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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김범준의 귀향
서울 거리에는 인민군의 진격을 알리는 벽보가 날마다 바뀌어 붙고 있었다. 벽보에 남쪽의 지명들이 나올수록 서울의 식량난은 심각해져가고 있었다. 춘궁기만이 아니라 추궁기라는 것도 있는 이 땅에 계절적으로 쌀이 바닥나기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다가, 전쟁으로 인한 기존시장의 파괴와 양쪽의 군량미 확보로 이 땅은 추궁기를 좀 더 빨리 맞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생산경제가 아니라 소비경제 위주인 서울의 형편은 더 나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의용군 모집까지 겹쳐져 우익은 물론이고 우익성향의 사람들에게 서울은 한 달 전과는 정반대의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좌익이나 그 동조자들에게는 의용군은 '모집'이었고, 우익이나 그 동조자들에게는 '강제징집'이었다.
하나의 사실이 서는 입장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현실을 보며 김범우는 제삼의 입장이 있을 수 없다는 이학송의 말을 되짚고는 했다. 의용군에 기세 좋게 자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를 쓰고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숙생들도 두 쪽으로 갈라졌다. 일곱 명 중에서 세 명이 자원해 떠났고, 나머지 네 명 중에서 한 명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다른 세 명은 다락방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헤어지기 전에 역사니 반역사니, 인민해방이니 기회주의니, 정의니, 불의니, 짧은 지식들을 동원해가며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세 학생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기운차게 떠나갔다. 김범우는 그들의 주저 없는 행동에 신선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우울하게 지켜보았다.
너희들이 만약 죽게 된다 하더라도 전쟁의 결과가 너희들의 선택과 죽음을 빛나게 할 수 있도록 되었으면 좋겠구나. 너희들의 죽음이 소모가 되고 무의미한 것이 되면 얼마나 기막힌 노릇이냐. 그만큼 병력손실이 크다는 것이고, 전쟁수행이 용이하지 않다는 증거가 아니냐.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느냐. 미국이 참전을 했기 때문이다.
김범우는 자신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나날이 임박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해방일보 건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오늘 이학송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학송은, 자신이 허리를 많이 다쳤다는 이유를 꾸며대 신문사 근무날짜를 8월 1일쯤으로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채로 그 기간을 다 까먹게 되고 말았다.
김범우는 손승호가 전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된 것에 관심을 쓰고 있었다. 점령지가 넓어짐에 따라 선전활동의 균형을 잡기 위한 당의 정책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했다.
손승호는 시를 쓰고자 했던 능력과 남보다 책을 많이 읽은 박식을 동원해서 날마다 선전문 쓰기에 열성이었다. 그는 스물여섯 살 시퍼런 나이에 지리산에서 투쟁을 하다가 총살당해 죽어간 시인 유진오를 흠모하고 있었다. 고난에 찬 민족의 운명 앞에서 시 쓰는 일보다 먼저 행동이 필요하므로 붓을 꺾는다는 내용의 말을 남기고 행동투쟁에 나선 그의 결연성에 손승호는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았고, 그 열등감은 힘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손승호가 그렇게 된 데에는 이학송의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리산 문화공작대사건의 재판인 군법회의를 기자의 자격으로 방청했었다는 이학송은 그 달변으로, 일곱의 피고를 상대로 한 사람 앞에 일분씩도 안 걸린 사실심리에 대해서, 잇따라 내려진 사형언도에 대해서, 사형언도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듣고 있던 유진오의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김지회의 애인으로 붉은 스웨터를 입고 지리산과 덕유산을 누벼 '붉은 스웨터의 여두목'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무 살 조경순이 함께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서 실감나게 엮어 내렸던 것이다.
손승호의 근무처가 결정되기 전에 김범우는, 기왕 일을 시작하려면 가족들도 생각하고 해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권했었다. 그런데 손승호는 "염 선배 보기도 그렇고……" 하는 끝이 흐린 말로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그때 손승호가 내려가면 일단 같이 내려갈 작정을 했었다. 그런데 손승호의 고집이 발동했고, 마음을 정하지 못한 자신은 전황벽보를 보거나 날로 심해지는 비행기의 폭음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죽였던 것이다.
땅거미가 내릴 즈음에 이학송이 왔다. 그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쟁 통에 무슨 술입니까?"
벌써 목이 간질거리면서도 김범우는 엇지르는 소리를 했다.
"술 마시는 건 반동행위가 아닐까."
이학송은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손형은 아직 안 왔나 보네?"
하며 마루로 올라섰다.
"올 때가 됐습니다. 술은 어디서 용케 구하셨군요."
"돈이 없어 탈이지, 다 사람 사는 세상 아뇨?"
이학송은 방바닥에 몸을 부렸다.
"뭐 새로운 소식 없습니까?"
"매일 새로운 소식 투성이라면 투성이고, 그게 그 소식이라면 그런 것이 전시소식 아니겠소? 그런데, 한 가지 좋지 않은 소식이 있소. 미지상군이 마침내 병력을 완비하고 경남 일대를 발판으로 총반격을 개시할 거라는 소식이오."
이학송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글쎄요, 그거야말로 벌써부터 예상돼 왔던 새로울 것 없는 소식 아닌가요?"
무슨 새삼스러운 소리냐는 듯 김범우는 이학송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긴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그 감이 다른 법인데, 그 정보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면서부터 경상도 일원의 점령이 늦어진 작전차질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비판이 일고 있는 눈치요. 그리고 공격을 가세시키고 있는 모양이고."
"책임을 따지는 비판이라니, 좀 단순한 것 같군요. 작전차질을 안 일으켜 부산까지 다 점령했다고 해서 전쟁에 완전히 이긴 걸까요? 그렇다고 일단 개입하기 시작한 군인이 전쟁을 포기했을까요? 그들은 거점을 제주도로 옮겨 반격을 가할 것이고, 제주도를 뺏기면 오키나와로 옮겨 반격을 가할 겁니다. 소련과 대치하는 상태에서 이 땅에서 물러가는 것은 곧 소련한테 패배하는 것이고,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해 영향력을 잃는 계기가 될 판인데, 물자 많고 직업군인 많은 미국이 그렇게 간단하게 손을 뗄 것 같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계산착오도 너무 큰 계산착오지요."
"미국이 간단하지 않은 적인 것만은 사실이요."
이학송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손승호가 땀에 찬 후줄근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주인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풋고추와 된장을 술안주로 얻어 술자리를 폈다. 달랑 한 병인 소주와 볼품없는 안주였지만 그렇게 모여 앉은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자아, 한잔씩 합시다."
이학송을 따라 김범우와 손승호도 술잔을 들었다.
"술맛은 여전하군."
이학송은 소주의 독기를 콧등에 잡히는 주름살로 드러내며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입 씹고는,
"그래, 김 형은 어쩌기로 했소?"
하며 김범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김범우는 반쯤 남은 술을 입에다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입안에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소주의 독기가 혀며 입천장이며를 짜릿짜릿하게 자극해왔다. 무슨 대답이든 해야 할 시간이 닥쳐와 있었다. 소주의 독기 같은 괴로움이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었다. 김범우는 소주를 목으로 넘겼다.
"이 선배님한테는 죄송하지만, 손 형을 따라 일단 서울을 떠날까 합니다."
김범우의 말은 힘이 들었다. 손승호의 눈길이 빠르게 김범우의 얼굴을 훑었고 이학송은 소주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을 굳은 듯이 앉아 있었다.
