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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은 '노래 잘해 재상이 된 영척'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왜 노래 잘한 재상 이야기였을까요?
최근 대중음악과 실용음악에 270대1이란 놀라운 말을 들었습니다.
슈퍼스타K 에서 그야말로 평범했던 한 사나이가 노래 실력으로
진정한 스타에 오르는 놀라운 모습을 지켜 본 젊은이들이 지난해 보다
훨씬 더 노래하면서 살기를 업으로 선택하고자 몰렸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죠. 예전에 노래 한곡으로 재상된 영척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또는 수로부인에게 꽃과 노래를 바쳐 길이 역사에 남은
獻花歌 주인공도 있었는데, 과연 요즘 젊은이들은 영척과 같이
노래 한곡으로 재상이 되거나 히어로 되는 걸 꿈꾸는 것인가? 그렇다면
노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닌데, 과연 그들이 노래를 흉내내는 꾀꼬리 목 말고
준비해야 할 게 뭔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그래서 잡아 본 영척에 대한 이야기.
아마 가수지망생들, 대중음악 실용음악 지망생들이 이 말에 귀 기우릴 리도 없고
눈길도 안준다는 거 알면서 한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노래 한곡조 잘 불러서
일국의 재상이 된 전설같은 사연, 궁금하다면 궁금할텐데... 우선 방송으로 나간
원고를 보고, 그 다음 영척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과 논평, 그리고
우리 동방의 빼어난 임금 중에 한분이었던 정조대왕이 영척을 통해
혁신하고자 했던 인재선발 평등원칙 놀라운 정책문제까지 한번 짚어볼까 합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노래 한곡으로 재상이 된 영척의 반우가飯牛歌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요즘 인기 학과 중에 대중음악 쪽으로 몰리는 학생들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죠.
초란 실용음악, 대중음악, 해가지고 대중들 사랑을 받는
가수가 돼 보겠다. 요즘 얼마나 인기가 있는데 그렇게 놀라세요?
놀보 어떤 학교는 270대 1 소리가 나오고 있거든요.
노래 잘해서 대중에게 사랑받고 개인의 꿈을 이루고 싶다.
초란 거기에 오늘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 꿈많은 젊은이들
건드세요. 냅 두서요. 다 나름 고심 끝에 선택한 길인데?
놀보 고대에 진짜 노래 잘한 사람 한사람 소개할까요?
진짜 노래 잘해서 단박에 재상 자리 올라간 사람 있는데?
초란 오잉, 노래실력으로 재상벼슬까지? 그것이 궁금하다. 당장 말씀해
주세요. 지금 대중음악 지망한 학생들 학부모님들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노래 한곡 잘불러 재상이 됐다는 사람 누군데요?
놀보 중국 춘추 전국시대 제 환공이 패권을 잡고 있을 당시인데요. 영척이
쇠뿔을 두드리며 부른 노래 한곡 때문에 재상벼슬 받았다는겁니다
초란 근게 노래를 할라면 한곡조로 재상이 될 정도로 잘 불러부러라.
뭐 그런 이야기도 같은데, 자 그럼 제환공에게 한곡조 불러
재상 자리 올랐다는 그 영척의 노래 다시 전해 주시죠.
놀보 (노래하듯 서러움깔고서) “저 남산에 깨끗한 돌이여!/ 흰 돌이 다
닳도록 요순 같은 임금을 만나지 못하였구나/ 짧은 베 홑옷은
정강이도 못 가리고 떠는데/ 어둑한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소를
먹이노니/ 이 긴긴 밤은 어느 때나 태양이 밝아올꼬.
(南山矸 白石爛 生不遭堯與舜禪 短布單衣不掩骭
從昏飯牛薄夜半 長夜漫漫何時旦)
초란 언뜻 들으면 가사 내용도 그렇게 절실한 거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영척의 한곡조가 제환공 마음을 후려 잡은걸까요?
놀보 남산에 깨끗한 돌이여 그 돌이 다 닳도록 요순같은 좋은
지도자 만나지 못했더란 말이죠.
