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2021.4.30.금
■코스: 능주 죽수서원-연주산
12봉~연주산11봉(268.8M,연주산 정상)~~~2봉~국사봉
(290.7M,연주산1봉)-Back
(원점회귀)
■구간거리/평균속도: 별첨
■후기: 죽수서원에서 올라 국
사봉 까지 오른 후 Back하여 원점회귀 했는데, 태풍급으로 부는 바람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선선한 기운을 느끼며 산
행을 마쳤습니다. 낮은 산이었
지만 12봉을 오르내리느라 다
소 힘은 들었습니다만, 오르내
리는 가운데 취 뜯는 재미에 빠
져 시간가는 줄 모르게 두어끼
는 먹을 만큼의 충분한 양을 뜯
었습니다. 하산하여 들른 들머
리인 소수서원 옆의 포충사는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문이 닫
혀 있어 멀찍이서만 보았고, 소
수서원은 인적은 없었으나 개
방되어 있어 들어가 보니 나름 관리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귀
광길에 처음 가 보았지만, 근처
에 있는 영벽정과 주자묘를 들
렀습니다. 영벽정은 지석강을 낀 멋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수백년된 왕버들나무 수십 그
루가 물에 닿을 듯 말듯 늘어져 있었고, 물에 비친 자태가 인상
적이었으며, 경전선 기차가 지
나갈 때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철교가 위치해 있었고, 또한 바로 옆에는 영벽정 산책
공원은 물론, 영모정 국궁장과 파크골프장이 있어 여행객들
에게 인기가 있을법한데 코로
나 여파인지 한가했습니다. 주
자묘는 규모도 상당했지만 신
안 주씨들이 잘 관리하고 있었
습니다. 광주 근교라서 접근이
쉽고 아기자기한 코스라서 적
극 추천합니다.
■차기 산행지: 전남 영광 송이
도- 왕산봉 트레킹
■산 소개: 연주산(連珠山,
269m)은 전남 화순군 중앙부
능주면 관영리와 한천면 정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신증동
국여지승람』(능주)에 "현의 동쪽 1리에 있다. 연주산 밑에 영벽정(映碧亭)이 있다. 김종
직의 시가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지』에 "현
의 동쪽 4리 연주산의 남록에 죽수서원이 있다. 중종 때 조광
조가 능성으로 귀양을 와서 죽
임을 당하였는데 후인들이 서
원을 건립하고 사당을 세워 제
사를 지내면서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을 같이 모셨다. 선조 때에 사액과 서적을 하사 받았다. 그 서쪽 언덕에는 석벽
이 강물에 닿아 있다."라는 기
록이 있다. 『호남읍지』에 "연주산은 화순 천운산에서 나
와 주의 동쪽 2리에 있으며, 주
의 안산(案山)이다."고 기재하
고 있다. 『1872년지방지도
』에 연주산이 영벽강 우측에 묘사되어 있다.
○죽수서원(竹樹書院)은 전남 화순군 한천면 모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전라남
도 문화재자료 제 130호이다.
1986년 9월 29일 전라남도 문
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
다. 이 서원은 조광조(趙光祖)
와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을 배향하고 있다. 1570년(선
조 3)에 능성현령 조시중(趙時中)의 협조로 지금의 자리에 서
원을 짓고, 죽수(竹樹)라는 사
액을 받았다.
조광조는 1519년(중종 14)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성현에 유배되었다. 이때 조
광조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함께 했던 양팽손도 관직을 삭
탈 당하고 고향인 능성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자연히 만나 서로 의리를 다지
게 되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유
배된 지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고 죽자, 양팽손은 몰래 시신
을 거두어 화순 쌍봉사 골짜기
에 장사를 지내고 마을에 초가
집을 지어 제자들과 함께 제향
하였다. 그러다가 1568년(선
조1)에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이듬해 문정(文正)
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함
께 조정에서는 조광조를 향사
할 서원을 건립하기로 하고 지
은 것이다. 1613년에 중수하였
고, 1630년 유림들과 조정의
김장생(金長生) 등이 뜻을 모
아 양팽손도 추배하였다. 그러
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
원철폐령으로 헐려 겨우 단을 마련하여 제향하여 왔다.
1971년 제주양씨 후손들이 도
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
원하였다. 1983년 다시 한양조
씨 조국조(趙國朝)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이 본래의 위치인 모
산리에 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9년에 동
재를, 1994년에 관리사를 신축
하였다. 경내는 중앙에 정면 3
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내
삼문과 좌우로 둘러진 담장이 있어 제향(祭享) 구역과 강학
(講學)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영벽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
확한 기록은 없으나, 양팽손
(1488∼1545)과 김종직(143
1∼1492)의 시로 미루어 조선 전기 관청에서 지은 것으로 추
정된다. 인조 10년(1632)에 능
주목사 정연이 아전들의 휴식
처로 고쳐 지었다고 전하며, 고
종 9년(1872)에 불타 버린 것
을 고종 10년(1873)에 새로 고
쳐 지었다. 이후에도 보수를 거
듭해 오다가 1920년에는 주민
들이 모은 비용으로 손질하여 고쳐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
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지붕
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
는데 3겹으로 처리한 것이 특
징이다. 둥근기둥(두리기둥)을 세워 마루를 깔았고 마루의 사
방에는 조각한 난간을 돌려 장
식하였다. 정자 안쪽에는 9개
의 현판이 걸려 있다. 계절에 따라 변화되는 연주산의 경치
를 비추는 지석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지
석강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
다." - 출처 : 문화재청 -
○주자묘: 전남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 연주산 기슭에 주자묘
(朱子廟)가 있다. 송나라 때 인
물 주자(朱子)를 배향하는, 우
리나라에 한 군데밖에 없는 사
당이다. 주자와 주잠, 정율성, 그리고 쌍봉사, 유마사, 천태산
, 적벽...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과 지명이
다. 남도땅 화순과 엮인다. 조
심스럽지만, 화순을 제2의 중
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