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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재클럽(Y-Club)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테라)는 백제계인의 개인 절
'기요미즈(淸水)'는 '성스러운 물'이라는 뜻으로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성스러운 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청수사로 오르는 길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다.
인왕문 앞에 놓여져 있는 박견(해태)은 아스카 시대 조선에서 건너 온 것이라고 한다. 당사자(唐獅子)라고도 부른다.
인왕문 청수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절의 입구에 있는 인왕문이다. 이 문은 무로마치 시대(14~15)에 만들어졌고, 현재 나머지 건물들은 1629년 대화재로 소실된 후 1633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서문과 3층탑 인왕문 오른쪽으로는 서문과 그 뒤로 17세기에 재건된 3층탑이 보인다.
개산당 다무라마로는 807년에도 당우를 확장시키는 일을 하나 4년 후인 811년 5월 23일 54세로 죽는다. 그의 묘지는 교토 산과구(山科區)에 있는데 사후에도 왕성의 수호신이 되었다. 현재 그의 묘지 일대는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공원(坂上田村麻呂公園)이 되어 있다.
본당 개산당 앞을 직진하면 회랑을 통해 청수사 본당으로 가게 된다. 이 본당은 비불관음상을 봉안하고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청수사 본당은 산비탈을 이용해 세운 '무대조'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아마 청수사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본당의 독특한 건축구조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법화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푸른 바다에 높이 솟아오른 산에 사신다고 한다. 무대조는 바로 관음이 사는 산과 절벽의 모습을 나무 축대로 표현한 것이다.
절벽에서 10여 미터 튀어나온 부타이(舞台)라고 불리는 본당의 마루는 못을 쓰지 않고 건축을 했는데 139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어 유명한 것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이 건축물의 구조는 사실 알고보면 우리 백제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백제가 멸망하고 난 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의 목공들의 후손들이 대거 동원되었고 이들은 당시 뛰어난 백제의 궁중건축양식을 이곳에 도입하여 이렇게 멋진 건축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못 하나 사용하지 않은 저 건축물이 무려 1,200여 년 넘도록 아무런 탈 없이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백제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경내 한 켠에 서 있는 다층석탑
이것이 그 유명한 청수사의 오토와 폭포!! 나라에 계셨던 스님 엔친 법사님은 관음보살의 꿈 속에서의 가르침에 따라 영수를 구하시려고 여기 히가시야마 산중에 오또와 폭포에 오셔서 오랫동안 수행을 거듭하고 계셨던 교에이 고사를 만났다. 법사께서는 거사에게서 받은 나무 토막에 관세음보살을 조각하여 폭포에 모셨다. 바로 여기에 기요미즈데라의 창건의 유래가 있다. 기요미즈데라의 창건 연기 설화에 의거하여 이 절을 참배하시는 여러분도 이 폭포의 물을 마시는 일을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절차가 되었다. 현재 폭포 제단에 모셔져있는 분은 쿠리카라 부동명왕이다. 이 분은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모습이라고도 전해진다. 폭포 물은 지하 천미터나 되는 가모가와의 지하물이 히가시야마 단층의 틈새기를 비집고 분출된 것인데 아득한 옛날부터 마르는 적이 없이 세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나오는 성스럽다는 물이 흘러나오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줄을 선다. 물은 모두 세 줄기로 나오는데 각각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제일 왼쪽에서 흐르는 물은 지혜와 학문을, 가운데 흐르는 물은 사랑을, 오른쪽 물은 장수(長壽)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여기에 올라 자기가 원하는 물을 받아 먹으면 된다고 한다.
지주신사가 보인다. 연인과의 사랑을 기원하는 곳으로 명성을 얻은 이곳은 아예 본당 뒷편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조성해 두었다 한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버린 아기를 위한 애기부처들에게 추위를 이기라고 옷을 입히는 대신 턱받이를 해 주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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