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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살길은 ?
--소설가 김제영--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스치듯 강물도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한강은 더욱 그렇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발자취가 부존적 관광자원으로 형성된 서울의 나들 목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훼손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오세훈 전 시장은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어 흉측 한 옴 두꺼비 같은 유락 시설로 강변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사색의 공간을 파괴해버렸다. 그게 한강의 르네상스인가?
‘세종대왕도 충무공도 발아래····도심을 날다’
이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을 보도한 2009년 12월14일 자 조선일보 정세영 기자의 기사 제목이다.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은 조선시대 가장 존경 받는 성군이요, 성웅이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서는 아니 됨으로 스승과 동행일 때는 조심스럽게 간격을 두고 걸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또한 사찰이나 성당 등 성역에서는 고성방가도 삼간다는 것은 우리의 기본 예절이다. 그런데 세계인을 불러들여 민족의 성군 성웅의 머리 위 바로 가까이에서 보란 듯 뛰고 날고 곡예를 하게한 발칙한 행사를 대통령은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칭찬을 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위대한 선조를 숭앙하는 국민정서를 말살하고 “예절이 밥 먹여주냐 인생은 즐기는 것이다” 청소년을 잘못된 길로 유도하는데 국고를 탕진했다. 그러한 오세훈 시장을 선망하여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지난 8월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때 성전(聖戰)에 임하기로 한듯한 전투태세로 주민투표를 독려 선두지휘를 했다. 정치이슈도 행정의 시행방침도 오세훈과 나경원은 일심동체이다. 하루 이틀에 바뀌는 게 아니다. 투표일이 코앞에 닥치자 나경원은 갈팡질팡 이다. ‘아나운서는 다 주어야 한다’하여 비난 받던 강용석을 박원순 죽이기 도구로 신명 나게 써먹더니 이제는 모체마저 부인하려는지 한나라당 파란 옷을 벗고 눈이 부시게 하얀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나경원이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외면 당하니까 유세 때도 한나라당 파란 옷을 벗어버리고 분홍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홍준표가 섰어야 할 위치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여의도 무슨 연구소 소장인가 하는 거물정치인이 나경원을 사랑으로 감싸듯 정중히 모시고 다녔다. 카멜레온으로 변신하는 정치인의 추한모습을 국민에게 보이지 않으려거든 한나라당은 나경원 후보를 자진사퇴 케 하라. 나는 1928년 생이다. 세상을 오래 산 경륜의 충고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끝> 2011.10.24.
박원순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검증 짚어보기짚어보기 김제영
ㄱ 병역과 양자(養子)
ㄴ 재벌의 후원은
ㄷ 학벌
ㄹ 사상검증
ㄱ 병역 박원순은 신화적 인물인가
병리검사실에서 현미경으로 병균을 감별하는 수고하듯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
후보 박원순의 케켸 묵은 가족사를 들춰내고는 박 후보가 병역기피를 했다고 장구치고 꽹가리 두들겨대는 한나라당을 바라다보며 아무래도 저들이 정신질환이거나 주변을 식별하지 못하는 몽유병의 징후가 아닌가 싶어 우려가 되었다.
“고위층 자제 군(軍) ‘꽃 보직’ 현상은 병역비리다”.
2011.9.7일자 경향신문 사설의 제목이다. “전방 현역들 박탈감 얼마나 크겠나”<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장 차관급 아들 중 40%가 상대적으로 편하고 안전한 ‘꽃 보직’ 에서 병역을 마쳤거나 복무 중>“이명박 정부들이 병역 의혹이 인사(人事)의 필수과목이 되었는데 이제 그 자식들마저 ‘꽃 보직’을 받아 병역혜택을 받고 있다” 보도된 병역관계 사회면 기사이다. 박원순이 꽃 보직을 받기 위해 이빨을 뽑았나, 다리를 부러뜨렸나. 13세에 읍 사무소에 가서 호적을 뜯어고쳤나 하도 어처구니가 없으니까 누군가가 ‘나경원은 병역을 피하기 위해 여자로 태어났나’ 비꼬았다. 200자 원고지 10매 는 써야 설명이 될 한나라당의 깡패 같은 행패의 급소를 찌른 그분의 촌철에 탄복을 했다.
