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니”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는 말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혼잡케 아니하고’는 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합니다.
주의 일꾼들은 수시로 잠시 검문하겠다고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호출이 되어
두 손 높이 들고 잡다한 것에 오염되어 있는 자신의 사상을 검색 받아야 합니다.
‘진리를 나타내므로’ 하는 말은 진리는 감추어져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한 일꾼입니다.
3절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복음은 드러낸 진리입니다. 쌀하고 밥은 다릅니다. 밥은 그냥 먹으면 됩니다.
성경은 진리라고 하는 말은 쌀을 두고 이게 밥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쌀이 밥이 되는 과정을 답습해야 하듯 성경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복음은 믿고 받으면 됩니다. 들으면 깨달음이 오고 수용이 됩니다.
그러나 망하는 자들에게는 가리어져 있습니다. 수건을 덮어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4절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은 이 세대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롬12:2)
문제는 이 세대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칼린 지브란이 풍자로 100년 마다 한 번씩 성경의 예수와 현실의 예수가
만나는데 그 때마다 너하고 도무지 이야기가 안 된다며 예수께서 떠나신 답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과 달랐습니다. 주님의 아버지와
유대인이 아버지라고 하는 이가 서로 다릅니다. 유대인들의 아비는 마귀입니다(요8:44)
그래서 베드로는 성령을 받아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합니다(행2:40)
성경에서 패역이라는 말은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악하다 하실 뿐 패역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씁니다.
따라서 새 언약을 모르고 겉포장만 잘 한 이 세대가 패역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6절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입니다(요1:18)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능력은 영원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만 그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질그릇인 우리 몸이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10-11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의 믿음을
갖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항상 지고 삽니다. 그게 사는 방법입니다.
‘산 자’ 곧 예수그리스도가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이 이루어진 자들입니다
요14:19절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진리의 영을 모시므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요14:20) 된 사람입니다.
자신의 목숨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숨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아담 안에 있는 목숨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맛본 사람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집니다.
그로 인해 예수의 생명이 정신에 나타나고, 몸에 까지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12절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바울의 사역의 원리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들은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으로 다른 이들의 연약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18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겉 사람은 후패 곧 점점 낡아집니다. 반면에 속사람은 날로 새롭습니다.
아담 안에 타고난 목숨은 점점 낡아져 쇠하여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듭난 피조물인 새로운 생명 곧 그 아들의 형상은 날마다 새로워져 갑니다.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과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이 양쪽 사이에 성도는 끼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이 영원하고 영광스럽고 중한 구원의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잠깐과 영원한 것 바로 옛 언약과 새 언약입니다.
육의 직분과 영의 직분에 대한 비교를 말하고 있기도 하는 겁니다.
어느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목사가 죽기 전의 설교를 들어보니 목회를
30년쯤 하고 나니 구원은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고백하더군요. 그리고 신학교에서 영화로워지는 것은 천국에 가서나
되는 것이라 배운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영광스럽게 되어 하나님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분은 문제를 제기하셨을 뿐 그만 방법인 새 언약을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이게 바로 이 세대라고 생각하면 질그릇인 우리 육체 안에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죽음을 짊어지므로 그 생명이 우리의 혼에
나타나고 또 우리가 살았기에 그 죽음에 넘겨주므로 그 생명이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로 나타나는 존재로 변화되는 영적인
장치인 새 언약이 우리의 몸에 장착이 되었음은 크신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