초란 그러니 백성들 사는꼴이 오죽하겠느냐? 그거군요.
사시사철 제 몸 하나 못 가릴 정도로 덜덜 떨고 사는 꼴 보시오.
놀보 더 가슴 아픈게 사람은 그꼴로 버티며 산대지만
소 만큼은 먹여야 땅에서 곡식이 나올 것이니
소라도 먹여야 한다며 밤늦게까지 소 여물 주다 주다
춥고 배고프고 지친 백성들이 한다는 소리가 모두 다 똑 같이
‘이 배고프고 죽을거 같은 긴긴밤 언제나 밝아올꼬
참으로 태평성대 선사해줄 성군 대덕군자는 언제나
아침 태양처럼 훤히 떠 오를꼬?’ 이게 영척이 부른 ‘반우가’였지요
초란 제 환공의 입장에서는 나는 비단옷 걸치고 천하에 패권자로
떵떵 거리는데 알고보니 백성들이 제 한몸 가리고 먹기도 힘들어
이 긴긴밤 언제 가느냐 태평성대 태양은 언제 뜨느냐?
그렇게 보니깐 영척의 그 노래 보통 노래가 아니었군요.
놀보 그 노래 한곡조 듣고서 딱 인물을 알아본 제 환공이
영척과 이야기 해보고 당신이다. 이 백성들 긴긴밤 깨치고
아침햇살을 둥덩실 띄울 인물은 당신이라야겠다. 해서 바로
재상 자리에 올렸다는겁니다.
초란 그게 바로 노래 한곡조로 재상자리 올랐다는 춘추시대
영척의 ‘반우가’였군요. 그렇다면 묻고 싶네요.
과연 지금 노래 한곡 잘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겠다는
그 많고 많은 가수지망생들이 부르고자 하는 노래는 과연
어떤 노래일까요?
놀보 270대 1, 3백대 1 소리 들어가면서 달려든 가수 지망생
여러분, 영척이 부른 노래 한곡조 뜻을 한번쯤 새겨
보자면 호랭이 풀 뜯어 묵는 소리라고 하실텐가요?
초란 그 한곡조로 재상이 된 영척에 대한 고사와 우리 조상님들이
영척과 같은 가인을 어떻게 이야기 했는가 그런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商歌! 이건 상인들의 노래가 아니다. 벼슬을 구하는 비통한 노래란 뜻이다.
옛 선비들이 그리도 많은 상가를 지어 노래한 뜻은 결국 벼슬을 구걸하는
조금 고상한 동냥질이기도했다. 이 상가를 부른 원조가 바로 오늘 이야기 하려는
영척寗戚이란 인물이다. 얼마전 관중과 포숙아 우정 이야길 했기에 조금
친숙할지도 모른다. 춘추5패 가운데 첫번째 패권을 잡았던 제환공 시대
재상을 지낸 인물이 바로 영척이다. 고사에 '무망毋忘'이란 말이 나오면
최소한 네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륙을 지배하는 실질적 1인자로 등장한
제환공과 재상이었던 영척, 그리고 관중과 포숙아. 이 네사람이 함께 술한잔 할 때
포숙아가 썼던 말이 '무망'이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공자 규와 거땅에서 싸웠던
그날을 잊지 맙시다.' 그 유명한 술한잔에 남겨진 '무망'의 주인공에 들었던 영척.
그러고 보면 제환공은 참 대단한 지도자라 하겠다. 원수의 참모를 재상으로 쓰고
노래 한곡조 듣고 영척을 썼던 인물이니 말이다.
영척은 애초에 벼슬에 뜻이 있었지만 당시 신분으로는 바라 볼 수 없는 자였다.
그래서 소에게 여물이나 먹이면서 촌에서 때를 기다리며 살았다고 한다.
