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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
정수풍운군(征獸風雲軍) 정수대장군(征獸大將軍) 강무산(姜武山)은 앙신에서 반년 간 수인 조정의 평안천원군(平安天元軍)과 피 말리는 대치를 했다. 그리고 오늘 강무산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이것이 참이냐?”
“그렇습니다, 낙왕 전하. 흑막의 웅랑교가 거병했습니다.”
“좋아! 이제 이 지긋지긋한 숨바꼭질도 끝이다. 림아! 전군에 전투 준비를 시켜라!”
“아버님, 웅랑교가 거병하였다 하더라도 아직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좀더 기다려보는 것이….”
낙왕부의 대공자이자 강무산의 아들 강무림(姜武林)이 의문을 제기했다.
“웅랑교가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우리와 상관없다. 다만 흑막의 웅랑교가 거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천하 각처에서 대대적인 징병이 이루어지고, 군사들이 조련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힘을 가진 쪽은 다름 아닌 십이진가(十二眞家)다. 만일 그들이 힘이 갖추어지고 두 가문 이상이 손을 잡고 우리 선(鮮)을 압박한다면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세 가문이 손을 잡으면 필패의 형국이다.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가지고 시간을 끌었듯이 저들도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을 끈 것이다.”
“….”
“우리가 노리는 것이 단순히 지금 마동치가 이끄는 천원군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듯, 마동치가 노리는 것은 단숨에 우릴 깨고 대선제국을 멸망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마동치의 귀에 웅랑교의 일이 들어가면 필히 발등에 불을 끄려 할 것은 분명하다.”
“서로의 사정을 빤히 알고 있으니 먼저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겠군요.”
후선(後鮮)은 수인들의 힘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비록 오랜 평화로 인해 군사가 없고, 중앙 원주 조정의 영향력이 약화되어 흔들리고 있지만 그동안 축적한 역량은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각지에서 벌어지는 정립천하 운동은 진골십가(眞骨十家)에게 군사적인 힘을 가질 명분과 필요성을 제공했다. 이미 각각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는 중원십일주(中原十一州)는 하나하나가 능히 백만대군을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서로를 견제하느라 있으며 중주 남부의 지배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북지성의 반란과 흑막 웅랑교의 거병으로 북쪽도 떨어져 나갔다. 후선이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동인성, 앙신성, 후려를 기반으로 힘을 키워 수인들을 각개 격파(各個擊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강무세가의 후사가 든든하기에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일망평(一望平)에 진을 친 후선(後鮮)의 정수풍운군은 보군(步軍) 10만, 마군(馬軍) 3만이었다. 앙신성 전체로 따지면 족히 30만은 되는 군세였으나 각 지역의 수비를 위해 앙신성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거기에 비해 천원군의 전력은 총 17만이었다. 보군 12만에 마군 5만이었지만 그중 3만은 풍운군이 포위한 원평부에 묶여 있어 14만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천원군의 기병 전력과 풍운군의 기병 전력은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후선 정수풍운군의 기병의 수준이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풍운군에게는 숨겨놓은 패가 하나 있었으니….
***
라혼이 천수교에 온 지 만 하루가 지나자 모석이 백호영과 6000 군사를 이끌고 천수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안을 점거하고 있던 반란 진토인들은 세(勢)의 불리함을 알고 이미 철수한 상태여서 비어 있는 서안을 점거했다.
“위병들 얘기론 곧 짧은 우기가 끝날 거라 하더군. 그러니 비가 그치고 하수라 강의 수위가 내려가면 지금 남아 있는 다리 잔해를 보강해서 다리를 보수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리를 다시 놓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진 않을 텐데요?”
“그들의 견제는 구 참위가 할 것이고, 나는 지금 즉시 동안의 군사들을 수습해서 호도로 갈 것이다.”
“예? 하지만….”
모석은 호도를 치겠다는 주군의 말에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군사들의 사기도 그렇고, 괴질까지 돈다 들었는데? 무리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허를 찔리는 것이고. 어쨌든 모석 자네는 서안을 책임지고 석은(席銀), 원복(願馥)은 부장으로 모석을 돕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나와 같이 간다.”
“존명!”