"김 형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오."
더디게 말을 한 이학송은 술잔을 비우고는,
"어쩌면 긴 안목으로 볼 때 김형의 판단이 옳을는지도 모를 일이오. 김형의 판단대로 만약 이 전쟁이 여순사건과 같은 좌절을 가져오게 된다면 그 목적과는 별개로 우리 민족은 많은 상처만 입은 채 비극은 더 깊어질 게 틀림없소. 미국은 손실을 당한 만큼 권리를 행사하려고 할 테니 말이오. 그때는 이번 전쟁행위의 문제점이 비판될 거고, 김형은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거요."
가라앉은 소리로 신중하게 말했다.
"왜 기회주의라고 욕하지 않으십니까?"
김범우가 방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김형이 기회주의라면 손형이나 나는 뭐요? 기회주의란 그런 게 아니잖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기회주의란 중도를 표방하면서 그때그때 힘이 강한 쪽으로만 쏠리는 것인데, 김형은 이미 기회주의자가 될 자격을 잃었소. 그리고, 생각을 무시해버리고 행동의 여부만으로 그런 기준을 삼는 것도 유치하고 경솔한 짓이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형의 판단이 옳아 김형이 지금의 괴로움을 벗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괴로움을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오."
"선배님 입장을 난처하게 해드려서……"
"아니오,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욕심이었지, 신문사에는 병세가 악화되어 근무할 가망이 없다고 하면 그만일 게요."
이학송은 선선하게 말했지만 김범우는 그 말을 그대로 곧이듣지는 않았다.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손형은 왜 말이 없소?"
이학송은 손승호에게 잔을 건넸고, 손승호는 쓴 것인지 떫은 것인지 모를 어색스러운 웃음이 밴 얼굴을 들었다.
"손형하고 함께 떠나자면 통행증이 있어야 할 텐데, 손형이 어떻게 좀 할 수 없겠소? 그쪽은 나보다 손형이 더 가까운데."
이학송이 술을 따르며 물었다.
"장담할 수 없지만 알아봐야죠."
"통행증이 없이 떠났다간 엉뚱하게 의용군 전사가 될지도 모르오."
이학송이 김범우를 보며 웃었고,
"전사가 되면 학병 때 전투경험이 발휘될 테니 일당백이지요 뭐."
손승호의 말이었다.
이학송이 소리 내서 웃었고, 김범우는 그 말에 든 가시를 느꼈다.
"공화국 첫 월급을 받은 기분이 어떻소?"
이학송이 말을 바꾸었다.
"물으나마나 엉망이죠 뭐."
손승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이학송이 놀라는 얼굴이 되었고, 그 의외의 반응에 김범우도 손승호를 쳐다보았다.
"봉급 차이나는 것에 대해 물으신 것 아닙니까?"
대답이 빗나간 것을 알고 손승호가 이학송에게 물었다.
"손형도 봉급 차이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이학송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김범우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똑같이 일하고 그런 차이나는 봉급을 받았는데 세상에 기분 나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한두 푼도 아니고 5할이나 차이가 나니, 이건 돈 문제 이전에 인격적 모독을 느끼고, 사회주의 평등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낍니다. 남쪽사람들에 대한 그런 차별대우가 바로 봉건계급사회의 부활이지 어떻게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횝니까."
손승호의 강경한 어조에 열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김범우는 그때서야 말의 내용을 파악하며 놀라고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내색 하나 하지 않은 손승호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 야단났소. 손형 같은 사람까지 그리 생각하고 있으니, 그 선전 부족에 손형도 책임이 있는 것 아뇨?"
이학송이 입을 꾹 다물며 웃었다.
"무슨 말씀인가요?"
"그 봉급 차이에 대해 우리 신문사에서도 손형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비판 아닌 불만이 조성되었소. 나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런데 그게 당의 사전 설명 부족에서 생긴 오해였던 거요. 결론부터 말해 봉급 차이는 차별대우도 계급조장도 아니고, 사회주의의 과학적 계산에 입각해 나온 결과였소.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북쪽사람들의 경우는 완전히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러자니 방도 셋방이요, 밥도 끼니때마다 비싼 매식이요, 심지어 빨래 하나 하는 것까지 돈 드는 손을 빌려야 될 형편이 아니냐 그 말이오. 객관적으로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출장비로 봉급의 5할을 더 지급해서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것이 과학적이고 타당한 것 아니겠소? 물론 남쪽사람 중에도 손형 같은 예외도 있지만, 일반원칙에서 예외가 제외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어찌, 그 원칙이 이해가 되오?"
"글쎄요,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왜 그런 내용에 대한 사전 설명이 없었을까요."
"그게 바로 문제요. 당에서는 너무 당연한 문제니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이오. 오해로 생긴 물의가 보고되고 있을 테니 뒤늦게 설명하게 될 거요. 그런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시행착오나 오해가 그 동안에 어디 한두 가지였소. 그 대표적인 예가 인민재판 아니겠소? 김팔봉의 인민재판을 놓고 김형이 비판하고 예측했던 바가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잖소. 여론을 들어보면 그런 식의 처형방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니, 김형 판단대로 당은 시범적인 일을 한다고 해놓고 오히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게 되고 말았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런 식의 시행착오는 북쪽사람들이 갖는 우월감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너희들을 해방시켜주었다' 하는 식으로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그런 사고방식이 내부로는 위화감을 조성시키고, 외부로는 일방적인 시책 실시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신문사에는 그런 분위기가 없습니까?"
손승호는 영 언짢은 얼굴이었다.
"왜 없겠소.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 점이 아주 미묘하게 작용해서 신경을 자극하는데, 어차피 사람이니까 그런 우월감이나 과시욕구가 없을 수 없는 일이지만, 좀 심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소. 분야마다 그 문제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혁명이나 해방이라는 근본정신에 위배되는 행위고, 시급히 비판 수정돼야 할 문제요."
"제가 보기엔 당의 지령이나 지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오?"
"당이 애당초 그런 예방교육이나 지시를 안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런데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 우린 전체의 자질이나 수준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아주 예리하게 보는 것인데, 하여튼 인간은 상대적 감정의 동물이니까 받아들이는 쪽에도 다소의 문제는 있을 것이고, 앞으로 좋아질 것을 믿고 토론을 통해서 시정발언을 적극적으로 하고 해서 고쳐지도록 서로 노력합시다."
이학송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한 가지만 여쭤보겠는데요, 해방일보가 폐간되고 딴 신문이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손승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이학송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방일보는 진작에 없어져버린 남로당 기관지를 복간시킨 것에 불과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로동신문으로 바꿀 거라는 말이던데요."
"아, 그 말이요? 그런 소문이 조심스럽게 돌고 있긴 한데, 우리로선 말하기 곤란한 저 최상부층과 직결된 문제 아니겠소? 그 문제에 대해선 아는 것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소."
이학송은 잘라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손승호도 입을 다물었다.
김범우는 직감적으로 박과 김, 두 사람을 떠올렸다. 권력구조 속에서 정점을 향한 갈등이나 마찰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수행되는 속에서도 그것이 병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김범우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치열성을 다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보도록 합시다. 참 김형, 김팔봉의 인민재판이 있고 며칠 뒤에 서울 이남에서는 인민재판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당중앙이 내렸소."
이학송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래요? 그것 참 잘했군요."