마치 강태공이 주문왕이 찾아 올 것을 기다리며 낚시질 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제 환공이 온다고 한다. 그 소문을 들은 영척은 자기가 기르던 소를 끌고
제 환공이 지나가는 길에서 기다리다 소뿔을 두들기면서 불렀다는 노래가
오늘 방송에 소개된 <반우가--소 여물먹이는 노래>였다. 천하를 논할 인재가
살 길이 없어 소에게 여물이나 먹이면서 살았노라, 남산의 하얀 돌이 닳고 다
닳아지도록 기다렸노라, 그리고 내 긴긴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 숭숭 구멍 뚫린
무명옷에 어둠이 후려치는 찬바람 치고 들어오는데, 이 긴긴밤 나는 소 여물을 먹이며
태양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노라. 그대여 나를 보았는가? 내 그대를 위해
태양이라도 띄워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환공이 알아들었다. 영척의 노래가 끝나자 불러 들여 이거 저거 물어본다.
준비된 인재처럼 술술 나오는 영척의 말은 소에게 여물이나 먹일 사람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마침내 제환공과 같이 궁궐로 돌아간다. 그리고 재상이 됐다.
훗날 사람들은 노래 한곡으로 재상이 된 영척을 무수히 인용하며
군주가 인재를 알아보는 귀와 열린 정신을 소중히 노래했었다.
영척의 고사는 고려 때도 조선시대도 꾸준히 인용되면서, 한 시대를 경륜할
영척과 같은 인재는 어디 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모든 걸 준비했으나, 벼슬길 열리지 않았던 불우한 선비들은
그 스스로 임금 귀에 들어갔으면 싶게 악을 쓰듯이 영척 처럼 노래하곤했다.
광해군시절 왕비의 외척들이 방종하자 그를 비꼬는 '궁류시' 한편을 지어
세간에 나돌게 했던 권필을 보자. 그는 타락한 권력 앞에서는
영척과 같이 노래 할 생각도 없고, 천하 명 가객이라 할 진청도 소용없는 때라며
절규하는 시를 남겼다. 가인 윤여극에게 주면서, 선비가 노래한곡조 잘못 불러
황천가는 길인데. 여보게 노래꾼 윤여극이여. 시절 봐 가면서 노래하게나
자네가 영척이 처럼 노래를 잘 부른대도, 진청이 처럼 천하절창 가인이래도
하루 아침에 황천길 갈 수 있을 것이니. 알아 듣는 귀도 없는 세상에
천하 절창 흉내낼 생각도 말고 오직 꾀고리 처럼 박수나 받고 술잔이나 받고 만족하거라.
그런 자조 섞인 심정으로 한수 전해 주고 떠난다.
가인(歌人) 윤여극(尹汝極)에게 주다
남산찬 노랠랑 부르지 말라 / 莫唱南山粲
어느 누가 한 번인들 들어주리오 / 何人爲一聽
지금 천하 사람들의 귀는 / 卽今天下耳
공연히 진청이 있는 줄만 알 뿐 / 空識有秦靑
평소 술을 즐겼던 권필이 귀양가던 날. 그래도 그를 보내는 것이
가슴 아팠던지 길에 나온 행인들이 '여보시오. 내 술 한잔 들고가소'
하면서 건네주는 술을 그는 사양하지 않고 마시고 또 마신다.
동대문 바깥에서 권필의 노래를 들었던 벗이었거나, 권필의 울분어린
글에 감동했던 사람이었거나, 평소 오며가며 술집에서 만났던 술친구였거나
주는대로 마신 권필은 그날 대취하여 다음날 영영 일어나지 않고 가버렸다.