양자(養子)관계
내 아버님은 6남매 중 차남 이셨다. 당숙에게 양자로 입적되면서 장남이 되셨다. 그들이 말한 쪼개고 붙이고의 꼼수 없이 내 백부도, 차남이었던 내 아버님도 안동 김씨 집안의 장자로 역할을 다 하셨다. 양아버지(당숙)가 돌아가신 후에도 양 어머님(당숙모)에 대한 내 부모님의 효심은 놀라왔다. 내 양 할머니께서 말년에 치매에 걸리셨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셨다 내 아버님은 직장 ‘예산여중 교장’으로 계셨고 어머님은 서울에서 내려오실 형편이 안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여학교를 졸업한 직후라 어머니를 대신해서 공주에 계신 양 할머니의 병수발을 들을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 차례 공주시내 개울에 가 얼음을 깨고 똥 기저귀를 빨았다. 손이 잘려 나가는 듯 시리고 아팠다. 그럴 때마다 덜덜 떨며 참아냈다. 양 어머님을 모셔야 하는 양자의 도리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소문은 빨랐다. 얼음을 깨고 양 할머니의 똥 기저귀를 빨아대는 손녀딸··· 청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아버님 제자로 공주에서 유명한 내과의가 있었다. 맏아들이 모 의과대학 수련의로 근무 중인데 약혼만 해두고 내가 원하는 시기에 결혼을 해도 좋으니 허락만 해달라고 양원장 부인이 내 집에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 부인은 공주에서 미인으로 지성인으로 모두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존재였다. 나 역시 그분이 참 좋았다. 그러나 결혼이야기가 불거지고 부터 는 대문에 그분의 기척만 느껴져도 소름이 끼쳐졌다.
호주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한나라당에서 양자의 가족관계를 부인하기에 내 가족을 예로 들었다. 양자(養子)제도는 수혜와 책임이 따르는 제례를 숭상하는 유교문화의 범주에 속한 한국전통의 관습법적 가족 관계라고 여겨진다.
ㄴ 재벌의 후원은 구속이고 부도덕인가
감세를 비롯 총체적으로 부익부 정책으로 재벌을 뒷바라지 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무슨 변덕으로 재벌을 부도덕의 대명사로 못박으려 하는지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전에서 드러낸 한나라당의 속내가 참으로 요상하다. 그 동안 박원순이 기여한 사회적 복지사업에 동조하여 기업인들이 그를 도왔으리라. 권력으로 재벌을 겁 박 하여 돈을 뜯어냈던 군사정부 혈통의 속성으로 한나라당은 박원순 후보에게 ‘재벌을 감시 해야 할 사회단체가 재벌의 후원을 받고 비판할 수 있나’ 가시 돋친 공격을 해댔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다 부정거래 일테니 한나라당 토박이들에게 양심이나 도덕적 양상이 눈에 비칠 리 없다.
뉴욕에 유학중인 애들로 인하여 미국을 드나들게 되면서 나는 전위예술의 메카 맨하탄 이스트 빌리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월간음악과 미술세계에 뉴욕의 예술인들을 소개하게 된 계기였다. 그 중에서도 재벌산업의 공해 유출을 경고하는 환경운동의 기수인 알랙스[Alex Mc Farlane]의 21세기 모형도시는 리얼리즘양식의 앙가주망적 작품으로 경이 로왔다. 거대한 공간에 조밀하게 세워진 높 낮음의 검은 구조물은 영락없는 무덤의 묘비요, 제석이다. 음산하다. 거기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서있지 않고 골목도 자동차 길도 강도 다리도 없다. 인기척이 없다. 죽음의 도시. 오싹 소름이 끼친다. 알랙스(Alex mc farlane)의 스튜디오를 방문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한 ART KOREA 1998년 11월호에서 알렉스 하고 의 대화 중 재벌의 후원이 부도덕인가 부분을 전제한다
“알랙스 당신은 부자인 모양이죠?”