김범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서학이 배속된 의용군 부대는 미군기들의 폭격을 피해 거의 밤에만 이동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시작되는 행군은 다음날 해가 뜰 무렵까지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그 야간행군은 여러 가지 군사적 이득을 보고 있었다. 미군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어서 좋고, 덥지 않아서 행군 효과가 나서 좋고, 야간전투에 대비한 훈련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었다. 인민군 장교의 그런 말을 들으며 최서학은 이를 갈았다. 그는 행군을 하면서 비행기들이 색색의 불을 반짝이며 그냥 지나쳐갈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 마음 같아서는 불을 켜서 공격지점을 알려주고 싶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비행기의 방향을 돌리고도 싶었다.
부대는 전주를 지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최서학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부대가 전주를 지나면 그 진로는 광주 쪽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자기네 부대가 구례를 통해 경상도로 치고 들어갈 괴뢰군 어느 사단에 투입될 거라는 예측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신설동 훈련소를 떠날 때 게시판에 나붙은 벽보에서 최전선이 어디인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최서학은 부대가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그 이동방향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아무리 야간행군을 한다고 해도 경유지를 알아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대가 대전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부대의 진로가 어디로 잡힐지 짐작하지 못했다. 곧장 내려가면 전라도였고, 왼쪽으로 방향이 틀리면 경상도였다. 제발 전라도 쪽으로 가기를 그는 간절하게 빌었다. 초조감으로 남모르는 진땀을 흘리며 몇 시간인가를 걷다보니 논산이 확인되었다. 그때서야 그는 소리 없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일이 계획대로 풀려가고 있었다. 그가 피해 있다 발각되어 내무서로 끌려가고, 반동으로 취급되는 것을 모면하기 위해 의용군에 지원하겠다고 해서 필동 일신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끌려간 다음부터 줄기차게 생각한 단 한 가지 문제는 탈출이었다. 괴뢰군 놈들을 위해 싸우다니, 그건 농담으로도 통하지 않을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염상진에게 죽지 않았더라도 최서학은 공산주의를 아예 인정할 수 없었다. 남다른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을 가진 그로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논리 자체를 도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거부하고 혐오했다. 겨울이면 으레 머슴이 학교까지 업고 다녔고, 공부는 줄곧 일등만 해온 그로서는 인간은 평등하며,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가 도대체 허무맹랑하고 가당찮았던 것이다. 그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종류가 다르고, 그러므로 능력도 달라 절대로 평등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 터지자 그는 서두른다고 서둘러 당숙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최익승은 이미 떠나고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댓돌 위에 털퍽 주저앉았다. 죽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냉정한 그는 이내 감정을 수습했다. 만일을 모를 일이었으므로 한강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당숙은 보이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두 번, 세 번 찾았지만 당숙은 없었다. 그는 아까보다 더 큰 절망감으로 모래밭에 주저앉았다.
나마저 괴뢰군 놈들 손에 죽어야 하다니……
그는 주먹으로 모래밭을 치고 또 치며 까마득하게 넓은 강물을 저주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운동을 잘하는 것을 천한 것으로 경멸한 까닭에 그는 수영도 할 줄을 몰랐다.
그는 그때서야 양효석을 부러운 마음으로 떠올렸다. 포목장수 아들인데다가 공부도 못하고 주먹이나 쓰는 양효석은 언제나 그의 밥이었다. 통학열차에서 알아주는 주먹인 양효석을 가문의 능력과 자신의 실력으로 밥을 삼을 수 있다는 것에 그는 쾌락과 통쾌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 쾌락과 통쾌함은 양효석을 향해 경멸과 멸시로 변해 날아갔다. 양효석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육사를 지망했을 때 그의 경멸감이나 멸시는 극에 달했다. 돌대가리 주먹패다운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법관 선택과 비교하며 그는 자만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건널 수 없는 한강을 앞에 두고 양효석을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전시에 가장 안전한 것은 군인이라는 말과 함께 이미 한강을 건너갔을 양효석을 생각하며 그의 결정이 현명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도 오래 하지 않았다. 양효석 같은 존재를 잠시나마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자존심의 훼손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다짐으로 그는 모래밭을 박차고 일어났다.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가서 몸을 숨겨달라고 부탁했다.
같은 처지가 된 하숙생이 하나가 더 있었다. 부엌 위 다락방에 숨으라는 것을 마다하고 대청마루 밑을 파내고 숨었다. 다락방에 비하면 완전에 가까운 은신처였다. 하루 내내 쪼그리고 앉아서 지내다가 밤이 깊으면 나오고는 했다. 그날도 밤이 깊어서야 나와 소변을 보고, 대청에 앉아 자두 몇 개를 먹고 있는데 내무서원들이 담을 뛰어넘어 들이닥쳤던 것이다. 둘이 다 꼼짝없이 잡하고 말았다. 며칠간의 훈련을 받으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째서 잡히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밀고가 아니면, 밤에 드나드는 것이 탐지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서학은 누구보다도 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자신의 계획을 감추기 위해서도 그랬고, 의용군들의 분위기 때문에도 그랬다. 함께 훈련을 받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 중에 자원한 자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용산이나 영등포 쪽의 철공장이나 방직공장을 다니던 노동자들이었고, 인쇄공들도 꽤나 끼여 있었다. 그리고 동대문 밖이나 자하문 밖에서 온 농사꾼들도 상당수였다. 그들이 자원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엉뚱하게 선생이 있는가 하면, 회사원이 있었고, 잡지사 기자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물어본 그들의 자원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선생은 "양키새끼들 꼴 보기 싫어서"였고, 회사원은 "이승만과 공무원새끼들 쳐 없애기 위해서"였고 잡지사 기자는 "가망 없는 남한 사회에 환멸을 느껴서"였다. 최서학은 그들을 향해 미친 새끼들이라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생각보다도 많은 자원자들에 마음이 켕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적이었다. 자신은 적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자원을 한 척 하는 일부터 했다.
최서학은 변소에 앉았거나 잠자리에 누워서는 이 세상이 어찌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걱정했다. 지금까지 되어온 형편으로 보아서는 빨갱이놈들 세상이 될 것이 거의 틀림없었다. 그건 도저히 안 될 일이었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감정을 냉정하게 배제하더라도, 사람 같지 않은 무식한 노동자나 농민이란 것들이 꺼떡대고 설쳐대는 세상이 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 따위 세상에서 사는 것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세상이 망조가 들지 않고서야 어찌 거친 일이나 하는 노동자가 우쭐거리고, 땅이나 파먹는 농사꾼들이 나대는 것인가.
그것들이 허파에 바람 든 것은 모두 공산당놈들이 사탕발림을 했기 때문이다. 악질 빨갱이 염상진 같은 놈들이 빨간물을 먹인 것이다. 서울만 보더라도 사대문 밖에 사는 것들이 어디 사람인가. 안국동까지를 경계로 해서 종로로만 나가도 벌써 사람의 격과 질이 달라지는데, 사대문 밖에 사는 것들이야 짐승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들이 사대문 안을 감히 넘보고 제놈들 세상을 만들겠다고 설치고 나서서 빨갱이 군대에 자원들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괴뢰군놈들이나 내무서놈들도 효자동에서부터 시작해 팔판동 가회동을 거쳐 혜화동까지 집집마다 뒤지고 엎어 사람들을 잡아가고 물건들을 탈취하며 쑥밭을 만들지 않았는가. 반동 착취계급들의 동네라고 떠들어대면서. 불한당 강도 같은 놈들, 능력있는 사람들이 능력있는 만큼 당연히 누리는 것이지 그게 어디 착취란 말이냐. 이번 전쟁은 귀한 피와 천한 피의 싸움이었고, 양반과 상것들과의 싸움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지면 양반들은 상것들의 발밑에 깔려야 한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아직도 희망은 있다.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양반의 나라 미국이 우리 편인 것이다. 믿을 건 미국밖에 없다. 제공권은 벌써부터 미국이 장악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우린 편인 한 아직 희망은 있다. 미국이여, 폭탄을 더 많이많이 떨어뜨려라. 공산당 괴뢰군들의 씨를 말려라. 최서학은 아무도 모르게 이를 앙다물며 전율하고 흥분했다.
