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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먼
요즘 중국 상하이를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해 상하이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약 91만명으로, 전년 대비 2배 넘게 늘었다고 해요. 상하이 여행 후기를 보면 '스쿠먼을 보고 왔다'는 내용도 있는데요. 스쿠먼(石庫門)은 동서양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 양식을 말합니다. 오늘은 스쿠먼의 역사와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제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청나라는 1842년 난징 조약을 체결합니다. 홍콩을 영국에 할양(땅이나 물건 등을 떼어 넘겨줌)하고 여러 항구 도시를 열었는데요. 그중 한 곳이 상하이였어요. 그리고 상하이에는 외국인 거주 지역인 '조계지'가 형성됩니다. 원래 이곳은 중국인의 거주가 제한됐어요. 그러다 1860년대 태평천국의 난을 피해 부유한 지주와 상인들이 상하이로 대거 피난 오면서 주택난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임대 주택이 이 지역에 빠르게 지어졌는데, 이게 바로 스쿠먼의 시작입니다.
▲ 상하이의 독특한 건축 양식 ‘스쿠먼’입니다. /위키피디아
대문을 돌로 테를 두른 모습에 '돌 석' '테 고' 한자를 써서 '石箍門(중국 발음으론 '스구먼'이라고 해요)'이라고 했는데요. 당시 상하이로 이주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스쿠먼'이라 발음하면서 현재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도 있는데요. 화강암 석판 문틀이 두꺼운 검은색 문을 단단히 감싼 광경이 마치 관청 창고 같다 하여 '돌 석' '창고 고' 한자를 써 '石庫門'이라 하게 됐다는 얘기도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세대에 걸친 대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옵니다. 주로 2층이었어요.
그러다 1910년대 후반부터 스쿠먼은 3층으로 지어집니다. 당시 상하이 인구가 크게 늘어나며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서였죠. 문틀 위쪽엔 서구식 장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17·18세기 유럽 예술 양식인 '바로크', 1900년대 들어 인기를 끈 스타일인 '아르데코' 등 다양한 서구식 디자인이 스쿠먼에 적용됩니다.
스쿠먼의 독특한 골목인 '룽탕'을 중심으로 한 문화도 생겨났습니다. 골목에 의자와 화분을 놓고, 빨래를 길게 널어 말리고, 아이들이 뛰노는 광경이 일상이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상하이로 이사 오는 사람은 잇따랐고, 수십 가구가 스쿠먼 한 채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는 재개발 붐 속에서 낙후의 상징이 되며 대규모로 철거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답니다.
스쿠먼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청사가 바로 1925년 지어진 3층짜리 12호 연립 스쿠먼 중 4호였거든요. 복원 과정을 거쳐 지금은 상하이를 찾는 한국인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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