“주군, 임시로라도 넝쿨을 엮어 가교를 놓아 양안(兩岸) 간에 최소한의 소통이 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혼은 고학의 의견을 받아들여 가교를 놓기로 했다. 고학이 그 의견을 내지 않았다면 이번에 출정하게 될 백호영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가교(架橋)를 만드는 데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발판이 되는 나무는 주인 없는 서안의 가옥에 사용된 나무를 뜯어 사용했으며 두꺼운 밧줄도 마을에 있는 집을 뒤져 찾아낸 밧줄들을 합쳐 꼬았다. 그렇게 엉성하지만 말을 끌고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다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는 동안 라혼은 호도를 공략할 공략군을 편성했는데 마군 5000, 보군 1만 2000, 백호영 700이 전력의 전부였다.
***
“대원수! 적도들이 움직였습니다!”
“도발인가?”
“예! 이번엔 저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아 이번에 아주 끝장을 보려는 듯싶습니다.”
천원대원수(天元大元帥) 마동치(馬同治)는 황군(皇軍) 소장(小將) 오산(吳珊)의 말을 듣고 저들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껏 따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병(兵)을 운용하는 것을 보면 저들이 뭔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천원군에게도 필요한 것이었기에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예의 주시만 할 뿐 서로 대규모 도발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흐음~! 동인성과 후려에 있는 세작들에게 별다른 연락이 없었는데….”
“마 대원수….”
“오 소장은 지금 즉시 제장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만반에 대비를 하라! 걸어온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다!”
“충(忠)!”
앙신성(央信省) 일망평(一望平)에는 평안천원군 15만과 후선군 13만의 대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비록 너무나 드넓어 막막하기까지 해서 어서 빨리 광대한 평야 지대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하여 ‘한 가지 바람이라는 일망(一望)이란 이름이 붙었으나 양군이 서로를 정탐하고 어느 한곳 숨을 곳이 없어 조그만 움직임도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일망평의 양측에 포진한 30만에 가까운 군사들이 뿜어내는 투기가 천지를 메웠다. 벌써 반년을 대치한 적이었다. 전면적인 전투는 없었지만 순찰대나 슬쩍 건드려보는 국지전은 거의 매일 일어났고 그 전투에서 다치는 군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증오하는 마음을 품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반년 간 경험을 쌓은 군사들의 훈련도와 사기 또한 훌륭했다.
“어떻던가?”
“옛! 마 대원수, 그전보다 군기가 엄정하고 수가 늘었으나 여전히 기병 전력이 미약합니다. 단지 코끼리가 열여덟 마리나 되어 우리 천원군의 피해가 클 것이라 예상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상병(象兵) 정도인가?”
“대원수, 상병에 대한 대책은 이미 세워놓았습니다. 설사 상병이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겨우 열여덟 마리입니다.”
천원군의 제장들은 필승을 자신했다. 평지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기병이 질과 양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피해가 날 것이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천원군보다 후선군이 먼저 일망평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인물은 없었다.
“대원수, 저쪽에서 백기를 든 장수가 나옵니다.”
“알았다.”
비록 요식 행위이긴 했지만 10만이 넘는 군사들이 대치한 채 서로 목숨을 건 전투를 시작해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전투를 피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시늉이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동치는 저쪽과 같은 두 명의 호위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중간 지점까지 나갔다.
“하하하, 반년이나 이웃해 있었는데 이제야 뵙습니다. 천원대원수 마 대원수!”
“허허허허, 그렇구려. 강무 대협!”
―꿈틀!
정수대장군과 낙왕이란 직책이 있는 강무산은 마동치가 ‘대협(大俠)’이라 칭하자 안면이 경직되었다. 마동치는 후선군 자체를 조정에 반하는 무림세가로 폄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무산은 그런 마동치의 태도에서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방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좀전과 다른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이곳은 ‘보(保)’의 땅이고 우리 대선제국의 황제 폐하는 보를 이어받을 적통 후계자의 후견인이니 순순히 군사를 물리시오.”
“허허허허, 우습구려. 반역도 거정 또한 반역도이고 후려의 강무세가도 반역도이거늘 그것이 말이 되는가?”
“서로 말로써 해결이 되지 않으니 창검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겠군. 만약 내가 마 대원수를 생포하게 된다면 목숨은 보장해드리리다. 그러나 거친 저희 군사들의 손속은 매섭기 그지없습니다.”
“허허허허, 그렇다니 다행이오. 그러나 본인은 그런 약속을 해드릴 수가 없어 미안하구려. 본시 반역 도당은 그 자리에서 참해야 하니 말이오.”