부대는 마침내 곡성 근방을 지나고 있었다. 최서학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긴장을 느꼈다. 다지고 다져왔던 탈출계획을 실행할 지점에 다다라 있었다. 그 근방에서 집까지는 얼마 멀지도 않았다. 지리야 익숙하지 않지만 고향땅이니까 그만큼 안심도 되었다.
최서학은 혁대를 조이며 숨을 들이켰다. 총에 맞아죽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숨이 막히고 암울해졌다. 그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숨을 토해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실감으로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길은 단 하나, 그것밖에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도망치는 길밖에 없었다. 그 다음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부대는 야산 옆을 지나고 있었다. 산에는 나무가 꽤 많았다. 최서학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총을 내던지며 산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망간다, 도망!"
"저기, 저놈 잡아라!"
이런 외침이 어둠 속에 퍼졌고, 웅성거림이 일어나며 대열이 흔들렸다.
"모두 제자리에 앉어, 앉어! 안 앉으면 쏜다!"
날카로운 외침이 터지며 따앙! 총소리가 어둠을 찢었고, 따꿍 하고 메아리가 울렸다.
"어디냐, 어디!"
"어드메야, 빨랑 쫓으라우!"
"바로 저쪽으로 튀었어요."
네 개의 그림자가 산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대열은 죽은 듯이 어둠 속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녀리게 울리고, 어둠 속에 산들의 모습만 어슴푸레하면서도 묵직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러 개의 총소리가 산속에서 울려왔다. 난사하는 총소리였다. 메아리가 겹메아리가 되면서 어지럽게 뒤엉키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 네 개의 그림자가 산속에서 나타났다.
"어드케 되서?"
"사살했습니다."
"되서, 출발하자요."
대열은 다시 어둠 속을 빠른 속도로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왼쪽 멀리 희번하게 강줄기가 나타났다. 섬진강이었다.
진주 시내가 불타고 있었다. 8월의 지글지글 끓어대는 폭염 속에 진주 시내는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시민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비행기들은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검은 연기를 토하며 불길은 제멋대로 타오르면서, 다시 그 연기를 타고 너훌거리며 아무데로나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폭탄은 계속 불기둥을 세우며 터져 또 다른 불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시체들이 나둥그러 있었다. 머리가 깨져 골이 허옇게 터져 나온 국군의 시체도 있었고, 거멓게 탄 민간인의 시체가 있는가 하면, 등에 피범벅이 된 소녀의 시체도 있었다. 그 무차별 폭격은 하동 쪽에서 진격해오는 인민군을 저지하고, 국군의 퇴로를 열기 위한 이중목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진주를 뒤에 두고 하동 쪽으로 사오십리 전방에 포진했던 국군은 인민군의 박격포 공격에 치명타를 입기 시작하며서 전선이 무너지게 되었다. 국군이 뒷걸음질을 치게 된 것은 인민군의 정확한 박격포공격 때문만이 아니었다. 전투경험이 없는 신병들이 태반이어서 박격포공격을 당해 옆사람이 퍽퍽 죽어 넘어지게 되고, 적의 총탄이 휙휙 날아들게 되자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하고 머리부터 처박았던 것이다.
"이 새끼들아, 대가리 들어, 대가리! 살고 잡으먼 대가리 들고 한 방이라도 더 쏴!"
양효석은 소대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만 무릎을 삐어 신음을 토하며 주저앉게 되었다.
희생자만 속출하는 가망 없는 전투라서 결국 후퇴명령이 떨어졌다. 어물거리며 희생자만 내고 있다가 포위라도 당해 몰살하는 것보다는 현명한 일이라고 양효석은 생각했다. 후퇴를 하는데도 적의 박격포는 계속 날아와 터지며 목숨을 앗아갔다. 양효석은, 괴뢰군의 박격포 쏘는 기술이 귀신같다는, 진작에 들은 말을 실제로 겪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수류탄은 물론이고 소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박격포를 갈겨대 이쪽을 쑥밭을 만들고 있으니, 그렇게 당하기만 하다가는 후퇴를 하는 동안에 아군은 괴멸될 판이었다. 사령부에서도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진주 시내 가까이까지 밀리게 되었을 즈음 비행기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비행기들의 맹폭 덕분에 퇴로를 확보하게 된 국군은 동쪽으로 뻗은 국도를 따라 후퇴를 서두르고 있었다.
양효석은 다리를 절룩여가며 열셋의 부하를 잃어버린 소대 옆을 따라 걷고 있었다. 사병 열셋이면 소대병력의 삼분의 일이나 없어져버린 것이다. 양효석은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이나 복수심과는 별개로 사람을 인정사정 없이 잡아먹는 전쟁이라는 것 자체에 무서움을 느꼈다. 묻어주고 어쩌고 할 틈도 없이 적진에 버려두고 온 부하들이 다 자기처럼 공산당에 복수심을 품고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거의가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 사람들로 보아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전쟁판에 끌려나와 그리도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전쟁은 주먹자랑하는 싸움은 확실히 아니었고, 동그란 표적을 놓고 하는 총쏘기 연습도 아니었고, 그저 앞 뒤 가리지 않고 사람 많이 죽이기 시합이었다. 그런데 그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것이 북괴공산당이었다. 그것들은 역시 악질이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없애야 할 종자들이었다.
양효석은 이렇게 후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굴욕을 느끼며 새로운 각오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인자 안 따라오지러? 꼭 죽는줄 알았더마는 나가 이리 살아서 걸아가네."
"허, 말한분 요상허시? 행에 귀신이 아닌가 귀도 잡아뜯어보고 부자지도 훑어보고 그러씨요."
"그리 수고 안해도 형씨 말이 제대로 들리니께네 살았는 것은 틀림없소. 그란데 보소, 글마덜 거 우짠 일로 박격포를 그리도 잘 쏘는교? 꼭 박격포탄에 눈깔 달린 것맹쿠로 백발백중 아니등교."
"형시도 참 깝깝허요. 소금 안 친 싱건 말이 되겄제만, 날이날마닥 쎄빠지고 좆빠지게 연습을 혔응께 그리 된 것 아니겄소."
"맞소, 전쟁 일으킬라꼬 밤낮없이 연습해서 그리 됐겠지러."
"모리는 소리 마소. 박격포부대는 모두가 모택동의 팔로군 출신으로, 글마덜 포쏘는 기술이 구신 잡아묵게 기맥혀 깔판도 안 받치고 백발백중시킨다카는 소문 듣지도 몬했능교."
다른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그래예? 그라면 우리는 백전백패, 내 제삿날도 코앞이네."
