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수고가 불타버렸는데/ 안희환
수고의 땀을 흘리면서 낙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입니다. 그것도 긴 시간 이어지면서 상황이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곤 합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처지에 있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빛을 발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란 각오로 하나님이 세워두신 사명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 존경하는 하나님의 사람 중 한 분이신 윌리엄 캐리가 그와 같은 분입니다.
윌리엄 캐리는 영국 Paulers Pury라는 마을에서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18살의 나이에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생을 드리기로 헌신한 그는 25살 때 목사님이 되었고, 후에 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가게 됩니다. 윌리엄 캐리가 인도로 갔을 때의 나이는 31살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에 가득 차 인도까지 간 윌리엄 캐리에게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먼저 그가 겪은 아픔은 5살 된 아들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선교지에 도착한지 1년 만에 아들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직 어린 아들이 있는 제 입장에서 아들은 잃은 윌리엄 캐리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얼마 뒤 윌리엄 캐리는 아들은 잃은 슬픔 이상의 슬픔을 또 다시 겪게 됩니다. 윌리엄 캐리의 아내가 아들을 잃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질환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힘을 북돋으면서 사역해야할 동역자인 아내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된 것입니다. 아내는 결국 죽고 맙니다. 아들에 이어 아내까지 잃은 윌리엄 캐리의 고통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처절한 눈물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윌리엄 캐리는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놓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사역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개종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역의 결실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나마도 결실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사역은 이어졌습니다. 특별히 영혼 구원사역과 더불어 인도의 언어인 벵갈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갔습니다. 1812년 3월 12일은 마침내 감격적인 날이 왔는데 윌리엄 캐리가 인도에 들어온 지 20년 이 되는 해이며 성경번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도 사람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선교본부에서는 인도에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를 보내 주었습니다. 이제 인쇄기가 인도어 성경을 찍기 시작합니다. 그 광경에 너무 감격스러운 나머지 윌리엄 캐리는 전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갔다 돌아온 윌리엄 캐리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쇄도중 일꾼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하였고 20년간의 수고가 성경번역 원고와 문법책과 사전이 불타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어느 누구라도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아들과 아내를 먼저 보낸 후 눈물 속에서 만든 인도어 성경이 불타버렸으니 이젠 소망이 다 사라져버린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윌리엄 캐리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 주님은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여기에는 한 줌의 재만 깔려 있습니다. 하오나, 주님. 저에게서 20년간의 땀과 수고는 거두어 가셨을지라도 다시 일할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거두어 가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성경번역을 시작한 윌리엄 캐리는 마침내 이전의 번역보다 더 훌륭한 번역본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윌리엄 캐리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윌리엄 캐리를 통해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분들은 세계 곳곳을 향해 복음 들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교의 세기가 윌리엄 캐리를 통해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