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7일 캐나다 영화감독 아더 힐러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34세이던 1957년부터 타계 10년 전인 83세까지 50년 동안 모두 37편의 영화를 찍었다. 대략 16개월마다 한 편의 영화를 생산했으니 그만하면 대단한 다작 감독이라 하겠다.
힐러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1970년작 〈러브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러브 스토리? 제목만 들어도 진부하고 식상한 내용으로 꽉 찼을 것 같은 짐작이 일어난다. 과연 그럴까? 50년 전 영화인즉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다.
하버드대 학생 올리버는 명문가 상속자이다. 그런 올리버가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온 가난한 집안 딸 제니와 사랑에 빠진다. 올리버의 아버지가 둘의 결혼에 강력히 반대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절을 선언한 뒤 재정적 지원마저 끊어버린다. 시작이 벌써 진부와 식상의 극치를 달린다.
올리버는 자비로 어렵게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다. 제니는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한다. 둘은 학교 근처 주택 꼭대기에 방을 얻어 힘들게 생활한다. 마침내 올리버가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한 후 뉴욕 유명 법률회사에 취직한다. 이 역시 진부와 식상의 뻔한 스토리이다.
아무튼 둘의 삶이 밝아질 것 같은 시점이 되었다. “형편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거나 “별의 순간을 잡았다” 같은 우리나라 정치판의 촌철살인이 적용되어도 무방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관객들이 입소문을 내지 않는다. 제니가 백혈병 말기라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지고, 끝내 죽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진부와 식상은 지구상에 다시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시걸의 원작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영화 또한 엄청난 대박을 쳤다. 어째서 이토록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의 영화가 그토록 많은 대중을 사로잡았을까? 누군가는 음악 덕분이라 하고, 누군가는 보통사람처럼 보이는 순박한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등의 명대사 덕분이라 하는데….
진부하고 식상한 내용 덕분에 이 영화가 그처럼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닐까? 매슬로우(1908∼1970)는 “인간에게는 자신의 진정한 운명이나 사명을 피하려는 콤플렉스가 있다”라고 했다.
매슬로우는 또 구약성서 요나가 신의 명령에 불복하고 반대 방향으로 간 것을 “위대해지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진부하고 식상한 것 앞에서 편안해 하는 인간의 속성을 매슬로우는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