"우리야 다 집떠날 적에 사잣밥 받아논 신세들잉께 겁묵을 것 없소. 워쨌거나 요 질로 가먼 워디로 가요?"
"마산 아닌교."
"당아 멀었소?"
"잊어뿔고 걸으이소."
말이 끊겼다.
부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걷던 양효석은 문득 적막감을 느꼈다. 그리고 오른쪽 무릎의 시큰거리면서 잡아당기는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 그렇다고 다시 무슨 이야기를 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작전보행 중 잡담은 금지사항이었다. 빤히 뚫린 길 위에 눈이 따갑도록 8월의 햇살이 꽂혀 내리고 있었다.
먼 폭음을 끌며 비행기 편대가 날아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일제히 폭음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네 대의 비행기가 흰 몸체를 제각기 햇빛에 번쩍거리며 동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유엔군은 마산, 왜관, 영덕을 잇는 방위선인 워커라인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선생님, 다 됐습니다."
전 원장이 마지막 반창고를 붙이고 허리를 펴며 말했다.
"더운데 수고하시었소."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서민영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괭이로 찍힌 발등에 쑥가루를 뿌려놓았는데 날씨 탓인지 덧나서 결국 병원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선생님한테 안창민이란 사람이 찾아갔더라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전 원장이 서민영을 마주보게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물었다.
"얼마 전에 그랬지요. 저를 보고 협조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자기네가 너무 젊고 하니까 나이가 좀 든 사람을 내세워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호응을 넓히자는 뜻은 아는데, 원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정치 같은 것하고는 멀리 있는 사람이라 거절을 했지요."
"입장이 곤궁하셨겠습니다."
"사실이지요. 이런저런 말이 오가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안창민이란 사람이 제 제자인데다가 귀를 가진 사람이라 물러선 거지요."
"염상진이란 사람이 그대로 맡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저를 지목한 것은 그 사람들이 미리 의논한 것일 텐데, 염상진이란 사람도 결국 제 말을 이해했을 겁니다. 안창민이란 사람이 몸집이 좀 빈약해 보여서 그렇지 어느 면에서는 염상진이란 사람보다 날카롭고 고집스러운 데가 있기도 합니다."
"예, 안경 낀 그 눈이 예사 사람으로는 안 보이더군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하는 일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상할 만한 사람들 거의가 미리 피한 탓도 있지만 우선 사람 죽는 일이 안 생기니까 살 것 같군요. 다른 지방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여긴 여순사건을 치른 데다 피할 여유들이 있어서 끔찍한 일 또 안 보게 된 거지요. 안창민이란 사람한테도 죄 있는 인명이라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 여러 번 당부했지요."
"선생님, 그러나 경찰이 예비검속 같은 일을 저질러 가지고는 그런 당부가 효과가 날 수가 없습니다. 권 서장이 무슨 생각으로 저만 살려줬는지 모르지만, 권 서장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저는 영락없이 죽었을 겁니다. 그랬을 때 제 아내나 자식이 보복감정을 갖거나 원한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전 원장의 얼굴에 보기 드물게 핏기가 돋아 올라 있었다. 그는 자기만 살아나고 간호원이 죽은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열이 솟았다.
"그렇지요. 그런 앞뒤가 없는 정치적 악순환이 무고한 대중들만 제물로 삼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말로는 대중을 위한다는 정치가, 참으로 큰일은 큰일입니다."
서민영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저는 정치고 사상이고 아는 것이 없습니다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그나마 이승만 정권에 정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소련무기로 무장을 하고 인민해방인가 뭔가를 하겠다고 나선 김일성 정권도 신용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식 정권, 소련식 정권을 하나씩 쥐고 서로 자기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며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나 전쟁에 끌어내다 죽이고 있는 두 사람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요즘 같아서는 도무지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데도 몸 둘 데가 있어야지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서민영이 걸터앉았던 진찰대에서 내려섰다.
"물 묻히지 마시고, 이틀 뒤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러지요."
전 원장은 감정이 흔들린 것을 쑥스럽게 생각하며, 다리를 절룩거리는 서민영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그날 밤에 요행히 총을 빗맞아 살아난 것이라고 말해오고 있었다.
제재소 가까이에 이른 서민영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어 섰다. 열네댓 발짝 앞에서 인민군 두 명이 걸어오고 있는데, 그 둘레를 열 명 남짓한 사내아이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두 인민군을 올려다보며 중구난방 걷고 있는 아이들의 발에 치료한 발등을 밟힐 것만 같은 위험스러움에 서민영의 걸음은 저절로 멈춰졌던 것이다.
서민영의 눈길은 자연히 앞에서 다가오고 있는 두 인민군에게 머물렀다. 한 사람은 키가 컸고, 한 발짝쯤 뒤처져 옆을 따르고 있는 따발총 멘 사람은 보통 키였다. 아이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은 키 큰 사람이었다. 그의 복색은 한눈에 보아도 달랐다. 사병 것과는 질이 다른 옷감에, 어깨에 붙은 넓고 붉은 견장, 어깨에서 허리로 대각선을 긋고 있는 가죽띠, 권총에 바지를 타고 내린 붉은 줄, 윤기 도는 가죽장화가 인민군 고급군관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그 색다른 차림이 신기했던 것이고, 인민군 군관은 아이들이 따라붙고 있는 것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군관이 네댓 발짝 앞까지 가까워지고, 서민영이, 아니 저 사람이…… 하고 생각했을 때 서민영의 눈길을 의식했던지 군관의 얼굴이 서민영 쪽으로 돌려지면서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아니, 정말 자네가!"
서민영의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였고, 절도 있게 옮겨지고 있던 군관의 걸음이 뚝 멈춰졌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서민영 선배님 아니십니까!"
군관이 감격어린 소리와 함께 서민영 앞으로 급히 다가왔다.
"아, 자네가 맞군, 범준이 자네가 맞아."
서민영의 목소리가 떨려나오며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인민군 군관은 김범우의 형 김범준이었다.
"선배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반가움이 넘쳐나는 얼굴로 김범준은 서민영의 팔을 흔들어댔다. 나이가 말하는 무게 잡힌 준수함이 다를 뿐 그의 얼굴에서는 동생 김범우를 첫눈에 느낄 수 있었다.
"자네가 살아 있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일이구먼."
서민영은 반가움으로 목메이면서, 한편으로는 그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경위를 빠르게 유추해보고 있었다.
"다 죽은 줄 알고 있었겠지요. 무리가 아닙니다. 중국생활을 작년에야 마쳤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그래, 어디서 오는 길인가?"
"광주에서 일을 대략 정리하느라고 좀 늦었습니다."
"그래, 나하고 길게 끌 시간이 없네. 어서 가서 부친을 뵙게. 자네 생사를 몰라 부친께서 상심이 크셨네."
"어머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뵜던가?"
"미리 연락을 드렸더니 광주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서울인들 안 가셨을라고. 어서 가 보게. 우리야 또 만나면 되지"
"그럼, 다시 뵙기로 하겠습니다."
김범준은 서민영의 모습을 다시 훑어보며 무슨 말을 할 듯 하다가 엷은 웃음을 떠올리고는 그냥 돌아섰다. 그 웃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김범우와 흡사할까를 생각하며 서민영은 그의 군인다운 몸집과 걸음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인민군 고급군관이 되어 돌아온 사실이 의식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일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복잡하게 얽힌 이 민족 역사현실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김범준은 오른쪽으로 돌아 횡계다리로 접어들었다. 집이 똑바로 건너다 보였다.