제환공 같은 인물이라면 나도 영척 처럼 노래 할 것이고
열자列子에 나오는 진청秦靑처럼 노래 한곡조에 숲에 나무들이 몸을 흔들고
하늘에 구름이 멈춰 서 버릴 정도 그 절창을 노래 하련만 저 임금 밑에서는
노래하지 않겠노라. 귀양가는 길 멀리도 아니고 동대문 밖에서 행인이 주는대로
술을 마시고 떠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농암 김창협 처럼 살아서 스스로 자족하는 노래 부르며
천명을 다하고자 한 여유를 보인 영척도 있었다. 그에겐 아예
이놈의 나라 재상 따위 안중에도 없으니, 영척이 처럼 소뿔을 치면서
노래할 것도 없고, 공자를 비웃으며 노래했던 초나라 광인 접여
흉내내고 말것도 없다. 자갈밭이라도 먹고 살 길이 있나니
이곳에서 남 부럽다 말고 살아 보련다. 하면서 부른 노래가
시냇가 초가집터 어이 이리 늦잡았나 / 溪上誅茅何太晩
이내 마음 높은 벼슬 아랑곳하지 않았네 / 素心曾不在軒裳
소 먹이던 제나라 재상 따위 그야말로 하찮구나 / 飯牛却自輕齊相
봉황가〉라 초광 접여(楚狂接輿) 뉘라서 알아보리 / 歌鳳誰能識楚狂
왕손 자주 왕림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 頗喜王孫頻枉駕
외진 산골 한 고을에 마음 서로 툭 트였네 / 相忘畏壘得同鄕
자갈밭 이곳 또한 우리 생계 꾸릴 만하니 / 石田且共論生理
낙양의 기름진 전답 부러울 게 뭐 있나 / 負郭寧須羨洛陽
그런데 상촌 신흠으로 오면 영척의 노래는 자못 진지해 진다.
앞서도 신흠을 이야기 하면서 했던 한구절 생각날게다.
임진란 때 최립이 외교문서와 명나라 사신 영접 담당하면서
선비로서 굽혀선 안될 자존심 굽히고 자신은 참새가 되고
명나라 사신은 봉황이 되게 노래했던 그 아픔을 자신만은
답습하지 않겠노라며 스스로 참새 자리로 놓지 않았던 도도한 자존심으로
대륙의 사신과 마주했던 상촌 신흠. 그는 그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 나가면서, 이놈의 세상 문화가 꽃 피는 세상이었다면
이놈의 시도 훨씬 멋드러진 노래로 나올 참인데. 전란을 겪은 강토
전후 처리로 어찌 살아야 하나 사방에서 울음소리 드높은 그 시절
한 가운데를 걸어 나오면서 상촌은 그래도 영척의 노래를 부르고자 한다.
아! 뜻은 크나 쓰임을 받지 못하나니 / 嗟哉志大不見售
만사가 아득해라 끝내 무엇이 있을꼬 / 萬事悠悠竟何有
끌채 밑의 말처럼 얽매임을 어떻게 견디랴 / 安堪局束轅下羈
천지가 나를 낸 게 뜻이 있는지 없는지 / 天地生吾有意否
남아가 세상에 헛되이 늙지 않는 법이라 / 男兒於世不虛老
쇠뿔 두드리며 노래하다 끝내 때를 만났네 / 叩角狂歌終遇際
(상촌집(象村集)신흠(申欽) 칠언고시 남자행(男子行) 중에서)
사내가 선비가, 노래를 할 때는 시절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시절인연이 안 맞으니 권필처럼 영척이고 진청이고 흉내낼 것 뭐 있냐
내 노래는 끝났다. 귀양길에서 주는대로 술 받아 마시고 다음날 저 세상 간 것은
장부가 노래할 것이 없다 싶을 때 쓰는 유서의 노래라 할 것이다.
아니면 신흠처럼 전쟁 뒤 설거지 해야 하는 팔자라도 영척이 처럼 노래해야겠다.
이 나라 이 겨레가 살아야 하니, 내가 부른 노래가 그들에게 단 하루 한끼 밥을
대신할 한곡조가 있다면 노래 하겠다는 거룩한 십자가 노래라도 부르겠노란 것이다.
그래서 절의파 김상헌은 노래 잘한 영척과 대장쟁이 혜강을 들어 말하기를
시절을 잘못 만나면 소 밑에서 반우가 노래나 하고 살아야 할 팔자도 있고
혜강처럼 죽림칠현으로 대장간 나가 왼종일 망치질이나 하면서 살아야 할
팔자도 있더란 이야기다.