“가난합니다”
“그럼 어떻게 작업을 해요. 소품도 아닌 대작들을요”
“콜랙터 들이 밀어줍니다. 특히 제네랄 일렉트릭 컴페니 에서 작품도 사주고 재료비도 대줍니다”
“놀라운 일이군요. 엘렉스 당신의 예술은 늘상 일랙트릭 컴페니 와 같은 파워에 대항하고 있지 않습니까.”“물론입니다. 내 질타의 대상들이죠. 저 죽음의 검은 도시 뒤에 숨은 공해유출의 원흉으로··· 하지만 그들은 도덕적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비판을 받아들이고 내 예술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공해업소와 내 예술의 상관관계 라고 할까요.”
민중미술의 중추적 작가인 홍성담 이 2009년 갤러리 평화공간에서 ‘야스구니 의 미망(迷妄)연작전을 가졌었다. 한일간에 매듭을 지어야 할 사안들이다.
나는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한다. 남들은 비행기가 뜨자 곧 잠에 빠지기도 하는데 나는 아무리 잠을 청해도 외려 눈이 말똥말똥 샛별 같아져 버린다. 비행 중 기류의 흐름이 약간만 느껴져도 가슴이 철렁한다. 비행기가 공중 산화하면 어쩌나 아슬아슬한 공포증을 극복하고 비행기가 목적지에 안착했을 때의 안도감과 행복감은 형언할 수가 없다. 귀국시의 항공가방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내게 매우 주요했다. 비행 중에 겪은 불안감의 고통을 상쇠하고도 남을 실리의 효용적 가치물을 담아가야 했다. 그래서 시작 한 게 뉴욕 이스트 빌리지 의 예술인 취재였다. 중학교 1학년 수준도 안 되는 영어로 세계 전위예술의 메카를 누비고 다니며 신명 나게 그들을 취재할 수 있었던 만용은 물론 딸들이 있었고 도요라는 깨어난 일본의 사진작가가 내 안내를 했고 예술은 만국의 공통어이기도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배짱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 명단이 발표되던 2008년 4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은 7개 종단(宗團)대표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대했다. 이승만의 깡패 동원으로 반민특위 특경대가 습격 당 하므로 서 친일청산이 무산된 60년이 지나서야 친일인명사전 이나마 출간되어 얼마나 고맙고 뿌듯하겠나. 그런데 정작 그들의 수고를 치하 해야 할 이명박 대통령의 장광설의 결론은 “우리가 일본을 용서하는데···”였다.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피해보상을 몰라라 하는 일본을 규탄하여 비가오나 눈이 오나 수요일마다 수 년째 집회가 열리고 있거늘, 누가 일본을 용서했다는 것인가. 용서하고 싶으면 우리를 빼고 ‘나 이명박 은 일본을 용서하는데···”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요미우리와 MB
2008년이었는지 9년이었는지 한일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후꾸다 총리가 독도 교과서 등재를 거론하자 MB가 ‘지금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의 보도에 MB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격앙되었다. 청와대가 ‘그런 일 없다’고 발표를 했다. 국민들은 청와대를 믿었다.
‘요미우리는 사과하라’ 덕수궁 대한 문 앞 광장에 운집한 시민의 함성이 충천했다 그런데 경찰이 집회를 막으며 군중을 연행한단다. 참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관제데모라도 유도 해야 할 판에···. 결국엔 1866명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한국의 대통령을 모독한 요미우리 를 고소했다. 결과는 요미우리가 승소를 했다. 허위보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속이는 것이라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요미우리 지사에 전화를 했다. 그런 문제는 본사에 전화를 하라는 상부의 지시였다며 도쿄(東京)본사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 쪽의 답은 “허위보도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허트러짐 없이 정확하다” 였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내 개인 이름보다는 요미우리 독자 센터 의 대표가 더 공신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요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털석 주저앉는다. ‘교과서 왜곡 개정에 속도가 붙겠구나’ 눈앞이 캄캄
첫댓글 제목을 [한나라당의 살길은] 하고 해달라고 하셔서 서울의 소리에는 그렇게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