긴 떠돎 속에서 꿈에 나타나곤 했던 변함없는 그 모습을 보자 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가 함께 떠올랐다.
"이 애비가 못하고 있는 독립 일을 너가 하겠다고 나섰는데 어찌 막기야 하랴만……"
아버지는 자식이 겪을 고생을 아파했지만 말로 드러내지 않고 가슴에 묻었다. 긴 세월 저편의 기억이었다. 그때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더 늙으셨을까를 그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김범준은 횡계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읍들녘을 멀리 바라보았다.
황해룡 동지와 함께 물젖은 옷으로 도망치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마침 밀물이어서 포구로 뛰어들어 다리 밑에 몸을 잠그고 있다가 들녘 가운데로 난 개울을 타고 벌교를 빠져나갔던 것이다. 언제나 긴긴 포구의 갯내음은 고향의 냄새였고, 산으로 에워싸인 고읍들녘은 고향의 모습이었다.
김범준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뒤따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주오던 서너 사람이 그를 흘끔거리며 비켜서듯 하는 몸짓으로 지나쳐 갔다.
김범준은 고샅으로 들어서기 전에 잠깐 걸음을 멈추고 복장을 단속했다. 옆에 선 병사도 따라서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고샅을 ㄱ자로 꺾어 돌면 바로 집이었다. 그는 가슴 가득 숨을 들이켜며 걸음을 떼어놓았다. 예전 그대로인 돌 섞인 흙담을 지나는데 지짐이 부치는 기름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김범준은 무심결에 코를 벌름거렸다. 명절의 냄새였고, 어머니의 냄새였다. 김범준은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을 들어섰다. 대문이 두 쪽 다 있는 대로 열려 있는 것이 자신을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의 마음 같았다.
"인자 오시는가, 어여 오시게."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이씨가 큰아들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하먼, 어여 오르시게, 아부님이 기운파허시겄네."
이씨는 정겨움이 넘치는 눈길로 아들을 올려다보며 손을 끌었다.
“어머님, 저런 것 준비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김범준의 눈길이 안채 쪽으로 옮겨갔다.
"걱정 마소. 미리 말 듣고 암것도 장만 안했네. 다 아부님 허락받고 헌 일인께 맘놓소."
"예에, 저 전사를 편히 좀 쉬게 해주십시오."
김범준은 어머니에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박 동무, 여기가 우리 집이오. 땀부터 씻고 편히 쉬시오."
그는 옆에 선 병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네다."
스무서너 살 먹어 보이는 병사가 부동자세 상태에서 다시 몸에 힘을 넣으며 대답했다.
김범준은 권총을 풀어 모자와 함께 기둥 옆에 놓았다. 그리고 장화를 벗고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이씨가 방문에 쳐진 발을 받쳐올리고 서 있었다.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방안으로 들어선 김범준은 고개를 드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하마터면 아니, 아버님!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아랫목에 앉아 계신 아버지는 어머니의 모습에 빗대어 상상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너무나 늙고 쇠진해 있었다. 그는 가슴에 커다란 멍울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아버님, 제가 왔습니다. 범준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메었다.
"그래……"
큰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김사용의 저승꽃 핀 얼굴이 잔물결로 경련하고 있었고, 입술이 안 보이도록 입은 꾹 다물려 있었다.
"아버님, 절 받으십시오."
김범준이 큰절을 올렸다. 그의 엎드림은 다른 사람들의 큰절보다 갑절은 길었다.
"아버님, 너무 늦게 돌아온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그래, 청년으로 떠난 몸이 장년이 되어 돌아왔구나. 앉거라."
어감이 느껴지지 않는 김사용의 말이었다.
"예에, 아버님 건강이 좋아 보이질 않습니다."
김범준이 무릎 꿇어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안타까운 눈길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걱정 말어라, 너를 다시 보도록끔 오래 산 나이가 아니냐."
김사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초췌한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제가 장자로서 뵐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다, 그리 생각할 것 없다. 니가 헛일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이리 살어서 만내게 된 것으로 다 족허게 풀린 거이다."
김사용이 긴 담뱃대로 담배함을 끌어당겼다.
"아버님, 제가 하겠습니다."
김범준은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담배함을 잡았다. 그리고 담뱃대 끝부분을 담배함에 걸쳐놓고 실담배를 털어가며 담배통에 조심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김사용은 담뱃대를 잡고 앉아 큰아들의 손놀림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은 끝없이 아슴했고, 흐뭇해하는 웃음이 그윽하게 퍼져 흐르고 있었다. 이씨는 남편과 큰아들의 모습을 번갈아보다가 옷고름 끝을 눈으로 가져갔다.
김범준은 손끝에 신경을 모아 담배가 담기는 감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담배를 무작정 꽁꽁 눌러대면 불이 잘 붙지 않으면서 연기가 빨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헤풀하게 담으면 담배가 마디지 않으면서 헛바람이 새게 되었다. 담배가 눌리지도 않고 부풀지도 않게 담아 연기가 숨길에 따라 부드럽고 넉넉하게 빨리도록 담배를 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담배통에 담배를 담아드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물부리를 물고 앉아 담배를 담아감에 따라 바람을 빨아들여보고 내뿜어보고 하시며 담배가 제대로 담기도록 조정하고 거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마음에 들면 엿이 한 가락이었고, 안 들면 담배통으로 맞는 꿀밤이 한 대였다.
"인냐, 쪼깐만, 쪼깐만 더 눌르그라."
갑작스러운 말에 김범준은 문득 손놀림을 멈추었다. 그건 분명 여렸을 적의 할아버지 음성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내려감은 채 물부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할아버지였다.
"예, 아버님, 이제 어떠십니까?"
김범준은 손가락 끝에다 힘을 모아 담배를 조심스럽게 누르며 여쭈었다.
"그려, 쪼오깐만 더 눌르그라."
김범준은 아버지의 그 진한 고향말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인냐, 되얐다, 되얐다."
김범준은 할아버지의 담배통에 불을 붙이던 그때의 기분으로 성냥을 그었다.
"아버님, 빠십시오."
아버지는 두 볼이 움푹움푹 패이도록 물부리를 빨았고, 담배연기는 그때마다 시원스레 뿜어져 나왔다. 김범준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김사용은 무슨 생각인가를 하는 얼굴로 한동안 담배만 빨고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범준아, 니는 일찍허니부터 남들이 다 피하는 고생길을 솔선해서 걸은 사람이다. 그 작심은 장하고 장한 것이었는디, 니가 시방 허고 있는 작심도 장한 것으로 생각해야 허겄냐?"
김범준은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일단 고개를 숙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었다.
"이 사람아, 워쩔라고 요런 모냥을 허고 왔능가. 아부님 맘이 워쩌시겄어."
광주에서 어머니가 한 이런 말이 아니었어도 아버지를 뵙게 되면 한 차례 꼭 거쳐야 될 과정으로 생각했던 일이었다.
"예, 남자 한평생을 거는 일이라서 제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것입니다. 사상의 선택이라는 것은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과 달라서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가 없고, 입장과 관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더 인간을 위해 정의로운 것인지, 어떤 것이 더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개혁하는 힘인 것인지, 어떤 것이 더 인간의 역사발전을 도모하는 필연법칙인 것인지는 자명하게 판가름나 있습니다. 제가 택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버님께서 납득이 곤란하시더라도 그 점만큼은 접어주셨으면 합니다."
