받아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다음번에 이어질 구간을 미리 짚어 본다]
황학산을 넘고나니 환상적인 능선길이 조봉까지 이어진다. 이곳이 과연 백두대간일까 할 정도로 완만한 능선과 조림이 잘되어 특별한 경치를 보여준다. 감성이 풍부한 안나님과 망울님 소녀적으로 돌아가 풀밭을 뒹굴며 좋아라 하신다. 우리도 덩달아 젊어진다. 아니 어려진다.
[풀밭이 좋아 동심으로 돌아가 뒹굴어 본다. 멀리서 보니 여고생 같은 분위기가....]
[할매들도 분위기 잡는데 젊디나 젊은(?) 우리가 질수야 없다며 또 어린 시절로...]
[영가암~ 왜불러~오늘은 다리가 별로 안아파. 잘했군 잘했어]
[망울님은 겁이 없다. 꼭데기로 올라 가시는 걸 겨우....]
또 우리를 미안하게 만든다. 글쎄 은티부락까지 일부러 들르신댄다. 우리때문에. 두부찌개에 막걸리, 거기다 더덕주까지....양주보다 더 맛나게 먹는다. 금새 취한다. 도수높은 情 때문에. 情과 짬뽕말아야지
출발하기전 천태가 여기에서 기념 사진을 꼭 하나 남겨야 한단다. 은티 주막집 사장님의 다음에 또 오라는 인사를 뒤로하고 아쉬운 걸음을 뗀다.
[이 사람들이 다 왔다 갔습니까. 돈 마니 벌었겠네요? 이보다 더 많지요. 다음에 꼭 오이소]
[가는길에 본 석양 - 오늘의 날씨를 보상하려는지....]
오늘 하루 힘드셨나요? 그럼 성취감 또한 대단하셨겠군요. 바위솔님 표현대로 보약을 또 한채 먹었다. 천태는 죽암 휴게소까지 졸지 않고 잘 몰고 온다. 차가 밀려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휴게소에서 쉬어 가기로 한다.
첫댓글 대간길을 마치면 추억에 남을 만한 소중한 산행을 잘 기록해준 산행기 재미있게 보고갑니다.....나는 정말 무림의 고수가 되었나 하는 착각의 늪에서.........
저는 아직 사진 정리도 못했는데.... 참나무숲 아래 푸른초원이 눈에합니다
무림의고수로 표현을 한 산행기,,또다른 재미를 주게하는 대간산행 후기, 만태님의 후기야말로 백두무림의 고수...잼있게 잘보고 갑니다,
아! 만태님 산행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끝에 넘 재미있고 날이 갈수록 심도 깊어짐을 느낌니다. 이 산행기 모아 우리 대간 끝낼 시점에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야겠어요. 베스트 셀러가 될 소지가 충분합니다.
영가암 다음부터는 좀더 다정한 포즈로 부탁혀요
멋드러진 산행후기, 갈수록 구수한 된장맛...
소박하고 정깊은 산행기 잘읽고 (2번이나)가요 참말로 매번 아깝네요만태님의 글솜씨*그런데 할매라니나 삐졌슴
이번 주에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