마동치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조정, 아니 갑주(甲州)의 서제가(鼠帝家)에서 어느 정도 준비를 끝마쳤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하기에 일망평에서 후선군을 깨고 단숨에 앙신성을 안정시킨 후 거의 비어 있을 동인과 후려로 군을 몰아갈 생각에 반역 도당인 주제에 감히 낙왕이라 칭왕(稱王)하는 강무산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적수로 상대한 강무산은 절대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살려둘 수 없었다.
그렇게 뜻을 밝히고 서로 아군 진영으로 돌아온 총대장들이 칼을 빼듦으로써 회담이 결렬되었음을 알렸다.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은 것이었기에 양측 병사들은 전의(戰意)를 드높이는 함성을 내질러 고요했던 일망평을 진동시켰다.
―와~! 와!
“림아! 화무대로 돌아가거라!”
“옛! 보중(保重)하십시오!”
후선군의 군사 조직은 풍(風), 운(雲), 뇌(雷), 우(雨), 림(林), 화(火), 산(山), 영(影)의 팔기(八旗)로 이루어져 있었다. 풍기군은 말을 탄 마군, 운기군은 보군, 뇌(雷)는 쇠뇌와 발석차를 다루는 노병(弩兵), 우(雨)는 궁병, 림(林)은 중보병, 화(火)는 강무세가나 강무세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무사들, 산(山)은 코끼리를 운용하는 상병(象兵), 영(影)은 인자(忍者)들이었다.
―하! 쿵! 하! 쿵! 하! 쿵! 하! 쿵!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양군은 기합성을 외치고 창이나 발로 땅을 굴렀다. 그러자 메마른 황무지의 먼지가 들어서며 시야를 가려왔다. 각각 15만과 13만의 대군이 이번 회전(會戰)에 참가하고 있었다.
“중보로 전진!”
중보(重步)란 말 그대로, 마동치가 이끄는 조정의 평안천원군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발을 구르며 천천히 진형의 일부를 전진시켰다.
―쿵, 쿵, 쿵, 쿵, 쿵, 쿵….
수만의 대군이 일제히 진형을 갖추고 움직이는 것은 장관이었지만 그들의 목표가 되는 쪽에선 그저 장관만은 아니었다.
“호오~! 의외로군. 처음부터 대규모 기병으로 돌진해올 줄 알았는데 보병을 먼저 내놓을 줄이야.”
“전하, 우림군(雨林軍)으로 저들을 막겠습니다.”
“비록 미끼이긴 하지만 군사들의 사기가 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호사(護射), 우기(雨旗) 1만의 위력을 보여주게.”
“맡겨주십시오.”
호사는 우기(雨旗), 즉 궁수 1만과 크고 두꺼운 방패를 가진 중보병 임기(林旗) 2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림군을 지휘해서 가장 수가 많은 풍운군 위주로 포진한 진(陣) 앞으로 나섰다. 원래는 진형의 후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것이 바른 병법 운용이었지만 어차피 서로 전력을 탐색하는 서전이었다. 그리고 2만의 중보병인 임기군의 보호를 받으므로 크게 다르진 않았다.
“장군, 우림군 전원 포진을 완료했습니다.”
“좋아! 철전을 준비해라!”
“철전을 준비해라!”
쇠화살인 철전(鐵箭)을 의미하는 검은 깃발이 흔들리고 동시에 복명 복창 소리가 정수풍운군 우림군의 궁수들 귀를 때렸다. 그러자 그들은 주저 없이 전통(箭桶)에서 가장 무거운 철전을 골라 활시위에 걸었다. 사정거리는 짧지만 그 위력은 가장 대단한 철전을 준비시킨 호사는 적이 철전이 도달하는 거리까지 접근할 억겁 같은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적군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슬슬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활시위를 당기게 했다.
“천원군 선봉대 돌격!”
―와아~!
선봉장을 자처한 오산은 적진과 거리가 근 150보에 이르자 선봉대에 돌진을 명하며 스스로 앞서 내달았다. 그리고 검은 비가 내리는 환상과 함께 오산의 세상은 꺼져버렸다.
하늘을 향해 일제히 쏘아진 철전은 포물선을 그리며 돌진하는 천원군 돌격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활을 쏘아올린 힘과 더불어 떨어지는 힘까지 합한 무거운 화살은 군사들이 쓴 투구를 꿰뚫고도 힘이 남아 땅에 박혀들었다.