김범준의 태도는 아까 담배통에 담배를 넣던 모습이 아니었다. 두 어깨의 붉은 견장이 제 빛을 발하도록 그의 눈빛은 강렬했고, 얼굴에는 신념에 찬 힘이 서려 있었다.
김사용은 아들의 모습에서 염상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말이 많으면서도 굳이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들이 주장하는 논리를 이길 도리가 없는 일이었고, 그보다는 이제 자신은 이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고단한 생각이 더 컸다.
"그래, 맡은 일은 무엇이냐?"
"전남 서남지구 사령관입니다."
"그래, 누가 더 옳은지는 세월이 지내가 봐야 알 일이고, 지금은 서로 총을 맞댄 어지러운 세상이다. 사람이 권세를 지녔을 적에 그것을 여러 사람을 위해 쓰면 겸손해지고, 자기를 위해 쓰면 교만해지는 법이니라. 실인심하지 않도록 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인민위원회는 물론 여성동맹위원회와 청년동맹위원회도 모든 마을까지 그 조직을 갖추고 정상 활동을 펼쳐나갔다. 인민위원회는 일반 행정업무를 집행하는 한편으로 농지현황파악을 서두르고 있었고, 여맹은 여자와 소년층을 대상으로 노래를 가르치는 등 문화선전활동에 주력하고 있었고, 민청은 여맹과 협조하는 한편 내무서를 중심으로 치안확보를 해나가고 있었다. 특히 여맹은 위원장 이지숙의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지도 아래 활동성과가 두드러지고 있었다.
염상진은 군당위원장으로 복귀했다. 도당 전체에 개편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군당처럼 지하조직이 다 드러나서 군당조직이 곧 야산대고, 또 규모가 크지 않은 군당이니까 별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지하조직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야산대 활동을 병행했던 광주나 목포 같은 큰 도시에서는 인사 조직이 삼중으로 겹치는 결과가 됐소. 야산대는 야산대대로 조직을 짰고, 지하조직은 지하조직대로 그랬고, 당중앙은 당중앙대로 조직을 짰던 것이오. 이건 우리의 전체적인 조직이 파괴되면서 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조직은 통일성 있게 정비되어야 하는 것이고, 결국 당중앙의 결정에 따르는 원칙하에 재정비가 이루어진 것이오. 그래서 김선우 도당위원장은 부위원장으로 자리가 바뀌고, 위원장은 박영발 동무가 맡게 된 것이오."
염상진이 안창민에게 설명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박영발 위원장은 어떤 분인가요."
안창민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물었다.
"고향이 경상도로, 일제때부터 철도노조를 기반으로 투쟁한 분이오. 불법화 이후 월북해서 모스크바대학 단기 이년을 졸업했소. 이번에 전북도당위원장을 맡은 방준표 동무와 고향부터 모스크바대학 졸업까지 그 경력이 똑같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박영발 위원장이 일제때 고문을 당해 보행에 지장이 될 정도로 두 다리가 불편하다는 점이오."
"투쟁경력이 혁혁한 분들이군요."
안창민이 무슨 생각이 담긴 어조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당은 안창민에게 군당부위원장의 지령을 내리고 있었다.
염상진이 군당위원장으로 되돌아와 첫 번째로 맞이하게 된 것이 소화의 일이었다.
"……긍께로 위원장님께서 워찌 잠……"
풀기 싱그럽게 살아오르는 모시치마저고리를 받쳐입은 소화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온통 꽃빛으로 물들이며 간신히 말을 마쳤다. 염상진은 그런 소화를 호의적인 웃음이 어린 얼굴로 바라보며, 저 모습에 정하섭이 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저 젊은 무당은 광주의 도당에서 일하고 있는 정하섭을 어떻게 손을 써서 벌교로 옮기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당업무와 아무 상관도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필요에 지나지 않은 그런 부탁이란 용납될 수도 없었고, 그 태도 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염상진은 처음부터 호의를 가지고 그 여자를 대했고, 부탁을 다 듣고 나서도 그 호의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로서는 그런 부탁을 할 만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그동안 수행한 여러 가지 동지적 공적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부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시겠습니까?"
염상진이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위원장님…… 지가 가진 딱 한 가지 소원인디요……"
소화의 얼굴이 절박하게 변했다.
"그리 애타 하지 마십시오. 일이란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정 동무가 내려오는 것만 생각지 마시고, 소화 동무가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소화의 얼굴이 금방 바람탄 지전처럼 피어났다. 그러나 이내 시무룩해졌다.
"지도 여맹에 맡은 일이 있는디요."
소화의 목소리에 맥이 빠지고 있었다.
"그건 염려 마세요. 내가 이지숙 동무한테 부탁할 테니 소화 동무는 광주에 가서도 여맹에 가입해 여기서처럼 활동하면 당 사업에는 아무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고맙구만이라, 고맙구만이라."
손을 앞으로 모아잡은 소화는 두 번, 세 번 허리를 굽혔다. 기쁨과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모시옷에 받쳐져 한결 더 청초하고도 화사했고, 손을 모아잡아 더 좁아진 어깨로 허리를 나긋나긋이 굽히고 있는 그녀는 마치도 무슨 춤동작을 하고 있는 듯싶었다. 염상진은 고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 왔을 때 저 여자가 과연 무당 일을 완전히 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염상진은 그 전망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백정이나 그 아들, 대장장이와 무당의 아들같은 기본출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무당이 직접 조직에 낀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소화는 사무실을 나오며, 그 똑똑한 이지숙 선생이 어찌 그 생각을 못해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남으로 피했다가 돌아왔을 때 정하섭이 이미 와 있을 줄 알았었다. 그런데 들몰댁의 남편 하대치도, 이지숙의 연인 안창민도 와 있었는데 정하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들몰댁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혼자인 외로움과 함께 정하섭에 대한 그리움은 더 절절해졌다.
이지숙의 권유에 따라 여맹에 가입했지만 도무지 일에 신명이 붙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만이라도 알아야겠기에 이지숙에게 부탁을 했다. 거처라도 알면 좀 나을 것 같았던 마음이 광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질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밤마다 마음은 석거리재를 넘고, 화순을 한달음에 지나 무등산자락을 헤매고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가죽혁대로 고문을 당하는 아픔이 나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피해 다녀야 했을 때는 걱정 속에서도 달았던 그리움이, 거처를 알면서도 만날 수 없는 형편에는 쓰라린 고통이 되었다. 견디다 못해 이지숙에게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따로 부탁할 테니까, 소화 동무가 직접 위원장님을 찾아 부탁을 드리세요. 위원장님은 그런 걸 충분히 이해하실 분인데다가, 소화 동무는 그런 청을 해도 괜찮을 만큼 그동안 열성적으로 투쟁을 했어요."
이지숙이 망설이 없이 한 말이었다.
이지숙이 그 쉬운 생각을 못해낸 것이 아니라 이지숙도 역시 여자라고 생각했다. 벌이 꽃을 찾듯이 남자가 여자에게로 오는 것이지 여자가 함부로 남자를 찾아가는 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염상진에게 두 번째 닥친 것은 살인사건이었다.
강동기의 출현으로 감복동, 마삼수, 지삼봉은 아주 자연스럽게 민청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삼봉이가 주인 이춘삼을 타살한 것이다.
