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원申史源(1732~1799)
승지 벼슬을 지낸 신일청의 아들로 1732년에 태어났다. 1753년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뛰어난 시작時作으로 이동운 황명곤과 함께 삼걸三傑로 불렸다. 1789~1791년까지 진산군수 로 있었다. 1791년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여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하는 위패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한 ‘진산사건’이 발생하였다. 홍낙안이 전라도 진산에서 윤지충과 외사촌 권상연이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했다는 소문을 듣고 진산군수 신사원에게 죄인의 체포와 가택수색을 요구하였다. 신사원은 같은 남인이며, 두 형제의 죽음을 막고자 두 사람을 달래며 불충과 불효를 추문하고 이단을 버리라고 설득했지만, 그들은 천주교가 진리임을 역설하면서 ‘절대로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여러 차례의 설득과 회유가 있었음에도 그들의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자, 진산 군수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전주 감영으로 이송토록 하였다. 이 사건으로 진산군은 5년 동안 군郡에서 현縣으로 강등되었고 신사원도 유배형에 처해졌다. 1796년 고부군수,1798년 정선군수에 제수되었다.
참고: 정민,눌암기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