―와아! 와아!
단 한 번의 일제 사격에 자신들을 이끄는 선봉장을 잃은 군사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고 다시금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져버렸다. 만약 이 전장에 그들뿐이라면 전투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지금 기병을 돌진시키면 지리멸렬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원군 본진을 의식한 후선군이 돌격하지 않아 대부분의 천원군 선봉대들은 살 수 있었다. 실상 죽거나 다친 사람보다는 멀쩡한 군사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장군을 잃은 군사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 전쟁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대원수, 이러다간 군사들의 사기가 꺾이겠습니다.”
“원래 작계(作計)대로 어서 빨리 마군(馬軍)을 투입해야 합니다. 마군으로 짓밟으면 될 일입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사 상장은 마군을 이끌고 적도들을 짓밟아버리고 양 정장은 전군 돌격을 준비하라!”
“충!”
부원수(副元帥) 상장(上將) 사법린(蛇法鱗)과 정장(正將) 양석호(羊石澔)는 거의 동시에 군례를 하고 말을 몰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되었다.
“이거야! 이렇게 알아서 돌격해주니 어떻게 적의 돌격을 유도하나 고민했던 것이 우습군. 우리 뇌기(雷旗)의 천보노(千步弩)의 위력을 보여줄 때다. 구전명(具全名)!”
“존명!”
천원군의 기마 돌격이 시작되자 후선군 또한 큰 방패와 긴 창을 든 군사들이 전면에 나섰고, 후위에서는 군사들이 손수레들을 덮은 거적을 벗겨냈다. 그러자 거의 창(槍)을 연상시키는 화살이 장전된 쇠뇌가 위용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훈련을 했는지 그것을 다루는 병사들은 능숙하게 그것을 다루었다. 네 명의 건장한 군사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커다란 화살이 올려지고 거의 1000을 헤아리는 모든 쇠뇌가 장전을 마치자 구전명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쇠뇌 전면의 군사들이 물러나고 구전명의 검이 내려지는 순간 쇠뇌가 발사되었다.
―텅 터더덩!
둔탁한 비파음이 울리며 쇠뇌에서 발사된 벼락전은 돌진하는 수만 기병을 휩쓸었다.
―퍽 퍼버버벅!
굵은 화살은 두터운 갑주를 입은 기병은 물론 말까지 통째로 관통했고 가슴에 화살을 품고 그 힘에 덩달아 뒤로 날아가 뒤에서 돌격하던 동료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1000개의 화살로는 수만 기병의 돌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시에 쏜 수만 개의 화살은 충분히 위협이 되었다.
“아니, 쇠뇌는 그렇다 치고 궁병이 사용하는 활에서 쏜 화살이 저렇게 멀리 날아가다니….”
마동치는 거의 200보 이상을 날아와 두꺼운 갑주로 무장한 기병들을 상하게 하자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저들이 보유한 쇠뇌 정도라면 능히 천원군이 진을 친 이곳까지 그 힘이 미칠 수 있었다. 게다가 후선군 궁병의 수가 근 2만에 달하는 것이 분명하니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나 화살의 태반이 빈 땅에 박히고 악에 받친 천원군의 마군의 돌격은 그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차례 화살비를 뚫은 천원군의 마군은 장창으로 방비한 후선군의 진형에 충돌했다.
―꽈짝!
말의 돌진하는 힘이 담긴 기병창이 후선의 방어진을 깨고 후위에 기병검으로 무장한 기병들이 후선군을 도륙하며 종심(從心)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후선군의 진형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한 마동치는 전군에 돌격을 명했고, 10만 대군은 성난 파도처럼 일제히 밀어닥쳤다.
“전군 돌격!”
―와아~!
그에 맞서 후선의 정수풍운군 또한 각자 분대의 돌격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내달았다.
―뿌우~! 뿌우~!
그리고 열여덟 마리의 코끼리들이 그 육중하기 그지없는 몸으로 앞으로 내닫기 시작했고 정수대장군 강무산은 마지막 패를 꺼들었다.
“대선제국 만세!”
―대선 만세!