지삼봉은 안창민네가 다시 읍내를 차지하고 돌아올 때까지 이춘삼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찌할 수 없어 머슴살이를 계속하기는 했지만 지난 농지개혁 때 제외되어 아무런 혜택도 못 받게 되자 다른 머슴들처럼 주인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고 민청에 가입한 그는 머슴살이를 때려치우기로 작심했다. 그는 주인에게 그 뜻을 알리고, 그동안 장리변으로 불려나가기로 해서 묵혀두었던 새경을 모두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인은 쌀이 다 장리로 나가 있다는 이유로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주인 이춘삼의 태도는 독오른 종기 꼬집는 격이었고, 성난 개 꼬리 밟는 격이었다. 성질이 폭발한 지삼봉은 마루로 뛰어올라 주인을 가마니쌀 내던지듯 멱살을 털어잡고 허리치기를 해버렸던 것이다. 마루에서 마당으로 패대기쳐진 이춘삼은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고는 그만이었다. 목뼈가 부러져 죽어버린 것이었다.
염상진은 지삼봉을 일단 잡아들였다. 그리고 사건경위를 상세하게 적고, 지삼봉은 살인을 한 범인이므로 어디까지나 법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며,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적 감정으로 보복행위를 하는 자는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니 자중하고,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인민위원회나 내무서에 먼저 알려야 한다는 말을 뒤에 달아 그 전단을 배포시켰다. 상부에서 촉구하고 있는 질서유지가 하부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것에 대해 염상진은 고심했다. 누적된 감정이 폭발해서 크고 작은 사적 보복행위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감정의 심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분명 인민이 해방의 의미를 잘못 인식해서 벌어지는 사태였다. 염상진이 첫 번째 발생한 살인사건에 신경 쓰는 것은 그 일을 민청원이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인민에 대한 조직원들의 사소한 횡포도 근절시켜야 하는 형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민해방투쟁은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로 성취되고,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는 조직원들의 신념에 찬 헌신적 봉사와 모범적 실천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이었다. 당이 반동을 가차 없이 처단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인민의 뜻에 따라, 인민의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청원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그런 근본적 원칙에 위배되는 반인민적 반당적 몰지각이 아닐 수 없다. 살인을 하게 된 동기와 우발성은 충분히 인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살인을 합법화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살인을 하자면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염상진은 혼자 이틀 동안을 고심했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간부회의를 거쳐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므로 회의부터 소집하기로 했다.
염상진이 세 번째 겪은 일은 어느 여자노인네와의 만남이었다.
"나넌 감골댁이라고 허는디, 요리 말허먼 몰르시겄제라이? 나가 누군고 허니, 고두만이 엄씨요, 엄씨."
그때서야 염상진은 앞에 선 노인네의 신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그러시군요. 어서 이리 좀 앉으시지요."
고두만이가 투쟁 중에 죽었다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염상진은 노인네에게 무릎이 꿇리는 기분을 또 느꼈다. 전사자 가족을 대할 때마다 변하지 않는 똑같은 감정이었다.
"지가 진작에 인사럴 왔어야 허는디, 대장님이 다시 오셨다는 이약일 어지께서 들었구만이라."
감골댁은 마른침을 삼키며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부채."
염상진은 얼른 부채를 내밀며, 며느리가 애를 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만이야 지 명이 짧어 죽었어도 대장님 은공으로 새끼럴 얻었응께 나가 머럴 더 바랄 것이요. 그 하늘 겉은 고마운 은공 땀세 요리 찾아왔구만이라."
"그래, 어떤 손자를 보셨습니까?"
염상진은 느낌이 좋은 쪽으로 기울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꼬치제라, 꼬치!"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감골댁의 목청은 높고 기운찼다.
"아이고 참 잘됐습니다. 잘됐습니다."
염상진의 얼굴이 목소리만큼 밝았다.
"워따, 대장님할라 그리 좋아라 허주신께로 요 늙은 것 맴이 또 한분 좋아뿌요. 금메, 대장님이 아니셨드람사 우리 집안 꼬라지가 워찌 되얐을 거시오. 대가 끊어져 뿌렀을 것인디, 그 생각만 하먼 지금도 아실아실허당게라."
"그러시겠지요, 아들손자라서 참말 다행입니다."
"아니구만이라, 당연지사제라. 대장님이 씨 보존허는 기맥히게 존 방법할라 그리 세세허게 갤차줌서 맘쓰셨는디 워찌 아덜이 안 나오겄는게라."
"아이구 뭐……."
염상진은 그때 생각이 나서 쑥스럽게 웃었다.
"대장님 은공이 하늘이시오."
"아닙니다. 제가 혼자서 한 일도 아닌걸요."
"야아, 지가 은혜갚어야 헐 분이 시 분 더 기시는 것 다 알제라. 손선상님허고 김 선상님이야 안 기신께 으짤 수가 웂고, 그 군인 대장님얼 요분 참에 못 만낸 것이 원통하고 절통허구만이라."
"그 사람이 언제 또 왔었습니까?"
염상진이 관심을 드러냈다.
"긍께, 머시냐, 칠월 중순이 쪼깐 지내 왔드라는디, 워치케나 번개치대끼 다급허게 왔다갔는지 지도 떠난 담에사 그 소문얼 들었당께라. 워치케나 서운허든지……"
인자 영영 못 만내먼 워쩌제라? 하는 말을 감골댁은 꿀떡 삼켰다.
염상진은 김범우와 손승호를 생각했다. 서울에서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도 염려스러웠다.
"대장님, 손지럴 메누리헌테 안기고 항꾼에 와서, 손지럴 대장님헌테 귀경시키고 메누리가 인사올리게 허는 것이 도린디, 이눔에 날이 요리 푹푹 쩌대니 물탱이 겉은 손지 더우 믹일까 무서바 못 딜꼬 왔구만이라."
"그러문요, 잘하셨습니다."
"찬바람 일먼 딜꼬 오기로 허고, 대장님, 요것 지 맴 표식잉께 받어두시씨요."
감골댁이 부끄러운 듯 내민 것은 달걀 한 꾸러미였다.
"아이고, 아닙니다. 가져가셔서 할머니나 잡수세요. 아니, 젖 잘 나와 손자 건강하게 키우도록 며느리 해먹이세요."
염상진은 두 손을 저었다.
"음마, 보잘 것이 웂어서 그러신다요, 시방?"
감골댁의 얼굴이 금방 싸늘하게 변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마음만으로도 받은 것이나 똑같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민폐 끼치지 마라, 못된 일 하지 마라, 하면서 이런 걸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인민군들이 물을 얻어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냥 받아먹지 않는다는 건 할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고것이 워쩌크름 똑겉으요. 손바닥허고 손등허고 한 치가 못되게 가차와도 손바닥은 손바닥이고, 손등은 손등이제, 고것이 같으요? 민폐 막는 것허고 사람 정리 표식허고럴 구별 못허고 똑겉이 보는 것이 공산당시상인 갑는디, 고런 시상얼 각다분허고 팍팍혀서 워찌 살겄소. 나넌 공산당시상이 고런 시상인지 몰랐소. 사람덜한테 그리 말허제라."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계란 이리 주세요."
염상진은 곤혹스러운 웃음을 지으면 달걀꾸러미를 받아들었다.
"하먼이라, 그래야제라."
감골댁이 흡족하게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찬바람 사르르 일먼 손지 델꼬 오겄구만이라."
감골댁의 작별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