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야 미안하다”
어떤 본당에서 있었던 일.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나의 경솔한 행동에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 영명축일이라고 초등부 주일학고의 귀여운 꼬마들이 내게 쓴 편지들을 선생님이 예쁘게 철해서 가지고 왔다. 축하해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대부분이지만 한 편지를 읽고 가슴이 뜨끔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저는 oo 성당에 다니고 있는 6학년 ooo라고 해요. 신부님이 우리 성당으로 오신 뒤로 저는 신부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근데 그게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힘들었어요. 저번에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미사가 끝난 다음 큰 수녀님이 미사에 온 사람들이 앞자리에 앉지 않았다고 나무라셨는데 신부님이 마이크를 뺏어들고 미사할 땐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해야 진정하게 미사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요? 그런 모습의 신부님이 저는 정말 멋있게 보였어요. 저도 커서 신부님이 되고픈 마음이 들었어요. 만약 신부님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직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축일 축하드려요. 안녕히 계세요.
마이크를 빼앗았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는 말에 이어 나온 것으로 봐서 “신부님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신자들 앞에서 수녀님을 무안하게 하실 수 있나요? 그런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겁이 났어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겠어요. 실망했어요.” 라는 질책의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후하게 평가를 해 주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날은 내가 본당에 부임하고 나서 처음으로 평일 미사를 드린 날이다. 미사를 드리고 제의방에서 막 나오려고 하는데 수녀님이 신자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사 때 앞으로 모여 앉지 않고 흩어져 앉는다는 둥. 그래 가지고 신부님이 어떻게 집중하여 미사를 잘 드릴 수 있겠느냐,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는 둥, 신자석에는 연세가 높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계신데 신자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미사 참석하러 와서 왜 저런 잔소리까지를 들어야 하나? 그건 그렇고 미사에 온 신자들은 왜 성당에 오는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 하는가? 사람마다 자기가 앉아서 기도하고픈 자리가 따로 있을 텐데 말이다. 미사에 나와서도 앉고 싶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지정석에 앉듯 제약을 받는다면 어떻게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겠으며 또 기도를 잘 바칠 수가 있겠는가? 편안한 자리에 앉아 미사를 보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라고 매번 꾸지람을 들어야 하나? 신자들을 꾸짖는 소리를 제의방에서 나오다가 엿들으며 순간적으로 수녀님이 못마땅하였다. 그래서 수녀님이 이야기를 마치기를 기다려 마이크를 받아들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 미사를 드려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곧 후회를 했다. 아무리 내가 옳다하더라도 신자들 앞에서 수녀님한테 무안을 준 것 같아서였다. 며칠이 지난 후에 내가 생각하는 것을 수녀님에게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텐데, 그 때가서 신자들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텐데 하고 나의 경솔을 후회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수녀님이 신자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수녀님의 견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 전임자 신부의 견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일반 관례대로 수녀님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수녀님은 새로 부임해온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나 대신 그런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각양각색의 신부들의 기분을 맞춰주어 주느라 그때마다 앞에 앉아라 말라 말해야 하는 수녀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본당에서 수녀님들의 얼굴은 신부들이 만들어 놓은 얼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요 꼬마 놈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수녀님께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감지하지 못하였을 뿐더러 나의 행동이 수녀님으로부터 마이크를 빼앗아 든 것으로 비친 것이다. 순간 수녀님께 더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꼬마에게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꼬마야,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한 줄 감상
이제민 신부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어린아이의 칭찬 글 행간에 숨은 옳고도 마땅한 성찰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자세에.
첫댓글 *한 줄 감상
이제민 신부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어린아이의 칭찬 글 행간에 숨은 옳고도 마땅한 성찰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자세를 읽으며 신부님은 글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