피와 살이 튀는 아비규환의 전장에 난데없이 붉은 노을 같은 검기가 충천했다. 바로 팔기(八旗) 중 최강이며 강무세가의 힘인 화무대(火武隊)의 고수들이었다. 붉은 갑주의 고수들이 절정의 경공신법(輕功身法)을 펼치며 적군을 도륙하자 그때까지 기세 좋게 후선군을 휩쓸던 천원군의 기병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우습게도 천원군의 마군들은 후선군의 진형을 끝내 돌파하지 못하고 안에 갇힌 형상이 되었다. 본래 기마대는 진을 형성한 보병의 종심을 가르고 지나 우회해야 했다. 그러나 후선의 임기 장창을 든 군사들이 진형을 단단하게 굳혀 그들의 돌파를 철저히 봉쇄한 것이었다. 적당한 공간에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기병은 그 효용성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장창병에 무공의 고수까지 엎치고 덮치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전황이 후선군에 유리한 것만도 아니었다. 강무산이 생각했던 것보다 기병들의 돌격은 무서웠고,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간 힘들게 키워온 궁병 우기군이 저들의 돌격에 큰 피해를 입었다.
“말을 탄 군사는 무섭군. 하지만 이제 저들의 패는 모두 끌어냈고, 내게는 아직 패가 남아 있지. 풍기군을 투입해라!”
“존명!”
일망평에서의 전투는 어느새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정수대장군 강무산은 아직까지 전력을 보족하고 있던 기병인 풍기군을 직접 이끌고 전장을 크게 우회하여 적의 뒤를 쳤다. 그리고 팽팽한 균형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후선군이 기병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골몰한 것처럼 천원군도 후선의 코끼리를 대비하기 위해 골몰했었다. 그러나 후선이 천원군의 기병 돌격을 과소평가했듯이 천원군도 코끼리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후선에선 천원군의 기병을 막는 것을 승패의 열쇠로 생각하여 이중 삼중의 준비를 했지만 천원군은 상병의 위력이 전세를 뒤집기엔 무리라 생각해 결사대를 준비하는 것만으로 그 준비를 다했다. 그러나 후려의 강무세가는 남례성의 진토인들과 싸운 경험이 있었고 어떻게 코끼리를 상대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상대하는 적에게 피해를 받지 않을지 알고 있다는 말이 되었고, 천원군이 마련한 그물 부대는 후선의 코끼리를 보호하는 군사들에게 도륙되어 별반 힘을 쓰지 못했고 열여덟 마리의 코끼리는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코끼리의 진가는 균형이 무너진 순간 더욱 배가되었다. 천원군의 견고한 진형이 후방의 기병 난입으로 헐거워진 사이를 그대로 돌파했기 때문이었다. 전신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은 성난 코끼리들은 천원군을 짓밟았고 그것을 기화로 진형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천원대원수 마동치는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징~! 징~! 징~!
후퇴를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고 천원군을 등을 돌려 패주하기 시작했고, 후선 정수풍운군은 도망가는 적군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록 승리하기는 했지만 후선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 너무 먼 곳까지는 추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전투로 후선은 주도 원평(元平)을 제외하고 앙신성을 완전히 후선의 영역 안에 두었다. 그리고 원평성은 시간이 지나 식량이 바닥나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
제평(齊平)을 지켜주던 후산의 두 줄기인 현산과 무산은 웅랑교의 곰과 늑대들에게는 그저 길이었을 뿐이었다. 제평의 금군 대장 기도오가 비록 얼마간의 방비를 했지만 웅랑교의 주공은 성벽이 아닌 후산이었기에 그 대비는 너무나 부족했다.
―컹컹!
―카오!
―크르렁!
“이런! 구원병은 아직도 멀었냐?”
“중무장을 하고 산정에 오르려면 족히 반 시진은 걸립니다. 이제 1각이 지났을 뿐입니다.”
“어서, 어서 재촉하란 말이다. 이들이 산을 넘으면 다 죽는다!”
그렇게 다시 1각을 전력을 다해 그들을 막았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에 산을 타는 늑대 인간들의 경이로운 능력은 지리적 불리함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크르르르~! 성내로 들어가 곧바로 남벽(南壁)의 성문을 열어 소교주를 맞이한다. 낭기(狼旗)가 웅기(熊旗)보다 더욱 뛰어남을 증명하라!”
―컹컹컹!
―캬오~!
