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아빠 여보 아들아~ 3월인데 우린 꽃놀이 안가?" 그래요. 3월이에요. 다들 꽃놀이다 뭐다 해서 나들이 간다는 계절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몸이 제 것이 아니에요. 물론 저도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봉사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어디 쉽습니까 그게? 솔직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버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조금 얄팍해 보여도 도심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꽃 맞이 나들이로 '멋진' 오빠 아빠 여보 아들 일래요. 일단 소월길로 첫 발을 내딛습니다. 아시다시피 소월길은 대표적인 나들이 코스죠. 이름부터 상콤한(?) 남창동에서 한남동으로 약 3.7km 뻗어 있는 이 길은 서울 시민에게 축복의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소월길 좌로는 남산 공원이 있어 봄기운 가득한 꽃과 나무를 관람할 수 있고 주변에는 아리따운 휴식공간이 즐비해 나들이 코스로 아주 이상적인 곳입니다. 특히 공원 끝무렵에 있는 약수터는 생각지도 못했던 꿀단지를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월길 우로는 뻥 뚫린 시야가 있어 가로 산책의 흥을 더 없이 돋궈주기도 하죠.
천천히 느긋하게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리고 느리게 답답할 만큼 더 느리게 걸으세요. 느림의 미학입니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내려오시면 이태원 로데오로 이어지고 초입에 들어서기 바로 전 리움 미술관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나름 고가의 희소가치 있는 미술품을 전시한다는 이 곳은 국민학교 때 찰흙으로 한무 같은 다비드상을 만든 이후 미술과 사별한 미술 문화계 소외계층인 저와 같은 존재들에겐 참으로 부담스럽고도 낯선 공간입니다. 물론 조례가 있으시다거나 관심 있으시다면 응당 내방하시어 예술 혼의 갈증을 해소하셔야겠죠. 하지만 돈도 돈이거니와 봐도 만져도 무에 삶아 먹는 물건인지 알 도리 없는 저의 존재는 야외에 마련된 휴식공간에서 호젓하게 옆 사람과 땀을 식히렵니다.
무료 공간이라지만 건축 예술가 분들이 제작한 공간이다 보니 역시 무언가 심오한 것 같습니다. 바닥도 심오해 보이고 의자도 심오해 보입니다. 심지어 나무 판대기도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충 "버려진 상수리나무의 재림?" 제 미술학적 깜냥이 이 정도입니다. 이제 얼추 배가 사리사리 고파오실 때가 되었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태원이 자랑하는 세계의 음식을 맛봐야겠죠. 일본 태국 인도 중국 앤드 구라파 그리고 제 3의 젠더 낙지머리 석천이 형이 하는 태국음식점 등 구미에 맞는 식당을 찾으시면 됩니다. 물론 알아서 하시라고 내몰지는 않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노매드가 추천하는 음식점 몇 곳을 사진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돈 받았냐고 맛 없는데 라고 칭얼대진 마세요. 너만 그러니까. 좌측부터 1. 스모키 살룬 2. 플라잉 팬 블루 3. 옐로우 서브마린
모쪼록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행복한 한끼를 채우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태원은 구석 구석 찾아보면 맛집 외에도 고풍스런 엔틱 가구거리, 독특한 컨셉의 브랜드 숍 등 다양한 즐길 요소들이 있으니 제법 알찬 시간이 되실 겁니다.
또 걷습니다. 나들이니까요. 이태원 로데오를 지나 삼각지 역으로 설렁설렁 이동하세요. 가급적 육교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딱히 볼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기에 이태원을 넉넉하게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시원한 바람 맞으며 지나온 남산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제법 많이 걸었지?’라고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장딴지 더 두꺼워지겠네’ 라고 사족을 붙이시면 더욱 우애 깊은 사이로 발전하실 겁니다. 특히 사진 스팟으로도 훌륭한 공간이니 사진가의 본능을 맘껏 펼쳐보세요. 물론 모델이 좋아야 사진이 산다라는 불변 진리는 반드시 각인하셔야 합니다.
참고적으로다가 말씀 드리자면 저는 육교 위에서 지나가는 외제차에 몰래 몰래 침을 떨굽니다.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냐고요? 배 아파서요.
그렇게 육교에서 내려와 삼각지역-녹사평역 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로 이동합니다. 언덕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이 곳은 약 1km정도의 짧은 가로입니다. 저의 경우 사진을 찍을 때나 나들이를 할 때나 항상 시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변이 복잡하거나 너무 구불구불한 거리는 무언가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가로를 좋아라 합니다. 물론 고저차는 있지만 시원하게 뻗은 직선 가로는 비록 공기 좋지 않은 용산의 거리도 상콤하게 마인드 컨트롤 해주기 때문이죠.
또 양 옆에는 미8군 시설이 있으니 본인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씹으시려면 씹으시고 알아서들 화재 삼으시고요. 24시간 철야 경계 근무를 서는 대한민국의 전, 의경 친구들에게 따뜻한 미소 한방 날려주시면 더 좋겠군요. 이건 제가 의경을 나와서 하는 소리가 맞습니다. 아무튼 가로 끝 무렵에는 국방부와 용산 전쟁 기념관이 있습니다. 국방부… 아 싫습니다. 마냥 싫습니다. 그러니 시선을 오른쪽으로만 두고 용산 전쟁 기념관을 찾습니다. 그다지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으시겠지만 일단 들어서면 넓은 공간에 탁 트인 시야가 있어 맘에 드실 겁니다. 잘 가꿔 놓은 수목조경 역시 봄을 느끼기에 나쁘지 않죠. 아울러 그 밖의 조성과 관리면에서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득한 옛 기억으로 전쟁 기념관으로 치부하실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시설 중 진정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몇 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잠깐 고리타분한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대한민국 유일의 전쟁사 종합박물관인 전쟁기념관은 반만년 이 땅을 지켜온 역사가 살아 숨쉬는 호국의 전당으로, 전쟁의 교훈을 새기고 우리 민족이 두 번 다시 전쟁의 참극을 겪어서는 안되겠다는 실천적 결의를 다지는 곳이지요. 또한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의 민족사적 의미와 세계사적 의미 등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생생한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으아~
뿐만 아니라 서울을 대표하는 시민 휴식 공간답게 수목조경 쾌적한 경관 속에서 부족하지 않은 편의 시설이 조성되어 있으며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만큼 탁 트인 시야가 매력적인 곳이지요. 모쪼록 제법 많은 액수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니 이를 즐겨주는 것도 세금 내는 시민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아울러 순국선열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잊지 마시고요.
주 5일제 시행이래 주말 겨냥 레저 산업은 이른바 황금기를 누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여가를 즐길 물리적 공간 자체가 제한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죠. 즉 어딜 가나 사람 많고 그렇지 않으려면 농담 않고 차에서 반나절 이상은 보내야 합니다. 이러한 전차들은 여가의 과정을 무척이나 긴장되고 위축되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가 영위해야 할 여가의 본질까지 흐리게 하지요. 때문에 본 기자는 주장하렵니다. 이러한 고민할 바에야 차라리 사뿐히 도심 속으로 발을 내딛어 보시라고 말입니다. 모쪼록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꽃 피는 춘삼월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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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명랑여행총본산- 노매드21(www.nomad21.com 원문보기 글쓴이: 노매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