중국쪽에선 영척이란 인물이 사라진 다음 세대 쯤에
초나라 충신으로 역적들의 참소를 받아 원통한 한을 품고서
이놈의 몸뚱이 물에 던져 고기밥이 되더라도 이땅에 못 살겠다며
우울한 세상을 만나 슬픔을 풀길 없어 그 고상한 눈물을
이소경에 남겼던 굴원도 영척이 때를 만나 제환공을 보좌했던 걸
부러운듯 노래했던 구절을 남겼다.
영척 지구가혜寗戚之謳謌兮여,
영척이 소리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제환문이해 보齊桓聞以該輔라.
제나라 환공이 듣고 등용하니 그를 보좌하였네.
그런데, 영척의 노래를 진정으로 알아 본 임금이 있어 다행이었고
그 임금을 보필 못한 우물안 개구리 대신들이 있어서 불행이었던
역사의 한 장면을 돌아보자.
정조 대왕은 그의 '홍재전서'란 저술을 통해서 영척을 놓고 말하기를
'예전엔 영척과 같은 천민이라 할 지라도 그 재주를 알아본 군주에게
등용돼 한 시절을 경륜했다. 이땅을 보라. 권문세가 사대부 양반네들이
한번 권세를 잡으면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재주있는 서민들을 영원히
종처럼 노예처럼 살도록 하니 이런 불평등이 어디 있는가?'
이런 취지로 준엄하게 불평등한 봉건제도 신분구조를 질타했던 정조대왕.
진정 영도자를 보필할 영척이 없음을 통탄했던 정조대왕이 '홍재전서'에
남긴 말을 직접 들어보자.
문벌(門閥)로써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고대에는 없던 제도였으므로 춘추 시대의 세경(世卿)을 공자(孔子)가 기롱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진(晉) 나라에 호씨(狐氏)와 조씨(趙氏)가 있었어도 기결(冀缺)이 농사를 짓다가 등용되었고, 제(齊) 나라에 국씨(國氏)와 고씨(高氏)가 있었어도 영척(甯戚)이 소를 먹이다가 기용되기도 하였으니, 그 당시 열국(列國)에 본래 거실(巨室)이 있었지만, 재덕(才德)이 출중하고 특이한 선비들이 장사꾼이나 농사꾼, 창고지기 중에서 기용되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위(後魏)의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마침내 일정한 법이 되어 버렸다. 이에 권문세가의 귀족들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고관대작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차지하는 반면, 지혜와 용기, 구변(口辯)과 기력을 가진 뛰어난 백성들은 굴종과 억압 속에서 죽을 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그들 가운데는 실망하여 스스로 방종하며 살아간 자도 있었고 불만을 품고 반란을 생각한 자도 있었으니, 아, 하늘이 인재를 내면서 어찌 그들이 그렇게만 살아가게끔 만들었겠는가. 천하를 다스릴 인재는 천하를 다 뒤져 구하여도 모자랄 판인데 지금 아홉 등급으로 제한하니, 이것은 천하 인재의 열에 아홉은 들어다 버리는 격인 만큼 인재 등용이 어찌 그리도 폭넓지 못하단 말인가. 구품중정제는 그래도 관작(官爵)만을 제한할 뿐이었으나, 《씨족지(氏族志)》가 나오게 되자 혼인의 등급이 나누어져 그 법이 갈수록 세밀해졌고, 《성씨록(姓氏錄)》이 만들어지자 혼인의 금법(禁法)이 만들어져 그 풍조가 갈수록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어떠한 처방으로도 이를 구제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 그 병폐가 고대에 용(俑)을 만든 것보다 더 심하다. 이제 그 병폐가 더욱 심한 것에 대하여 말해 보자면, 관작을 문벌에 따라 제한하는 것과 혼인을 족성(族姓)에 따라 등급 매기는 것 중에 그 병폐가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으며 어느 것이 얕고 어느 것이 깊은가? 양(梁) 나라 무제(武帝)가 후경(侯景)에게 말하기를, “왕씨(王氏)와 사씨(謝氏)는 문벌이 높으니 주씨(朱氏)와 장씨(張氏) 이하의 집안에서 혼처(婚處)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는데, 무제는 그 한마디 말 때문에 나라를 잃었다고 할 만하다.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 “저 한 마디 굵기의 줄기로 이 백 척의 가지를 덮었다.[以彼徑寸莖 蔭此百尺條]”라고 하였는데, 그 또한 시세(時勢)를 상심한 절실한 말이다. 이에 대하여 상세히 논해 보도록 하라.