동쪽의 현산은 곰 인간인 웅기가, 서쪽 무산은 늑대 인간인 낭기가 맡아 공략했다. 원래 제평을 감싸듯 뻗은 후산(後山)은 일부러 사람이 다니는 길을 내지 않았다. 또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모든 길을 의도적으로 끊어 길로 산을 오르려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웅랑교의 웅기와 낭기에게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
“기 대장님, 후산에서 낭인들과 웅인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뭐야? 벌써!”
제평 금군 대장 기도오는 성내로 곰 인간과 늑대 인간들이 난입했다는 보고에 기겁했다. 그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군을 보낸 것이 겨우 반 시진 전이었는데 웅랑교의 낭인들과 웅인들은 그것을 깨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남벽 밖에 포진한 채 간헐적으로 화살만 날리던 웅랑교 본대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석 대인, 아무래도 제평이 웅랑교의 손에 떨어질 듯하오이다.”
“….”
무호우 장자의 허탈한 말에 늑대 인간들이 제평의 대로를 내닫는 모습을 본 토금전장 제평 총관 석은추는 얼굴이 굳었다. 목숨도 목숨이려니와 막대한 재산을 잃게 되어 그것이 안타까웠다.
“일단 마련해둔 은신처로 피합시다. 막대한 재산을 바치는 데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병졸의 눈먼 칼은 피해야 하겠지요.”
“예.”
석은추는 가족을 챙기기 위해 내실로 들어가는 무호우 장자의 등을 보며 전환을 이용해 마지막으로 중경 토금전장의 금 대부에게 제평성이 떨어졌음을 보고했다. 그리고 무호우의 식솔들과 제평의 모든 재산이 모여 있다 할 수 있는 지하 창고로 몸을 피했다. 남벽의 성문이 깨졌는지 화광이 치솟고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성이 석은추의 귓가에 들려왔다. 석은추를 마지막으로 휘황찬란한 보물이 가득한 창고의 문이 닫히고 창고 안은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사람이 많군.”
“죄송하오. 대부분 나와 인연이 있는 자들인데 그대로 둘 수 없어 모두 데려왔소이다.”
석은추는 넉넉한 창고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마침 근처에 있던 무호우 장자가 듣고 변명조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석은추는 지금은 무 장자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에 숨는 것 자체가 미봉책이기 때문이다.
“피를 본 웅랑교도들이 한바탕 휩쓸면 웅랑교의 수뇌들이 나서서 정리를 할 것이오. 흑막에서 이 제평만한 성채가 없으니 그들이 너무 심하게는 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예.”
그때 석은추가 가진 전환에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석은추만이 들을 수 있는 금 대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석 총관! 자네에게 한 가지 임무를 맡기려 하네. 일단 자네가 가진 예금 명부와 골동품을 전환을 통해 보내고 금은의 일부는 웅랑교에 바치게.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와 거래할 뜻이 있는지 의사를 타진하게.
“…!”
라혼이 발견한 마법 무구들은 전부 녹여 전환(傳環)을 만드는 데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백호영에서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1000만 냥의 황금과 함께 토금전장에 넘겨졌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제평 총관 석은추가 가지고 있었다. 석은추는 난리가 벌어지자 오늘 아침까지도 심드렁해하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전 재산을 맡기자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판단하기 어려워 토금전장의 주인인 금 대부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한참 후 다시 석은추에게 지시된 사항은 모두 받아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 아니게 무호우의 점포는 자신의 전 재산을 맡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잘 들으세요. 이 권리장이 저희 토금전장에 돈을 맡겼다는 증서입니다. 토금전장에선 이 권리장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놓은 돈을 주니까 주의하세요. 만일 권리장을 잃어버리고 토금전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사기꾼으로 간주하여 처리할 거니까 그리 아세요.”
무호우 장자 밑에서 일을 하던 사환은 벌써 몇 번씩 되풀이하며 권리장을 잊지 말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곳에 맡겨둔 재산이 모두 약탈되더라도 권리장만 있으면 천하 어디든 토금전장과 분장에 가서 돈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3년 간 토금전장의 사업에 투자한 돈을 찾게 되면 절반을 제하고 받게 됩니다.”
“거기 새치기하지 말아요!”
“이봐요! 이것은 인시드에서 건너온 물건이란 말이오. 그런데 겨우 은 20냥이라니. 너무하지 않소?”
“싫으면 그냥 가지고 있으면 되잖소. 다음!”
