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임원 날다 / ⑤ 조정열 한국 MSD 영업 및 마케팅 상무 ◆
우리나라 제약업계에서 여성 영업사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5년 한국MSD가 여성 직원을 대거 채용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스킨십` 영업이 중시되는 국내 풍토에서 모험으로 받아들여졌다. 요즘은 외국계뿐 아니라 국내 제약사에서도 여성 영업사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중간관리자 지위에 오른 여성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여성을 영업조직 책임자로 둔 제약사를 찾기는 힘들다. 조정열 한국MSD 상무는 국내 유일한 제약 영업담당 여성 이사다.
# 생활수칙 둘 술 취해 집에 가지 않기, 집에서 일하지 않기
한국MSD는 탈모 치료제 `프로페시아`로 널리 알려진 글로벌 제약기업 미국 머크사의 한국법인. 조정열 상무는 이 회사의 4개 영업부서 가운데 근골격계 영업 및 마케팅의 총책임자다. 휘하에 모두 100여 명의 영업사원이 뛰고 있다.
제약영업은 터프하다. 조 상무는 하루에도 여러 명의 병원장과 학회장, 교수들을 만난다.
2월 2일자 다이어리를 들여다봤다. 오전에 2시간에 걸친 임원회의 직후 전국 영업 매니저들과 1월 실적 평가, 2월치 목표를 놓고 미팅이 있었다. 오후엔 모 종합병원의 병원장을 만나 최근 론칭한 당뇨병 치료제 `자누비아` 납품을 설득했다. 이후 자누비아 론칭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는 M호텔로 직행해 주로 의사인 참가자들을 만나 인사를 건네고 제품을 홍보했다. 행사는 밤 10시가 조금 넘어 끝났고 집 현관에 들어선 것은 11시쯤이었다. 평균 귀가시간은 10시다.
영업을 하려면 술도 좀 마셔야 하지 않을까. 소주 1병, 위스키 7잔이 주량이다. 좀 취했다 싶은 날엔 차안에서 술이 깬 후 집에 들어간다. 남편은 모르는 일이다. 취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기, 집에서 일하지 않기가 2대 생활수칙이다.
# 금녀의 벽 허물다 터프하다는 제약영업 섬세함으로 뚫어
1991년 대학원을 마치고 들어간 조 상무의 첫 직장은 리서치 회사였다. 이곳에서 2년 동안 시장조사 업무를 했다. 시장조사를 하다 보니 마케팅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래서 도전한 회사가 영국계 생활용품 회사 `유니레버`. 일반인이 알 만한 외국계 기업은 P&G와 유니레버 정도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어렵게 들어갔죠. 입사 동기 중 거의 유일한 국내파에, 나이도 가장 어렸어요." 들어가는 것보다는 생존이 더 힘들었다.조 상무 이력에서 대학원까지 외국생활 경험은 전무하다.
"유니레버에 들어가고 나서 영어회화라는 걸 처음 접했어요. 1년 동안은 회의 때 꿀 먹은 벙어리로 있다가 회의가 끝나면 무슨 내용이 오갔는지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1년쯤 지나고 나니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2년이 지나니 영어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해지더군요."
유니레버에 7년간 머물며 영어뿐만 아니라 마케팅의 기초를 익혔다. 그 다음 옮긴 직장이 프랑스계 화장품 회사인 `한국로레알`. 이곳에서 백화점 영업 책임자로 일했다.
한국로레알 브랜드 본부장으로 있던 조 상무가 한국MSD의 탈모ㆍ전립선 치료제 영업담당 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2년. 36세 때였다.
제약영업 경험이 없는 30대 여성을 책임자로 앉히는 것은 회사로서도, 본인 입장에서도 모험이었을 것이다. 2002년만 해도 MSD의 여성 영업사원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현장에서도 단정한 대졸 여성 영업사원을 부담스러워 했다.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렵다` `술 한잔 같이 할 남자 사원을 보내라`는 불평이 올라왔다. 그러나 조 상무는 `관계` 중심의 제약영업은 끝이라고 봤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고, 사전 준비를 열심히 하고, 프레젠테이션에 강한 여성이 영업에 맞다고 생각하고 비중을 늘려 나갔다. 현재 MSD의 여성 영업사원 비율은 절반에 가깝다.
결혼은 대학을 졸업하던 1989년에 했다. 현재 IT업계에서 일하는 남편과 사이에 중1 아들을 두고 있다.
# 목표 두가지 훌륭한 기업의 사장 & 자랑스러운 `영우 엄마`
20년에 이르는 결혼생활 중 그가 도우미를 쓴 것은 최근 2년이 전부다. 밤 10시가 넘어 귀가했지만 청소 빨래 다림질까지 모두 직접 했다. 그는 요즘도 금요일 오후엔 다음날의 `동선`을 미리 구상한다고 한다. `몇 시까지 빨래를 끝내고 몇 시엔 어느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고….`
보통 이런 경우 `슈퍼우먼 콤플렉스`가 있다고들 한다. "인생이 피곤해요. 365일 저를 위해 쓰는 날이 없어요."
그만의 자기충전법은 무엇일까. TV 버라이어티쇼 `패밀리가 떴다`를 넋 놓고 1시간 보는 것, 굽 낮은 신발을 신고 강남 교보문고에 가서 서너 시간씩 책 읽는 것을 꼽았다. 조 상무가 꿈꾸는 휴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몇 시간씩 뒹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본 기억이 없다.
조 상무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여성일수록 역경에 약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어려움에 부닥치면 `다른 길도 있는데 내가 뭘 이렇게까지…` 하면서 포기합니다. 남자들은 유연하고, 또 다른 길도 별로 없죠(웃음). 그게 남자들이 요직을 점령하는 비결이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 "유연해져야 합니다. 한두 해 성과에 조바심을 내지 마세요. 긴 비전을 갖고 차근차근 현재를 치열하게 살다 보면 꿈은 이뤄집니다."
조 상무는 두 가지 성공목표를 갖고 있다. 첫째는 `훌륭한 기업`의 사장이 되는 것.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기업은 일하는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고 고객이 다른 회사와 차별성을 인정해주는 회사다. 두 번째 목표는 자랑스러운 `영우 엄마`가 되는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직함은 옷을 벗으면 그것으로 끝이죠. 그런데 누구의 친구,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라는 것은 평생을 갑니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 She is…
△1967년생 △이화여대 사회학 석사 △프랑스 파리 인시아드 MBA △1993년 한국유니레버 마케팅 매니저 △1999년 한국로레알 브랜드 디렉터 △2002년 한국MSD 탈모ㆍ전립선 치료제 영업 및 마케팅 상무 △2005년 한국MSD 아시아ㆍ태평양 전략마케팅 상무(미국 본사) △2006년 한국MSD 대외협력부상무 △2007년 한국MSD 근골격계 영업 및 마케팅 상무
[노원명 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