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성당
-기도의 벽돌로 지어진
허두환 경일시메온
가창 성당
2002년 1월
사동성당은
높은 종탑이나 단단한 벽이 아니라
한 줄기 간절한 기도로 시작되었다
모성당 경산성당에서 분리되었지만
그것은 뿌리에서 떨어져 나간 아픔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새로운 땅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라고
고요히 흩뿌리신 작은 씨앗이었다
아직 성전은 없었다
그러므로 기도는 더욱 깊어졌고
갈 곳 없는 마음들은
서로의 가슴을 성전 삼아 모였다
그해 여름
경산시민회관 소강당의
비좁은 강단 아래에서
사제의 강론은 깊은 종소리가 되었고
갓 태어난 첫 주보는
바람에 흔들리는 전단처럼
사람들의 손과 손 사이를 날아다녔다
그러나 신자들의 눈빛만은
어느 화려한 제단의 촛불보다
더 맑고 환하게 빛났다
첫 신부 박정근 테오디모
아직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맨땅에
먼저 무릎을 꿇은 사제는
루르드의 성모 앞에
묵주알보다 더 많은 간절함을 매달고
보이지 않는 기도의 돌멩이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렸다
성전은 돈만으로 짓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거친 나무를 깎아 십자고상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뜨거운 국밥을 데웠으며
누군가는 바다 향 밴 미역을 팔았다
어느 날에는 비바람 스미는 천막 아래
축축하게 젖은 땅을 딛고 서서
비에 젖은 옷보다 더 축축한 마음으로
성전 건립을 위한 정성을 모았다
어느 할머니는
지아비의 장례에 들어온 부의금을
한 푼도 덜어 내지 않고 봉헌하였고
또 다른 할머니는
칠순 잔치에서 받은 용돈을 아무도 모르게 꺼내어
조용히 하늘 쪽으로 밀어 올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다른 본당 입구의 천막 아래에서
주름 깊은 손과
땀 밴 손과
생활에 지친 손들이
작은 모금함 위에서
하나의 기도처럼 서로 만났다
그들의 기도에는 화려한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기에 더욱 깊었고
드러내지 않았기에 더욱 뜨거웠다
그 침묵의 기도가 지닌 무게는
저마다 짊어지고 온
삶의 십자가보다 무거웠다
묵주기도 백만 단
2002년 10월부터 기도는 밤낮없이 이어졌다
손가락 사이로 묵주알이 넘어갈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돌 한 장이 쌓였고
성모송 한 번이 피어날 때마다
사동의 메마른 둔덕 아래로
믿음의 뿌리 하나가 깊이 내려갔다
마침내 2004년 2월 15일
백만 단의 기도가 하늘에 가득 찼다
하느님께서는
작고 가난한 이들의 정성을 내려다보시며
“참 이쁘다”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해 가을 10월 31일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가
두 손 들어 축복한 그 순간
오랫동안 바람만 머물던 사동의 둔덕 위에는
성전 하나가 새벽의 흰 꽃처럼
기도의 향기를 품고 조용히 피어올랐다
그날 이후 사동성당은
벽돌과 시멘트로만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으로
흔들려도 놓지 않은 믿음으로
마르지 않은 눈물과
수없이 헤아린 묵주알로 지어진
하느님의 집이 되었다
기도가 깊은 만큼
사람의 정은 더욱 깊어졌고
정이 깊어진 만큼
서로를 붙들어 주는 믿음도
단단한 주춧돌처럼 깊어졌다
그리하여
돌 많고 척박하던 사동의 들에는
꽃보다 먼저 기도의 뿌리가 내리고
종소리보다 먼저 사람을 품는 사랑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이곳을 성당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곳을
가난한 마음들이 돌아와
마침내 하느님의 품에 얼굴을 묻는 곳
수많은 눈물이
한 줄기 기도로 다시 태어나는 곳
울지 않고서는
그 깊은 사랑 안으로 들어설 수 없는
하느님의 뜨거운 심장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