“아, 아니요. 어서 증서나 써주시오.”
“에이, 바빠 죽겠는데….”
소란스런 와중에서도 토금전장에 고용된 감정꾼들은 좌상을 펴고 금은이 아닌 보석류나 골동품, 서화(書畵) 따위 등을 감정했다.
“석 대인, 이렇게 해도 괜찮겠소? 웅랑교는 대초원을 사실상 지배하는 세력이란 말이오.”
“괜찮습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 일이 소문이 나면 인해 천하가 토금전장의 신용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이곳에 모인 재산이 웅랑교 수중에 들어가더라도 천하에 비하면 작은 것이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석은추는 전환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대충 그렇게 둘러댔지만 말해놓고 보니 참으로 그럴듯했다. 이제 문제는 과연 제평이 웅랑교의 대군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설마 제평성이 함락되진 않겠지?’
만약을 위해 은신처를 마련해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군이 노리고 있는 곳에 있다는 사실은 못내 불안했다.
***
라혼은 천하의 그 누구보다 먼저 웅랑교의 봉기 소식을 듣고는 천하의 정세가 급물살을 탔음을 느꼈다. 이렇게 된 이상 순리를 따르는 것은 시간 낭비라 생각한 라혼은 남례성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되도록이면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주군, 곧 천수교입니다.”
쉼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들 사이로 초고수급 여섯이 초상승의 경공신법을 시전하여 내닫자 오수관을 떠난 반나절이 조금 되지 않아서 천수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안은 무시하고 동안으로 간다. 오차, 부탁한다!”
“예!”
“레버테이트Levitate!”
“헉!”
경험이 있는 웅장모와 표상치는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만력, 고우, 잔폭광마 육삼은 라혼의 [레버테이트Levitate : 공중 부양] 주문에 기겁했다.
“페더 폴Feather fall!”
“…!”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인지 아니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는지 반란 진토인들이 장악한 서안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일곱 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모습을 본 동안의 하남천원군은 처음엔 기겁하여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상대가 백호나한임을 확인하자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백호나한이다!
―와아~!
―백호나한이 우릴 구하기 위해 왔다.
―만세~! 만세~!
라혼은 환호하는 군사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금영월 대장군을 찾았다.
“쿨럭, 쿨럭, 쿨럭….”
“대장군!”
라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초췌한 몰골의 금영월이었다. 숨이 찰 때까지 고통스런 기침을 하던 금영월은 겨우 고개를 들어 라혼을 확인하고는 힘없이 말했다.
“라혼 참장인가?”
“그렇습니다, 대장군. 작 정령에게 몸이 편찮으시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작 정령이 떠나기 전까지는 멀쩡했다네. 하지만 내 나이에 너무 오래 비를 맞으니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야!”
“….”
“그보다 내 자네에게 면목이 없네. 자네에게 군사를 주고 내가 뒤를 받혔다면 이렇게 허무하지 않았을 것을. 늙은이가 평생 처음 전장에 나와 공을 세우려고 너무 무리한 모양이야!”
“대장군….”
“허허허, 그래도 자네가 있어 다행일세. 하남천원군을 맡아주게!”
“하남천원군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대장군은 몸조리에 신경쓰십시오. 앞으로도 계속 대장군의 힘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금영월은 고열과 함께 실신하여 자리보전할 때부터 결심을 했지만 라혼 참장이 빈말이라도 사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왠지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라혼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자 패전지장(敗戰之將)이라 책망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말은 금영월의 흐릿하던 눈에 힘이 들어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는 하남천원군의 힘으로 남례성을 얻을 겁니다.”
“뭐라? 자네는 조정에 반하겠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저 제 군주를 위해서 이 땅을 얻으려는 겁니다.”
“자네의 군주가 누구인가?”
“죄송하지만 그것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다만 저의 군주는 범(虎)이고, 저는 조정을 거스를 생각이 없습니다.”
라혼은 금영월에게 설화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설화의 정체를 밝히면 라혼 자신이 설화의 신분을 빌려 천하를 도모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설화가 백호라는 것을 아는 모든 존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지금 제가 하려는 일은 이렇습니다.”
“….”
