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9장 1-30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나?(1-14절)
38-39장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이로움과 자연현상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동물의 세계에 나타난 놀라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트집 잡는 자’, ‘하나님을 탓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가 주장하는 것처럼, 욥에게 사람들 몰래 지은 죄가 있었거나 회개하지 않고 감추어둔 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옳음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오만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뵙게 되면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직면하니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3-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말씀이 38-39장에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욥의 반응이자 욥의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대답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욥은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욥은 스스로를 “나는 비천하오니”라고 고백합니다. ‘비천하다(카랄)’의 의미는 ‘작다, 가볍다, 보잘 것 없다’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직면하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직시했고, 자신의 삶과 존재가 꽤 무게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또한 자신의 인생에는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욥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오리까”라고 합니다. 이것은 욥이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와 바다와 자연현상, 동물의 세계 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의 의미입니다. 욥 자신은 자연현상과 동물들 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그 분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심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욥은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욥은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면 당당하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직면하고 보니 그것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입을 가린다는 의미는 “하나님, 제가 앞에서 너무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드릴 말씀도 많고, 정말 따지고 싶은 말도 많았었는데, 정작 하나님을 직면하고 나면 아무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모든 질문이 질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38-39장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마침표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6-7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38장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도 똑같이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38:3)”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허리를 묶다’는 것은 굳은 결심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대의 옷은 전부 통으로 되어 있어서 어떤 일을 제대로 할 때나 특히 전쟁터에 나갈 때는 반드시 허리를 띠로 동여매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그런 마음으로 답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9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하나님의 역설적인 이 질문들은 아주 강한 반대의 의미입니다.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는 “내 공의_판결을 결코 부인_비난할 수 없다.”는 의미이고,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는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결코 악하다 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는 “너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결코 없다.”,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는 “너는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결코 낼 수 없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그 주인을 이해하는 부분보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부분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10-1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너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며 영광과 영화를 입을지니라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들의 얼굴을 싸서 은밀한 곳에 둘지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이 부분은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빨리 파악이 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욥에게 내 대신 네가 하나님의 역할을 해 보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것인 위엄과 존귀로 화장을 하고, 영광과 영화의 옷을 입고서, 교만한 사람들을 꺾어서 비천하게 만들고, 악한 사람들은 짓눌러서 땅에 묻어 버리시라고 합니다.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면, 내가 너를 인정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짐캐리 주연의 2003년에 나온 영화가 있습니다. 휴가를 가신 하나님을 대신해서 1주일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을 대신하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일주일동안 전능한 힘을 이용해서 세상을 새롭게 바꿔보라고 했는데, 사람들의 기도소리가 귀찮아서 복권당첨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한꺼번에 들어주었는데, 1등에 당첨된 사람이 무려 40만 명이어서 당첨금이 17달러밖에 되지 않자 폭동이 일어나고, 여자친구에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달을 끌어당겼더니, 지구 반대편에서는 엄청난 해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전능함이 단지 능력이 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인간은 인간의 일을 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베헤못의 경이(15-24절)
15-24절은 ‘베헤못’이라는 동물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개역한글성경에서는 ‘베헤못’을 ‘하마’라고 번역했었습니다. ‘베헤못’이 어떤 동물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서, 개역개정성경에는 히브리어 그대로 ‘베헤못’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거대한 동물을 가리킴에 틀림없습니다. 1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욥은 물론 거대한 짐승인 ‘베헤못’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먹는다는 것은, 베헤못은 두 발로 걷는 욥과는 다르고, 또 먹은 것도 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16-18절이 이러합니다.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줄에 있고 그것이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얽혀 있으며 그 뼈는 놋관 같고 그 뼈대는 쇠 막대기 같으니
베헤못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그것이 동물 중에 가장 강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육상동물들 중에서 가장 강한 동물의 1-3위가 코끼리, 코뿔소, 하마입니다. 베헤못은 이 세 동물 중에 하나, 또는 이 세 동물을 합친 것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19-24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으뜸이라 그것을 지으신 이가 자기의 칼을 가져 오기를 바라노라 모든 들 짐승들이 뛰노는 산은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내느니라 그것이 연 잎 아래에나 갈대 그늘에서나 늪 속에 엎드리니 연 잎 그늘이 덮으며 시내 버들이 그를 감싸는도다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고대에서는 거대한 동물을 사로잡거나 죽일 때에는, 먼저 코를 꿰거나 틀어막아서 입을 벌리면 그 순간에 목구멍에 창을 찔렀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욥아, 너는 작은 동물들을 잡는 일도 쉽지가 않지? 특히 베헤못과 같은 크고 강한 동물은 잡는 것은 정말로 어렵지? 하지만 나는 베헤못과 같은 큰 동물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다스린단다.”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크고 강력해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약하기 짝이 없으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이시며,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분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것 3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생각과 길은 인간의 생각과 길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의 것보다 높음을 인정할 할 때에 비로소 겸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겸손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모르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신자반에서 배운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인생사용 설명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잘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어 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려가게 하시는 인생의 지도가 찢어지지도 않고, 색이 바래지도 않고, 닳아 없어지지도 않는 신묘막측한 은혜의 지도와 불가사의한 섭리의 지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색종이를 신실하게 붙이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직면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하고 비천한 존재인지, 그럼에도 우리를 버리거나 내치지 않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신 것을 알지만, 그 전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것을 깊이 인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고집부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여주시옵소서.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며,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것보다 높음을 알아, 매일 믿음으로 삶의 색종이를 붙여감으로 하나님께서 그려 가시는 인생의 지도가 은혜와 섭리의 지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가정과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한 날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