오늘 내 글은 또 다시 정조에서 멈추고 만다.
그렇다면 이 시대 가수되는게 꿈이란 그 많은 젊은이들이여.
기억이라도 해두려는가?
선대 노래꾼들은 그 한곡조로 세상을 구하기도 했고
그 한곡조로 목숨을 던지기도 했으며, 그 한가락으로
역사를 바꾸기도 했던 노래였는데, 270대1로 명카수학과 합격해서
5천만대 1 슈퍼스타 가수가 되어 그대들이 진정 부르고 싶은 노래는 과연
어떤 한곡조여야 하는 것인가? 만약 한줄기 연기보다 허망한 인기와
낙엽보다 가볍게 날아갈 돈과 번개보다 빨리 잊혀질 이름석자를 위해 노래하겠다면
그대 젊은 청춘들이여. 차라리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한 노래 한곡조라도
제대로 부르는 것이 복 짓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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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나가 출세 하려는것은 변함이 없네요
물론 출세하려는 목적은 그릇에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을 아까워하던 굴원도 때를 기다리던 태공망 여상도
그리고 수많은 우리 선현들도 은거한답시고 북한산 관악산 심지어 남산까지 아무리 멀어도 경기도를 벗어나지 못한 은거는 영척과 같은 심정아닐까요? 명분도 살리고 때도기다리고
은거=노래(자신을 드러냄) 아닐까요?
그러지 않은 수만은 선조들도 있지만요
그리고 세상에나가 뜻을 펼치는것 당연한것 같아요
참 선생님!
선생님 만난이후로 명심보감보면서 글 연습하느라고 과감히 댓글을 달기 시작했으니
답글이나 메일 전화 쪽지등으로 가르침을 바랍니다
물론 보라돌이님글에서도 번뜩이는 분석력 화려한글 배우고 있으니 지도편달 바랍니다
또한 회원님들도....
예로부터 3일 밤낮 음주가무, 10일 밤낮 음주가무로 하늘에 제사하고
함께 신명나게 어울려 놀던 유전자를 지닌 우리들이 아닌가?
한마디로 우리 대한민국은 온국민이 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징글 징글하게 노래들 잘한다.
엄청 많은 노래방, 그 노래방에서 사람들 어떠한가?
남의 노래는 잘 듣지도 않고 제가 부를 곡만 생각하고
마이크 한번 잡으면 잘 놓으려 않고 남이 듣던지 말던지 기를 쓰며 부른다.
전제 시대에는 임금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임금을 감동시키면 되지만
온국민이 가수인 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감동시키려면
270대 1이 아니라 1000대 1도 그리 대수는 아닐테지만
그저 앵무새처럼 노래하는 가수는 좀.
내력은 타고 납니다..요즈음 말로 하면은 유전자..
왕죽 밭에 왕죽 난다...
위정자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소리도 절로 나나 봅니다...
지초실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전 춤 잘 추시는 분, 그림 잘 그리시는 분들이 너무너무 부럽거든요!
우리 작가님! 너무 많은 수고에 감사 드려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척도는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지금도 그저 앵무새처럼 노래만 잘 하는 가수나
단지 연기만 잘하는 연예인들은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가수 지망생들이나, 그러한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꼭
읽어봐야 할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창력이나 연기력에다 인간적인 풍모까지 갖고 있다면
더욱 대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니까요.
고대 영척의 노래와 얽힌 얘기에서부터 정조대왕의 한탄에 이르기까지,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