금영월은 라혼이 벌인,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에 입이 쩍 벌어졌다. 수군 모아 나름대로 해상 전력을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서해의 패권을 노린다거나 남례성을 바탕으로 대군을 만든다는 계획을 듣자 자신이 라혼의 손에 놀아난 꼭두각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허허허, 집 지키는 개와 사냥하는 개는 이토록 다르구먼. 그래 이 늙은이를 무엇에 쓰려는가?”
“대장군께서는 남례성을 맡아주십시오.”
“남례성을 말인가?”
“금 대장군은 하남대원수시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
“….”
금영월은 한동안 라혼 참장의 눈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오랜 관직 생활에서 체득한 감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하게 했다. 그때도 백호둔(白虎屯)이라는 계(契)를 만들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그였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도 똑같았다.
옛이야기 중에 부잣집 며느리 이야기가 있었다. 부자에겐 장성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장사보다 학문에 뜻이 있었다. 부자는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웠으나 자신이 죽고 나면 재산엔 별 관심 없는 아들이 자신이 평생 일구어놓은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릴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부자는 재산을 관리해줄 현명한 며느리를 맞길 원했는데 ‘쌀 닷 되로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처녀와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키고 자신의 재산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 찬 많은 처녀들이 그 일에 도전했지만 애초에 쌀 닷 되로 두 사람이 한 달을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많은 처녀들이 하루에 한 끼를 먹고 버티거나 멀건 쌀죽을 쑤어 버티며 그 일에 도전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느 가난한 농부의 딸이 그 일에 도전을 했다. 농부의 딸은 첫날 쌀 닷 되 중 일부를 고기와 맛난 반찬으로 바꾸고 나머지 쌀로 밥을 넉넉하게 지어 배를 든든히 채웠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가난한 농부의 딸이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 그 일에 나섰다며 부자에게 농부의 딸을 쫓아내라 말했다. 하지만 부자는 자기가 하지 못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그대로 두라 하곤 그녀의 일을 잊었다. 그리고 한 달이 되는 날, 부자의 며느리를 뽑는 시험에 감독관 겸 같이 생활을 하는 여인이 통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부자에게 달려와 농부의 딸이 시험에 통과했음을 알렸다. 부자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어찌 된 일이냐며 물었다. 주어진 쌀 닷 되를 하루도 못 되어 탕진했는데 한 달을 버텼다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부의 딸이 사용한 방법은 바로 벌어서 먹는 것이었다. 부잣집에서 일하던 여인으로 하여금 빨랫감이나 바느질감 등 일감을 얻어다 일을 해주고 그 삯으로 두 명이 살아가는 데에 차고 남았다. 농부의 딸이 말하기를, 자신은 어머니에게 어렸을 때부터 바느질을 배웠고 어린 동생들의 옷 또한 스스로 지어 입혔지만 농부의 딸인 자신에게 일을 맡기려는 사람이 없어 부잣집에서 일을 하며 돈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감독하는 여인의 얼굴을 빌리고 싶었다고 하며 부잣집 며느리가 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달 간 벌어들인 돈의 반을 여인에게 나누어주고 부자가 며느리 들이는 시험을 하던 그 집을 떠났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부자는 아들에게 ‘나는 이미 며느리를 보았다. 나는 약속한 대로 며느리에게 내 전 재산을 주겠다’라고 말했고 부자의 그 말에 학식이 높았던 아들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농부의 집에 찾아가 예를 다하여 농부에게 딸을 아내로 줄 것을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금영월이 생각하기에, 라혼 또한 옛날이야기 속의 현명한 며느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어진 것만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꼭 같았다 느꼈다.
“알겠네. 패장으로 내가 다시 군사를 지휘한다고 나선다면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은 자명하니 어렵고 힘든 일은 젊은 자네에게 맡기고 나는 집이나 지키려네.”
“제 뜻을 이해해주어 감사합니다.”
라혼은 금영월의 허락을 얻자 그 즉시 고우에게 지휘권을 확보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미 위병 출신 군사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고된 훈련과 본능적으로 수영을 할 줄 아는 말이란 동물 덕분에 백호문 출신 군사들의 생존률이 높아 하남천원군을 장악하는 것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여기에 고학이 꾸며놓은 작업도 효과가 있어 모든 일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그래서 당황한 것은 청룡대와 주작대였다. 이라이 초지에서 불어난 물에 익사한 것은 대부분 훈련도가 낮은 경주와 계주 출신의 보군(步軍)과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금군 출신 중보병(重步兵)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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