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풍자, 재치 있게 비판하자
3. 정치 풍자(2)
김지하는 김수영의 풍자 방법이 소시민 계층의 속물성과 비겁성, 그 끝없는 동요와 불안을 폭로하고 매도하였으며, 현실모순의 근원인 소시민성을 치열하게 고발하여 참된 시민성을 찾아내려는 진보에 열정을 보였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의 창작방법으로 풍자를 선택했지만 그 풍자라는 폭력을 권력집단이 아니라 민중 자체에게 가한다고 비판하였으며, 민중의 부정적인 면만 공격하고 민중 위에 군림하는 특수집단에 대한 공격은 포기하였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풍자는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 사실주의 정신의 산물로 저항문학이 되기도 합니다. 공격성은 풍자의 본질적 특징입니다. 김지하(본명 김영일, 1941~)는 1969년 《시인》지 11월호에 「황톳길」 외 5편의 시를 ‘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습니다.
그는 1970년 5월 《사상계》 5월호에 국회의원, 장관 등 특권층의 권력형 비리와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비판한 담시(譚詩) 「오적」을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 같은 해 특권 지배층의 방탕한 사치와 위선을 다룬 풍자극 「나폴레옹 꼬냑」을 무대에 올려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정치적 성격의 시와 희곡을 발표하고 연출하며 국가권력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그는 1980년 이후 생명운동과 율려사상 등 민족의 전통적 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문예미학의 대안을 생산하였습니다.
그는 시인의 비극적 표현으로서의 발현은 암흑시로, 희극적 표현에 의한 폭력적 발언은 풍자시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비극적 표현은 원래 귀족사회의 산물이며, 희극적 표현은 귀족사회에서 억압당했던 평민의식의 산물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는 올바른 저항적 풍자의 방향은 민중의 반대편을 주요 표적으로, 민중을 부차적 표적으로 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¹⁰⁰⁾
그의 시는 민족극인 탈춤은 물론 판소리 양식을 시에 수용하여 현실문제를 담아냈는데, 창자가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좀 길지만 완결된 판소리처럼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오적」 전문을 보겠습니다. 이 시는 비판성 때문에 풍자성이 강하지만 해학도 공존합니다.
‘오적’은 민중을 착취하는 지배계층을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으로 설정하고 을사오적을 패러디(모방적 인유)한 것입니다. 이들을 각각 미친 개, 곱사등이 원숭이, 돼지, 성성이, 병든 눈을 흘기며 다니는 형상으로 격하시킵니다. 동음이의 한자를 사용한 언어유희로 일갈하고 있습니다.
1
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겄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 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에 으뜸
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 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 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 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 쌓이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를 어디 한 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집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狾䋢)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 뀌며 아그작 아그작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 쳐서 실고추와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띔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 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 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 술수 뺨치겼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匊獪狋猿)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
정인숙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愚昧)국민 그리 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ㅡ
이어짐~
2024. 3. 3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